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말씀(디모데 전서 4장 1-16절)은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말씀에 더욱 힘을 쓰라는 권고입니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육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온통 모든 신경을 씁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에 이르는 연습은 범사에 유익이 있습니다.
육체를 간강하게 하기 위하여
오늘날 사람들이 쏟고 있는 정성이란 대단합니다.
가장 장사가 잘 되는 사업이 ‘건강사업’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운동 등등
온통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이라’고 세상은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도 스스럼없이 건강이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무어라고 말해야 합니까?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에 이르는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투자하는 시간과 돈이란 어디로 몰려가고 있는 것입니까?
잠시 있다가 썩어질 육체를 위한 투자는 그렇게 많이 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위한 투자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단번에 의롭다고 하신 그 믿음의 말씀을 굳게 붙잡도록 하기 위하여
바울이 간절하게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단번에 주신 믿음’과 ‘의롭다 함’을 부정하고
인간의 선한 행함을 보태야 한다는 것과 싸워야 합니다.
은혜를 악용하여 자기의 정욕을 좇아가는 것도 경계를 해야 합니다.
인간이 이래도 죄. 저래도 죄인데,
‘애라 죄나 짓고 살자’ 라는 것이 신자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울 사도도 디모데에게 경고하기를
믿음의 말씀과 그 믿음의 말씀을 따라 교훈 한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신부로서 얼마나 단장을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경건이란 금생과 내생에 다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사모하라는 그 연습이
내 안에서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고
우리의 관심이
땅에서 하늘의 것으로 달라지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