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의 길
하희경
잔뜩 찌푸린 하늘을 이고 꽃샘바람이 난분분하다. 이십오 년이 넘도록 한사코 외면하던 곳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다. 간호사가 “정말 그렇게 오래간만이냐?”며 몇 번이나 물을 정도로 산부인과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삼십대 초반에 지치도록 들락거린 게 징그러워서 그랬다는 말에도, 그녀는 영 납득이 가지 않는가보다. 마치 원시인이라도 만난 듯 신기해하는 표정이다
안과에서 내과로, 내과에서 신경과로 병원 다니는 게 일과가 된지 벌써 여러 해다. 이제 산부인과까지 목록에 넣었다. 나이 들면 병원 다니는 일이 예사라지만 이건 좀 심한 게 아닌가싶어 은근 부아가 나려고 한다. 의사가 진료 중에 했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쩌자고 몸을 그렇게 내버려뒀어요? 그건 학대입니다. 이제라도 몸을 돌보세요.”
쑤석거리는 바람을 피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좌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종들이 보인다. 작달막한 모종들 사이에 껑충 웃자란 녀석이 ‘청양고추’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저렇게 어설픈 몸으로 매운 고추를 키우는가싶어 가만 바라보았다.
저 고추나무는 여린 몸으로 햇빛과 바람을 요리하며 하얗고 단아한 꽃을 피우다가, 작은 고추 매달아 가만가만 키워낼 것이다. 맨몸으로 견뎌온 햇빛과 바람이 작은 몸 어딘가에 굽이굽이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들 삭이면서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의 시간은 어떤 것일까. 늦가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남은 눈물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고충은 참을만한지. 가위 날에 뭉텅 잘리어 금빛 사리들을 쏟아내는 붉은 몸뚱이의 마지막 순간은 또 얼마나 아득할까. 불현 듯 마른 몸 부딪치며 내는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너무 깊이 생각에 잠겼을까, 잠시 눈치 보던 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성글게 자리한 이파리들이 손사래 치며 바람을 흘겨본다. 너무 작아 초라하기까지 한 고춧잎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어쩌면 앞으로 닥쳐올 매운 시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리하는 건 아닐까. 어쨌거나 심을 공간도, 키우는 재주도 없는 나는 이파리들의 손짓을 뒤로 하고 풋고추를 한 주먹 사서 집으로 향했다.
늦은 점심, 시장에서 들고 온 고추를 된장에 찍어 한 입 깨물었다. 비릿한 풋내가 나는 게 온실에서 자란 고추라고 티를 낸다. 노지에서 자란 고추가 아니라는 건 짐작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매운 맛이길 기대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노지 고추는 그냥 먹히기엔 억울하다며 일단 한 번 버티고 보는 강단이 있는데, 온실에서 자란 이 녀석에게는 그럴 의지가 전혀 없다.
난 고추를 좋아한다. 그것도 요즘 유행하는 오이 고추라는 덩치 큰 녀석보다 매운 맛으로 중무장한 청양고추를 좋아한다. 땡볕에 달아오른 고추가 알싸한 펀치를 날리는 그 순간이 좋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만사 귀찮을 때 매운 고추 한 입이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 같다. 더운 여름날 입맛 없을 때 청양고추 두어 개면 밥 한 그릇은 후딱 비울 수 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추지만 직접 키워본 적은 없다. 간간이 들판을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벼이삭을 보고, 상추도 보고, 고추나무에 파랗고 빨간 고추들이 매달린 걸 보았지만 그것들이 언제 어떻게 자라는지는 모른다. 난 시장이나 마트에서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걸 당연하게 아는 도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입에 들어가는 것, 몸에 걸치는 것, 지친 몸을 부리는 작은 방조차 내 손으로 만든 건 하나도 없다. 지금까지 내가 누린 모든 것이 남의 수고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땀 흘리지 않고 불로소득을 챙긴 셈이다. 물론 나름의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 있게 빚쟁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작물이 자라고 식탁에 오르는 순간까지의 수고에 비하면 내가 치르는 대가는 아주 작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오소소 떨고 있던 고추나무를 생각해본다. 뼈대만 남은 물고기처럼, 앙상한 고추나무에 주렁주렁 열매 맺힐 때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더해져야 할까. 분명 햇빛과 바람, 농부의 부지런한 발자국 소리, 적당한 토양과 정성으로 지켜봐주는 손길이 있어야할 것이다. 그렇다. 의지가지없는 작은 고추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햇빛과 바람이 때때로 심술궂어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선한 의지가 있다.
고추나무가 홀로 살아남지 못하듯이 내 삶도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다. 지난날 굽이진 길을 걸을 때, 어찌 햇살과 바람이 심술궂기만 했을까. 때때로 태양은 따듯하게 안아주고, 바람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너무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면 누군가 팔 내밀어 받쳐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뻔뻔하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삶이라고 툴툴거렸다. 살아온 날들이 온통 빚쟁이의 삶이었는데도 남보다 가진 게 적다고 원망만 늘어놓았다.
최근 몇 년간 병원 순례하는 일도 그렇다. 평생이다시피 내 몸을 돌보지 않았다. 쉼 없이 몸을 부리면서 고맙다는 생각 한 번 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바빠서란 핑계로 나를 방치했다. 남들의 애정을 구걸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건 서툴기만 했다. 자기 몸을 학대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잘 돌봐주라던 의사 말이 귓바퀴에 매달린다. 이제 정말 나를 사랑해야겠다. 오래도록 몸을 사랑하지 않고 학대했던 빚을 조금씩 갚으면서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길을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