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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노스님와의 대화(Dialogue with the Thai old monk)
Q: What is the purpose of life & how to accomplish it?
A: Nothing. The purpose of meaning of life is nothing. Nothing to pursue. Nothing to achieve.
문: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까?
답: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인생에는 목적이라든지 그런 의미가 없습니다. 추구해야 할 것도 없으며, 달성해야 할 것도 없습니다.
Q: How can we attain Nibbana by means of practising Vipassana?
A: Nibbana is the mind state. Nibbana is within mind. Experience it, not think of it.
문: 어떻게 위빠싸나 수행을 하여야 열반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열반은 마음의 상태입니다. 열반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체험하도록 하세요.
Q: How can we lead our life in peace &happiness?
A: Release from attachment to things & people.
Detachment from possession & relations will lead your life in peace & happiness.
문: 어떻게 해야 우리의 삶이 평화롭고 행복 할 수 있을까요?
답: 물건과 사람들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벗어나세요. 소유와 관계로 부터 초연함이 당신의 인생을 평화스럽고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Q: This is my private question. I was born with heart problem & had twice big heart surgeries. What kind of karma brought forth such a result?
A: You might have had people excited for you or worried for you, then you will something clogged in your heart. Your heart disease naturally attracts people`s concern. You might desire for others` affection unconsciously. Your subconscious thirst for being loved and cared for might cause your heart malfunction. So do not be indulged in others` affection & care. Try to be independent & overcome your emotional dependency.
Be strong & go by yourself like a rhinosaurus. Do not be overly sad nor overjoyful. Keep your emotion balanced & equiposed.
문: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문제입니다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문제가 있었고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무슨 업으로 그런 결과가 왔나요?
답: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애정이나 관심을 일으키게 해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당신의 심장에 어떤 것이 엉겨 붙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심장병은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게 되죠.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애정을 갈망하고 있어요. 사랑받고 관심 받기를 바라는 무의식이 당신의 심장에 이상을 일으킵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거나 관심을 끌기를 지나치게 바라지 마세요. 홀로 서도록 하시고 감정적인 의존성을 극복하세요. 물소처럼 강하게 혼자서 가세요.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과도하게 기뻐하지 마세요. 감정에 중심이 잡혀 평정을 유지하도록 하세요.
Q: We, four sisters are of the same family. Two sisters are Buddhist nuns while the other two are living in the world. What`s the reason of difference in their lives?
A: Due to their karma, the way of thinking makes one`s life different form one another.
Laywoman here must have been a Thai in your previous life & at the moment of death your last consciousness longed for being reborn in Korea & then it happened as such.
문: 우리 네 자매는 한 가족입니다. 그런데 둘은 비구니 스님이 되었고 나머지 둘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각자의 인생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어떤 까닭입니까?
답: 업(業)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면 삶도 달라지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매는 전생에 태국사람이었는데 임종 때 마지막 의식이 한국에 태어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되었습니다.
Q: In general Mahayana Buddhists have confidence in Buddha nature. How do the Theravadins understand in their context of doctrine?
A: There is no difference among religions & sects in terms of Buddha nature.
One should be a Buddha eventually no matter what religion one belongs to.
If you go high and oversee the view down below, you will see which is the highest, which is higher, which is the lower.
Through your practice you will know Buddha`s teaching is the highest, which is Vipassana-yana, not Mahayana nor Theravadin.
문: 일반적으로 대승불자들은 불성을 믿고 있습니다. 상좌부 불교도(남방불교)들은 불성(佛性)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십니까?
답: 불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종교나 종파에 차이점이 없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결국은 붓다가 되어야 합니다. 높이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떤 것이 제일 높고, 어떤 것이 더 높은지 어떤 것이 낮은지를 알 수 있지요. 수행을 해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장 높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대승도 아니고 상좌부도 아닌 위빠사나의 길(마음챙김 수행의 道)입니다.
Q: What do I teach my children to lead their lives in the right direction?
A: Let them be mindful of their actions, any physical movements moment after moment whenever they are possible to do so.
Let it be their second habit. Then they are going toward release from the circle of rebirth.
This is Vipassana-yana, the vehicle of insight. In doing Vipassana practice thinking is off the mark, understanding out of direct experience hits the point.
When thinking arises, you simply be aware of it. And thought passes by. No conceptual practice. Just understand the nature of yourself & things around you.
문: 제 아이들이 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도록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요?
답: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만큼 매 순간의 동작과 행동을 알아차리도록 하세요.
이런 알아차림이 제 이의 습관이 되게 하세요. 그러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것이 바로 통찰력의 길인 위빠사나 道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 있어 생각으로만 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며, 직접적인 체험에서 나오는 이해야말로 바로 정곡을 맞춘 것이 됩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알아차리세요. 그러면 생각은 사라져 갈 것입니다. 관념적인 수행을 하지 마세요. 자신과 주변의 사물들의 본성을 이해하세요.
*태국의 노스님은 Luong Po Chey(롱포체, '큰 스님'이란 뜻의 애칭)혹은 운 쿤(Un Khun)이시다. 11세에 출가하시어 라오스 숲 속에서 30년간 수행하시고, 인도네시아에서 7년간 무문관을 마치셨다.
평소에는 정글 숲 속에서 홀로 수행하시면서 가끔 인연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세상에 나오신다. 태국에서는 숲 속 수행자들을 'Forest Monk(포리스트 망크)"라 하면서 특별히 존경한다. 그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 밀림 가운데에서 아주 소박하게 살아가며 마음챙김의 수행(위빠사나, Vipassana)에 전념한다.
롱포체는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 너무 어린 나이에 숲에 들어와 평생을 사셨기 때문에 세속의 나이를 잊어 버렸다. 아마도 70중반쯤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리고 세속의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문자를 읽고 쓰는 데에 아주 서툴다. 그런데도 법(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명확하고 간명 직절하게 대답을 주신다. 최소한 아나함(不還果)의 과위에 계시지 않나 생각되어진다. 평소에 말씀하시길 다음 생(後有)은 받지 않을 거라고 하시기 때문이다.
*질문자는 원담스님이며, 태국어에서 영어로 통역을 맡아주신 분은 태국인 불자 티라분(Teeraboon)이다.
장소는 태국 북부 창센(Chiang Sen)의 왓 프라 푸 카오(Wat Phra Pu Khao)사원이며 참석자는 그 절 주지스님 아잔 탠(Ahjan Tan), 일광스님, 정은 스님 그리고 설연화 보살님, 일시는 2010년 10월 23일(일).
*鐵 鵬 耕 雲 田, 철 붕 경 운 전
白 羊 遊 雪 原; 백 양 유 설 원
透 出 氷 菓 峰, 투 출 빙 과 봉
曼 谷 來 開 眼. 만 곡 래 개 안
쇠로 된 붕새가 구름밭을 갈고
흰 양떼가 눈밭에서 노닌다,
아이스크림 봉우리를 넘으니
방콕이 눈을 뜨고 다가오네. (2010.10.17)
‘쇠로 된 붕새‘란 비행기를 말한다. 비행기가 구름의 들판을 지나니 하얀 양떼가 눈 덮인 설원에서 풀을 뜯는 듯 한가롭다. 갑자기 나타난 아이스크림 산봉우리를 뛰어 넘으니, 눈 아래 방콕 시내가 펼쳐진다. 경계가 눈을 뜨고 나에게로 다가온 것이다. 曼谷(만곡)은 방콕(Bangkok)의 중국어 음사이다.
*玉 馬 走 破 琉 璃 界, 옥 마 주 파 유 리 계
鳥 道 縱 橫 沒 蹤 迹; 조 도 종 횡 몰 종 적
蕉 雲 引 來 回 古 緣, 초 운 인 래 회 고 연
湄 公 河 邊 金 三 角, 미 공 하 변 금 삼 각
月 照 黃 江 兩 岸 靜; 월 조 황 강 양 안 정
大 佛 打 坐 三 邦 寂, 대 불 타 좌 삼 방 적
椰 竹 林 中 參 禪 庵, 야 죽 림 중 참 선 암
問 道 泰 師 示 端 的. 문 도 태 사 시 단 적 (2010.10. 23)
옥으로 된 말을 타고 유리의 세계를 주파하고
새가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녀도 자취를 남기지 않네,
파초의 구름 따라 옛 인연지로 돌아오니
메콩강변 트라이앵글 황금의 삼각지대로구나,
달이 누른 강물을 비추는데 양쪽 기슭은 고요하고
큰 불상이 자리하고 있으니 세 나라가 평안하다,
야자와 대나무 숲 속에 있는 암자를 찾아
태국 노스님께 도를 물었더니
간명직절하게 지시하시네!
*‘옥으로 된 말‘은 불성을 체현한 진공묘유로서의 주체성이요, 유리의 세계를 남김없이 두루 돌아다닌다 함은 주체성의 활발발한 작용이다. 법신의 자기표현으로서 보신의 경계인 자수용국토를 자재로 유희하는 시절을 말함이다.
불성의 활발발한 작용은 마치 새가 공중을 마음대로 날아다녀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무주(無住)요 무상(無相)이다. 옥마가 유리계를 두루 돌아다녀도 옥빛이 유리의 색 속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아 ‘같음’과 ‘다름’이 교섭되고 반응하면서도 경계와 흔적이 없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요 몰종적(沒蹤迹)이다! 이는 무집착의 선적(禪的) 표현이며, 수행자의 일용 살림살이이다.
파초 구름을 따라 남방불교의 본고장인 태국으로 날아와 보니 그 옛날 전생에 수행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가 바로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 세 개의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메콩 강의 황금의 삼각지대-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이다. 태국 쪽 강변에는 거대한 황금불상이 세워져 있어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때는 음력 9월 보름날 밤 상좌부 불교(Theravada Buddhism)에서 하안거를 해제하는 날 밤이다. 메콩 강물은 누렇다. 달빛에 젖은 강의 양편은 고요하다. 거대한 불상이 깊은 선정에 들어 세상을 관하니 인접한 삼국이 평안하다. 메콩 강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사원에서 차를 타고 숲 속 정글에서 오랜 수행을 마치고 나오신 태국 노스님을 찾아뵈러 암자를 찾았다. 노사께 열반의 도를 물었더니 “열반은 마음이며, 마음에 있느니라”라는 적실한 한 말씀!
선이니 위빠사나, 지관이니, 화두선이니 하는 수행의 방법이 다름을 논하지 말라. 누가 진실로 정성스럽게 수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실참실오(實參實悟)요, 정념상속(正念相續)이 본각(本覺)의 훈습(薰習)이다. 실답게 수행하여 실답게 깨달아야한다.
정념을 이어가는 평상의 수행이 ‘본래 깨달아 있음’의 경지에 젖어들게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