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육 15시간 ·
2008년 비가 내리던 날 청풍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도로 아래로 내려서니 새마을 운동으로 개조한 집들이 몇 집이 보였다. 마을 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서니 작은 마당에 유난히 높은 집이 보였다. 대문을 지나면서 "계세요?" 하니 인기척이 났다. 낯선 자의 방문에 한 노인이 "누구세요?"한다. 사정을 설명하니 들어오라 하신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기 가장 많은 군사 정보를 수집했던 분, 박00 선생이 내 앞에 초라한 촌부의 모습으로 앉아 계셨다.
두 차례의 인터뷰를 마치고 뭔가 아쉬웠다. 저녁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냉면을 드시고 싶다고 해서 청풍면으로 갔다. "맛이 없어!" 하시면서도 냉면 이라는 것 자체에 위로를 받으며 한그릇 뚝딱 비우신다. 다음에는 필동면옥에 같이 가자고 하신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며칠 후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선생님은 뇌암으로 돌아가셨다.
평남에서 출생하셔서 월남 후 기발한 아이디어로 서청 대원들과 월남민들의 경제 생활을 책임져 주었던 분이다. 선생님은 이로 인해 서청 본부에서 일을 하게 됐고, 1948년 5월 441CIC 소속 극동군주한연락사무소(KLO)에 채용되었다. 그는 위스키대 대장이었고 그의 상관은 G2 윌로우비 장군이 아끼는 소령 애보트였다.
15년 만에 선생님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놈의 영감탱이 아주 나빠요. 이승만 거 아휴!" 조심성이 몸에 뵌 분이지만 이승만과 왜관 전투 이야기를 하실 때는 크게 흥분하셨다.
선생님은 북한 첩보를 담당한 분이었지만, 이승만과 임영신 등에 대한 정보도 수집하셨다. 그리고 평남분이지만, 평북 출신 김성주와 친했다. 자기와 동향인 문봉제는 속이 좁아서 친해질 수 없었다고 한다. 김성주가 이승만과 원용덕에게 살해됐을 당시 그는 김성주의 장례식에 참여한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80을 훌쩍 넘긴 분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소연하듯이 밝히는 과거사에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삶이 묻어 있었다. 세상에 초연 하면서도 막상 이야기가 나오면 감정을 숨기지 못하셨다. 이 시골에서 무슨 낙으로 사시냐고 하자 "낚시하는 낙으로 살아요" 라고 하신다.
경무대 갔다 온 문봉제가 김성주 하고 안두희 선택해서 김구선생 죽인거 아니냐. 나중에 김성주가 조봉암의 선거사무장으로 활동하니까 원용덕을 시켜 김성주 살해한 거 아니냐.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나쁜 놈의 영감탱이!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내가 필동 000 중국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장도영(육군정보국장)을 만났어요. 내가 정보를 줬다고. 북한 각 부대의 이동 동향, 전쟁 발발할 것 같다는 의견. 다 줬다고. 애보트도 어느 날 보고하러 들어가니까 "다음 부터 이런 보고 하지말라"고 하는 거예요.
왜관에 있었어요. 전선 후방 인민군의 동향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제 임무였어요. 대원들을 보내면 전멸을 당해요.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어요. 결국 아이 하나를 끼워 보냈지요. 그 애가 살아 돌아왔어요. 그렇게 정보를 얻었어요.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였을 거예요.
말을 아끼시면서도 이 세 가지 이야기를 하실 때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는 자칭 반공의 최전선에 있던 서청 출신의 최초 KLO였다. 전쟁의 한 복판에서 가장 많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본 이승만은 "나쁜 놈의 영감탱이!"였다.
얼마 전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이승만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공산주의로 부터 나라를 지킨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박 선생님을 이야기 해 주면서 당신들 생각대로라면, 나라를 지킨 것은 국민들 내버리고 전쟁 발발 3일만에 몰래 빠져나가 일본으로 도망하려 했던 이승만이 아니라, 박00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나라를 지킨 것이라고 해 주었다. 강력한 반공주의자 박00 선생이 보기에 이승만은 권력에 눈이 멀어 사람 목숨을 파리만도 여기지 않는 늙은 영감탱이에 불과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4.19 당시 이승만의 동상들이 파괴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승만은 그렇게 정리된 것이다. 호명자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해 이승만을 사용한느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창영
소중한 자료입니다. 진실을 담지한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채록해 두셨으니 큰일을 하셨네요.
최태육
지창영 감사합니다. 졸업 축하드립니다~ 다음 달 일정 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