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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수원시로 흐르는 황구지천의 지류이며 우측은 탄천의 지류
소현초등학교에서 소실봉으로 올라와
용인시 수지구로 내려가는데
잠시 도심의 찾지 못할 마루금을 벗어나 "선비는 물에 빠져도 개(犬) 헤엄은 치지 않고, 얼어 죽을지언정 남의 겻불은 쬐지 않는
다"는 선비의 표상이셨던 조선시대 조광조의 위패를 모신 심곡서원(深谷書院)과 임진왜란 최악의 전투 용인 전투지역을 한번 찾아 떠난다.
용인시 수지구의 심곡서원(深谷書院)과 용인 전투 지역을 찾으며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사당이며 입구에는 병충해 없이 잘 자라서 학자수(學子樹)란 이름을 얻은 노란 은행이 늦가을을 알린다.
조광조(1482-1519) 선생은 조선 중기 학자로서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을 단행하다가
중종 14년에 훈구파의 모함을 받는 기묘사화로 전라도 화순군 능주면 남정리에 유배되어 1개월 만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12월 20일) 당한다.
유배지 화순에서 이제나 저제나 왕께서 해배(解配)를 내리실까! 하였지만 죽음을 알리는 사약이 도착되어
"주상께서 신(臣)에게 죽음을 내리신다면 합당한 죄명이 있을 것이니 삼가 그 죄명을 듣고 싶소"라며 한마디 하고 사약을 들이키시고 돌아가셨는데 그의 나이 38세때 일이다.
선생께서는 생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는데
"내가 죽거든 관으로 쓸 나무는 얇은 것으로 하라
두껍고 무거운 송판을 쓰면 먼길 가기 어렵기 때문이니라.
선비라면 최소한 조광조 같은 선비가 되어야 하니 참 멋지게 살다가 돌아 가신분 같다
향교를 둘러보고 나와 조광조 선생의 무덤이 바로 옆에 있었으나 아이스크림 하나 산다고 돌아다니다가 한눈파는 사이에
지나쳐 다시 돌아가기도 그렇고 지난날 전라도 화순 땅 능주에서 그의 유배지를 둘러본 것으로 마음을 돌린다.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면 이곳 용인시 수지구는 임진왜란 당시 최악의 전투를 하였던 용인 전투지역이다.
용인 전투는 광교산 아래 수원과 용인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로써 조선의 전라 순찰사 "이광"의 남도 근왕군 5만 VS 일본의 와키자
카 의 1천500명의 싸움으로 말도 안 되는 게임이었지만 조선의 지휘관은 대부분 어설픈 문관 출신이라 무능했고 싸울 수 있는
정예병은 얼마 안 되었고 싸움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백성들만 5만 명, 그에 비해 열도에서 싸움 하나로는 진절머리 처질 정도로 싸웠던 왜군들이다.
싸움이 전개되자 총소리에 놀란 조선 지휘관이나 장수들은 싸워보지도 않고 먼저 살겠다고 도망가고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지다
가 많은 사람들이 밟혀 죽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처구나 없는 지휘관들의 무능함이 있었기에 임진란 최악의 패전으로 불리는 신립의 탄금대 전투, 남도 근왕군의 용인
전투 그리고 원균의 칠천량 해전이 있었다
행여나 그날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있었을 같았지만 이곳 용인시 수지지구는 아파트만 빼곡하게 서 있어 그날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없었다.
용인 전투 그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지만 잠시 무능했던 왕을 구하겠다고 한양으로 길을 떠났던 5만 백성의 뜨거웠던 숨결을
느껴보는것에 만족하고 선비의 표상 조광조 선생보다 냉장고 안에 가지런하게 누워있는 아이스크림이 더 좋은 날로 기억한다
조광조 선생의 깨끗한 묘는 먼발치에서 보고 형제봉으로 오르는데
등로에 막걸리 파는 아저씨가 있어 한잔 하기로 한다.
뭐든 혼자 마시면 맛이 없어 식혜 하나 더 사서 주인장께 드리고 시원하다 못해 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막걸리 한잔에
눈이 팽돌아 간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묵념하고
형제봉 인근에서 한남 정맥을 하러 오신 울산의 멋쟁이 늘보님을 만난 인사를 나우고
많은 산객으로 붐비는 형제봉
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 선생께서 말단 벼슬이던 6두품밖에 할 수 없어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돌아다니시던 중 광교산 문암골에 머물렀다고 한다.
해빠질 무렵인데도 광교(光敎山)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광교산은 "신성함의 상징인 광채(光彩)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주는 산이라"하여 광교(光敎)라고 하였다
수도 한양을 지키는 한강 남쪽의 최종 방어선(수리, 관악, 청계 광교)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교는 큰 싸움을 두 번 겪는다
첫 번째 임진왜란 때 광교산(용인) 전투에서 나라의 국운(國運)을 패전이란 치욕적인(5만 대 1천500명) 타이틀을 안겨줬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 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 산성에 고립되어 있었으나 이곳 광교산 정상 부근 전투에서는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준용 장군이 청 태조(누루하치)의 사위이며, 홍타이지(청 나라 2대 왕)의 매형 겸 청나라 최고의 전략가이자 명장(名將)이던
아무튼 최고라는 수식어만 골고루 달고 다녔던 양고리와 싸워 양고리를 죽인 전투가 광교산 중턱에서 있었다.
이날 양고리가 죽자 홍타이지가 피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이야기
한남정맥길이던 아니던 이곳에 서게 되면 치욕적인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이마가 깨지도록 삼고구고두례를 했던 무능한
인조가 있었던 반면 청나라 최고의 지략가이며 명장과 싸워 이긴 김준용 장군을 한번 생각해보셨으면 하고 간략한 광교를 마치고
해지기 전에 지지대 고개로 향한다.
관악산과 청계산이 보이고
멀리 한강 건너편 북한산 자락이 어렴풋이 보이는 걸 보니 다음 산길의 방향을 저곳으로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가 넘어가고
광교와 형제를 지나면서 지지대 고개로 가는 도중에 인근에서 올라오신 합기도 관장님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며 내려간다.
관장님
만나서 반가웠고요 수련생들 잘 지도 부탁드립니다.
지지대고개의 프랑스군 참전비
프랑스군 참전비를 보니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에서 미군과 프랑스 연합군과 중국 인민 해방군이 4일간 싸워
피아간 전사자 52명과 5천 명이 전사한 싸움이 생각난다.
잠시 묵념하고
지지대비를 지나
한참 가다 보니 분당-과천로 도로가 나오는데 마루금으로는 길이 없어 어디로든 돌아가야 하겠는데 지난번에 이어 좌측으로
내려가다가 잡목이 우거져 고생하고 차가 달리는 도로가로 내려와 걷다가 동물 이동 통로로 힘겹게 기어 올라와 진짜 마루금인
동물이동 통로로 진행한다.
동물이동 통로는 잡목이 너무 빼곡하여 이런 곳에 뭔 동물이 지나가는지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도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이 이동 통로 바깥 부분의 좁은 테라스 위로 아슬아슬 지나는데 그날 저녁 도로를 지나가시던 분들 중 저를 보고
기절하신 분들이 분명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군포시 당정역 지하통로를 지나 때늦은 식사를 하고
인근에서 자고 나와 새벽에 찾아오신 밤도깨비님과 함께 용호 초등학교부터 시작한다.
새벽에 지나온 수리산
수리산 뒤로 작은 호수(반월호수) 같은 게 보이시죠
시화호로 흐르는 반월천인데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가 반월천 지류들이다
반월천은 도심을 지나지만 그런대로 깨끗한 편에 속한다.
수암봉을 지나고
군부대 철조망이 길게 이어지며 정맥꾼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낙엽 쌓인 산허리를 지나는 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몇 해 전에 지나간 천왕산님 시그널
조금 남아있는 단풍나무
목감 초등학교 옆길로 올라오니 수도권 순환도로가 시원하게 보이고 있으며 차들이 쌩쌩 달리며 지나갈 테면 지나가라고
지나가는데 이곳은 언제나 부담이다.
잠시 도로 옆으로 진행하다가 이미 버림몸 가까운 도로 따라가자며 도로로 이동한다.
한남정맥 길은 사람이 사는 땅이지 산꾼이 다닐 곳은 못되어 군부대, 공장, 개인 사유지, 아파트가 너무 많아
마루금 찾기하다가 골병들고 도심에서 길 잃기 딱 좋다
편안하게 도로따라 진행한 후 찰리 저수지를 지나 고갯마루에서 올라와 본격적인 마루금을 시작하는데
코로나 영향인지 그동안 정맥꾼들이 다니지 않아 엉망이다.
군부대 철조망을 지나고 지나서
외곽 순한도로 갓길 투어도 하고
고속도로 투어를 끝내고 다시 산으로 올라와
시흥시 매달고개를 지나
삼십고개의 화원(花園)이 있는 성바오로 피의정의 집 녹색 울타리가 쳐진 산길을 무작정 돌고 돌아
여우고개나 하우고개 성주산 가는길에 본 정맥 길 마루금인데 이곳을 누가 정맥 길이라 하겠나
세번째 찾아오는 한남이지만 올 때마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다.
하우고개에서 성주산 가는길에
내일 아침에 올라야 할 인천의 계양산과 바로 앞은 인천시 가족 공원묘지
해는 넘어가고
만월산 8 각정자
멀리 문학 경기장과 청량산이 서있고
만월산 정상 부근에서 해는 넘어가고
인천 땅 부평구 십정동에서 마무리하고
오늘 고생해주신 밤도깨비님과 함께 저녁 식사하러 갑니다.
도깨비님 고마웠고요 감사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다시 산으로 올라와 동암산을 지나면서
김포 문수산까지 60km가 남아있어 저녁 8시쯤이면 끝날 것 같지만
아들 녀석이 김포 문수산 아래에 근무를 하니 저녁에 편안한 곳에서 쉬며 전화나 해봐야겠다.
아트센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이동후 산길로 올라와
함봉산 자락에서 본 인천시 서구 방향
함봉산을 내려와 원통이 고개 절개지 방향으로 오른다.
원적산
원한 맺힌 산인가.
공사하다가 워낙 힘들어 실패를 자주하자 원통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나
인천의 산정에는 대부분 정자가 지어져 있어 쉬기 딱 좋다.
멀리 수리산에서 일출이 오르고
서해 방향으로 낮은 구름과 어디론가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들의 품격있는 비행
기러기는 겨울이 되면 추위를 피해 강남으로 줄지어 떠나는데
다른 새와는 다르게 오상(五常) 인의예지신을 갖추고 있는 새다.
줄지어 날아갈 때 서열이 높으면 앞에 서고 약한 기러기는 뒤를 날으며 무리를 벗어나기 않는 건 기본이고
밤이 되어 잠잘 때도 서로가 지켜주며 잠을 자거나
짝을 잃으면 죽을 때까지 다른 짝을 구하지 않고 짝 잃은 동료가 있어도 결코 범하지 않고
봄이 되면 다시 천리를 날아 돌아온다
저들 무리들 중에서 가장 약한 녀석들은 맨뒤의 녀석들이며 힘없어 뒤처지거나
땅으로 내려앉으면 주위의 몇 마리가 함께 땅으로 내려와 얼마 동안 쉬었다가 다시 무리를 찾아 날아가는데
이른 아침에 산정에서 보는 풍경으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철새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대신에 가야할 계명산이 지척에 있다
계명과 멀리 한강 넘어 북한산이 잘 보이고
계명산에 올라와서 다시 왔던길로 내려가 이동한다.
식수가 떨어져 계곡으로 내려가서 보충하고
그동안 하천을 다니면서 물찾는데 도사가 되어있고 아무 물이나 잘 마시는 편
물이란 자고로 스스로 길을 내는데 이런 인위적이란 이름은...
곧은 직선으로 비행기 이착륙을 할수도 있을것처럼 직선의 물 길
조선을 설계하셨던 정도전 선생은 동구밖의 소나무 한그루도 함부로 베지않고 돌아가는 길을 내었다는데
쓸때없이 정맥길의 허리를 뚝 분질러 물길을 내다니 ...
남한의 9정맥 중에서 허리를 분질러 물길을 낸곳은 이곳 한남과 낙남정맥 가화천 두곳이다.
아라마루 휴게소에 들러
30분 정도 기다려 멋진 짬뽕 한그릇을 만들어 내오셨다.
위에 고기만 골라먹는 신공을 발휘해서 먹고
할메산 가는길은 지역분들의 산악 자전거 놀이장인지
리키다 소나무가 서있고 길이 아주 좋다
길을 걷다가 홀로 걸으며 울고 계시는 60대 초반 여자분을 만나는데
"어디 불편하세요"하니
울먹이며 "지금까지 세상을 살면서 나쁜일 한적 한번 없었는데
시한부 판정 받아 이제 한달만 살수 있다"며 서러운 마음에 엉엉 소리를 내신다.
아!~남은 날이 한달이라....가슴이 먹먹해진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 몇발짝 가다가 뒤돌아 보니 나무를 붙잡고 서글피 울고 계신다.
우리야 앞날을 모르니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시한부의 생을 살고 계시는 분이라면...
할메산 방향으로
동네 할매분들도 오를 수있을 정도로 쉬운 산인데 서해랑길 표시기도 보인다.
인천시 서구 검단로 마을길 투어로 시작하여 검단 배수장을 올라
가현산을 내려오면 해병대 2사단 입구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은 작은 아들이 군생활을 하는 곳이라 아들의 숨결이 느껴지는듯...
저녁에 전화를 해봐야겠다.
상주산을 지나
온통 서해랑길 신그널이 보이고
봉수 고개에 자리하는 서해랑길 안내판
마지막 단풍
작은 녀석의 빨간 명찰의 이름이 그대로 전해지니
카톡으로 몇마디 주고 받는다.
*아들 아버지 170km 걸어와서 너의 부대 옆을 지난다
#ㅋㅋㅋ 감동인데 ...빨리 끝내고 집에 가십쇼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아들 보고 싶어서 거의 200km를 걸어 오는 사람없다.
#ㅋㅋㅋ 그렇긴 하지요
등로 좋고
멀리 내일 도착할 문수산 방향
마루금으로는 공장과 개인 사유지가 있어 잠시 돌아가서 도착한 대곷남로 삼거리
도로따라 이동후 대능 2교 굴다리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수안산으로 올라와
수안산 산신께 제를 지내는곳에서 합장하고
수안산성 발굴중
신라 진흥왕 시설에 한강 유역을 장악하면서 쌓은 신라의 석성
석성 사진 한장 담는 도중에 문화재청의 직원분은 사진을 찍어도 아무말씀 없는데
삽질하시는 공사인부께서 "어이~~ 문화재 사진 찍으면 안되요"라며 나무라듯 한마디 하신다.
ㅠㅠ
다시 왔던길로 돌아가서 수안산신 제단 있는곳까지 가서 길찾아 내려간다.
정맥인가
도로 투어 길인가
좀 더 서둘면 저녁 8시에 한남을 마치겠지만 아침에 문수산에 올라야 하니
길을 외울 겸 천천히 걷는다.
돌고 돌아 해병대 2사단 입구 앞에서 일찍 마치고
인근에서 잠자기 전에 작은 아들과 연락을 하다가 새벽에 진행한다.
2사단 입구에서 다시 도로길 투어를 하는데 지난날 오르던 해병대 철조망 옆 가정집에서는 오르지 못하고
길 따라 진행
도로 갓길 탐구 중에
인근 공장에 아침식사 배달하러 가는 식당인 듯한데
모처럼 아침 식사를 해본다.
산길에 만나는 클럽 시그널은 늘 반갑다
이른 아침에 알프스님께서 찾아 주셨고
새벽에 비가 조금 내려 도로는 젖어있고 안개가 가득하다.
안개 자욱한 문수산에서 한남정맥 정리하며
내랴 갈 방향으로
작은 녀석이 이산길 끝에서 철책근무 1년간 하다가 보름 전에 **정으로 철수해서 근무 중인데
지금 병장으로 내년 3월에 제대를 앞두고 있다
지나온 문수산 정상의 누각
늘 푸르리라
진정한 푸르름이란 바로 이 계절에 찾아오며 강원도 심심산골(深深算)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이 모두 녹을 때까지 다.
그 이후로 한여름에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푸르다.
한강이 태백의 검룡소에서 출발해 정선- 평창- 영월 -단양-제천 -충주-여주-양평 -하남-서울-김포를 지나 서해로 빠져나가는 곳
며칠간 한강의 남쪽 산길을 천천히 걸으며 산하의 하천을 그려보았다.
뿌연 문수산에 아무도 없을 것 같았는데 마을 분이 올라오셔서 처음으로 한 장 담고
산길을 지나며 온산 붉게 물들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갈 낙엽길을 밟으며 지나왔으니 이쯤에서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하산길은 문수산성으로
아래는 보구곶리 마을
이곳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때 쌓은 성(城)이며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숙종이 쌓은 성으로 우리가 잘 알고있는 북한산성과 부산의 금정산성이 있으며
숙종 때 살았던 백성들은 허구한날 성만 쌓는 노역을 하다가 골병든 사람들이 지방마다 매우 많았다는 이야기다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해가 보이는군요
날이 밝았으니 이제 집으로 가야겠죠
한남정맥 산길은 가본 사람만 아는 ㅇㅇㅇ한 산길이며
그곳에서 흐르는 물은 도심으로 흐르는 물이기에 산길과 더불어 아주 거시기하다.
또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3번이나 찾은 한남 길이 갈수록 시간이 지체가 되니
체력이 방전인지 난개발로 인해 길이 더 없어져 돌아가는 시간이 많이 늘어난 건지...
이번 산길에 도움 주신 알프스님. 밤도깨비님, 노송님 콜리님께 감사드리며
다음 산길은 저쪽으로 갑니다.
첫댓글 아드님이 계시는 곳을 향한 걸음
보구곶리까지...
물길이 흘러가듯 막힘없이 이어지는 방장님의 한남정맥 후기글에서 또 많이 느끼고 생각해봅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 의미에 대해서도...
같은 길을 걸어도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한강 그 남쪽...
9정맥 중 1개 한남정맥 언젠가 만나게 될 그날을 상상해봅니다.
방장님의 솜씨로 풀어낸 후기글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장쾌한 걸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용은 더 깊어지고 제목은 어느덧 시(詩)가 되었네요. ^^
한남은 도심과 평야로 물을 흘러보내니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사는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구요
산은 쪼개지고 물은 더럽고 그게 우리나라 현실 입니다.
저도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산길을 나서 보는날이 있기를 바라면서
산행기를 통해 많은 것을 새겨 봅니다
장군님 잘 계시죠
산행기가 전쟁과 사약 받고 저세상 간 이야기만 있어 눈이나 버리지 않으셨는지
다음 산길 이야기는 좀 재미있겠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팀 산행을 추구하는 이유는
혼자가 아닌 같은 길을 걸을 수 잇는
동료가 있다는 점 입니다.
혼자 걷는 산행은 외롭고
야간 산행 때는 두려움도 느껴지고...
여러가지로 불편하더군요.
한남길 혼자 고독과 싸우면서
걷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누군가 같이 산행 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저는 늘 혼자가는 버릇이 있어
가는길에 몇몇군데 찾아볼곳 있으면 잠시 다녀 오곤 합니다.
금남 정맥길 잘 이어가시구요 저도 그길에서 joon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좋은생각만 하며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겨울 산행 안전산행 잊지 마시구요
아들이 곁에 있어서 더 보람 있고 힘이 났을거 같네요.
한남길 수고하셨어요^^
넵 이제 해병 병장이구요
내년 꽃피는 춘삼월에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 온답니다.
한남은 마무리 되고 이제 한남 금북으로 갈것 같으니 행여나 어느 산하에서든 만나면 좋겠습니다.
한남정맥 후기글 장보고 갑니다
재미없는 산길 이야기죠
이제 건강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 풍문에 들었구요
빠른시일내 완쾌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수고 하셨네요 다음은 재밋는 산길로 가시길
이제 추워지는데 시작하는 정맥길
무탈하게 이어가시고 바라시는 무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바라거나 찾는건 없구요
물길을 걸으며 조금 배운건 있어 그걸 다시 배우는 차원에서 산길을 걸어 갑니다.
대간길 안전하게 진행 하시구요
지날날의 추억을 다시금 회상해봅니다
방장님의 걸은 그 길위에서 그때 그시절
그리움이 느껴지네요 군대간 아들을 생각하며
고달픈 발걸음도 마음만은 가벼웠을것
같네요 9정맥중 첫번째 정맥 한남정맥
원삿으로 걷는다고 고생하셨습니다
내년 봄에 낙동 갈것 같으니 저짜 가지산 인근에서 인사드려야 할까 봅니다.
몸관리 잘해서 산길 다니시기 바라겠구요
가끔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남정맥길은 개발에 밀려 지금도 그렇지만 10년만 지나면 아마도 도시투어길이 될듯 합니다 추운날 긴걸음 하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남길만 3번을 다녔는데
갈때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체력이 다된건지 도심에서 길 찾기한다고 시간이 걸린건지
겨울철 산행 조심해서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길게 같이 걸음하고 식사라도 같이 했어야 했는데...시간이 안되 짧게 동행만 하여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 건강하고 즐겁게 뵙겠습니다.!
화이팅!!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 마음은 어떠할가요 ?
잘보고요
몸건강잘챙기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