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주의Pharisaism(형식주의形式主義): ‘사랑’이 율법의 대강령이건만, 율법의 ‘본질(내용)’인 ‘사랑’을 경시하고 율법의 ‘겉’인 의식법 같은 ‘외형’만을 중시하는 주의主義.
{바른 믿음} 정이철 <정이철 목사의 신간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 출간>
https://archive.ph/7dCwt
교정자 김문정 집사가 있었음에도,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를 추천한 <추천사>들에 외계어 같은 비문非文들이 있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은 김문정 집사 말대로 “비상한 책”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도 극 존칭어 ‘께서’를 쓰지 않은 서철원 목사님이 “비상한” 제자에게 “께서”라고 극 존칭어를 쓰신 것도 이 책 <추천사>들에서 백미白眉다. 또한 “정이철 학동”으로서 ‘스승 Wolf이철’을 받들어 지난해 7월에 ‘J Gresham Machen [The Active Obedience of Christ]’를 “외계어”로 폄훼, 조롱했던 김문정 집사가 영어 실력 자랑할 일 없어서인지, 영어 실력을 자랑한 ‘진용식 목사 <추천사>’에서 “능동적 순종 교리(the doctrine of the Obedience of Christ)”를 그대로 둔 것 역시 백미다. ㅠㅠ. 그 스승에 그 제자다. ㅡ참고로, 일본어 어투 ‘~의 ~의 ~’을 쓰기 싫어하며 우리말 입말(구어口語)체를 쓰기 좋아하며 중국어 어투 ‘적的’을 안 쓰려고 하는 내가 교정자였다면, 그냥 간단히 ‘그리스도 능동 순종(The Active Obedience of Christ) 교리’로 고쳤을 것이다.ㅡ
영어과 출신이기는 하지만 영어는 까막눈과 한가지인 나라서 김문정 집사 영어 실력은 그렇다 치자. 영어의 고장 미국에서 20 년 가까이 살았으면서도 영어 원서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하는 둔재 주제에 천재 죽산 박형룡 목사님 영어 실력을 폄훼한 Wolf이철은 탈자 “Active”를 발견 못 하고 뭐 했나? 조롱받아야만 하는 그런 실력으로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나? ㅡ남아공신학대학원에서 Wolf이철에게 ‘Ph.D 학위’를 준다면, 이는 곧 ‘스승 서철원 목사님과 총신신대원 명예’에 먹칠하고 있는 고경태 목사, 남아공신학대학원 명예에 똥칠하는 ‘제2 고경태 신학박사’ 탄생을 뜻한다.ㅡ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막 12: 28~34)
‘율법의 대강령, 율법의 본질로서 사랑(긍휼, 자비)의 법’은 ‘의식법’에 우선한다. 나는 이 원리를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다윗의 고사古史’에서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베푸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 10:25~37)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도를 만나 다 죽어가는 이웃에게 제사장과 레위가 자비를 베풀지 않은 까닭은 의식법 때문이었을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ㅡ주님께서 율법의 대강령을 말씀하신 곳이 ‘누가복음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함께 ‘마태복음 22장 34절~40절’과 ‘마가복음 12장 28절~34절’에 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서기관이 지혜롭게 대답한 것 하나인 의식법에 우선하는 자비의 법,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가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과 레위가 자비를 베풀지 않은 까닭은 의식법 때문이었을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ㅡ
그런데 지난해 7월 22일이었다. {Daum} 카페 {개혁주의 마을}에서 김문정 집사ㅡ별명: 주의 검을 보내사ㅡ는 나에게 ‘주님께서 혈우병 여인을 접촉하신 사실’을 내세워 ‘주님께서 율법을 어기셨음’을 주장했다.1) 그런 뒤 “주검보 님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거나 하는 죄를 짓지 않으셨음을 믿으십니까?”라는 내 물음에 ‘율법의 본질로서 사랑의 법은 의식법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김문정 집사는 “율법을 어기셨습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어떤 율법을 어기셨습니까?”라는 내 물음에 김문정 집사는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민 19:11~13)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 5:35, 40~42)”고 답변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몇 달 뒤인 10월 11일이었다. Wolf진남은 ‘그리스도께서 의식법을 범하신 일에 관한 글’을 {바른 믿음}에 올렸다.
{바른 믿음} 임진남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다.>
https://archive.ph/T8di3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것은 성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가 한글을 읽고 쉽게 이해하는 수준을 가졌다면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을 어기면서 자신의 사역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와 죽은 사람, 그리고 38 년 동안 혈루병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을 의도적으로 접촉하였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론적으로 이미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예수님이 만졌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면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율법이 규정한 대로 정결 예식을 반드시 행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단 한 번도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하셨다고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지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오신 구원의 창시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대략 1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Wolf이철 역시 이에 관한 글을 {바른 믿음}에 올렸다.2) ‘율법의 본질로서 사랑의 법은 의식법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들은 김문정 집사 꽁무니를 뒤따른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목사 권위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그들에게 “정이철 학동” 김문정 집사 역시 ‘께서’라는 높임을 받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셨다.”고 하신 서철원 목사님, 그분 {성경}에는 마태복음 12장 7절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했으리라.”가 없고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이 없듯이, 그들 {성경}에는 ‘주님께서 율법의 대강령, 율법의 본질로서 자비를 교훈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없다. 중생하지 못한 서기관이었지만, 서기관은 예수님께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고 지혜롭게 말씀드림으로써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는 주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런데 서기관과 다르게 지혜롭지 못한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들, 서철원 교조주의 목사들과 김문정 집사에게, 아무 말 큰 잔치를 벌이는 게 주특기인 바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멀리 있는 걸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 3:1)
현대판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목사들’과 ‘바리새파 카페지기로서 많이 선생 된 김문정 집사’에게 화 있을진저! 주님께서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했느냐?”고 하셨음에도, ‘그리스도 능동(율법준수) 순종’이 그 얼마나 싫으셨으면 “예수님은 안식일을 범하셨다.”는 망령스런 주장을 하신 스승 서철원 목사님을 이어 김문정 집사를 포함해 예장 합동 꼴뚜기파 목사들이 하는 짓을 보면, ‘경건과 긍휼의 주님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던 위선자들, 형식주의의 바리새인들’과 똑같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그들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눅 6:7~9)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요 7:23)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해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 9:16)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4~25)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해 그분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 9:31)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 한 일을 읽지 못했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했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해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했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했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2: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 12:11~12)
안식일일지라도 양보다 사람이 우선한다. 이런 경중輕重을 모르는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들에게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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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음 두 글을 참고하라.
{개혁주의 마을} 주의 검을 보내사 <보혈은 반쪽이라는 박채동 님, 대답하세요. 그리스도는 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1OV/315
{개혁주의 마을} 주의 검을 보내사 <율법이 금하는 시체를 만지고 유출병자를 만지고, 원시 의를 율법 순종으로 극복하셔야 할 분이 이 무슨….>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1OV/316
위 두번째 글에는 “내 글 전후문맥을 잘라먹고 질문하는 것은 여전하시네. 성경 해석이 모세율법 본질인 긍휼은 못 본 나머지 주님께 외식주의자로 질타를 받은 바리새인들, 그들 선조 유대교 장로들 해석과 똑같고.”라는 내 답 댓글이 있다.
2) {바른 믿음} 정이철 <복음을 허무는 사이비 개혁주의 놀음 이제 그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https://archive.ph/UlcK9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