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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대춘 홈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雨原
金丹美의 한국100명산 등반은 78개 산 등정으로 진행중이다. 함께 동행하는 나로서는 그것 때문에 거의 3년이 그 계획에 묶여 있다. 아니, 묶여 있다라기 보다는 그 명산들을 다시 오르게 되는 기회를 다시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단미에게 앞으로 남은 22개의 산들은 비교적 멀리에 있다. 그래서 늘 그랬듯이 먼 곳에 갈 때에는 한번에 여러 개의 산을 타고 오는 효율적인 산행을 계획해 오고 있다. 이제 80개가 넘으면 초 읽기에 들어가겠지. 단미의 한국100명산 산행 79번째 산은 고창 선운산이다. 마침 울산 푸른산악회에서 선운산 가이드 산행을 한다고 해서 이번에는 비용 덜 들이고 편하게 가는 가이드산행을 이용해 보기로 한다.
보름 전에 울산 푸른산악회에 산행 예약을 하고, 드디어 11.13일 일요일 아침 6:45분에 경주 서라벌광장휴게소에 나가서 울산 푸른산악회 가이드산행 버스를 기다린다. 몇십만원 들여야 하는 산행을 단돈 35,000원에 가다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리고 피곤하게 운전을 하고 가야 하는데 버스에 타기만 하니 그것이 어디냐?
버스 픽업 시간이 6:45분이어서 미리 6:20분 경에 경주 서라벌광장휴게소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린다.
4시간 버스를 달려, 11:30분 경에야 전북 고창 선운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는 중에 88고속도로가 많이 막혀서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빨간 옷이 단미이다.
선운사 들어가는 길이다. 가을도 늦가을이다. 11월 초라야 이곳 단풍이 절정인데 이제 보름쯤 지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낙엽이 떨어져도 가을은 가을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창 선운사가 나온다. 선운사는 500년이 넘은 3,000 여그루의 동백나무 숲이 절 뒤편을 장식하고 있고, 본 건물 앞에는 수선화가 계절을 기다리며, 지금은 도솔천의 검은색 바위와 어우러진 단풍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제공하고 있을 것이다.
선운산 계곡이다.
선운산은 가장 높은 경수산(444m)까지 올라가는 코스가 8시간 정도 걸려 조금 부담스럽지만, 자연의집→낙조대→천마봉(4㎞, 2시간), 중촌마을→경수산→석상암(3㎞, 1시간30분), 안장바위→선바위→탕건바위(6㎞, 3시간) 코스 등 2~3시간짜리 코스도 있다. 선운산에는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손이 닿을 수 없을 듯이 깎아지른 암벽에 불상이 조각돼 있는 ‘도솔암 마애불’, 용이 드나든다는 ‘용문굴’, 낙조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낙조대’ 등 곳곳에 잊지 못할 풍경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선운산에 가 보면 그 풍경을 가슴으로 음미할 수 있다.
이제 선운사 매표소에 도착한다.
선운산도립공원은 1979년에 지정되었다. 공원 내에는 고찰 선운사가 있는데,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절로 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이다. 577년(백제 위덕왕 24)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때에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고 하며, 그 후 중수, 재건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대웅전(보물 290)을 중심으로 만세루(萬歲樓) ·9층석탑 ·영산전(靈山殿) ·팔상전(八相殿) 등이 있는 거찰로, 대웅전 외에도 주요문화재로서 금동보살좌상(보물 279) ·지장보살좌상(보물 280) 등이 있다.
푸른산악회에 처음 따라 왔는데 언뜻 분위기를 보니, 산꾼들도 있는 것 같고 등반보다는 유흥 삼아 온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 처음에는 일행을 따라 가다가 이리저리 흩어지기도 하고 시간 관계상 정상 방면으로 가지 않는다고 하기에, 그냥 단미와 둘이서 선운사 직전에서 담장을 타고 우회전하여 바로 정상 방면으로 나아간다. 아무래도 돌아가니까 시간이 더 걸리겠지? 그래서 걸음을 좀 빨리 한다. 산은 이제 늦가을이다. 낙엽이 길에 잔뜩 쌓여 있다.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도립공원으로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가을이면 고혹적 풍경을 품는다. 곳곳에 우뚝 솟은 기암괴석 봉우리와 싱그러움을 한껏 머금고 있는 숲, 울창한 나무 사이로 들려오는 ’도솔천’의 물소리까지 품고 가을 산행을 권하고 있다.
조금 올라가니 석상암이 나타나고 우리는 왼편 길로 들어 마이재로 올라간다.
마이재로 오르는 길이다.
선운산(336m)은 본래 도솔산(兜率山)이었으나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위에는 구황봉(298m)·경수산(444m)·개이빨산(견치산)·청룡산(314m) 등의 낮은 산들이 솟아 있다.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계곡미가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다.
선운의 주요 경관으로는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낙조대(落照臺),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노닐었다는 선학암(仙鶴岩) 외에 봉두암·사자암·만월대·천왕봉·여래봉·인경봉·노적봉 등 이름난 경승지가 많다. 특히 4월 초에 꽃이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에 절정을 이루는 선운사의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84)이 유명한데, 선운사 뒤쪽 산비탈에 자라는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에 일시에 꽃이 피는 모습은 장관이다. 그 밖에 봄철의 매화·벚꽃·진달래꽃도 볼 만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다. 고찰 선운사가 있는 고창 삼인리(三仁里)의 장사송(천연기념물 354)과 선운산 입구의 송악(천연기념물 367)도 유명하다. 선운사에는 금동보살좌상(보물 279)·대웅전(보물 290) 등의 문화재가 많다.
뒤에 한 무리가 시끌벅적하게 따라오기에 빠른 걸음으로 멀리 제쳐 버린다. 내가 속보하니 단미도 같이 속보로 따라 온다.
마이재 지나 실제 정상인 도솔산(수리봉)으로 올라간다.
여기가 선운산의 실제 정상 도솔산(수리봉)이다. 옆의 경수산(444m)이 더 높지만 선운의 중심에 있는 봉우리는 이 수리봉이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 연천동 마을이 아래에 보인다. 주 능선을 중심으로 선운사 반대 방향이다. 심원면은 바로 서해바다에 접해 있다.
저 아래로 우리가 지나쳤던 선운사가 보인다. 모든 명찰들이 그렇지만 선운사 역시 절묘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주능선을 따라 계속 나아간다. 선운산의 높은 봉우리들 중 경수산, 도솔산은 선운사 뒤에 있지만 실제 명승지는 남서쪽에 있는 천마봉-낙조대 지역이다.
이제 선운산의 남서쪽 지역이 나타난다. 앞에 천왕봉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천마봉이 보인다. 저 천마봉 위에서 밥을 먹을 것이다.
도솔산 지나 갈림길에서 개이빨산으로 가지 않고 왼쪽 참당사 방면으로 떨어진다. 그냥 주능선으로 나아가려다가 사람들이 많이 가고 여러 곳을 볼 수 있는 참당사 방면으로 내려간다.
길로 떨어지면 바로 위에 참당사(懺堂寺)가 나타난다. 그러나 참당사로 들어가지 않고 직전에 왼편 소리재로 다시 올라간다. 참당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운국사(義雲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불상 ·경전 ·보인(寶印) 등의 문화재는 대부분 분실되었고 일부는 일제에게 약탈되었다고 전해진다. 다시 계곡을 더 올라가면 도솔암(兜率庵)으로 가는 길에 좌변굴(左邊窟:일명 진흥굴)이 있다. 신라 진흥왕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그의 호가 좌변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위쪽에 내원궁(內院宮)이 있는데 선운사 지장보살좌상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으며, 상도솔암(上兜率庵)이라고도 부른다.
소리재 길에는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기가 소리재다. 개이빨봉(견치산)으로 왔어도 여기에 도달하게 된다. 시간은 덜 걸릴 것이다.
개이빨산에서 천마봉으로 가는 안부인 소리재이다.
드디어 나타난 선운산 천마봉의 절경. 이름하여 작은 요세미테라고 불러본다. 과한가?
천마봉 옆에 있는 낙조대이다. 여기에 올라서면 낙조 풍경이 아름답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기서 푸른산악회 선두그룹과 마주친다. 그들은 우리가 어디로 빠져서 지금 거꾸로 오고 있는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산이 크지 않으니 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닐 수 있어서 편하다. 바로 밑에서 촬영하여서 이렇지 실제로 멀리서 보면 첨예한 바위 봉우리다.
낙조대에서 남쪽으로 있는 배맨바위 방향이다. 철사다리를 설치해 놓았다. 저 봉우리 뒤에 있는 배맨바위 지나면 청룡산이 나온다.
천마봉에서 내려다 본 도솔암 내원궁(전북 문화재자료 125호)이다. 바위 벽에 붙은 암자가 절경이다. 천인암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저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저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쵝에 짓고 순조 17년(1817)까지 몇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족 암벽 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거대한 석불이...................
내원궁 남쪽에 만월대(滿月臺)가 있고, 그 절벽에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불상의 머리 위에 거대한 공중누각을 만들어 마애불을 보호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남쪽에는 기출암터[起出庵址]가 있고, 서쪽으로 용문굴(龍門窟)이 있다. 물론 우측 아래에 도솔암이 보인다.
청룡산 산줄기에 있는 바위봉.
저 뒤에 엉뚱한 바위봉이 있어 클로즈업시켜 보는데 저게 배맨바위인 것 같다.
천마봉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선운산 도솔암. 그리고 도솔계곡과 선운계곡이 이어서 세상 밖으로 이어 나간다.
이제 천마봉에서 도솔암으로 내려가자. 푸른산악회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떨어져 나와 정상 쪽으로 나아간 땡감님 부부와 같이 동행한다.
땡감님이 촬영해준 유일한 우리 둘의 사진.
바위 사이로 내려간다.
전면에 내원궁이 보인다.
내원궁 아래 도솔암에 있는 도솔암 마애불이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보물 1200호)은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지상 3.3m의 높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는 15.6m, 폭이 8.48m가 되며, 연꽃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까지 갖추었다. 머리 위의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 갔다고 한다.
내원궁으로 오르는 사람들. 하지만 우리는 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어느 지점보다 그 곳을 바라다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즉 어느 지점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 산의 풍광을 섭렵하는 것을 즐긴다.
도솔암으로 내려간다.
도솔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나오는 장사송. 천연기념물 354호라고 한다. 중간에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옴이 특이하다.
이제 이 길로 내려가면 선운사가 나온다.
진흥굴.
숭불왕으로 유명한 신라 24대 진흥왕이 부처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땅인 이 곳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창건케하고,
왕위를 퇴위한 후 선운사를 찾아 수도했다는 암굴이다. 선운사 본당에서 서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한 이 굴은 길이 10m, 높이 4m의 동굴이다.
이제 선운계곡 옆을 지난다.
선운사에 이른다. <선운사사적기(禪雲寺寺蹟記)에 따르면 선운사는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폐사가 되어 1기의 석탑만 남아 있던 것을 1354년(고려 공민왕 3)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중수하였다. 1472년(조선 성종 3) 부터 10여 년 간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는데 정유재란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던 대가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613년(광해군 5)에는 무장(茂長)현감 송석조가 일관(一寬)·원준(元俊) 등 승려와 함께 재건을 도모, 3년에 걸쳐 대웅전·만세루·영산전·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이 절은 불교의 기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왕성해지고,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던 선종(禪宗)에서도 선리(禪理)를 근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던 조선 후기에, 조사선(祖師禪)의 본연사상을 임제삼구(臨濟三句)에 입각하여 해결해 보려고 시도한 불교학자 긍선(亘璇)이 처음 입산수도한 절이기도 하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地藏菩薩坐像)이 있으며, 대웅전(大雄殿)도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를 나서는 단미. 5년 전에도 이렇게 선운사를 떠났었지?
선운사 상가지역. 수년전 이곳에서 먹었던 풍천장어 구이와 복분자..................아마 지금 단미는 그것을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풍천장어를 매우 좋아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