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김봉석의 시네토피아] 2013-11-28>
머드
위태롭게 흔들리는 세 개의 사랑
김봉석 영화평론가
아칸소주 미시시피 강변에서 나고 자란 소년 엘리스(타이 셰리던) 앞에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세개의 사랑이 놓여 있다. 먼저, 그는 상급생 메이 펄(보니 스터디밴트)을 상대로 첫사랑의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강가의 무료한 삶에 지친 어머니는 도시로 가겠다며 아버지에게 이혼을 청한다. 처량한 신세가 된 아버지는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으로 자기 푸념을 대신하려 한다. 그리고 머드(매튜 매커너헤이)가 있다. 강 한가운데 있는 이름 모를 섬에 숨어 사는 이 부랑자는 어릴 적부터 목숨 바쳐 사랑해온 여자 주니퍼(리즈 위더스푼)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뒤 유족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 엘리스는 그가 주니퍼와 재회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신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도 회복되길 염원한다.소년의 성장담을 미국 문학사의 유구한 전통 안에서 야심차게 풀어놓은 작품이다. 제프 니콜스 감독은 이 영화의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샘 페킨파가 마크 트웨인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었다면"이라는 어마어마한 힌트를 던진 적이 있는데, 결과물에서도 그 포부를 감지하기가 어렵지 않다. 테렌스 맬릭풍의 대자연 속을 누비는 모험가 엘리스는 < 허클베리 핀의 모험 > 과 < 톰 소여의 모험 > 의 후예를 자청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이 거의 금기시하는 존재인 머드와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성숙과 자유를 향해 한발씩 더 나아간다.그 결과물은 언뜻 의미심장해 보이나 스크린 너머 관객의 마음에까지 질풍노도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인다. 데뷔작 < 샷건 스토리즈 > 로 주목받은 뒤 < 테이크 쉘터 > 로 단숨에 칸영화제의 총아로 떠오른 제프 니콜스 감독은 전작들에서 인간의 심리적 풍경을 스크린에 옮겨내는 장엄한 묘사력으로 여러 평자들로부터 찬사를 얻은 바 있다. 하지만 < 머드 > 는 그의 그런 재능이 과대평가받았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하게 만든다. 엘리스와 머드 등 주요 인물들이 부단히 움직이며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그 운동의 이미지들이 감정과 정서가 흐르는 강물을 형성하진 못하며, 그래서 영화 전체의 심상은 가만히 고여 있는 우물처럼 느껴진다. 나무 위에 걸린 배를 비롯한 상징들도 영화에 녹아들지 못하고 인위적으로만 박혀 있다. 미시시피강이라는 대자연도 절대적 공간으로서의 위엄을 주장하지만 끝내 그 위엄을 영화 이미지로 설득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 소년의 성장통을 외면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서사와 이미지들이 늘 너무 거창하거나 거창하려 해서 앙상해지고 만 영화가 됐다.
소년이 '어른' 남자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풋사랑이 산산조각 나버리고, 믿었던 어른에게 배신을 당해봐야 한다. 다만 신산한 통과의례를 거쳤다고 해서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채 회한과 자기 비하에 휩싸여 기나긴 인생을 유아기에 머무는 사람들도 많다. '머드'의 엘리스가 그런 길에 서 있다. 14살의 엘리스는 아칸소의 시골 마을에서,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물려준 배에서 살고 있다. 법이 바뀌면서 강변에 배를 대고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야 한다. 엄마도 아빠를 떠나려 한다. 엘리스는 친구인 넥본과 함께 미시시피강 하류의 무인도에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난다. 팔에 뱀문신을 한 남자, 머드.
머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여자 주니퍼를 위해, 그녀를 폭행한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엘리스는 머드에게 빠져든다. 수배 중인 머드가 도망치도록 도와준다. 무인도에는 홍수 때 떠내려 온 보트가 있었다. 보트를 움직이게 할 모터와 부품들을 구해다 준다. 와중에 주니퍼에게 머드가 보내는 쪽지도 전해주고, 짝사랑했던 메이 펄에게 고백도 한다. 머드를 쫓는 악마 같은 남자가 있기는 하지만 별 문제는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세상일은 쉽게 풀려나가지 않는다. 머드는 바보 같은 남자다. 주니퍼는 머드를 좋아하지만 계속 나쁜 남자들과 어울리고, 문제가 생기면 머드를 찾아온다. 그러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메이 펄은 엘리스를 따스하게 대해주지만, 엘리스는 중학생이고 메이 펄은 고등학생이다. 미래가 빤히 보인다. 풋사랑은 늘 그렇듯 파괴적인 결말로 향하고 엘리스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부모는 신뢰할 수 없고 머드는 거짓말쟁이다. 유사 가족의 환상마저 깨지면서 '머드'는 파국으로 흘러간다.
전작인 '테이크 쉘터'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는 '예언자'를 보여주었던 제프 니콜스는 '머드'에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 아칸소 출신인 제프 니콜스의 유년이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머드'는 잔혹한 이야기지만 전체적인 정서는 부드럽고 흥겨운 블루스 음악을 닮았다. 블루스는 노예의 음악이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잊기 위해, 견뎌내기 위해 흑인들이 불렀던 블루스는 세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다. 엘리스는 인생에서 가장 가혹한 순간을 만나고 있다. 부모에게도, 연인에게서도 버림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 생각일 뿐이지만.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던 세상은 이제 끝난 것이다. 누구도 나를 위해 살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무한의 사랑을 퍼부어주지 않는다. 하지만 머드는 떠나기 전에 잠시 엘리스를 찾아 감사의 말을 던져준다. 세상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이유는 있고, 가끔은 주변에 손을 내밀 온정도 존재한다. 아무리 배신을 당해도 또 누군가는 마음을 열며 다가올 것이고. 그래서 '머드'는 희망으로 끝난다. 그 희망은 모든 게 잘 될 거야, 같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그저 세상은 늘 이곳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자신의 길을 찾으며 걸어가고 있다는 것뿐. 머드는 어리석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어른 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