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를 소재로 한 영화 〈챔프〉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상처투성이 경주마와 시력을 잃어 가는 기수의 성공 스토리다.
차태현이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지난 8개월 여 간 서울경마공원에서 기수들의 참여와
KRA 및 관계자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촬영이 진행됐다.
2일(금)에는 서울과 부경·제주에서 대규모 동시 시사회도 이뤄져,
경마공원에 설치된 컬러전광판을 통해 2만여 명이 무료로 개봉 전 영화를 관람했다.
2006년 〈각설탕〉으로 한 차례 검증을 받은 이환경 감독이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아
장애와 역경을 딛고 성장해 가는 감동스토리를 완성해낸 것이다.
경주마 ‘천둥이’와 여성기수 시은이 편견을 딛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았던 〈각설탕〉은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갖고있는 〈괴물〉에 맞서 입 소문을 타고 1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나름 성공작으로 평가되는 경마영화다.
이렇듯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무래도 휴머니즘과 감성을 울리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다.
뻔하고 제한적인 내용이라 해도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
빠른 전개와 실제로도 있을 법한 개연성이 뒷받침되면 관객에게 충분히 다가설 수 있다.
범죄영화의 도구나 소재로만 차용되던 경마에
이처럼 따뜻한 시각이 덧입혀져 접근하는 최근의 트렌드가 놀라운 한편 반갑기도 하다.
〈각설탕〉〈씨비시킷〉〈드리머〉 등 이전에 봤던 경마영화들보다
〈챔프〉에 더 큰 기대를 하고, 개봉을 기다리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설에 남은 명마의 박제(剝製)된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 직접 뛰는 모습을 보고 응원을 하고 박수를 보냈던 바로 그 ‘루나’의 이야기여서다.
〈챔프〉가 이전의 〈각설탕〉과 차별화 되는 요소다. 허구와 사실이 주는 감동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리딩사이어 ‘컨셉트윈’의 피를 이어받았으면서도 선천적인 앞다리 기형이었던 ‘루나’의 몸값은 고작 970만 원이었다.
내내 인대염을 앓았던 그는 제대로 서기도 힘들었다.
사람으로 치면 뒷다리 부분의 허리관절이 약해 다리를 저는, 네 발로 걸어 다니는 경주마에게선 드문 병이라고 한다.
‘루나’의 관계자들은 그의 출전 주기를 2∼3개월에 한번으로 해 충분한 휴식과 치료를 받도록 했고,
값비싼 인삼과 영양제를 꾸준히 먹였으며, 훈련 후에는 끈질기게 찜질을 반복했다.
하루에 5-6바퀴씩 수영훈련도 시켰다. 포기 없이 돌보고 이끈 마방식구들의 열정에 ‘루나’ 역시 묵묵히 따랐다.
극진한 보살핌과 특성화된 훈련, 그리고 타고난 승부근성에 힘입어
‘루나’는 부경 개장 첫 해 「경상남도지사배」를 차지한 이후 이 대회 2연패, 2008년 「KRA컵 마일」,
그리고 2008년 「오너스컵」까지, 수억 원의 상금이 걸린 큰 대회를 연이어 차지했다.
김영관 조교사는 “우람한 근육이 있는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지만
머리가 똑똑해 경주로에 나서면 달려나가고 싶어 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고 ‘루나’를 회상한다.
‘루나’의 데뷔전을 기억하고 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일이기도 했던 2005년 9월 30일, 국산 2군 1600m 핸디캡에 출전한 그는 10마리 중 인기순위 꼴찌였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볼품 없는 ‘루나’가 넉넉하게 역전 우승을 거뒀을 때,
개장 첫 날이라는 어수선함 속에 충분히 있을 법한 이변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이후 그는 5연승을 달렸고 2009년 11월 은퇴할 때까지 11승을 거두며 7억 여 원의 상금을 기다려준 마주와 마방식구들에게 안겼다.
은퇴 경기 역시 데뷔전과 마찬가지로 강렬했다.
승승장구하던 ‘북극성’과 맞붙어 맨 뒤에 있다가 끝까지 추격해
마침내 덜미를 잡고 0.1초 차 역전 승을 거뒀다.
김영관 조교사는 “신은 하나를 안 주면 다른 하나를 반드시 준다.
나는 루나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고, 루나는 내게 조교사의 길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인간과 경주마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슴 저릿한 이야기가 실제로 바로 이곳에서 있었다.
‘루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올 봄 씨수말 ‘포리스트캠프’와 교배해 임신 중이니 내년 봄엔 ‘루나’의 첫 자마가 세상에 나온다.
그의 감동 실화가 계속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