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생,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네요.
자유롭지 않은 몸 때문에 당분간은 고생이 되겠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거예요.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든 쉬엄쉬엄 하기야요.
알았지요?
새밝--소산에게도 아직은요. 나중으로 약속을 합시다.
수국이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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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선생님!
강화에서 서울 집으로 잠시 돌아왔습니다. 당부하신 말씀 살펴볼 사이도 없이 이미 떠나 있었네요. 그 불편한 몸으로도 강화들어가 손도 올리기 힘든 고통 감내하며, 일주일간 강행군으로 야외 스켓치에 몰입했었답니다. 화실 지붕위로 아주 소란스레 울어대며, 아침 저녁 날아 오가는 철새들과 눈맞추기하면서 말입니다.
이 고즈녁한 산자락의 화실! 이곳의 사계의 표정 변화에서 느껴지는 행복의 포만감은 차마 혼자 하기엔 가슴이 아려올 정도랍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먼저 나의 작품 "작은 붓꽃 이야기" 가 귀여운 봉우리 앞세우고 방긋이 피어나 찰라였지만 순간에 지난, 많은 이야기들을 생생히 들려주며 저의 기상을 반기고 있지요.
서쪽 벽 한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전 창옆에는, " 크로키하는 여인" 이라는 시가 그때 그날의 표정을 담고 있고, 거기에 화실의 곰탱이 벽난로에서는 밤새 저희들끼리 부딪기며 서로를 붉게 태운 장작들이, 발그레한 이쁜 숫덩이로 변신해 저를 기둘리고 있는,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해 내 있곤 한답니다.
쬐꿰만 주방을 돌아들면, 역시 그곳에도 붓꽃들이 봉긋봉긋한 봉우리들을 앞세우고, 서로 저부터 쳐다보라 아우성인 또 하나의 저의 작품 "작은 붓꽃이야기 들" 이 제가 보기를 고대하며 가지 각색의 모습으로 사랑스럽게 피어있는것! 수국선생님께서도 보셨지요?
그렇게 그들과의 인사로 숲속의 아침이 시작되지요. 그리고 또 있네요. 오는 여름, 화실 문을 밀치면 산개울 옆 야트막한 언덕베기 참나무 그루터기 옆에서, 이슬 머금고 피어날 살아 숨쉬는 붓꽃들이 조랑 조랑 많은 이야기를 품고 또 저를 기둘리고 있겠지요. 이리 숲속 화실에서의 생활은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가뜩이나 모자란 저를 자꾸 더 어리게 만들어 버리곤 한답니다.
밤새 벽난로에 타고 남은 재들은 저의 손에 의해 야생화밭에 뿌려지곤 하지요. 저의 침실 후원엔 복숭아 나무 두 그루가 있답니다. 지난 가을 낭떠러지 숲을 전지하다 발견 했지요. 발 들여 놓을 틈조차 없던 잡목 들을 전지하다 발견한 전리품 둘! 하나는 조금전 이야기했던 복숭아나무 두 그루! 또 하나는 새끼 아카샤 가는줄기에 달랑 붙어 있는 자그마한 새집! 수국선생님! 그 새집을 머리속에 그려보세요. 그속에서 저도 모른체 부화하고 커갔을 산새들의 날마다의 이야기들을.
이런 생활속에 어찌 제가 행복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냐구요. 호......... 제가 이 겨울 . 복숭아나무에 잿더미를 뿌려가며 정성을 다 하고 있거든요. 이제 우리들의 여름날을 고대해 보자구요. 오시면 손수 따 드실수 있게 온 혼을 다 기울여 놓을 거예요. 봄에 오시면 , 또 복사꽃 을 침실 전창을 통해 보실수도 있겠지요. 어떻하지요?
저, 생각만 해도 그 즐거움에 자지러지겠어요.
봄을, 여름을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이 겨울의 화실 풍치도 그만이예요. 굴뚝에서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일곱 난장이와 백설공주가 살았었을것만 같은 화실 전경 같이 보내드릴께요. 숲에서 바다에서 불어 오르내리는 바람결에 "댕그렁 땡그렁" 고운 소리 울리는 풍경도 같이 보이는...... 누가 그 풍경을 내게 가져다 주었을까??????
난, 다 아는데....... 호~~~~~~~.
2007년 1월25일 한 밤에. ㅡ 정신 ㅡ
하이얀 잔설깔린 겨울! 소나무숲속 오두막 화실의 벽난로에서 하이얀 꿈의 연기가 피어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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