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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엘리사를 통한 기적들
1-7절, 기름병 기적
[1절]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채주(債主)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선지자의 생도들, 즉 오늘날로 말하면 신학생들의 아내들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말하였다.
선지자의 생도는 일반 신도들 중에서 특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한 자이었다.
그 여인은 자기의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한 자이었으며 그것을 선지자도 알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이었다. 또 그 여인은 자기 남편을 ‘당신의 종’ 즉 선지자의 종이라고 두 번이나 표현했다.
또 그는 뒤에 자기 자신도 ‘[당신의] 계집종’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그들의 겸손과 스승에 대한 공경심과 순종심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경건한 선지 생도가 그 아내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더욱이 빚까지 남겨두고 죽었다.
이제 채주가 와서 그 아이들을 종으로 삼으려 했다. 그의 가정은 참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왜 그 가정이 이런 형편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단지 사람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성도는 때때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처하기도 한다. 경건한 다윗은 10여년간 피난생활을 했고(삼상 18-26장), 하나님의 종 바울은 전도사역을 하면서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 없이 다녔다(고전 4:9-13).
그 여인은 어렵고 힘든 처지에서 선지자에게 찾아와 부르짖었다.
엘리사는 하나님과 동행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열왕기하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36번이나 나온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기도의 사람,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지식의 사람, 또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곁에 있고 그에게 기도를 부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큰복이었다.
우리에게는 엘리사보다 더 크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그는 위대하신 중보자이시며 구주이시다!
그는 친히 우리에게 약속하기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2-7절]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빌리라]. 빈 그릇을 빌되[빌리되] 조금 빌지[빌리지] 말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그 죽은 선지 생도의 아내가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이웃에게 그릇들을 빌려 기름을 그 모든 빌린 그릇에 부으라고 말했다.
기름을 그 그릇들에 다 채우자 기름이 곧 그쳤다.
그 여인은 모든 그릇에 채워진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했다.
그의 기름 한 병을 통해 이렇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기이한 방법으로 그 가정을 돌아보셨다.
후에, 한 아이가 자기가 먹으려고 가지고 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 예수께 드렸을 때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났다(요 6: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것을 통해서도 일하실 수 있다.
신약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일하지 않으신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은 동일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자기 종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비록 외적 기적을 통해서는 아닐지라도, 그의 기이한 방법으로, 때로는 예상치 못한 환경여건을 통해, 또 때로는 자신들의 부지런한 노력의 대가를 누리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돌보시고 도우시며 지키신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의 종들과 백성들은 때때로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 있다.
다윗도, 바울도, 우리 주님 자신께서도 그러하셨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시 34:19).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
성도의 삶에 고난이 있지만, 우리는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과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돌보시고 도우신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섭리자이시며 전능하신 주님이시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말했다(시 23:1-2).
주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의식주의 필요]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마 6:33).
셋째로, 우리는 엘리사보다 더 크시고 더 능력이 많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고 있다.
주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고(마 7:7-8),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14).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빌 4:6-7).
8-37절, 수넴 여인에게 주신 기적
[8-10절]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懇勸)하여[간절히 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 고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나아센나 알리야스-키르 케탄나)[지붕에 벽이 있는 작은 방을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메노라)[등잔대]를 진설하사이다[두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수넴은 갈릴리 지방의 잇사갈 지파에 속한 마을로 이스르엘 성에서 북쪽으로 약 5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귀한 여인’이라는 원어(이솨 게돌라)는 ‘유력한 여인’(a great woman)(KJV)이라는 말로 신앙과 인품과 재력이 있는 여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녀가 없었고 그의 남편은 늙었다(14절).
아마 이런 점 때문에 그 여인의 믿음은 더 강해졌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부족함이 있을 때 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된다.
그 여인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보았다. 그는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에 간절한 마음으로 음식을 들게 하였고 그 때문에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 집으로 들어갔다.
또 그 여인은 자기의 남편에게 청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지붕 위에 조용한 방을 지었고 침상, 책상, 의자, 등잔대 등을 두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엘리사를 영접하며 대접하였다.
[11-13절]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카라드트 엘레누 엣-콜-하카라다)[네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배려로 배려하였도다](BDB, KJV, NASB).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그 여인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람을 공경하고 정성껏 영접한 것뿐이었고 계산적인 세속적 욕심을 품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14-16절]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돐[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알고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존중하여 표현하며 자신을 ‘당신의 계집종’이라고 겸손하게 낮추면서, 비록 그가 아들을 가지고 싶었겠지만 감히 그것을 구하지 않았다.
그는 허망한 욕심의 소원을 갖기를 원치 않았다.
[17-20절]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돌]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어느 정도]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그 여인이 아들을 낳은 것은 그의 믿음의 선행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여인에게 고통스런 일이 찾아왔다.
그 아이는 어느 날 머리가 아파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었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높으신 뜻 가운데서 이런 저런 이유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신다.
[21-25절]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초하루나 안식일에는 사람들이 선지자의 집에 모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보인다(킴치, 델리취).
그 여인은 평소에 경건한 자이었다.
그는 나귀를 몰게 하여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갔다.
[25-28절] . . .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는 그 여인의 아이에게 큰 문제가 생긴 사실을 깨달았다.
[29-31절]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보내려 했고 보내었으나 그 여인은 선지자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엘리사는 일어나 그 여인을 따라갔다.
[32-35절]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는 여호와께 기도하고 엘리야처럼(왕상 17:21) 그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렸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의 힘이 자기 속에서 느껴졌고 그것을 전달한 의욕이 넘쳤던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었다. 그러자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
그가 두 번 그렇게 하자 그 아이는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떴다. 그 아이가 살았다.
[36-37절]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상숭배로 어두어진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도 수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경건했으며 하나님의 종을 공경하고 그를 정성껏, 항상 대접하며 그를 위하여 작은 지붕방을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등잔대를 두었다.
불경건한 자는 자기 사욕을 좇을 스승들을 많이 두고 허탄한 이야기들을 좋아할 것이나, 경건한 자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의 참된 말씀을 사모할 것이다.
주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40).
오늘날이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이지만, 우리는 저 수넴 여인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분별하며 사모하고 하나님의 바른 종들을 귀하게 여기며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그 수넴 여인은 큰 어려운 일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을 바라고 선지자에게 기도를 요청했고, 그 어려움을 믿음과 기도로 잘 극복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세상에서 종종 어려움이 있지만, 엘리사의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 중에도 낙망치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한다(눅 18:1).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는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며 바르게만 살아야 한다.
38-44절, 국과 떡의 기적
[38-41절]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 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害毒)[독]이 없어지니라.
길갈은 요단강 하류에 있는 도시이었다.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에 선지학교가 있었다(왕하 2장).
그때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때때로 흉년을 주신다. 배교적인 시대는 더욱 그러하였다. 엘리야 때에 3년 동안의 기근이 있었고 엘리사 때도 흉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살길을 주신다.
그가 길갈에 오자 선지자의 생도들은 엘리사의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엘리사를 통해 내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그 앞에 모여 앉았을 것이다.
옛 시대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신구약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지금도 힘있게 살아 활동하신다.
우리는 성경 앞에 앉아서 성경을 읽든지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선지 생도들의 몸에 필요한 것도 아시고 공급하셨다. 그는 우리의 몸에 필요한 것도 아시고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엘리사는 그들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게 했다. 그들을 위한 식탁은 간단했던 것 같다. 선지 생도들의 삶은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저축이 있는 유여한 삶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흉년에 식탁을 위해 들에 나가 채소를 구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실 것이며, 성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자족하며 살아야 한다(딤전 6:7-10).
그들은 한 동료가 국에 썰어 넣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선지자의 수종자는 그 국을 그냥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다. 그런데 무리가 그 국을 먹다가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라고 외치며 그것을 먹지 못하였다.
한끼 식사가 귀했을 그 흉년의 때에 큰솥의 국을 다 못쓰게 됐다.
선지 생도들은 국 없는 식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오게 해 솥에 넣어 독이 없어지게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 생도들의 식탁을 위해 긍휼의 기적을 베푸셨다.
[42-44절]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20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카르멜)[새 곡식 이삭들](BDB, NASB, NIV)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100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본문은 떡 기적을 증거한다.
길갈의 선지 생도들이 100명이나 되었던 것 같다.
보리떡 20개는 그들을 위하여 너무 부족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엘리사를 통하여 주신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그들은 다 먹었고 남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 생도들에게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그 떡을 배부르게 먹이셨다. 그것은 비상한 기적이었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엘리사 때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의 선지 생도들을 굶지 않게 하셨다.
엘리야 때에 3년간 흉년이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게 하시면서 까마귀들을 사용하셔서 떡과 고기를 가져오게 하셨고 또 그 시냇물이 다 말랐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를 시돈 땅에 속한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로 가게 하셔서 거기서 거하게 하셨다.
세상에는 때때로 기근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근의 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33:19에서 “[하나님께서]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 시에 살게 하시는도다”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근과 흉년을 견디게 하신다.
우리는 기근의 때에도 견디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선지 생도들이 국에 넣었던 야등덩굴에 달린 들외에 사망의 독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 그 죽음의 독을 제거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독이라도 피하게 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기적을 구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위험한 일을 막아주시고 빠르게 의학적 조치를 받게 하신다고 믿는다.
시편 91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한 염병”에서 건지시므로 우리가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을 두려워 않으리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10:29-31).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떡 20개를 가지고 100명의 선지 생도들이 먹고 남게 하셨다.
그는 우리에게 넉넉하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시편 23:1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하였고, 또 시편 34:9-10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찾는 자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말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엘리사보다 크신 분이시다. 그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 이상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에 남게 하셨고,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4천명 이상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에 남게 하셨다.
그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는 우리의 구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채워주신다(엡 3:2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소망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