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얼마만인가?
마눌하고 단 둘이서 여행을 했다.
여행이래봐야 1박 2일로 남도를 다녀온 거지만
그래도 둘이서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얼마만의 설레임인가?
큰 놈이 기숙사에 들어가 있는데다 작은 놈이 수학여행을 간다하니
모처럼 찾아온 이 찬스에 마눌에게 제대로 봉사 한 번 해볼까나
식탁 위에 놓인 마눌의 일정표를 보니 목요일 점십 식사 약속이 있고
금요일은 통으로 비어 있다.
지난 주 서예전 출품한다고 몇 달간 고생을 했으니 지친 심신도 풀어줄 겸...
목요일 점심 때쯤 집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마눌을 잡고 독촉하기를
'얼굴에 찍어 바를 거하고 속옷, 양말 좀 챙겨라'
남도로의 짧은 여행은 그렇게 시작을 하였다.
사전에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니 이제 코스는 가는 중간중간 고민을 해야 한다.
일단 지금 산수유꽃과 매화가 한 철이니 섬진강 주변을 들러볼까?
지금 내려가면 해가 저물었을 터이니 그럼 아예 보성까지 내려가자.
아침 안개 속에 보성 차밭을 보는 운치도 더할 수 있을 터이니.
그렇게 보성으로 목표를 잡고 경부, 천안-논산, 호남고속도로를 이어 달린다.
내려가는 중간 보성군청에 전화해서 맛집을 소개 받고 번잡을 떨고 있는데
마눌은 그 모습이 대견한 모양이다.
나는 준비 제대로 못 해와서 은근히 쪽이 팔리누만
코딱지 만한 땅덩어리지만
산맥 하나를 두고 동쪽과는 확연히 다른 호남의 들녘을 가로지르며 저녁 무렵에야 도착한 보성.
세 시간 넘게 350킬로를 달려온 시장함이 아니더라도
남도의 상차림은 언제나처럼 푸짐하기만 하다.
콧물이 찔찔 흘러서 쏘주 한 잔 못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흐뭇해하는 마눌의 표정을 보면서 내가 참 무심한 놈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찌릿하다.
차밭이 보이는 전망 좋은 모텔에서
부부가 아닌 양 바람 피는 중년으로 우리는 신혼을 보냈다.
다음 날 율포 해변에서 아침을 먹고 곧장 차밭으로 직행.
아름드리 삼나무숲을 마눌과 손을 꼬옥 잡고 걸어가는 이 여유가 또 얼마만인지?
아침 안개를 머금은 차밭의 은은한 아름다움은 어찌 표현을 해야 하는지
욕심 같아서는 고흥, 강진, 해남 등 남해를 맘껏 느끼고 싶은데 하루 뿐이다.
작년에 들렀던 섬진강 하구의 청매실농원이 생각나길래 일단 그 쪽으로 길을 잡았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
남도의 봄은 왜 이리도 편안할까
개나리는 이미 만개를 했고
우아하게 피었다가 추하게 진다는 목련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모진 겨울을 버텨온 보리싹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사이사이로
유채꽃 비스름하게 노란 저것은 무우꽃인가
그렇게 도착한 매실농원. 근데 이게 왠 일이냐?
번잡한 게 싫어서 일부러 축제를 하는 곳을 피해서 왔는데 거기서도 난리다
불편하면 즐겨야지 어쩌나
결국 매화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섬진강에서만 난다는 벚굴에 동동주를 한 잔
뒤는 매화꽃에, 앞은 섬진강이요
옆에는 여인네가 앉아 있고 거기에 술 한 잔이 더 하니 내가 무얼 더 바랄까나
코앞에 섬진강이 유유히 굽이를 이루고
강 건너 보이는 하동마을의 모양새도 이쪽 광양쪽과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영호남으로 그리 편가르기를 하였는지
노고단을 잠시 들렀다가 산수유 마을에 갔더니
누가 주부 아니랄까봐 마눌은 돌미나리에 냉이에 동네 할머니들과 흥정이 한창이다.
돌아가신 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넉넉하게 돈을 집어주고 돌아서는 마음이 참 이쁘다.
짧은 여정이라지만 그렇게 마치고 올라가는 길이 꼭 아쉽지만은 않다.
그렇게 분당 도착한 시간이 일곱시나 되었을까
그제야 분리했던 휴대폰 밧데리 장착
1박 2일 900킬로의 짧지만 짧지 않았던 둘만의 여행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친구야!
운전을 하면서 걸어 다니면서 일부러라도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
왜 마눌의 손을 잡는 게 그리도 어색할까?
나만 그런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은 마눌의 손을 잡아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