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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소멸의 염원
메주 고 제 웅
역병인 코로나₋19(COVID-19)가 온 누리에 분탕질을 하며 난리를 쳐도 화엄사 도량은 봄이 완연하다. 살구꽃이 심 봉사 눈뜨는 장면을 판소리 완창으로 뽑는가 하면, 가만히 듣고 있던 자목련이‘얼쑤’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에 질세라 벚꽃이 속적삼 옷고름을 풀어 제치고 하얀 속살을 내미는 바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아! 심념구칭도 도로 아미타불인가? 꽃구름 층계를 밟고 서 있는 꽃의 정령이여! 낫살이나 먹은 중이 너와 연심이라니 언감생심이다.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고 했는데, 평온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네 아리따운 자태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문득 생각하니 곧 엄나무 순 수확 철이다. 높이 솟은 나뭇가지에서 순을 채취하려면 고지 가위가 필요함은 실 가는데 바늘이 따라가는 격이다. 잠시 바이러스에 붙잡힌 족쇄를 풀고 언양에 가서 연장도 구입하고 금륜사(경남 양산시 동면 금정산에 위치한 사찰)의 대불(大佛)도 친견하기로 작정했다.
승용차로 금륜사를 찾아가려면 중앙대로(7번국도)를 타고 울산을 향해 달리다가 노포동 삼거리서 신호를 받아 좌회전해서 노포사송로(지방도 1077호)를 타고 양산 쪽으로 길머리를 잡아야 한다. 그 후 양산시 동면 소재지에 이르기 직전에 우측으로 빠져나와 고속도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절에서 세운 이정표(금륜사⇨)가 나타난다. 그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띄엄띄엄 설치된 또 다른 안내판의 지시대로 산길을 타고 오르면 사찰이다. 그런데 이 길이 양산 사송신도시 개발로 진입로가 갑자기 바뀌었다. 이전에 비해 길이 확 바뀐 때문에 분간이 되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새로 생긴 진입로를 지나쳤다는 것이다. 차를 돌려 새길 쪽으로 애마(투리스모)를 모는 데 금정산 산허리에 금빛 대불이 환하게 보였다. 높이 15m의 좌불(座佛)은 멀리서 봐도 그 자태가 뚜렷했다.
지난해 10월 초순경 크레인으로 대불의 몸체에 불두(佛頭)를 올리고 양손을 꽂아 고정하는 불사(佛事)가 있었다. 이때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은혜가 대불에 내려 영험하신 불상이 되게 하시옵소서.”라고 축원 드렸다. 이후 자주 들려서 대불의 주위를 돌며 도량 석을 하면서 신심을 다지고 싶었다. 그리고 시시콜콜 잔소리 보시(布施)라도 보탰어야 마땅했으리라. 그리했어야 불사를 이루는 주지 스님도 흥이 났을 터이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이 뚝 그치고 말았다. 푸시킨(Pushkin)의 시처럼 생활이 나를 속이고 하루하루를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때문에 연말은 연말대로 괜스레 바빴고 새해는 새해대로 정초기도를 드린다고 바빴다. 그리고 정초가 지난 뒤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림병인 코로나₋19가 창궐해 세상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도반이 주석하는 사찰이지만 내왕과 방문이 께름칙했다.
오래 전 함께 수학했던 도반들은 하나같이 조계종의 요직을 두루 거쳐 본사 주지 직을 역임했는가 하면 총림*의 방장*큰스님으로도 계신다. 모두 금란가사와 비단 장삼에 파묻혀 부처님처럼 추앙받는다. 그들이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처럼 몸소 노동하고 글밭이나 가꾸는 옛 도반이 안중에 있을까? 단 한 번도 찾아올 일이 없을 것 같다. 생각하면 소외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냐? 하지만 도반들은 도반들대로, 소승은 소승대로의 삶이 있다. 제각기 자신의 몫을 살면 될 일이다. 돌연 직분이 서로 바뀐다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또한 그들이 소승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행복의 무게나 척도를 잴 수 있다면 소승의 굴곡진 신산한 삶도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행복은 코로나₋19에 붙잡히면 찾아와 목 놓아 울어줄 진정한 도우(道友)가 있느냐 묻고 싶다. 소승에겐 그런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 인간적인 절친(切親)이 불사해 모신 대불을 향해 산길을 오르고 있다.
대불의 재질은 유리섬유로서 에프아르피(FRP : 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method) 공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가슴 부분의 이음매 한 부분이 흉터처럼 보였다. 그 뿐 아니라 불상의 얼굴도 그라인더(grinder)로 좀 더 곱게 간 후에 도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다른 사찰의 불상에 견주어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인이 자신의 영혼을 녹여서 작품에 담고 명작 속에서 영원을 산다는 작가 정신을 나타낼 수는 없었을까? 주지 스님도 내심 같은 심정이었는지 이렇게 살짝 귀띔했다.“작가 정신을 요구하는 뜻에서 제작비 전액을 선지급 했어. 그런데 마음같이 되는 일이 없어”라고 말했다. 사실 대금을 받은 업자는 불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내용 증명서를 받고서야 서둘러 시공을 하여 불상 제작을 마쳤다고 한다.
금륜사 스님과 동승해 언양을 향해 애마(투리스모)를 몰았다. 차 안은 법담(法談)이 꽃피고 극락조가 지저귀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자리가 펼쳐질 때는 원거리였다면 좋으련만 원체 가까운 곳이라서 아쉽게도 눈 깜짝할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곧바로 전정가위를 파는 가게를 찾았다. 그런데 전에 사용하면서 손에 익었던 고지 가위는 로프 식이라 나뭇가지를 유자(U)형 고리에 걸고 끈을 잡아당기면 손쉽게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인장이 “그 제품은 동났습니다.”라고 말해 마지못해 전지가위 식 제품을 샀다. 사용하기 불편해 보여 엄나무 순 수확할 일이 걱정되었다. 가위를 사가지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승가대학 시절의 도반이 보고 싶어 통도사 인근 성전암에 들렸다. 우리는 기축생(1949년생) 동갑내기로 고희를 넘겼으니 적은 나이가 아니다. 게다가 금륜사 스님은 암 수술을 했고, 성전암 스님은 당뇨가 심하다. 그리고 소승은 고혈압을 지극정성으로 받들어 모시며 사는 처지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기저 질환자는 극히 위험하단다. ‘아아! 저승길이 언제이련가?’. 살아생전에 인연 도장이라도 찍어놓아야 다음 생에도 도반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성전암 스님은 신양(身恙) 때문에 운전을 그만둔 지 오래다. 애마가 없어서일까? 도량 밖으로 발을 내딛지 않는다. 화가인 스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예쁘고 고상한 그림을 그려 보시하는 것을 즐긴다. 젊었을 때는 또래들보다 주지를 먼저 했다. 빈털터리 도반들이 찾으면 처지를 이해하고 섭섭지 않게 보시를 했다. 요즘도 방문객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베풀며 사는 삶이 쉬운 일일까? 그의 방은 책이며 그림이 가득해 겨우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비좁은 방 다탁(茶卓)에 코로나₋19 소멸 진언이 놓여 있었다. 달라이라마 큰스님께서 중생을 위해 내놓으셨다는 귀띔에 한 장을 얻어 왔다. 이튿날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검색했다. 인터넷에 “코로나₋19 소멸 진언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소호(Om tarr tuttre ture soha)”로 실려 있었다.‘부처님! 이 진언을 염송하는 모든 이들이 안정과 평화를 얻도록 하소서’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발원문을 지었다.
***코로나₋19 퇴치 발원문***
부처님
햇빛과 공기와 물과 흙에 의지해 사는 중생을 살펴주소서
탐·진·치 삼독(三毒)에 눈 멀어 지구촌 공동체의 청정을 훼손했기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합니다.
생명은 각층, 각종의 생물이 연결고리로 손잡고 꽃이 피어납니다. 하지만 인간이 이기심으로 그 존엄과 질서를 짓밟았습니다. 마침내 신종 바이러스를 창궐 시켜 그 맹위 앞에 벌벌 떨고 있습니다.
밖으로 부산한 인연을 쉬고
안으로 담담한 마음을 갖도록 살펴
모든 인류가 선원(禪院)의 안거(安居)처럼
“코로나₋19 소멸 진언 :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소하(Om tarr tuttre ture soha)”를 염송하며 가정과 사회의 안거(격리)를 성만 하고 전염병을 퇴치토록 하시옵소서.
또한 의료진과 의약 개발자, 기부자에게 힘을 주시고
온 인류가 보살도를 실천하여
복을 짓고 나눔으로
불이문(不二門 : 진리)에 들어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이루도록 하시옵소서.
나무약사여래불
나무약사여래불
나무약사유리광여래불(南無藥師琉璃光如來佛)
의료인이 아니라서 전염병 퇴치 일선에 나설 수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소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이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서 여러 곳에 글을 올렸다. 발원문을 보는 이들이 대부분 “고맙습니다.”라고 했는데 한 사이트에서 어떤 문인이 “이런 글을 올리다니 참. 나무 간제미 보살” 이라고 댓글을 달아 놓았다. 아마도 종교가 달라 마음이 상했던가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올린 것을 사과드린다. 그리고 간제미가 무슨 뜻인가 궁금해 국어사전을 살폈더니 노랑가오리였다. 간제미도 인간의 먹이가 되어주는 보살이다. 그 어떤 사람이 온 몸을 던져서 세상을 이롭게 하랴.
음력 삼월 초하루 법회에 대부분의 신도가 참석하지 않았다. 겨우 두세 사람만이 참석했기에 천수경 독송도 접어두고 사시마지로 올리는 공양 예불도 생략했다. 단지 코로나₋19 소멸 진언인“옴 따레 뚜따레 뚜레 소호(Om tarr tuttre ture soha)”만을 되풀이하며 목탁을 치고 염송했다. 처음 접하는 염불이라 그런지 발음이 어눌하고 염송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할수록 힘이 생기고 마음이 안정됨을 느낄 수 있었다. 달라이라마 큰스님 좋은 진언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진언으로 코로나₋19를 소멸하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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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림(叢林) ⇨ 선원•승가대학•율원을 모두 갖춘 종합 수행도량이다. 현재 전국의 7대 총림은 다음과 같다. ① 해인총림 해인사 ② 조계총림 송광사 ③ 영축총림 통도사 ④ 덕숭 총림 수덕사 ⑤ 팔공총림 동화사 ⑥ 쌍계총림 쌍계사 ⑦금정총림 범어사
***고불총림 백양사*** 여건 미달로 총림에서 해제됨
* 방장 ⇨ 선원•승가대학•율원을 모두 갖춘 총림의 가장 웃어른 스님을 뜻한다.
2020. 3. 24.
첫댓글 옴 따레 뚜따레 뚜레소하!
옴 따레 뚜따레 뚜레소하!
코로나19가 교수님을 피해 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