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비행기를 타고 6시간이 걸려 자정을 넘긴 시각에 페루의 리마에 도착
호텔에서 잠시의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이른 시각, 쿠스코행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만년설을 인 해발 고도 4,000여미터의 안데스 산맥이 창 밖으로 보입니다.
쿠스코에서 고산증세 예방을 위한 약을 구입 복용 후 마추픽추를 향하는 중
우루밤바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우루밤바가 해발 2,800미터 정도라니 여기는 3,200미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그들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원 달러`를 외치며 돈을 요구합니다.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오얀타이탐보 역 부근의 마을에 왔습니다.
여기에도 잉카의 유적들이 있습니다.
험준한 산임에도 농경지와 곡식 창고가 보입니다.
마을의 원주민 전통 가옥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집 안에서는 꾸이를 기르고 있습니다.
잉카시대에는 귀족들만이 먹었다는 귀한 음식인데,
쥐 보다는 크고 토기보다는 작은 설치류로서
잉카인들의 주요한 단백질원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애완 동물인 기니피그 입니다.
마을을 둘러 봅니다.
돌담과 돌길, 그리고 수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로는 잉카시대의 것은 아닙니다.
원주민들의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입니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3륜차, 그래도 엄연히 택시라고 합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오얀타이탐보 역으로 갑니다.
역 대합실 카페에서 마추픽추를 배경으로 페루의 커피 한 잔으로 여유를 가집니다.
마추픽추행 기차 입니다.
기차로 1시간 20분을 우루밤바 강을 끼고, 험준한 산 사이를 달려 도착한 곳은
마추픽추의 출발지인 아구아스까리엔테스 마을 입니다.
마을 가운데로 기차가 지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20여분간을
가파른 구불길을 올라 내리면 보이는 첫 풍경입니다.
마추픽추 입니다.
가파른 경사지에 계단식 농경지가 아찔하기만 합니다.
라마가 관광객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풀을 뜯고 있습니다.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 예일대 교수 하이램 빙엄에 의해 발견 되었습니다.
그는 사실 마추픽추를 탐험하기 위해 이 곳을 온 것은 아니고
스페인에 잉카 최후의 항전지인 빌카밤바를 조사하기 위해 페루 원정팀을 꾸려 왔다가
한 원주민 농부로부터 고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르밤바 계곡을 조사하던 중 마추픽추 산기슭에서 살고 있던 두 가구의 원주민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 한 가족의 꼬마 아이를 따라 올라선 곳에서 마추픽추를 발견하였다 합니다.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본 발견 입니다.
경비 초소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외부로 부터의 침입자를 감시하기에 용이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전망이 좋아
우리가 보는 마추픽추의 사진들이 이 곳에서 많이 촬영 되었다고 합니다.
파노라마로 찍어 보았지만 모두를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태양의 문 입니다.
여기서 보면 잉카인의 옆 모습이 보인다고 하는 데 영 보이지가 않습니다.
잉카시대에는 철저한 계급사회로서,
잉카인들의 건축물 중 돌로 정교하게 쌓은 것은 신전이나 귀족들의 거주지이고
조금은 허름하게 쌓은 곳은 그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들의 거주지 였다고 합니다.
자연석 위에 해시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와이나픽추로 오르는 입구 입니다.
1일 일정한 수의 인원만이 예약을 통해 오를 수 있습니다.
서약서를 쓰고 오를 만큼 상당히 위험한 코스라고 합니다.
와이나픽추가 젊은 봉우리란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물의 거울 입니다.
아직도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계단식 농경지와 곡식 창고 입니다.
태양의 신전이 보입니다.
초가지붕 옆의 왼쪽 건축물 입니다.
콘돌의 신전 머리 부분 입니다.
콘돌의 신전 날개 부분인데 자연석을 이용해 콘돌의 날개를 보여 줍니다.
배낭여행이나 자유여행으로 온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마추픽추를 오를 때에는 셔틀 버스를 타고 내려 갈 때에는 걸어서 내려 간다고 합니다.
옛날 고산지대 주민들 사이에 산 위의 놀라운 공중도시에 대한 전설이 있었으나
당시의 스페인 원정군은 그 말을 믿지 않아 굳이 올라가서 확인하지 않아
이것이 마추픽추가 보존된 이유가 되고,
하지만 잉카인들이 괜히 겁먹고 이동에 방해가 되는 여자와 어린이들을 죄다
생매장해버린 다음 여기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합니다.
실제 마추픽추에서 발견된 유골의 80%가 여자와 어린이의 유골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버려진 이유로는 많은 가설이 있는데
잘못된 자녀교육으로 스스로 살아가지 못한 신세대가 멸망하듯 떠났다고도 하고
단순히 식량부족으로 인해 버려졌다고도 합니다.
식량부족설은 상당수의 잉카문명 연구자들이 신빙성 있다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성분 분석을 해보니
잉카제국이 생기기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 있는 등 연도와 시기가 중구난방이라,
잉카 이전에 존재했던 문명이 지은 것을 잉카 제국에 들어 보수해서
사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경작지나 건축물 규모를 보면 인구는 2,000명을 넘지 않았을 거라고 합니다.
(출처 : 나무위키)
첫댓글 너무나 멋진곳을 다녀오셨군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즐감했습니다
다음 여행지로 생각해 보렵니다
신비롭기만.....
phantas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