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에 공급하는 반도체 전문 유통기업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유통
뿐 아니라 고객사의 상품이나 비즈니스 개발을 지원하는 등 전자
부품소재기업들의 협력기업으로 커 나가고 있다.
박성서 대표가 반도체 유통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0년대 초반.
반도체가 아니라 진공관 트랜지스터가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박
대표를 ‘반도체 유통 1세대’라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리
랑전자(주)라는 오디오 제작업체에 근무하던 그는 새로운 사업 기
회에 눈뜨게 된다.
“당시 회사에서 만들던 오디오부품 가운데 진공관이 있었어요.
거래처를 통해 공급받던 진공관을 우연한 기회에 직접 수입해 보
니 가격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게 비즈니스가 되겠구
나’ 하고 생각하게 됐지요.”
TI 대리점으로 사업 시작
그는 이러한 경험을 계기로 반도체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1986
년 고명전자라는 개인 회사를 차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대리
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업이 그런대로 굴러갔지만 판매 대금
으로 받은 어음 몇 건이 잇따라 부도를 맞으면서 위기에 몰렸다.
그는 개인 사업을 정리하고 1993년 대진반도체를 설립,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TI 한국 대리점’이라는 든
든한 배경이 큰 도움이 됐다.
“TI가 한국에 진출하던 초기에는 지사 인원만으로 전국을 커버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저희와 계약해 서너 개의 대리점을
두고 영업을 확장하는 전략을 쓴 것입니다.”
대진반도체는 1994년 현대와 대리점 계약을 맺는 등 대기업과
의 거래를 넓히면서 차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박 대표는 회상했다.
하지만 박 대표도 IMF 외환 위기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환율
이 폭등하고 거래하던 제조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모 컴퓨터
업체에 턴키로 납품하던 게 잘못돼 피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전
임직원이 똘똘 뭉쳐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박 대표는 비슷한 시기에 반도체부품 제조사(벤더)와의 거래에
서 또 한 차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캐나다의 G사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이 업체의 반도체부품을
국내에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전시회 참석 등 갖은 노력 끝에 대기
업에 공급할 수 있게 됐고 이후 4년에 걸쳐 매출이 수직 증가하자
그 회사의 마음이 바뀌었어요.”
G사는 대진반도체와의 대리점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한
국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고 나섰다. 박 대표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해서 개척한 시장을 한순간에 빼앗긴 셈이다.
“독일, 핀란드, 덴마크, 일본 등은 물론 국제상업회의소(ICC)
에서도 이러한 경우 기존 업체에 영업보상권을 인정하고 있습니
다. 하지만 G사는 자국에 그런 법률이 없다는 핑계로 그동안 우
리 회사가 투자한 연구개발 및 프로모션 등에 대한 보상을 해 주
지 않았습니다.”
박 대표는 “이러한 경험은 그때 딱 한 번뿐이지만, 반도체 유통
이라는 업종 특성상 시장을 키워 놓으면 외국 제조업체가 직접 진
출하는 리스크는 지금도 상존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기술연구소 통해 기술 지원까지
IMF 외환 위기라는 긴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오고 보니 이번에는
반도체 유통시장 환경이 급변하고 있었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
반화되면서 반도체회사는 물론 반도체 유통업체들도 속속 생겨났
다. 반도체 유통업체들 간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졌다. 단순히
반도체를 사다가 팔던 시대가 끝난 것이었다.
박 대표는 ‘어떻게 해야 획일적인 제조회사 제품을 고객사의 입
맛에 맞게 공급하는 파트너십 환경을 조성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반도체 유통업체로서는 보기 드물게 기술연구소를 보유하
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연구소를 통해서 단순한 부품 판
매가 아닌 기술 지원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기술연구소는 고객사
에 대한 기술 컨설팅은 물론 현장 지원, 공동 개발 등의 지원을 통
해 최상의 성능을 보유한 제품이 개발되도록 돕고 있다. “전략적
으로 특정 마켓을 겨냥한 솔루션을 직접 개발해 이를 고객사에 제
공하기도 합니다”라고 박 대표는 덧붙였다. 고객사의 개발 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결국 제품의 유통 수급률을 높이는 부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제조회사에 직접 직원을 파견해 고객사와 시장의 요
구 사항을 전달하는 한편, 현장에서 얻은 반도체 관련 지식을 고객
사에 제공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펼치고 있다.
“기술연구소를 운영함으로써 제조회사(칩 메이커) 중심의 유통
체계에서 벗어나 고객사와 시장이나 기술 동향을 함께 공유하는
마케팅 위주의 영업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고
객사의 수요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제조회사들과 긴밀
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2005년 이후에는 수출시장으로도 눈을 돌렸다. 중국, 홍콩, 싱
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등 주로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반도체부품 유통업체가 국내외 제품을 사들
여 국내 기업에 판매하는 것과 달리 역수출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업체인 GCT와 대리점 계약을 맺고 GCT 제품
을 국내뿐 아니라 외국으로 수출하는 등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
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 현지에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을 겨냥해 심
천 사무소 및 상하이 투자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에서 중국이 주요한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흐름을 놓치
지 않고 대진반도체가 앞서 나가고 있는 셈이다. 박 대표가 중국에
서 벌이는 또 하나의 비즈니스는 바로 현지의 유망 중소제조업체
발굴이다. “유망한 반도체 제조업체를 발굴해 국내 기업에 소개함
으로써 제조업체와 고객사에 서로 이득이 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
고 있습니다”라고 박 대표는 말했다.
직접 수출하는 물량 외에도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수
출용 부품 공급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매출 790억 원
가운데 수출은 2,700만 달러(290억 원)에 달한다. 박 대표는 “무
역협회에서 수출 실적을 집계하는 기간이 달라 지난해에는 1천만
불 수출탑을 받는데 그쳤습니다”라면서 “올해는 반드시 3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해야죠”라고 다짐하며 활짝 웃는다.
30년 한 우물 비결은 ‘신뢰’
대진반도체는 또다시 반도체 유통시장의 변화에 맞닥뜨려 있다.
반도체 제조회사들의 대형화, 글로벌화 추세가 거세지고 있기 때
문이다. 최근 몇 년간 연 20% 내외의 성장을 지속해온 대진반도체
는 이러한 추세에 대응할 적절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시장
에서의 비즈니스 기회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급변하는 반
도체 유통시장에서 흐름을 놓치지 않고 30여 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면서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비결이라기보다는 고객사와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상황에 따라 갑자기 어떤 반도체부품이 품귀 현상이 발생하
기도 하는데 그럴 땐 수요가 워낙 몰리다 보니 값을 얼마든지 올려
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원래 가격으로 거래함으
로써 고객사와의 신뢰를 쌓았지요.”
수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해외 바이어와의 신뢰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박 대표의 얘기다. 사업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한 그는 직원에게도 늘 신뢰를 강조한다. “직원이 CEO를 신뢰
하고, CEO가 직원을 신뢰해야 회사가 발전한다”가 그의 지론이다.
“어떤 강연에서 ‘정약용책배소’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직하
고, 약속을 잘 지키며, 상대를 용서하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
고, 배려하며,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내지 말고 살자(소유)는 말
이지요. 기업이든 개인이든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꼭 지켜야 할
사항이 아닌가 합니다. 경영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전 직원이 50여 명에 불과한 만큼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가 하면, 매월 생일을 맞는 직원들을 축하하기 위한 시루떡 파
티도 벌인다. 최근에는 외국인 영어 강사를 초빙해 전 직원을 대상
으로 맞춤형 영어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골프가 취미라는 그는 ‘박 프로’로 통할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자
랑한다. 지난해에는 제1회 조니워커 블루라벨 클래식대회에서 아
마추어 우승을 차지해, ‘백상어’로 불리는 세계적인 골퍼 그레그 노
먼과 스코틀랜드에서 티업을 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박 대표
는 “골프의 정신이 경영에도 도움이 됩니다”라며 “IT 산업과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소니라는 회사를 예로 들어 볼까요. 워크맨을 만들던 시절 소
니는 ‘제왕’으로 통했습니다. 소니TV는 당시 부자들만 소유할 수
있던 제품이었지요. 하지만 변화에 둔감했습니다. 브라운관에만
몰두했던 소니와 달리 삼성과 LG는 PDP와 LCD에 집중 투자했습
니다. 그 결과 어떻습니까. 삼성과 LG는 세계적인 기업이 됐지만
소니는 빛바랜 회사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결국 시장의 변화에 어
떻게 적응하고, 그 변화를 앞서 내다보고 대비하느냐가 기업 생존
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