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貢曰君子亦有惡乎 子曰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訕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曰賜也 亦有惡乎 惡徼以爲知者 惡不孫以爲勇者 惡訐以爲直者
자공이 가로대 “군자도 또한 미워함이 있습니까?” 공자 가라사대 “미워함이 있으니 ① 남의 나쁜 점을 일컫는 자를 미워하며, ② 하류에 거처하면서 위를 헐뜯는 자를 미워하며, ③ 용맹하면서 예가 없는 자를 미워하며, ④ 과감하면서 막힌 자를 미워하니라.”
(공자) 가라사대 “사도 미워함이 있는가?” (자공이 가로대) “① 엿보고서 안다고 하는 자를 미워하며, ② 불손하면서 용맹하다고 하는 자를 미워하며, ③ 들추어내서 곧다고 하는 자를 미워합니다.”
惡 미워할 오 人之惡의 惡은 ‘나쁠 악’ 訕 헐뜯을 산 窒 막힐 질 徼 돌 요, 여기서는 ‘엿볼 교(=儌)’ 訐 들추어낼 갈, 비방할 갈
<家苑
註>
천도를 그대로 잇는 것을 선이라(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주역 계사상전 제5장) 하였기에 盡善하신 순임금(팔일편 25장)을 닮고자 많이 듣고는 그 선함만을 가려서 따랐다(술이편 27장). 이에 천도 덕목의 최고인 仁(元者 善之長也, 君子 體仁足以長人:주역 乾괘 문언전)을 실현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공자가 학문과 정치의 궁극적 목표를 仁을 행하는데 둔(仁以行之 :주역 乾괘) 이유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스승을 지켜보았던 자공이 마침내 의문이 들었다. ‘선생님도 과연 미워하는 것이 있을까?’ 공자는 ‘사람이 사는 땅을 편안히 하여야 仁을 두터이 한 것이므로 이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安土敦乎人 故能愛:주역 계사상전 4장)’고 하였다.
이에 올바른 위정자는 나라를 편안하게 하여야 하며(계씨편 1장), 만약 나라를 불안하게 하는 세력이라면 내치는 것이 마땅하다(唯仁人 放流之:대학)고 하였다. 따라서 ‘오직 어진 자라야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또한 능히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다(惟仁者 能好人 能惡人:이인편 3장).’고 한 것이다.
위에서 공자가 미워하는 바 네 가지는 仁義禮智의 四德에 反하는 것들을 들어서 차례대로 말씀하신 것이고, 아직 天道의 이치를 꿰뚫지 못하는 자공은 대략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다.
주자
訕은 謗毁也라 窒은 不通也라 稱人惡則無仁厚之意요 下訕上則無忠敬之心이오 勇無禮則爲亂이오 果而窒則妄作이라 故로 夫子 惡之시니라惡徼以下는 子貢之言也라 徼는 伺察也라 訐은 謂攻發人之陰私라
산(訕)은 헐뜯어 헐음이라. 질(窒)은 통하지 못함이라.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일컫는다면 어짊과 후덕한 뜻이 없고, 아래가 위를 헐뜯는다면 충성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용맹하되 예가 없으면 곧 어지러움이 되고, 과감하면서 막혔다면 곧 망령됨을 지음이라. 그러므로 공자께서 미워하심이라. 오교(惡徼) 이하는 자공의 말이라. 교(徼)는 엿보며 살핌이라. 갈(訐)은 남의 그늘진 사사로움을 드러내 공격함이라.
楊氏
仁者는 無不愛하니 則君子는 疑若無惡矣하여 子貢之有是心也라 故로 問焉하여 以質其是非라
어진 자는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니 곧 군자는 아마도 미워함이 없을 것 같아 자공이 이러한 마음을 두었음이라. 그러므로 물어서 그 시비를 질정함이라.
侯氏
聖賢之所惡如此하니 所謂惟仁者라야 能惡人也라
聖人과 賢人의 미워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이른바 오직 어진 자라야 능히 사람을 미워하니라(대학).
출처:
『논어
易解』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