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7: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여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삼 년 반의 기근을 주세요. 다 굶어 죽을 판이에요 이제. 죽는 거예요, 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명령을 하는 거예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라 그래요.
히브리어로 시돈은 사람을 낚다는 말이고, 사르밧은 제련하다, 연단하다는 뜻이에요.
이 어구를 직역하면 시돈을 위하여 사르밧하라 예요. 그러면 무슨 말이에요?
사람을 낚아 올리기 위해 제련하러 가라는 뜻이에요.
이게 삼 년 반의 기근 동안에 성도에게서 일어나는 일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삼 년 반이란 말이에요. 한 때, 두 때, 반 때.
율법주의의 본산인 이스라엘은 지금 기근으로 다 굶어죽을 판이에요. 그런데 자기들이 굶어 죽을 거라는 걸 몰라요 이스라엘이.
진짜 기근이 들었는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왜? 너무 행위에,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풍성하기 때문에. 몰라요.
그들에게는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어요. 그래서 기근인데 그들은 모르는 거예요.
율법주의인 이스라엘은 절대로 말씀이신 예수를 못 받아들이게 되어있어요. 창조의 주, 그분을 못 받아들이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밖에 황폐한 집이 하나 있어요.
거기에서 과부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직역을 하면 황폐한 집, 빈 집이에요.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지는 멸망당하는 빈 집. 황폐한 집.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과 대조되는 개념인 거예요. 화려한 성전, 화려한 집인 이스라엘과는 대조적으로 진짜 먹을 게 없는 황폐한 집, 빈 집이 등장하는 거예요.
그 과부는 결핍이에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기부인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한 줌의 밀가루도 생산해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 줌 남은 밀가루로 떡을 해 먹고 죽어야 되겠다. 나는 이제 죽는구나!라고 스스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나는 이제 죽는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밀가루 한 줌인데... 이거는 한 끼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나는 이제 죽는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몸이로다.~를 이 여자가 지금 고백하는 거예요.
왕상 17:11 ~12
11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데 네 속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가져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사람을 낚으러 온 하나님의 사람이 무얼 요구해요? 마지막 남은 그 밀가루도 갖고 와! 다 뺏어버리는 거예요.
완전한 기근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 완전한 기근.
그랬더니 이 집에, 다른 집은 다 삼 년 반 동안 기근인데 이 집은 양식이 끊이지 않는 풍년이. 이 집에는 퍼도 나오고, 퍼도 나오고, 요 대조가 일어나는 거예요.
다 뺏어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늘의 생명, 풍성한 하늘의 생명을 받는 자는 역사 속에서 몽땅 뺏긴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너무 풍성한 자기 것을 갖고 있었어요. 요 여자만 다 뺏겼어요.
요건 야곱, 즉 이스라엘의 때에 그들을 기근으로 굶어 죽게 만들어서 애굽으로 보내어 결국 모세라는 중보자를 통해, 어린 양의 피를 통해 구원해내셔서 만나를 풍성히 내리시는 출애굽의 이야기를 다시 작은 에피소드로 그려내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이게요.
성경은 다 구원의 이야기, 예수의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밖에 없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굶주림,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시간과 생명을 모으고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아! 난 도저히 불가능한 사람이 맞구나! 이제 내 에너지로 살던 삶은 밀가루 한 줌 밖에 남지 않은 바닥의 삶입니다. 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요 고백을 하게 하는 고 진짜 굶주림의 삶은 복된 굶주림의 삶이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