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멋!
타이!!! 그 기원은 기원전 3세기로 갑니다
테라코타로 구워져 진시황 옆에 매장된
7500명의 전사들의 목에 둘러져 있는 스카프..
비슷한 시기 로마 병사들도 겨울 야영지에서
포칼이라는 다용도 스카프를 하였습니다
트라야누스 원주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목에 두른 포칼이 확인됩니다
서기 100년경 로마에서는
돌로 건물을 지은 후
기념하기 위한 사람이나
건축가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
존경의 표시이자 관습이었습니다
이런 흔적은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로마의 곳곳에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트라야누스원주(Trajan’s Column)입니다
113년에 완성된 이 원주는 다키아 전쟁에서의 트라야누스 승리를 기념하는 부조로 유명합니다
자!! 이것이 타이에 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당시 타이는 전투병들을 추위로 부터 보호하기
위한 용도 였던거죠
타이의 기원이 포칼에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타이와 형태나 사용법에 있어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포칼은 거의 목도리에 가깝고
패셔너블한 악세사리로써의 타이 원형이
완성 된것은 1600년 중반 30년 전투가 한창이었던 프랑스에서 당시 크로아티아 병사들이 터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파리에 개선기념 시가행진을 할때 태양왕 루이14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앞가슴에 빨간색 장방형의 천을 매었는데 이것을 본 왕과 귀족들이 그대로 흉내내면서 타이가 유행하게 됩니다
프랑스어로 타이를 크라바트라고 하는데
이것은 크로아티아의 프랑스어인 크로아뜨가
차차 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난히 멋을 좋아했던 루이 14세는 아침마다
국가전속 타이 제조인이 분홍색이나 하늘색
또는 오렌지색 공단 리본이 장식된 레이스 타이를 한 바구니씩 제출하게 했으며 타이를
직접 골라 매듭을 진 다음 제조인에게 맡겨
모양이 완벽하게 잡혔는지 끝손질을 하게
하는 등 유난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1550년 이전까지는
그림이나 조각에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던 타이가 왜 갑자기 17세기 중반부터 서양 전역에
보편화 됐을까 입니다
신기한 성공 뒤에 어떤 부차적 요소가 있는걸까요????
타이가 일반화된 시기가 소빙하기와 맞아 떨어진다고 합니다
빙하기는 아니지만 비교적 추운 기후가 지속되었던 시기로 근대와 중세 사이인
13세기 초부터 17세기 후반까지의
소빙하기를 보통 의미하는데요
소빙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타이의 부활과 전성기를 만들었지 싶습니다
일찌기 없었던 극심한 추위에 목을 감싸주는
스카프가 절실히 필요했고 필요 플러스 알파의
효과가 된것이겠지요
타이의 전성시대는 19세기라고 합니다
크라바트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가
19세기 초에 다시 등장 합니다
남성 의상의 주류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옮겨지고 크라바트 대신 타이 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럽 패션은 브라멜 이라는 디자이너가 주도하였는데 그는 타이를 매는 일을 의식을 거행하는 신성품 그자체로 여겼고 옷입는 시간이 장장 6시간이 걸릴 정도로 폼생폼사 였다고 합니다
타이를 독특하게 매는 법을 창안해 많은 사람들이 사례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전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뭐~끝은 안좋아 노름으로 재산 다 탕진하고
검은 넥타이만 했다더군요 쯔쯧...
당시 영국에선 히피 또는 펑크족의 시조쯤 되는
마카로니라고 불리는 해괴한 젊은이들이 나타나
광적으로 타이를 매고 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거만하고 경망스럽게 빨간 볼연지를 바르고 커다란 가발에 짧은 흰색 실크바지 줄친 스타킹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무도화에 가슴위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다란 흰 타이 등으로
여자처럼 꾸미고 다녔다고 합니다
허세와 일종의 반항심을 보여주려 했다는군요...
모딜리아니 포 인 핸드 타이
그 후 1860 영국에서는 오늘날 타이의
직계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폭이 좁고 매듭이
작으며 긴 자락이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는
포 인 핸드 타이가 등장합니다
마차를 끄는 네마리 말의 멍에를 묶는 매듭과
비슷하다고 해서 나온 말입니다
매기 쉽고 편안하고 실용적이라 중산층에게
널리 애용 되었습니다
밀라노 스칼라극장
나비부인
오늘날 턱시도와 정장에 자주 착용하는 나비모양은 1850년대에 나타나 1904년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된 나비 부인이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로 위대한 푸치니를 기념해 타이를 나비로 부르게 됩니다
드가의 자화상 나비 넥타이
윈저공 에스콧 타이
타이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윈저공 입니다
세기의 베스트드레서가 연상의 과부와 사랑에 빠져 왕관을 버린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죠???
로맨티스트인 그는 줄무늬 타이와 윈저노트라 불리는 매듭법을 유행 시킵니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0년대
미국에서 전쟁으로 고통받은 군인이나 가족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고자 재미있고 명랑한 분위기의 타이가 유행합니다
벽걸이용 미인사진 하와이 해변 서부 모험담 등이 타이에 그려진거죠
또한 히피운동이 일어나면서 이들의 표어인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꽃무늬가 유행을 합니다
히피들이야 타이를 매지 않았지만 그들의 사상에
동조하는 젊은 부르조아들이 화려한 꽃무늬 타이를 자랑스럽게 하고 다닙니다
1970년에는 가죽을 소재로 한 타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서부극에 나오는 카우보이들이 맨 끈 타이도 생겨납니다
우리나라에 서구식 복장 문화가 도입된 것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된 일본 및 서구 열강의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 침략과 맥을 같이 합니다
신사복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서구식 복장 문화는 우리의 생활에 서서히 침투하였으며
특히 서구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 층에 널리 확산되었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사람은 서광범이라고 전해집니다
밀정의 공유 시대배경 1920년대 입니다
1920년대부터 신사복의 착장에 있어서는 사치스러워보일 정도로 엄격한 착장 규칙이 적용되었는데요
이때의 신사는 신사복에 따르는 액세서리도 빠짐없이 구비하는 것이 신사복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레스 셔츠, 넥타이는 물론이고
모자와 구두, 스틱, 회중시계, 커프 링크,
타이 핀 등을 완벽하게 갖춤으로써
완벽한 신사가 되고자 하였죠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문화가 물밀듯이 밀려왔는데 이때는 신사복에 있어서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미국적인 실루엣인 박스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 휴전 후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흔히 '마카오 신사(마카오에서 밀수입한 복지로 옷을 만들어 입은 신사)'라 부르는
새로운 계층이 탄생했는데요
이들은 미국식의 선이 붉은 넥타이를
즐겨 맵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신사복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립니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아이비 룩이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이고
이때의 넥타이는 주로 스트라이프에
넥타이의 폭은 5~6Cm정도였고
1970년대에 들어와 넥타이의 형태의 변화가 생겼는데 미국의 랄프 로렌에 의해
폭이 약 10Cm 정도로 넓어진 와이드 타이가 세계적으로 유행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신사복의 깃도 넓어지게 되죠
현대의 타이는 직조법이나 소재의 다양성으로
개성을 표현하는거 같습니다
광적인 타이 수집가로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다니 케이등이 있었구요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 까지도 현혹시키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도 타이는 남성패션 미학의 결정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