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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솜사탕/ 이수내 가을 하늘은 온통 구름사탕 솜사탕 한개에 천오백원 하는데 저렇게 많은 뭉개구름 퍼다가 솜사탕 장사를 하면 금방 부자가 될꺼 같아요 헐! 그런데 구름을 퍼오려면 비행기가 있어야 할텐데요... 아 참!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구름은 가벼우니까 대형 종이비행기를 한대 만들어야 겠어요 | 단추가 되었으면 이수내 새로 전근 해 오신 원빈처럼 잘 생긴 우리 반 담임선생님 하늘색 단추가 달린 가을햇살처럼 뽀얀 흰 셔츠에 자주색 타이를 멘 모습이 영화배우 같다 짝꿍 영숙이랑 국어책은 안 읽고 선생님만 자꾸 쳐다봤다 뒷줄에 앉아 있던 명식이가 뒷통수에 대고 한마디 쏘아 붙인다 야! 단추 구멍들 눈 크게 뜨고 국어책이나 읽어라! 칫! 눈이 작은것도 슬픈데 단추 구멍이라고 놀려댄다 차라리 이럴땐 선생님 셔츠에 단추였음 좋겠다. |
허수아비의 독백 이수내 여태껏 사람들이 입고 버린 헌옷만 입었거든 그래서 참새한테 맨날 같은 옷만 입는다고 욍따만 당했어 이번엔 참새들 잘 사귀라고 곰돌이 티사쓰를 멋지게 입혀 주었어 그런데 참새들이 멋진 뉴 패션을 알아주지 않지 뭐야 옆으로 양팔도 안 벌리고 랩 스타일로 올렸는데 말야 아무래도 장난감 스마트폰이라도 손에 들고 있어야겠어 요즘 참새들은 스마트폰 없으면 우릴 허수아비 취급도 안 해 주거든! |
맛있는 쌀 밥 이수내 엄마는 가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밥이라고 한다 맨 날 먹는 밥은 먹기도 싫은데 피자도 짜장면도 먹고 싶은데 엄마는 밥보다 더 맛있는 거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한다 암탉은 바닥에서 쪼아 먹는 모이가 밥이고 송아지가 먹는 밥도 풀과 여물이 아니냐? 사람으로 태어나서 따뜻한 밥을 밥상에 둘러앉아 먹을 수 있으니 이것보다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겠냐 오늘 아침 엄마는 맛있는 가을을 한상 차리셨다 밥상위에 흰 쌀밥이 빤닥빤닥 약 올리듯 밥값 좀 하라며 날 보고 하얗게 웃는다 | 골목 대장들 /이수내 우리동네 골목길은 너도나도 골목대장 할아버지 방귀 소리 명수아빠 술 취한 엇박자 노래 소리 삽쌀개랑 야옹이가 슬그머니 똥 싸놓고 숨박꼭질 하다가 달아나는 길 햇살도 내려앉아 볼그레 잠든 엄마 등처럼 따뜻한 우리동네 골목길 |
소금은 왜 짠 걸까/이수내 우리집 뒷마당 장독대엔 커다란 소금항아리가 오똑이처럼 앉아있다 매일아침 짜디 짠 항아리를 닦는 할머니 꼭 필요한 소금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백살이 넘은 우리할머니 쌀밥을 해준다며 쌀을 씻으신다 행굴때마다 쌀이 달아났다 반짝거린 흰소금을 씻으며 할머니는 하얗게 웃었다. | 천천히 달리렴, 뿔소야 이수내 땅거미들이 제 구멍을 찾느라 캄캄해진 언덕길 쾅! 천둥 치는 줄 알았어요 쌩쌩 달리던 뿔 소가 안전지대를 넘어와 딱정벌레 꽁무니를 부딪치고 말았어요 뿔 소는 코가 깨지고 두 눈알도 빠져 덜렁거려요 어디선가 나타난 부엉이 아저씨 '어디 다친데는 없습니까'? 두 귀도 찌그러진 뿔 소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해요 |
방글이 이수내 방글방글 잘 웃는 눈송이처럼 얼굴이 뽀얀 방글이 난 방글이를 좋아한다 도시락 먹을 때도 옆에 앉고 싶은데 방글이는 예쁜 친구들, 멋진 선생님 옆으로만 방글방글 웃으며 가버린다 조금 슬펐다 그래도 난 방글이가 참 좋다 같이 만나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 섬머슴애 같은 나를 싫어 할까봐 내일은 내가 먼저 방글이한테 살포시 웃어줘야겠다 첫 눈처럼... | 도깨비 시장 이순애 이른 새벽이면 엄마는 장바구니를 챙겨들고 도깨비를 잡으러 나가셨어요 도깨비들이 득실거린다는 삼학도 자유시장, 뿔이 난 도깨비가 살까 외눈박이 도깨비가 살까 무섭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데 자다가 눈을 뜨면 어느새 엄마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셔요 엄마, 도깨비 잡았어? 엄마, 도깨비 어딨어? 아침 햇살 내려앉는 마루에 엄마가 슬그머니 장바구니를 풀면 꼬물꼬물 세발낙지 납작 엎드린 홍어 한 마리 도깨비 얼굴로 웃고 있어요 |
비행기 똥구멍 이수내 비행기는 심술쟁이 예쁜 파란 하늘에 똥을 싸고 있어요 산에도 강에도 우리 집 지붕에도 뿡뿡뿡뿡 앗, 두 줄로 똥을 싸요 비행기 똥구멍이 두갠가 봐요 | 미로?/ 이수내 우릴 데려간 사람이 잘 웃는 사람이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이젠 힘들어서 우릴 입양 보내야 한대... 멍순아! 어디에서 지내더라도 잡아먹히지 말고 오래오래 잘 살아야 돼! 우린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으로 연락도 못할테니까... 알았어, 멍돌아! 부디! 우리 서로 식인종은 만나지 말자! 너도 힘내! |
여름이 오면 이수내 여름이 오면 런닝구 훌러덩 벗어놓고 냇가에서 배꼽 헤엄칠 수 있어서 좋다 여름이 오면 찬 마룻바닥에 드러누워 요술 부리는 구름을 쳐다볼 때가 좋다 여름이 오면 아빠가 좋아하는 보름달만한 수박을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런데 엄마는 여름이 제일 밉다고 한다 | 감꽃 목걸이/이수내 하와이로 이민 간 앞집 명식이 큰누나가 왕방울 같이 눈알이 큰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하얀 진주 목걸이가 훌라 춤을 추듯 반짝반짝 배꼽까지 흘러 내렸다 -나도 커서 돈 벌면 울엄마 진주 목걸이 해줄꺼야! 빙긋 웃던 엄마는 장독 뒤에 떨어진 감꽃 줏어와 줄줄히 사이좋게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고추 잠자리 웅웅 날고 논둑에 깨구락지 울면 또록또록 샛노란 울엄마표 감꽃 목걸이 |
우체통을 기억해 줘 / 이순애 이제는 찾지 않는 우리동네 하마 입 빨강 우체통 친구야 안녕안녕 웃던 편지도 징글벨 징글벨 노래 하던 엽서도 스마트 폰 친구들 따라 갔나 봐 길가에 웅크린 배고픈 우체통 보고 싶다 친구들아 삐뚤빼뚤 손 편지 | 우물 냉장고/ 이순애 무안 연꽃방죽 동네 외갓집 뒤안에는 할아버지가 파놓은 동그랗고 작은 샘이 하나 있다 여름이 오면 할아버지는 두레박에 막걸리병 둥둥 띄워 놓고 들일 마치고 돌아오면 맨 먼저 막걸리 병하고 입을 맞춘다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 여름을 마신다는 할아버지 연꽃처럼 예쁜, 우물 냉장고 |
보름달도 힘들겠다 이순애 추석 보름날 밤 앞마당에 온 가족 동그랗게 서서 둥그런 보름달 쳐다보고 소원 한개씩 빌었다 키 좀 크게 해주세요 나도 소원 빌었다 | 보름달은 참 힘들겠다 세상사람 소원 들어주려다 두 귀가 늘어져 길쭉해 지겠다 무거워져서 마당으로 털썩! 내려앉겠다 |
준비가 중요해요/ 이수내 붉은 고사리손 아기 단풍이 슬몃 슬몃 손을 흔들고 있어요 아기 다람쥐는 엄마 다람쥐가 주워놓은 도토리를 떼굴떼굴 굴리고 있어요 우리집 나무대장 은행나무 잎파리가 앞마당을 노랑이불로 덮어 놨어요 겨울 채비 바쁜 엄마는 장농 문을 열고 스웨터와 목도리를 꺼내고 있어요 나는 졸고 있는 책가방을 부리나케 깨워 미뤄 둔 숙제를 챙겨 넣고 있어요 | 방글이 이수내 방글방글 잘 웃는 눈송이처럼 얼굴이 뽀얀 방글이 난 방글이를 좋아한다 도시락 먹을 때도 옆에 앉고 싶은데 방글이는 예쁜 친구들, 멋진 선생님 옆으로만 방글방글 웃으며 가버린다 조금 슬펐다 그래도 난 방글이가 참 좋다 같이 만나 공부할 수 있어서 좋다 섬머슴애 같은 나를 싫어 할까봐 내일은 내가 먼저 방글이한테 살포시 웃어줘야겠다 첫 눈처럼... |
봄이 왔어요 이수내 팔랑 팔랑 노랑나비 마당을 날고 살금 살금 도둑 고양이가 나비를 쫓아간다 흰머리 소녀 할머니는 텃밭에서 잡풀을 뽑고 아빠는 오토바이를 반짝반짝 닦으고 친구 만나러 간 큰 언니 스커트가 짧아졌다 새학기 시작한 날 엄마가 새로 사준 소머리표 운동화 발 뒷꿈치가 뒷통수까지 닿도록 뛰어 다녔다 | 엄마의 봄 이수내 살랑살랑 팔랑나비 마당을 돌고 살금살금 도둑 고양이 나비떼를 쫓아가요 할머니는 텃밭에서 토끼풀을 뽑고 아빠는 오토바이를 반짝반짝 닦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새처럼 날고 싶단 울엄마 새학기 시작한 날 소뿔표 새 운동화 발뒷꿈치가 머리꼭지 닿도록 폴짝 폴짝 뛰었어요 |
봄, 봄이어요 / 수내 살랑살랑 팔랑나비 마당을 돌고 살금살금 도둑 고양이 나비떼를 쫓아가요 할머니는 텃밭에서 토끼풀을 뽑고 아빠는 자전거를 반짝반짝 닦고 목련 꽃무늬 치마를 입고 엄마는 새처럼 날고 싶대요 새학기 시작한 날 소뿔표 새 운동화 발뒷꿈치가 머리꼭지 닿도록 폴짝 폴짝 뛰었어요 | 궁금해요 /이순애 토끼풀은 왜 토끼풀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귀도 입도 쫑긋한 빨간눈 토끼는 토끼풀을 닮은 데가 한개도 없는데 엄마는 토끼풀꽃 꺾어 반지도 만들어 주고 목걸이도 만들어 목에 걸어 주었다 하지만 토끼풀은 정말 토끼를 한개도 안닮았는데 |
바꿔보고 싶대요/ 이수내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구요 하늘 높이 새처럼 날고 싶어요 오늘은 학교도 학원도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실컷!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볼거에요 헉! 엄마도 오늘은 어린이가 되고 싶대요 파란하늘을 새처럼 날고 싶대요 어떡해요! 그러면 엄마 역할을 누가 해야 할까요? | 노랑노랑 / 이순애 바둑이 등 올라타고 대문밖으로 뛰어간 바람이 노랑 병아리가 물고가는 앞마당에 반짝거린 햇살도 노랑 장독 뒤 해실거린 강아지똥풀도 노랑 금가락지 동그란 주름진 할머니 손등도 노랑 엄마가 좋아하는 오만원짜리도 노랑 우리집 풍경은 모두 노랑노랑 이어요 |
산불이야! 이수내 뒷산에 불이 났어요 불이야!불이야! 빨간 불꽃이 피어 올라요 동네사람들 놀라서 물통 들고 헐레벌떡! 여기저기 깜찍하게 웃고있는 단풍나무 가을산 한테 깜빡! 속고 말았어요 | 이젠 바꿔야 해 이수내 마을 앞 버찌나무 등집으로 이사온 귀뚜라미 귀뚜라미 한테 매미는 목쉰 소리로 작별 인사를 했다 열심히 울기 시작한 귀뚜라미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내년부턴 울음소리 내지말고 웃음소리로 바꾸면 좋겠어 이젠 우리도 목관리가 필요해! |
줄다리기 꽃등/이순애 부처님 오시는 날 할머니하고 도갑사에 갔다 천개 만개도 넘을것 같은 알록달록한 연꽃 등이 운동회를 하는것 같다 부처님 동상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할머니를 따라 나도 두손을 모았다 절밥도 얻어 먹었다 부처님도 참! 힘드시겠다 사람들 소원 다 들어주느라 저렇게 두 귀가 돚단배처럼 커졌나보다. | 약비와 단비 사이/ 이순애 어젯밤 단비가 내렸어요 흙먼지 뒤집어슨 삽살개 꼬랑지가 높은 음표 되었어요 텃밭지기 할머니는 가뭄통에 약비가 내렸다고 무척 좋아하셔요 단비를 먹은 산과 들이 온통 초록 세상이어요 문득., 하늘 나라 이사간 단비같은 친구가 보고 싶어요 |
알 수가 없어요/이순애 무슨 세월이 이렇게 날쌘 치타처럼 빨리 달리는지 여우비 지나가듯 눈 한번 깜짝거리면 하루가 금방 가버린다고 할머니는 맨날맨날 푸념 하시지만 저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몰라요 내일은 우리반 봄소풍 가는 날이거든요 | 오디와 뻔데기 /이순애 마파지 뽕밭에 달콤한 오디가 주렁주렁 열렸어요 엄마하고 오디 따는 날, 뽕잎만 먹는 누에는 누에고치가 되어 실을 뽑고 아빠가 술안주로 좋아하는 뻔데기가 된대요 엄마는 시골에서 누에 치던 얘기도 들려줬어요 오디 따는 날은 입도 손도 모두 새까매져서 거짓말도 못해요 어저께 친구들이 오디 따먹겠다고 뽕밭을 작살냈어요 그 친구들 오디 실컷 먹고 뻔데기처럼 주름잡고 나타나면 어떡하지? |
제발요! / 이순애 -아니 ! 하느님! 제가 콩도 아닌데 저를 땡볕에 볶아서 깜장콩 만들려고 작정 하셨나요? 그런데 사실은 제 별명은 흰 콩이어요 키가 작다고 뛰어봤자 콩이다 라고 놀렸거든요 하지만 깜장콩은 싫어요 그래서 콩밥도 싫어요 그러니까 너무 뜨거운 햇볕은 내리지 말아주세요 하느님 제발요! | 냠냠냠 이순애 토요일, 우리 가족은 아파트를 왕따 시키고 배낭을 짊어졌다 몽글몽글 뭉게구름은 대형 우산이 되어주고 포동포동 흐르는 냇물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은 솜사탕이다 톡톡톡, 까르륵 까르륵 무지갯빛 웃음소리 비눗방울 놀이 세상은 꾸러기 내 동생을 숨겨놓는다 솔바람 소리도 냠냠냠 냇물 소리도 냠냠냠 엄마가 준비해온 김밥도 냠냠냠 |
멍청이 /이순애 방울방울 톡톡톡 우산 위로 까르륵 빗방울 음표 따라 발걸음도 쪼르륵 비 오는 날 빗방울은 친구하기 좋은 날 방안에서 때굴때굴 멍때리기 하는 날 | 바람개비 허수아비 이순애 앞마당 고추 잠자리 떼 운동회가 열리면 가을이어요 벌판에 벼 이삭이 고개 숙이면 가을이어요 참새떼가 잘 익은 벼 이삭을 마구 쪼아대네요 허수아비는 울상이 되었어요 얄미운 참새들을 쫒고 싶어도 사실 허수아비 맘대로 양팔을 휘두를 수 없거든요 바람이 시키는 방향으로만 팔을 흔들어야 하니까요 시끄러운 깡통만 양팔에 메달아 준 맹구할아버지가 정말 얄미워요 |
고구마 캐기 /이순애 엄마랑 텃밭에 나가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는 깜깜한 흙에서 제 몸을 키우다가 호미에 걸려 볼그레 웃으며 세상 구경을 시작한다 바나나처럼 길쭉길쭉 심술보 동생처럼 울퉁불퉁 선생님 얼굴처럼 동글동글 제각기 다른 생김새가 우리들 같다 그동안 흙속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환한 햇볕을 얼만큼 만져보기나 할까? 왈칵! 고구마가 불쌍해졌다 엄마는 저녁밥상에 고구마를 맛있게 쪘다시며 보름달만한 쟁반에 한아름 담아내셨다 | 이상해요 이수내 수박 꽃은 노랑인데 수박은 왜 초록일까? 호박 꽃도 노랑인데 호박도 초록이고요 나도 엄마를 쏙 닮았다 하는데요 수박꽃 호박꽃은 참 이상해요! |
제 이름은 더위에요 / 이수내 여름이 오면 모두가 저를 싫어해요 저도 사람들하고 친해지고 싶어요 수퍼마켓도 가고 싶고 마징가 Z 영화도 보고 싶은데 찬바람 윙윙 내뿜는 에어컨이 너무 무서워 얼씬도 못해요 제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건 여름뿐인데 모두 저를 싫어해서 여름이 되면 슬퍼요 따뜻한 사랑 받고 살 수 있는 곳 어디 없을까요? | 수염만 닮았어요/ 이수내 뒷밭에서 엄마가 옥수수를 따왔어요 옥수수 수염을 신나게 잘랐어요 옥수수 수염이 할아버지 수염 같아요 옥수수는 이빨이 안썩었나 봐요 길쭉한 입을 벌리고 하얗게 웃는데 할아버지는 까맣게 웃고 계셔요 |
우체통을 기억해 줘 / 이순애 이제는 찾지 않는 우리동네 하마 입 빨강 우체통 친구야 안녕안녕 웃던 편지도 징글벨 징글벨 노래 하던 엽서도 스마트 폰 친구들 따라 갔나 봐 길가에 웅크린 배고픈 우체통 보고 싶다 친구들아 삐뚤빼뚤 손 편지 | 보름달도 힘들겠다 이순애 추석 보름날 밤 앞마당에 온 가족 동그랗게 서서 둥그런 보름달 쳐다보고 소원 한개씩 빌었다 키 좀 크게 해주세요 나도 소원 빌었다 보름달은 참 힘들겠다 세상사람 소원 들어주려다 두 귀가 늘어져 길쭉해 지겠다 무거워져서 마당으로 털썩! 내려앉겠다 |
준비가 중요해요/ 이수내 붉은 고사리손 아기 단풍이 슬몃 슬몃 손을 흔들고 있어요 아기 다람쥐는 엄마 다람쥐가 주워놓은 도토리를 떼굴떼굴 굴리고 있어요 우리집 나무대장 은행나무 잎파리가 앞마당을 노랑이불로 덮어 놨어요 겨울 채비 바쁜 엄마는 장농 문을 열고 스웨터와 목도리를 꺼내고 있어요 나는 졸고 있는 책가방을 부리나케 깨워 미뤄 둔 숙제를 챙겨 넣고 있어요 | 엄마의 봄 이수내 살랑살랑 팔랑나비 마당을 돌고 살금살금 도둑 고양이 나비떼를 쫓아가요 할머니는 텃밭에서 토끼풀을 뽑고 아빠는 오토바이를 반짝반짝 닦고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새처럼 날고 싶단 울엄마 새학기 시작한 날 소뿔표 새 운동화 발뒷꿈치가 머리꼭지 닿도록 폴짝 폴짝 뛰었어요 |
고마워 / 이수내 언제부턴가 잽싸게 달리지도 못하고 곧잘 숨을 헐떡거렸다 같이 울고 웃어준 고마운 오랜 친구였는데 헤어질 때가 되어 슬프다는 아빠를 따라 페차장에 갔다 눈알이 덜렁거리고 머리도 찌그러진 자동차들이 여기저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힘들게 일 시키다가 힘없으면 내다 버린것 같아 미안하고 슬펐다 쓸쓸히 페차장에 남아 눈물 훔칠 자동차와 헤어지는 게 난, 너무 슬펐는데 그런데 아빠는 슬프다고 말하시면서 그렇게 슬픈 표정은 아니었다. | 이젠 바꿔야 해 이수내 마을 앞 버찌나무 등집으로 이사온 귀뚜라미 귀뚜라미 한테 매미는 목쉰 소리로 작별 인사를 했다 열심히 울기 시작한 귀뚜라미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내년부턴 울음소리 내지말고 웃음소리로 바꾸면 좋겠어 이젠 우리도 목관리가 필요해! |
정말인데 이수내 마당에 바둑이 손도 빌리는 바쁜 철이니 해찰 하지말고 학교 파하거든 곧장 와서 심부름 해야 된다며 들에 나가시는 엄마 아빠 모내기가 들썩거린 동구 밖 도깨비 잔등을 지나갈 땐 발이 머리 뒷꼭지 닿도록 달린다 보리밭 세들어 사는 여름새 뻐꾸기가 지각하지 마라고 뻐꾹거린다 글짓기 숙제도 못했는데 오늘은 칠판에 숙제 안한 사람 적을지도 모르는데 앗! 벌써 교실 앞이다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아!아! 아이고 배야 ! | 딸꾹 이순애 막걸리를 좋아하는 아빠는 오늘도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동네가게 할머니가 주전자에 가득 채워준 막걸리 달콤한 요구르트 같다 목이 말라 골목길에서 홀짝 홀짝 쪼로록 헉! 낮달한테 그만 들켜버렸네 아빠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막걸리 분량이 적어졌다고 가게 할머니를 자꾸만 나무래셨다 끄윽! 빙글뱅글 |
비 오면 목욕해요 이수내 소나기가 내리면 산골짜기 물이 하얗게 폭포처럼 흘러내려요 산들이 뽀송뽀송 때를 닦으며 목욕 했나 봐요 앗! 청개구리들이 걱정 돼요. | 여름 밤/ 이순애 밤 하늘에 별이 총총총 엄마 얼굴엔 주근깨가 까르르 마당에 둘러 앉아 하늘 향해 하마 입 수 만개 샛별이 입 속으로 와르르 별 하나 꽁꽁 별 둘 꽁꽁 별을 실컷 따 먹었더니 군것질 생각이 사라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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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댓글을 달려고 하니 시가 너무많아요
맨 위에 솜사탕 장수가 참 좋아요
종이 비행기도 좋지만 새를 한마리 키우던지
바다 용왕님께 바람을 좀 빌려오세요
엄마 얼굴에는 밤하늘에 별이 총총합니다
하도 오래되어 죽은 별 같아요
큰 별만 환이 비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