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섭지코지 산책에 나선 길. 파도가 완전 장관입니다. 쨍쨍한 날씨에도 높고 거칠게 몰아치는 너울성 파도에서 부서져나온 포말들이 해안가를 뿌옇게 뿌려져 있습니다. 어떤 구간에서는 파도 잔해들이 높은 곳까지 튀어올라 기분좋게 얼굴 가까이 흩뿌려지기도 합니다..
여전히 한보따리 자신만의 보물들을 절대 양보하지 못하고 산책 내내 손에 꼭 쥐고 다니는 근이의 모습은 버거울만도 하고 한번 양보받으려고 포테이토 과자 뜯어 다른 손에 쥐어주며 먹으라고 해보아도 요지부동. 보물지키기에 조금치의 양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근이를 내 차에 태울 일이 있어서 잠깐 함께 있었는데 종이에 관심이 유독 큰 (씹기용 겸 뭔가 끌리는 용)근이가 택이 보물 중 한장을 밖으로 던졌는데 과연 그걸 택이가 알까 모를까 엄청 궁금합니다. 정답은 영상 속에 있다는... 신기하고 또 신기한 능력!
오늘 근이가 투입된 건 참 잘된 일입니다. 택이의 보물급 난삽한 물건들을 찢고 입에 넣고 막 함부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택이것! 택이것! 외쳐봐야 근이에게 씨알이 먹힐리 없습니다. 마구 가슴 쪽으로 모아 품다가 나중에는 포기하는 모양새입니다. 대책없이 이렇게 누군가 한번 심하게 흔들어 놓아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자주자주 경험하는 게 지금 얼마나 요긴한지요.
평대리 바닷가에서 물에 절대 들어가지 않는 두 녀석을 차에 놔두고 창문 활짝 열어주며 일부러 태균이 노는 것 지켜보라고 하는데... 위 영상은 저에게 빨리 자동차 운전석으로 돌아오라는 택이의 주문입니다. 차타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시각처리 문제의 아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차타고 바깥 풍경을 계속 보도록 해주는 게 좋습니다. 차만 타면 바로 휴대폰에 몰입하는 것, 정말 여러가지 면에서 좋지않습니다.
어떻게하면 바다에 들어가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근이녀석은 준이나 택이보다는 어려서 그런지 차츰 바다에 마음을 열고있는 중인데 다 커버린 두 녀석은 참으로 요지부동 이 좋은 자연을 마냥 위험물 혹은 기피대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감각적 문제는 늘 많은 대상들을 왜곡시키곤 하지만 크게 도움을 주는 것조차 거부한다는 것은 아이의 인생에 얼마나 큰 손해인지...
시각정보 처리 개선을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 수시로 노출해주는 것은 필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자꾸 먹다보면 이식증의 덫에 빠져드는 것처럼 원래 좋은 것들조차 '좋다'의 중독성 작업을 우리는 해야만 한다는 사명이 있는거죠. '좋으면 좋은거지'라는 지극히 평범한 논리조차 비껴가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기에 우리의 노력이라는 것은 늘 예상을 불허하는 부분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상식 밖의 끝을 수시로 경험하면서 그 끝의 끝은 언제나 예상불허,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의 범주를 언제든지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좋아졌다'라는 평가는 '이제는 제법 인간답게 행동하네'가 아니라 극단적 예상 밖 행동의 빈도수가 줄었네 라는 것의 의미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들키고 싶지않은 사실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들, 사실은 부끄럽게 느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인해 왔던 상황들 등등, 그것들을 내 인생에 녹이며 내 자식이기에 감싸주고 싶었던 마음들로 인해 깊은 상처를 내내 끌어안고 살고있는 것은 아닐지. 왜 이 꼭두새벽에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 저도 알 수 없지만 때로 특별한 지경의 이 난감함을 이겨낼 힘은 꼭 필요할 것이라는 것!
그게 돈이든, 권력이든, 지극히 헌신적인 마음이든, 그냥 부모로써의 의무감이든, 아이에 대한 엄청난 지식이든, 각자의 기질과 취향에 맞춰 아이에게 접근해가겠지만 언제나 새겨야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을 우습게 보지말라!'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는 그 끝이 없다!'라는 것이 나의 스토리라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에의 수련!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교육의 목표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사회적으로 함께 지내는데 문제가 없는 인간양성' 그리고 '진정한 독립'입니다. 이 두 가지 교육명제 중에서 한 가지는 포기한다고 해도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힘들고 괴로울 때, 이 두 가지 명제를 위해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하고있는지를 마음 속에 새길 수 있다면 언제든 나는 아이데리고 바닷가로 뛰쳐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 바다갈까?가 아니라 실제로 몸이 바다에 와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의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기도 해서 대자연 앞에서 몸을 움추리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립니다. 세상은 결과치를 보지 과정을 헤아려주지 않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치는 고작 이거야 라는 것을 세상은 인정할 리가 없습니다.
때로 복지카드를 가지고 이래저래 혜택을 받으면서 그럼 나는 사회에 어떤 혜택을 주지? 라고 반문을 해보곤 합니다. 그렇게 기브엔테이크의 논리에서 한없이 한쪽이 기우는 마이너(사회적 소수, 약자)로써의 바로 그 입장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닌지... 저는 마이너들의 사회적 공헌도의 헤아림없이 일방적으로 높이는 목소리에 아직도 반감이 있습니다.
미국처럼 자폐증 자녀의 뇌를 연구를 위해 사후 기증하겠다는 참된 운동이나 결국 환경문제에서 기인된 이 엄청난 결과들의 시작을 바로잡기 위한 환경운동이나 등등 우리가 대의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지금 더 중요한 움직임이란 아름답고 맘편히 즐겨야 하는 대자연에조차 아이가 발을 내딛지 못하는 그런 현실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의 더 큰 과제입니다.
자폐증은 세상 무수히 널려있는 정보를 내 머리로 보내야 하는 뇌회로가 손상된 병입니다. 보내질 못하니 나올 것도 없어서 해괴한 동물적 행동의 덫에 빠지게 합니다. 보내는 회로손상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 그걸 이해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를 넘어서 사회인으로써 무책임이라고 봅니다.
즐거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게 되어야 아이들은 깨어날 수 있습니다...
첫댓글 사회적으로 함께 지낼 수 있는 아이로 만들기 명심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주도에서 구구절절 느낍니다. 즐거운 것을 즐겁게 받아들이기^^
예, 즐거운 것을 즐겁게 받아 들이기!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