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하면 생각나는 건 르네상스요. 르네상스하면 곧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떠오른다. 그리고 메디치(Medici) 가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코시모 데 메디치, ‘일 마니피코’ 로렌초 데 메디치 등등. 엄청난 후원금으로 피렌체 전역을 인문과 문화융성의 분위기로 뒤덮었던 그 가문 말이다.
지금도 피렌체 역사지구에 남아 있는 장대한 건축물들을 보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저들 모두 대부호와 귀족의 후원금으로 건설된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엄청난 권력을 거머쥔 전제군주도 없었고, 기껏해야 마을 단위의 문벌들이 얽히고 섥히며 지배권을 나눠가졌던 도시였다. 그런 피렌체가 당대 유럽 최고의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연이어 세워 올린 건 정말이지 놀랍다.
게다가 ‘메디치’라는 이름은 묘한 감동까지 주는데, 토스카나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약제상에서 출발한 집안이, 곧 ‘서울’에 해당하는 피렌체로 진출해 큰 돈을 벌고 급기야 금융업으로(그러니까 사채업으로) 유럽 제일의 부자 가문이 되더니, 이를 먹고 마시는 유흥과 주지육림의 세계에 탕진하는 대신에 공공건축물을 올리고, 공방(Bottega)의 예술가들에게 무조건적인 후원을 하고, 교외 지역에 가지고 있던 근사한 별장(카레지)에는 수시로 예술가와 학자들을 초대해 인문 아카데미 스터디 룸을 제공하기도 하면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과소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현대에 혹은 우리 사회에는 왜 ‘메디치’같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니 아낌없이 후원하는 부자들이 없나 - 라고 한탄하는 모습을 가끔은 보게 된다. 메디치를 본받자는 이야기 등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고, 메세나 단체나 교양여행 같은 테마 프로젝트에 수시로 ‘메디치’라는 타이틀이 덕지덕지 붙는 건 다 이런 식의 접근법 때문이다.
그런데, 그 메디치 가문이 그렇게 생각보다 ‘착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회구조는 살벌한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거꾸로 생각해보라. 얼마나 질서와 체계가 없었으면 사채업자 집안이, 그것도 피렌체 출신도 아닌 외지인이, 큰 돈을 벌었답시고 수백 년간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해 한 도시국가를 쥐고 흔들었겠느냐는 말이다. 당연히 메디치의 엄청난 문화예술 후원에는 또 다른 맥락이 존재한다. 그건 ‘아름다움이 곧 권력이다’ - 라는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명제다.
메디치의 등장 이후 중세 시대부터 피렌체를 다스렸던 유력가문들, 즉 토착귀족들은 크게 긴장하고 또 빈정이 상한다. 어디 시골 깡촌 출신의 정체불명 집안이 돈 좀 벌었다고 감히 시내 곳곳에 수도원과 성당을 세우고, 장대한 저택과 궁전을 올리고, 또 화가와 조각가들에게 엄청난 돈을 희사할 수 있냐는 것이다. 시민들의 칭송에 배가 아파온 건 당연지사다. 자신들도 참을 수가 없어 막대한 돈을 사회에 희사하기 시작한다. 바르디, 스트로치, 프레스코발디 등의 토착귀족들이 요즘으로 치면 수백억씩을 예술분야에 퍼붓기 시작한 것이 이때쯤이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지어다. 르네상스 시절 피렌체의 그 엄청난 문화예술의 후원세례들이 꼭 ‘회장님’들의 예술사랑에서 온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건 ‘예술정치’의 일환이었고, 문벌들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그래서 메디치 가문의 당주가 누가 되든, 바르디 가문의 후계자가 예술을 사랑하건 말건, 스토로치 집안의 귀공자가 제노바의 북아프리카 무역선들과 밀수를 하건 말건 - 그들 개인의 품성과 예술에 대한 태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막대한 규모의 후원금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인문예술 분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사회적인 토양이 이미 이때부터 확고히 조성되어 갔다는 이야기다.
현대에도 이런 장면은 보이지 않던가. 토즈의 회장 디에고 델라 발레가 로마 콜로세움 복원을 위해 36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후원했다. 그가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 언젠가 아들이나 후계자가 그 자리를 물려 받을 것이다. 그의 아들은 축구나 영화, 스키 활강이나 스포츠카 수집이 취미고 고전 건축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후원금이 갑자기 끊기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릇 그들에게 공공후원이란, 개인의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후원자의 개성이나 인격, 취향과는 무관하게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수적으로 갖추고 실천해야 할 하나의 ‘교양’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나 어느 가문의 품격이 사회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려면 마땅히 공공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하고, 이때 그 실천방안으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공공분야나 예술에 대한 후원인 것이다. 가끔 외신을 타고 흘러나오는 뉴스에, 이탈리아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작은 중소기업까지 지속적인 사회공헌(후원) 활동을 펼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형편이 만만찮은 동네 골목가게의 경우는 다른 가게와 조합을 만들어서라도 십시일반 주변 공원과 연극 공연장, 작은 공공도서관 등을 후원하는 일을 펼친다. 일종의 ‘계모임 후원’이다. 이런 전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늦춰 잡아도 중세가 황혼으로 접어들고 서서히 르네상스의 여명이 눈터왔던 시기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무심한 것인지.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문벌들 - 메디치, 바르디, 스트로치, 피티 가문 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모두 대저택에 붙은 브랜드 정도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면 역시나 알콜의 도움이 조금은 필요하다. 와인 한 병 찾아 마시면 된다는 이야기다. 프레스코발디(Frescobaldi) 후작 가문은 피렌체의 토착 문벌귀족이었고 실제로 메디치와 후원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려 7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 생산자이기도 한데,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도 마셨다는 이 와인은 현대에 이르러는 우리도 즐겨 찾는 대표적인 토스카나 와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