표 운
지난 2013년10월 7일 새벽 1시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이며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한 분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내가 평소 좋아했던 그 분은 평생 대학 강단에서 철학을
가르친 이당(怡堂)
안병욱 교수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안교수의 ‘철학개론’을 수강하면서 지성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첫 시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이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맴돌고 있다.
‘哲學은 무었인가?’
라는 강의에서 그는 ‘哲學은 知學이다.
즉 철학은 지식을 공부하는 것,
지식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哲자와 知자에는 입구(口)가 있고 折(절)괴 矢(시)자는 단지 발음(表音)을 나타내며 결국 철학은 입(口)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입에서 나오는 지식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였다.
영어로 철학을 필로소피(philosophy)라고 한다.
이는 희랍어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지식(sophia)을 사랑(philo)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니 이를 중국을 비롯한 한문문화권에서는
애지지학(愛知之學)이라고도 한다.
사랑에는 에로스(eros)
아가페(agaphe)와 함께 필로스(philos)가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에로스,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와 자식 간의 조건 없는 사랑은
아가페라고 하며 사물과 지식을 사랑하는 것은 필로스(philos)라고 하였다.
그날의 강의는 53년이 지난 오늘에도 잊을 수가 없다.
한평생 지식과 사상을 사랑한 그의 강의는 모든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다.
일생동안 49권의 책을 집필하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중 강연과 도산 아카데미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독자,
학생,
시민들과 함께 하였다.
주옥같은 글도 많이 썼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 강의도 수없이
했다.
고교 졸업 2년 후 친구 김정남군이 주도한 '다프네' 클럽에서 안교수를 초빙하여 우리 동기 친구 50여명에게 들려 준 젊은이의 인생 도전에
대한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이당의
강연과 글에 빠져들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그 글이 매우 쉬울 뿐 아니라 중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단어로 그것도 단문 위주로 글을 쓰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쉽고 짧은 문장을 쓰는 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갑내기 연세대 철학교수 김형석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의 양대 지성인으로 손꼽혔던
그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0월10일 열린 고(故) 안병욱 교수 환송예식에서 동갑내기 철학가 김형석 선생이 추모사를
읽고 있다.>
노 철학자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이당의 자제인 안동규 한림대 교수는
'아버지,
철학이 도대체 뭐예요?'
라고 순진한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당은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라고 무겁게 철학적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안동규 교수는 그것이 그 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면서야 그 심오한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되는 삶의 굴레에서
‘철학은 바로 죽음의 연습이다.’라고 설파한 이당의 논지,
그것이 바로 그의 인생철학이아닌가..
결국 이당은 누구나 죽어야하는 숙명적인 삶 속에 인생이 있음을 말하였고
철학을 논하였다.
그러면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물로 맡겨진 시간의 길이다.’
라고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는
정의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기에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이
아닐까...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 동원 목사가 임종을 하였다.
10월 6일 밤 이당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
이 목사는 이당의 귀에다 대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아멘-"하며 시편 23장 다윗의 시를 낭송하였다.
그리고 "안 교수님! 하나님께서 영원한 집을 준비하셨어요."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안교수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어요.
그리고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웃으시면서,
그리고 새벽에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이 목사는 이당의 마지막 모습을 설교때 이렇게
말씀했다.
죽음을 연습해 온 그의 철학과도
같이,.....
강원도 양구에 가면
이당의 묘가 있다.
192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고
2013년 10월 10일 강원도 양구에 묻히셨다.
불행하게도 고향 땅은 아니지만 북녘 고향땅에서 가까운
휴전선 근처라 다행일 것이다. 양구군이 지난 해 두 분의 철학자 안병욱 교수와 김형석
교수,
시인 이해인 수녀의 철학과 문학세계를 기리기 위해 파로호
근처에 ‘시와 철학의 집’
을 마련했다.
1층은 양구가 고향인 이해인 수녀의 문학관이
있고,
2층은 한국 철학의 두 아이콘인 동갑내기
안병욱,
김형석 교수를 기리는 철학의 집이
있다.
먼저 떠난 이당의 묘에는 그가 직접 쓴 돌판이 있다.
그는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의 글씨는 물 흐르는 듯한 자유로움이 있어
본인이 이당체(怡堂体)라고 명명하였다.
이 돌판에 청정심 청무성(淸淨心,
聽無聲)이라고 여섯 글자를 새겼다.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
그러면 무성(소리없음)을 들을 수 있다.’
진리의 소리는 원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사상,
자유,
사랑,
신의 말씀은 원래 소리가 없지
않은가.
속세의 진애가 끼지 않은 순수한 이당의 인생관이 훤히
들어난다.
이당을 기리는 우리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안병욱 교수 묘소의 비문(淸淨心,
聽無聲)>
김형석 교수도 언젠가는 이당의 옆에 올 것이다.
두 막역지우 철학자는 양구 땅 철학의 집에서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인간의 몸은 나비로 환생한다고 말한 금세기의 대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말과 같이 어느 따듯한 봄 날 두 분의 영혼이 나비로 훨훨 날아오르면서
오순도순 애환서린 인생역정을 이야기 하지는 않을까...-끝-(2013.10)
(주 1)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1926.7월-2004. 8월)는 죽음학으로 유명한 의사이다.
'죽음과 죽어감'을 출판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그녀는 의사와 간호사, 의대생 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의 속내를 들어주도록
격려했고,
호스피스의 창시자로서 의료계
안에 그녀가 이뤄놓은 업적은 이론과 실천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그녀의 장례식 때 참석한 모든 문상자들은 나비를 날려 교회 실내가 온통 나비가 떠 다녔다고 한다.
로스 여사는 인간이 죽으면 나비로 환생한다는 소박한 생각을 하였다.
(주 2)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자손에게 한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수필 중 '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라는
말과 같이 임종을 지키는 가족들이 '장지는? 화장할까? 등 이런 얘기를 한다면 귀로 다 들리게 됨으로 얼마나 힘들고 슬프겠습니까? '좋은 말'
'덕담'을 함으로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게 가족들이 협조해 주기를 유언하심이
어떠한지요.
나는
시편 23편을 나에게 낭송해 달라고 유언할 려고
합니다.
첫댓글 표운선생, 기억력도 좋다. 나도 안병욱 철학개론 강의를 들었는데 4가지 우상에 대해서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그 내용은 가물가물하여 어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서야 다시 깨달을 수 있었지. 이놈의 기억력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