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교화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2-58 산봉 최동근
무진년(개도55년 1928년)에 최동근(호 산봉)의 나이 18살이라.
아우 상근(호 재동)과 함께 성사님 문하에서 뫼시고 배울 때에 위로는 사부님 훈도의 덕택이 있으시고 겸하여 유봉추 선배의 가르치는 공이 있으니, 사방에 어진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강당이 능히 용납하지 못하는지라.
춘풍헌 앞에 대강당을 지어서 이른 시일에 이루니, 성사께옵서 그 편액의 이름을 내려주시어 ‘문창재文昌齋’ 하시니, 대개 글과 글자를 짓는 문창성의 뜻을 취함이라.
그 학문을 강론함에는 경의재經義齋와 치사재治事齋를 두고, 학급을 조직함에는 1조, 2조, 3조, 4조, 5조로 편성하여 점점 나가며, 의례는 동.서반을 두어 반수(반장)를 각 한 명씩과 조사 각 한 명과 집례 독법과 당직일 등의 직원을 두어 읍양진퇴揖讓進退하니 완연히 3대의 바람과 같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