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어린 시절이었던 70년대는 어두운 시절이었습니다 . 나라 전체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였고 가족의 삶도 힘들었습니다. 서울 상도동에서 살았지만 산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빠져 있었습니다. 노름하고 술 먹고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오시면 난동을 부리시며 집안 기물들을 몽둥이로 다 깨셨습니다. 술에 취해 깨진 유리를 발로 밟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피가 방바닥에 흥건하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와 형, 나는 도망을 쳐 근처 여관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특이했던 점은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절대 밀리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아무리 맞아도 말대꾸 할 것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는 ‘제발 어머니가 말대꾸 좀 하지 말고 그냥 조용하게 참았으면’하고 생각했었지만, 어머니는 끝없이 지지 않고 말대꾸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와 형, 그리고 내가 우연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철저한 신앙인이 되셨습니다.
어머니와 형, 내가 나가게 된 교회에서 마침 교회를 지키고 청소도 하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력서를 넣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공사판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예배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새롭게 시작 되었고, 어머니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새벽 예배를 끊임없이 다니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강제적으로 새벽 예배를 나가지 않으시면 안 되었지요.
우리 형제는 그 때부터 항상 어머니의 신앙 생활하는 모습,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찬 물로 샤워를 하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10분 넘게 걸어서 새벽 기도를 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가끔 새벽 예배에 나갔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린 아이가 새벽 예배를 나왔다고 신기해했습니다. 물론 신앙이 있어서 나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그렇게 하니까 함께 나가본 것이었습니다.
오늘 날 우리 형제가 교회의 목사가 된 것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기 도하셨습니다.
“우리 자식들이 앞으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만약 우리 가족이 교회에 다니기 이전처럼 살았다면 우리 형제는 어떻게 컸을까요?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을 위해서 걱정하고, 자식들을 위해서 돈을 쓰고 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식들을 위해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위해서 기도해 주고, 또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