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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네 병거의 환상 (1-8절)
홍마, 흑마, 백마, 어룽진 말들이 등장하는 네 병거의 환상은 요한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네 말 탄 자의 환상과 연관된(보충 설명하는) 말씀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계시록에서는 네 말 탄 자의 환상이 7년 대환난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고, 맨 마지막에 피뿌린 옷을 입고(계 19:13)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스가랴서에는 이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는 겁니다. 스가랴가 본 첫 번째 환상이 “홍마를 타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1:8)에 관한 환상인데, 이는 “피 뿌린 옷”을 입고 재림하시어 포도주틀의 심판을 행하실 예수님에 관한 예언(계 19:11-16)이고, 마지막 여덟 번째 환상인 “네 병거의 환상”은 요한계시록에서 재앙(7년 대환난)의 시작을 알리는 “네 말탄 자의 환상”(계 6:1-8)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예언인 것입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환상임에도 그 순서가 다르게 기록된 것은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인데, 요한계시록은 심판의 대상인 ‘세상의 관점’에서 재앙들을 소개한 것이기에 사건이 발생하는 순서에 따라 먼저, 말탄 자의 환상이 나오고 마지막에 7년 대환난의 끝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스가랴는 “한 이레”(단 9:27) 혹은 “야곱의 환난”(렘 30:7)이라 불리우는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환난을 통해 연단을 받고 제사장 나라가 될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살펴본 것이기에,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이스라엘 괴롭힌 세상 나라들에 하나님의 재앙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2장과 7장도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환상이지만 느부갓네살의 관점에서 본 2장에서는 세상 나라들의 모습이 금 머리를 한 아름다운 신상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본 7장에서는 같은 세상 나라들이 사납고 잔혹한 짐승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 이제는 종말론적 재앙(7년 대환난)의 시작을 알리는 네 병거의 환상에 대해 하나씩 살펴봅니다.
1. 1, 4, 5절,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하십니다.
a. 놋산에서 네 병거가 나왔다고 했는데, 성막을 공부할 때 살펴본 것처럼 번제단에서 타오르는 불을 견뎌내는 재료로 사용되었던 놋은 심판을 상징합니다(신 28:22,23).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놋 산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는 산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b. 1절에서는 두 개의 놋 산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는 네 병거가 나왔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은 이 두 개의 산이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시온산’과 ‘감람산’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엘 3장에서는 이 기드론 골짜기를 “여호사밧 골짜기”(욜 3:2) 혹은 “판결 골짜기(the valley of decision)”(욜 3:14)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여호사밧 골짜기”는 “판결 골짜기(the valley of decision)”라는 이름처럼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시온산과 감람산 두 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보내신 사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c.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시온산과 감람산 사이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 나라들 심판하실 때 저들이 이스라엘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심판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신다”(창 12:3)는 겁니다. 1장을 강해할 때 살펴본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이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진멸하려 했던 세상 나라들이 네 공장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7년 대환난은 바로 마지막 네 번째 뿔인 신성로마제국이, 네 번째 공장(carpenter)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멸망받는 과정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2. 2, 3절,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세째 병거는 백마들이, 네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하십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첫 번째 환상에서 등장하는 홍마를 타고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1:8)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여덟 번째 환상에서 등장하는 네 가지 색깔의 말들이 끄는 네 병거들은 요한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말탄 자의 재앙처럼 7년 대환난의 시작을 알리는 환상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의 말씀을 이해해야 본문의 환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요한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말탄 자의 재앙에 대해 잠시 살펴봅니다.
a. 먼저, 요한계시록 6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이 첫째 인을 떼실 때에 흰 말과 이를 탄 자가 등장했다 하십니다.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하십니다. 손에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쓰고 흰 말을 탄 이 인물은 7년 대환난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여 세상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다니엘 2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철과 진흙이 섞인 종아리”(단 2:33)와,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하고 있는 “큰 철 이와 열뿔을 가진 짐승”(단 7:7)으로 묘사되는 마지막 세계 제국(적그리스도의 나라)을 세울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흰 말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는 사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악한 지도자를 세워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사기 8장과 9장에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통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미디안 족속을 물리쳐 주셨지만,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기드온이 세겜의 첩을 통해 얻은 아들(삿 8:31; 9:1-57)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복형제 70명을 한 자리에서 죽인 뒤(삿 9:1-5, 18)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는데,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된 아비멜렉으로 인해 그가 죽기까지 3년 동안 서로가 죽고 죽이는 환난을 겪었다 했습니다.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삿 9:15)이라 하신 요담의 예언처럼, 가시나무와 같은 아비멜렉을 통해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다는 겁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알려진 스가랴 11장 16절 17절에서는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찐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하십니다. 적그리스도를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로 표현하며, 양을 늑탈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이 못된 목자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은 필요하시다면 적그리스도뿐 아니라 사단 마귀도 들어 세상을 심판하시는 역사의 주관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b. 두 번째 요한계시록 6장 3, 4절에 보면 예수님이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붉은 말과 그 탄 자가 등장하는데, 이 붉은 말은 본문에 등장하는 첫째 병거를 끄는 홍마(2)처럼 전쟁을 불러오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게”(마 24:7)하심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c. 세 번째, 요한계시록 6장 5절에 보면 예수님이 셋째 인을 떼실 때에 손에 저울을 든 검은 말을 탄 자가 등장했다 하십니다. 본문에도 둘째 병거를 흑마들이 끌었다(2하)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검은 말은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계 6:6)라 하신 말씀처럼 기근의 재앙을 가져오는 말인 것입니다.
d. 네 번째, 요한계시록 6장 8절에 보면 예수님이 넷째 인을 떼실 때에 청황색 말을 탄 자가 등장했고 기록하고 있는데, 청황색 말은 본문에서 넷째 병거를 끌고 있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3하)과 마찬가지로 온역과 죽음의 재앙을 가져오는 말입니다. ‘청황색’(yellow green)은 시체가 썩어서 부패할 때 내는 색깔이고, ‘어룽진 말(dappled horses)’은 온역으로 온몸에 악창이 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여하튼 요한계시록 6장 8절에 보면 이 네 말이 상징하는 네 재앙이 끝났을 때 “땅 사분의 일”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현재 전 세계의 인구가 80억가량이니 4분의 1이면 20억가량이 7년 대환난의 시작을 알리는 네 말의 재앙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3. 6, 7절,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하십니다.
a. 흑마와 백마가 나아간 북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간 포로생활을 한 바벨론이 있는 땅이고, 어룽진 말이 나아간 남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간 노예생활을 한 애굽이 있는 땅입니다. 한 이레(7년 대환난)의 사건으로도 알려진 마지막 때의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 나라들에게 집중될 것임을 알 수 있는 말씀인데,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리라”(창 12:3상)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다는 겁니다.
b. 7절에서는 “건장한 말이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녔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이 북방 나라인 바벨론과 남방 나라인 이집트뿐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입니다. 이 때가 되면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 13:19)하신 재앙들이 온 땅에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4. 8절,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하십니다
8절에서는 특별히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셨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세상 나라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 이스라엘의 북방인 바벨론에 집중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구체적인 모습은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7년 대환난의 마지막 때가 되면 시날 땅으로 그 거처를 옮긴 음녀 바벨론(에바 속 여인, 5:11)과 세계정부의 수도인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완전한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렘 50, 51장).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계 18:2,14)하십니다.
II. 면류관을 쓴 여호수아(9-15)
9절부터 15절까지는 면류관을 쓴 여호수아에 관한 말씀인데, 여기에는 면류관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름들이 등장하기에 이 말씀을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한 번도 대제사장에게 왕이 쓰는 면류관을 만들어 씌운 적이 없었기에 이 말씀도 앞서 주신 말씀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여하튼 이것이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환상을 기록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이 씌어지는 이 장면을 스가랴가 앞에서 본 8가지 환상들의 결론인 동시에, 구약성경에서 가장 결정적인(중요한) 장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그 구체적인 이유를 하나씩 살펴봅니다.
1. 9-11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로잡힌 자 중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들었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취하되,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하십니다.
a.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는 에스라 2장에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 가운데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스 2:60; 2:36)인 것을 알 수 있는데, 11절에서는 이들이 바친 은과 금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울 면류관을 만들었다 하십니다. 3장에 등장하는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3:3)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면 본문에 등장하는 면류관을 쓴 여호수아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데,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자신들의 은과 금을 바쳐 예수님이 쓰실 면류관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먼 길을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처럼, 또 예수님의 발 앞에 자신의 면류관을 던져 드린 24장로들처럼(계 4:10), 이들도 왕과 제사장으로 오실 주님을 영접하기 위해 은과 금을 바쳤다는 겁니다.
b. 11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면류관’은 ‘미츠네페츠’라고 하는 대제사장이 쓰는 관(출 28:37, turban)이 아니라 ‘아타로트’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왕이 쓰는 왕관(crown)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11절에서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으로 만들었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이 각기 은과 금으로 된 두 개의 면류관일 수 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은은 피를 상징하고, 금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은으로 된 면류관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사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상징한다면, 금으로 된 면류관은 장차 만왕의 왕으로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는 겁니다.
c. 이처럼 예수님을 상징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그 머리에 왕을 상징하는 금 면류관을 쓰는 장면이 본문에 등장하지만, 사실 구약에서 제사장과 왕은 서로 침범하지 못하는 직분입니다. 서로의 직분을 침범할 경우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는데,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블레셋과의 싸움을 앞둔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렸다가(삼상 13:9) 왕권을 빼앗기는 심판을 받았다고 했고, 역대하 26장에서는 대적들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웃시야 왕이 그 마음이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분향의 제사를 드리려다가 문둥병이 발하여 죽을 때까지 문둥병자로 별실에 갇히는 심판을 받았다 했습니다(대하 26:19-21).
이처럼 레위지파 아론의 반차로 이어진 제사장 직분과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진 왕의 직분은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직분이었지만, 성경에는 예외적으로 왕인 동시에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했던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엘람 동맹군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영접한 살렘 왕 멜기세덱(창 14:18)이고, 두 번째 사람이 바로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대제사장이 되신(히 5:10) 예수님이시고, 세 번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동시에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 하신 교회인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시작되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예수님처럼 왕과 제사장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겁니다
2. 12, 13절,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하십니다.
3장 8절에 이어 ‘순(Branch)’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다윗의 순(후손)으로 오신(렘 23:5) 메시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씀인데, 이 예수님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여호와의 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몸(요 2:21) 된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이 땅을 통치하실 때 주님이 직접 성전과 궁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제 4 성전을 지으실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지었고, 스룹바벨이 두 번째 성전을 지었다면, 조만간 세워질 제 3 성전은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가 이곳에 자기의 우상을 세움으로 더럽혀지게 될 것인데,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더럽혀진 이 성전을 허물어버리시고, 그 자리에 에스겔 40장부터 42장까지 예언하고 있는 제 4 성전, 다시 말해 천년왕국의 성전을 지으신다는 겁니다. 스가랴 1장을 강해할 때 살펴본 것처럼 삼면에 회랑들이 만들어진 이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인 동시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궁전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인데, 이런 이유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을 상징하는 은으로 된 면류관과 함께 왕을 상징하는 금으로 된 면류관을 쓰시는 것입니다.
3. 14절,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하십니다.
“도비야와 여다야”는 10절, 11절에서 면류관을 만드는데 은과 금을 바친 사람으로도 등장하는데, 나머지 헬렘과 스바냐의 아들 헨은 이 은과 금을 가지고 직접 면류관을 만든 사람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면류관을 만들기 위해 물질을 바치고 수고한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해 그 면류관을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신 것입니다.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처럼 하나님을 위해 물질을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자들을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시고 기념하신다는 겁니다.
4. 15절, “먼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먼데 사람”은 이방인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이 오시어 제 4 성전을 건축하실 때는 예전의 성전들과는 달리 이방인들도 성전 건축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제 4 성전이 유대인들만은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지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에스겔 45장에 보면 천년왕국의 기간동안 이 성전에서 제사가 드려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때 드려지는 제사는 속죄를 위한 제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모든 백성들 앞에서 기념하는 제사인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것이고, 성찬식이 교회 안에서 십자가의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라면, 천년왕국 기간에 드려지는 제사는 열국 백성들 앞에서 십자가의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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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꿀 수 없는 어제보다 기대할 수 없는 내일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늘이 가장 좋은 하루입니다.
평생 단 한번 오는 오늘 보람있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