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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거듭남을 지속하는 비결
그렇다면 어떻게 거듭남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바울의 말처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는 상황 속에 늘 살고 있는 우리가 말이다. 저 유명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의 몸이 재가 되고 욕망과 죄에서 자유로운 영광의 새 몸으로 부활할 때까지 죄와 욕망이 우리 안에 남아 있다”고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성경 속에는 우리가 거듭남을 지속하고 육체를 거스려 살 수 있는 비결이 잘 기록되어 있다. 함께 생각해 보자.
1) 성령을 따라 걸으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사도 바울은 거듭남을 지속시키는 비결을 이 성경 절 속에 집어넣어 놓았다. 이 성경절을 영어로도 보자.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킹 제임스 역).
이 성경 절은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할 때 생략된 부분이 영어에는 있다. 정죄함을 받지 않는 이 사람은 그냥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현재 육체를 따라 걷지않고 성령을 따라 걷고 있는 자를 가리킨다. 원어에는 현재 진행형으로 쓰여있어서 계속적으로 성령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며 함께 동행하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고 권면했다. ‘죄에 대해서 죽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았다’ 는 의미의 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에 죄의 연약성이 계속 존재할지라도, 또한 죄의 유혹이 계속 올지라도, 우리가 죄악의 욕망과 죄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고도 기록했다. 여기서 ‘행하다’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할라카”(Halakhah) 인데, 이 말은 ‘걸어가다, 살아가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따라, 즉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에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않게 되며, 거듭남을 지속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살라
거듭남을 지속시키는 비결은 성령을 따라 걷는 것이며, 또한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에는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삶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 구절들은 다 동사로 표현되어 있다. 성령의 통치를 받는 삶은 어떤 삶인가?
첫째,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여기서 “행하라”는 동사 헬라어 ‘페리파테오’의 문자적 의미는 ‘동행하다’ 또는 ‘따르다’이다. 바울이 이 동사를 현재형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일회적인 동행이 아니라 날마다 지속되는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명령은 날마다 성령을 따라 살기로 결정해야 할 선택이라는 것이다.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의지의 진정한 힘을 깨달아야 한다. 의지는 사람에게 있는 지배력이며, 결정력이고 선택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선택할 능력을 주셨고 우리는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고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매 순간 하나님의 편을 선택할 때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선택에 의해 자아는 죽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8). 이 단어는 성령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야 함을 의미한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살아야 한다. 나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이다.
다음은 갈 5:25절을 보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이 ‘살다(자오)’, 성령으로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경험이 매일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 동사도 현재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중생의 경험이 날마다 갱신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성령으로 “행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행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16절의 ‘행하다’와 다르다. 이 말의 원어 ‘스토이케오’는 ‘대열을 갖춰 나아가다’, ‘발을 맞추다’, ‘순응하다’라는 뜻의 군사용어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삶을 계속적으로 살 뿐만 아니라, 성령과 발을 맞추어 성령께 순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그러면 거듭남을 지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말씀으로 살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성경은 우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한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결과로 나타나며, 또한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한 결과로 지속된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 자신을 비춰볼 방법이 없고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할 방도도 없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매일 깨끗하게 함을 입어야 한다. 성령에 의하여 거룩한 진리가 마음에 명각될 때 새로운 생각이 일깨워지고 잠자고 있었던 힘들이 분기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주님과 협력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앗이다. 씨앗 속에 생명력이 들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도 생명력이 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그분의 말씀 속에 있는 모든 약속에는 능력 곧 하나님의 생명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실제로 하나님의 생명과 품성을 받는 것이다. 믿음으로 마음속에 썩지 아니할 말씀의 씨를 받아들이면 반드시 하나님의 품성과 생명이 그 사람의 생애 속에 실현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깨끗케 하고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모든 우상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깨끗케 하기 위해 말씀을 매일 상고해야 한다. 신령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함으로 유지된다.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하며 마음 가운데 말씀으로 가득 차야 한다. 마음 가운데 신령하게 품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욕망과 정욕을 억제시키며 품성의 모든 결함을 바로잡아 준다. 거듭남을 지속기키는 비결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4) 기도로 호흡하라
우리가 만일 거듭남이 유지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주님과 교제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주님과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대화 할 수 있는 시간을 구별해 가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사람이 호흡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영혼도 기도 없이 살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사단의 유혹과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다. 거듭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죄를 승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단의 공격과 죄의 세력을 이기는 힘을 과연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자.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우리는 기도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믿음의 기도는 우리가 마귀의 모든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무기이다. 하루라도 기도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우리는 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야 한다. 진실하고 열렬하게 영혼의 순결을 위하여 간구하라. 마치 육신의 생명이 위기에 놓인 것처럼 간절하고 열렬하게 간구하라. 마음 속에 구원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소원이 생길 때까지, 또한 죄의 용서를 받은 귀중한 증거를 얻을 때까지, 죄를 이길 힘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 앞을 떠나지 말라. 그렇게 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심령을 주셔서 더 깊은 회개로 나가게 하시며 주님께로 향하는 더 강한 믿음을 주실 것이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거듭남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1. 기도의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심정을 펴 놓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로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함이 아니요, 우리를 그에게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기도 하는 일에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아무 일로든지 기도에 방해를 받지 말도록 하라. 예수님과 우리 심령 사이에 교통이 막히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자. 무엇보다도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되는데,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홀로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앞에 우리의 심령을 내어 놓아야 한다. 골방에서 뿐만 아리라 매일의 업무를 행할 때에도 마음을 자주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
2. 기도 시간과 장소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다. 거리의 사람이 많은 곳에서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마음문을 열어 놓고 예수께서 하늘의 손님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를 청하는 초청을 보내야 한다. 비록 우리의 주위가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 심령을 하나님께로 올림으로 불순한 망상이나 불신성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한다해도 주님을 괴롭게 하거나 피곤케 할 수 없다. 우리들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주님은 자녀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시다. 그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슬픈 일을 보거나 그 슬픈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동정하신다. 마음을 번뇌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 내어 놓자! 그분께서 감당하시기에 과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는 세계를 붙드시고 우주의 모든 사건을 주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주목하지 않으시는 것은 없고,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가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다. 하나님과 각 사람과의 관계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주시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고 개인적이고 완전하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도 허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하늘 찬양대의 우렁찬 찬미 소리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인간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우리가 골방에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쏟아놓을 때나, 길을 가면서 묵묵히 기도할 때에도, 우리가 올리는 기도의 말이 우주의 임금님의 보좌에 상달된다. 심령의 소원은 거리의 소음과 군중의 소요를 벗어나 하늘 조정에 상달된다. 역경과 시련이 우리를 둘러쌀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피하며, 힘있게 건져내시고 강하게 구원하시는 주님께 확신을 가지고 기도로써 도움을 구해야 한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기도는 거듭남을 유지시키는 귀한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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