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
아난다가 부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부처님, 우리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립니다. 그래서 큰 공덕을 쌓습니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은 그런 큰 공덕을 지을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여쭈었을 때, 부처님께서 "아난다야, 걱정하지 마라. 여래가 없는 세상에서 여래에게 올리는 공덕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공양이 4가지가 있느니라.
첫째가 굶주리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줘서 살리는 일이다. 즉,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에게 먹을 베풀어서 살리면 그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두 번째는 병들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갖가지 약을 공양 올려라. 병든 사람을 살려낸다면 이것 또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세 번째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돕고 위로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도와야 하고, 외로운 사람은 위로받아야 하겠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이것 또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네 번째는 청정하게 수행하는 수행자를 잘 외호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법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는 수행자를 재가신자로서 잘 외호한다면 그것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과 같다.
이것이 4가지 큰 공덕이 있는 공양이다.”
우리들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립니다. 즉, 등상불,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그런 조각이나 그런 탱화에다가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니 마치 부처님이 계시는 듯 생각하면서 거기다가 공양을 올립니다. 그리고 공덕의 길을 바란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에 의거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런 등상불과 탱화에 공양을 올리기보다, 그래서 복을 빌기 보다는 법도에 맞게 공양을 올려서 그 공덕을 받음이 옳지 않겠느냐? 그럼 법도에 따라서 공양을 올려서 공덕을 받는 길이 뭔가?
그것이 바로 굶주리는 사람을 배불리 먹이는 거다.
즉,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베푸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와 같은 공덕을 짓는 사람이 되지 않고 즉, 죽어가는 생명을 돈을 아껴서 그것을 살리므로 해서 인연의 과보로 공덕을 받는 이런 불자가 되는 않고 있다. 내가 복을 빌기 위해서 어떤 욕심으로 하는 행위, 어쩌면 억지로 복을 짓는 행위를 하고 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잡아다가 다시 등허리에 뭘 써서, 복 가져 오라고 띄워줄 수 없는 이러한 행위는 또는 우리가 등상불에 음식을 차려놓고 복을 비는 이런 행위는 법에 맞지는 않다.
그것이 하나의 우리의 문화요 종교 문화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붓다가 가르친 담마(法)에 맞지는 않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법도에 따라 복을 빌어야 한다.
복을 빈다는 것은 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이 올 수밖에 없는 복을 짓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