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수기]노동해방 선봉대 첫째 날, 역사의 페이지 속으로
용산참사 현장에서 발대식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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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7시11분 최호철(moosya@jinbo.net)
노동해방 선봉대는 현장 활동가들의 소통, 계급적 노동운동 강화, 노동해방운동의 실천을 위해 2007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3년째를 맞은 사업으로 현장 활동가들로 구성된 노동전선이 주최한다. 11월 2일을 시작으로 11월 7일 노동자대회 전야제까지 이어지는 이번 일정에 본 기자가 동행해 봤다.
여기 ‘경제위기 고통전가 깨부수고, 반자본 투쟁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먼 여정을 떠나는 이들이 있다. 노동해방 선봉대. 그들은 앞으로 5박6일간 전국을 돌며 투쟁의 현장에 결합해 연대의 깃발을 올리고 각 지역에서 노동해방의 함성을 노래할 것이다. 그들이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반지 원정대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숙연한 표정 하나 하나에는 그에 못지않은 결연함이 묻어있다.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기도 하다. 과연 무엇이 이들에게 이렇게 멀고 고단한 원정의 길에 나서게 하는 것일까? 그들은 과연 무엇을 찾아 나서는 것일까?
아, 용산!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 이름.
노동해방 선봉대는 오전 10시 용산참사 현장에서 발대식을 가지며 힘찬 출발을 결의했다. 용산참사가 있은 지 287일 되는 날, 아침부터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거기에다, 용산참사 당시 현장을 지켰던 철거민들에 대해 중형의 선고공판이 있은 후라 현장의 분위기는 더욱 쓰라리게 느껴졌다. 역사의 페이지에서 작년을 촛불로 규정할 수 있다면, 올해 2009년은 용산참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땅의 민주와 인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용산참사.
이명박 정권은 사태가 있은 후 단 한 번도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박적인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용산이라는 말만 꺼내도 공권력들은 들개처럼 달려들어 사람들을 물어뜯고 있다. 야만의 시대. 그리고 피 흘리는 사람들. 권력과 자본의 야만적인 송곳니가 덜 날카롭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미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 스스로를 더욱 단련하자, 공고히 하자.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가열찬 연대의식으로. 이렇게 선봉대 33명은 저마다의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발대식을 마쳤다. 그리고 용산을 등지고 수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 다시 돌아오리라.
수원출입국 사무실 - 이 땅의, 그 어떤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
첫 행선지는 수원출입국 사무실로 1시부터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간사냥식 단속추방을 규탄하는 집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경기지역 동지들이 상당수 결합하면서 선봉대는 40여명으로 늘어났고 현장에 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80여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수원 출입국 사무실 앞에서의 강제추방·인종차별 규탄 집회
법무부는 ‘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따라 2012년까지 미등록 체류자 비율을 총 이주민의 10%선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발표하며 강도 높은 단속추방을 벌이고 있다. 산업연수생이라며 기본노동권도 보장해주지 않은 채 무차별 착취의 대상이 되었던 이주노동자들. 그런 그들을 자본가들은 이제 마치 일회용 이쑤시개를 쓰고 버리듯 하고 있고 법무부는 거기에 발맞추어 칼춤을 춰대고 있는 꼴이다.
명분 없고 비상식적인 단속추방이기에 그 내용 또한 문제투성이다. 단속과 강제추방 당하는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범법자가 되었다. 인종차별, 성차별, 인권유린.... 누가 보더라도 사회적 약자이며 우선 보호대상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별과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 과연 이 땅에서 불법적인 작태들을 서슴지 않는 진정한 불법체류자는 누구란 말인가?
포레시아 지회 - 분열의 음모를 넘어
노동해방 선봉대를 태운 버스는 수원을 거쳐 화성에 있는 포레시아 지회로 향했다. 포레시아 지회는 09년 1월경 대표이사로부터 고용보장 확약서를 받은 후 휴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사측은 대화를 거부한 채 일방적으로 6월까지 34명의 희망퇴직자를 모집하더니 급기야 5월 26일 21명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사측의 정리해고 계획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충남 아산부근에 외부창고를 두고 15일 가량의 재고를 확보하고 현장의 조합원들을 상대로 체계적인 협박과 회유를 진행했다.
화성 포레시아 사업장 앞에서의 투쟁 결의대회
사측은 정리해고의 빌미로 재정악화를 들이밀고 있지만 포레시아라는 회사는 재정기반이 그리 약한 회사가 아니다. 2010년 하반기부터 현대기아자동차로부터 수주 받는 신규 아이템 차종만 5차종이 있다. 연간 30만대를 생산하는 아이템이다. 이를 반증하듯 현재 포레시아는 정리해고 단행 후 일손이 부족해 연장근무, 특근근무, 철야근무까지 강행하고 있고 이도 모자라 사무관리직까지 현장에 투입될 상태라고 한다. 과연 경제위기, 경영악화라는 잣대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단지 그것은 구조조정의, 정리해고의 칼을 휘두르는 사측의 백정노릇을 해주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 칼이 겨누는 곳은 조합원, 그것도 투쟁하는 조합원들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정리해고의 첫 번째 대상은 투쟁하는 조합원들이었으며 그렇게 민주노조의 단결력을 와해시킨다. 포레시아도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선봉대의 일원인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지회 박현상 조합원은 그렇게 연대발언을 했던 것일까. 그는 “자본가들은 저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 투쟁하는 노동자와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로. 그 분열의 사슬을 끊지 않는 한 승리는 없다.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연대와 단결의 힘이다”라고.
평택지역 투쟁결의 촛불문화제 -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화성 포레시아 지회에서 투쟁결의 집회를 연대한 노동해방 선봉대는 이후 오후 6시부터 평택역 앞에서 ‘경제위기 노동자민중에 대한 일방적인 고통전가 반대와 반자본 투쟁’을 위한 선전전을 진행했다. 연일 TV에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기업들이 뉴스에 나오고 있지만 정작 그 기업들에서 일한 노동자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논리적으로 절대 이해될 수 없는 지금의 작태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 수많은 이윤들은 모두 어디로 새어나가고 있을까. 항시적인 경제공황과 때마침 불어 닥친 한파 속에서 평택시민들의 표정 또한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평택역 안에서의 선전전
평택경제의 한 축은 쌍용자동차이다. 77일간의 쌍용자동차 점거투쟁은 용산참사와 함께 2009년에 대한 또 다른 역사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 사측은 8월 6일 노사대타협에서 ‘앞으로 회사의 회생을 위해 노사가 공히 협력해 나가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며 확약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사측은 확약서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연일 이미지 광고에만 열중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TV광고를 보며 저 돈이면 과연 몇 명의 노동자를, 아니 가족의 삶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대대적인 정리해고는 평택 지역경제의 위축과도 직결할 것이다.
평택역 앞에서의 투쟁결의 촛불문화제
오후 7시부터는 평택역 앞에서 지역의 민주진보세력 및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특별위원회(이하 쌍용 정특위) 동지들과 함께 투쟁결의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쌍용 정특위 김선동 위원장도,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복기성 수석부위원장도,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동지도 77일간의 치열한 투쟁 끝에 모두들 지쳐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두 하나 같이 다시 일어나 투쟁을 다시 조직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형식적인 말이 아님을 직감한 것은 그들의 눈동자가 강렬히 떨리고 있음을 느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현실이 그들로부터 싸울 수밖에 없기 만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확약서를 휴지조각으로 만든 쌍용차 사측의 고소고발, 일방적인 징계, 복직약속 불이행 그리고 87명을 구속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사법부의 횡포. 한신대 민중가요 노래패 보라성이 문화공연에서 열창한 ‘다시 싸움을’이라는 노래처럼 그들의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일 것이다.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