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님이 2011.12.05에 쓴 책 리뷰인데 잘쓰신거같아서 공유합니다.
십 여년 전, 이덕일 소장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던 때를 기억한다. 사도제자의 죽음이 오랜 세월 누군가에 의해 가려져왔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닫고 전율했다. 그때 처음으로 "역사는 누가, 누구의 시각으로 쓰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500년 전 루터가 성서해석권을 만인에게 열어놓았듯이, 한국사회에서도 소위 전문가들이 독점해온 역사해석권을 대중이 찾아야된다는 의식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우리 사회에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가 도래했다. 사제들이 독점한 성서해석이 위기를 맞이했듯이 주류역사학계를 비롯한 강단의 주류인문학계의 본질이 드러나면서 급속히 그들의 인문학 권위가 추락한 것이다.
역사를 보는 시각은 풍성하고 다양할수록 좋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한국주류역사학계는 '정설'이란 것이 있다. 인문학에 정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문학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대중이 참여하고 공감하는 역사, 대중이 만들어가는 역사는 이제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지금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대중은 계몽시대의 수동적인 대중이 아니다. 대중의 검증 없는 전문성은 절름발이 전문성이라 전문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올해 초 서울대 국문과 정병설 교수의 인터넷 강좌 '권력과 인간'을 보면서, 기존 주류인문학계의 깊은 불안감을 봤다. 정교수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한중록 혜경궁 홍씨의 시각으로 보겠다면서, 이덕일 소장의 시각, 근거, 논리는 모두 틀렸다고 주장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하나도 근거가 없는, 읽어서는 안 되는 책으로 단정했다. 극도의 공포감에 근거한 마녀사냥의 재현이었다. 내가 전적으로 옳기 위해 상대는 전적으로 틀려야 한다는 교만과 독존의식과 반인문적 폭력이 횡횡했다.
<사도세자의 고백>이 성공한 이유를 정교수는 "대중감정에 영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중은 감정만 있는 존재고 판단력이 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근거와 논리가 모두 잘못됐는데 대중들이 이들 아무런 사고 없이 무작정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전문가들이 나서서 "역사대중화"를 바로 잡아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싶은 퇴행적 주장을 그는 아무런 성찰 없이 주장한다.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한 극도의 증오감이 정교수를 좌충우돌하게 만든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를 봤다. 나는 이주한 연구위원의 <노론300년 권력의 비밀>을 탐구하듯 치밀하게 봤고, 오마이뉴스 논쟁도 읽은 터라 완전히 새로운 느낌으로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가 다가왔다.
이덕일 소장의 '들어가는 글'은 그 의미가 크다. 어떤 역사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한권의 책이 수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귀할 때가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12월,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통찰을 얻기에 좋은 책으로 강추한다.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우리가 이뤄야한다. 사도세자를 두 번 죽이려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사도세자가 되었기에 불가능한 일이다. 99%위에 군림하는 1%의 나라가 아니라, 99%를 위한 100%의 나라가 다가오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