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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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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생명의빛수레 광륜 스크랩 살며…사랑하며☆── 반푼 빚 갚으려 네냥을 쓴 사람 - 청정명
윤거사. 추천 0 조회 40 07.06.15 09:0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살며사랑하며




반푼 빚 갚으려 네냥을 쓴 사람



청정명





첫째 애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형편이 안 되는 이유도 있었고 한창 뛰어놀 유치원시절부터 사교육을 과하게 시키는게 내키지 않아 자제한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는 미술학원, 이틀은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미술학원에서도 재능이 있다고 하고 영어학원에서도 또래보다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으니 힘들여 공부시킨 보람이 있고 마음이 흐믓합니다.


그런데 미술영재라는 칭찬에는 그런가보다 하던 친구엄마들이 영어까지 잘한다니까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기러기 아빠니 조기유학이니 하며 우리사회에 휘몰아치는 영어광풍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아무튼 이 녀석 친구들 중 몇몇은 내년에 사립학교를 간다고 합니다. 예전엔 그런 모습이 참 극성스러워 보였는데 이제 학부모가 될 입장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결국 배우는 것마다 잘한다는 소리에 고무됐는지, 예전엔 사립의 ‘사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던 제가 오히려 영어 위주로 열린 교육을 지향한다는 한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을 부추기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학교가 좋아도 월급장이로서 부담하기에는 교육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우려하는 집사람에게는 재능 있는 아이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니겠냐고 설득했습니다.

월급을 넘어서는 부담은 빚을 져서라도 충당하고 나중에 이사를 간다던지 하는 방법을 써서 해결하자는 복안이었습니다. 학교를 한차례 방문해 수업을 참관하고 시설을 둘러본 후 집사람도 제 말에 수긍하였습니다.


목요일은 그 학교의 입학원서 접수일입니다.

다음주에 추첨을 하고 만약 당첨이 되면 입학금에 교통비에 교복비에 한번에 낼 돈이 제 한달 월급에 육박합니다. 뭐 그 정도 부담되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 돈을 내야 할 시점이 되니 집사람으로서는 과연 계속해서 이러한 경제적 압박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다시 들었나 봅니다. 뜬금없이 다른 대책을 세우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이사가기는 싫은데 사립은 보내고 싶고 현재 수입으로는 도대체 빠듯하니 답답한게 이해는 가지만, 그 정도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 사립 보낼 생각을 했는지 하도 짜증이 나서 다 때려치우고 그냥 동네학교에 보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밤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다시 생각을 해보니 제가 참 어리석은 짓을 한 것 같아 부끄러워집니다.


사실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몇몇 분들을 아는데 다들 성형외과 의사, 기업체 사장같은 부유충 사람들입니다. 그런 집 아이들이 모인 곳에 평범한 월급장이의 아들로서 아무리 성적이 좋다고 한들 나중에는 오히려 상대적 빈곤감에 성격이 위축되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 쌓이는 등 역효과가 생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처럼 학교에 돈을 낼 때마다 부부싸움을 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으니 아이들 가정교육상으로도 좋지 않고, 형편에 맞지 않은 과욕을 부리다가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불현듯 눈에 선해집니다.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감, 육근의 집착을 자제해야 하고 항상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 제공된들 다른 제반 환경들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면 욕심을 부린 과보일 것입니다.

꼭 사립학교를 보내야 좋게 된다는 망상을 떨치고, 형편이 되지 않아 그런 곳에 못 보낸다는 자괴지심도 내려놓고 그저 지금 현재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자고 마음을 다집니다.


보다 평탄한 삶을 보장해주고 싶은, 그러기에 물고기보다 물고기를 잡는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고픈 부모의 심정이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백유경에 나오는 반푼 빚 갚으려 네냥을 쓴 사람마냥 작은 이익과 명예를 구하려다 더 큰 것을 잃을 뻔 한 아주 어리석은 판단이었습니다.


간혹 구름이 떠 있지만 너무나 맑고 푸른 사진 속 하늘처럼 아들의 미래도 종종 어려움은 있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극복해가며 더 큰 행복을 맛보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하고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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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6.15 17:02

    첫댓글 지혜로운 이에게는 언제나 지혜로운 길로 인도하는가 봅니다......감사합니다...........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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