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장 1-6절. 밀레도에서 가이사랴까지 여행함. 요약설교
1절.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1. 사도행전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1-12장은 예루살렘 중심의 교회, 13-20장은 바울의 선교 사역, 21-28장은 바울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사도행전의 세 번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에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한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에베소 교회 고별 설교를 끝으로 바울이 선교한 사역을 마감하고, 21-28장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되고, 로마로 이송되어 재판받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유난히 바울의 재판 장면이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설립한 내용은 결과적인 것만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하여,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체포되고, 로마로 가서 재판받는 과정은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사실 교회의 설립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라면, 바울이 체포당하고 재판받고 로마로 호송되는 사건들은 교회 설립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체포되고, 천부장 재판(22장), 산헤드린 공회 재판(23장), 벨릭스 재판(24장), 베스도 재판(25장), 아그립바 재판(26장)이라는 5회 재판을 자세히 기록하고, 로마로 호송되는 과정(27-28장)도 자세히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 교회(1-12장), 이방인 교회(13-20장) 부분은 서론이고, 바울의 재판이 본론이라는 느낌이 구조상 들게 됩니다.
심지어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마저도 바울의 재판을 위한 서론으로 기록되었다는 생각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데오빌로 각하에게 기록한 목적이 바울의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3) 즉 데오빌로는 바울의 재판을 담당한 변호사인데, 바울의 재판과 기독교를 이해시키려고,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의 기독교를 이해시키고, 유대교인이 어떻게 기독교를 핍박하고 바울을 고소했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이 바울이 로마 감옥에 도착한 것으로 갑자기 끝난 것도 데오빌로가 바울이 로마에 도착해서부터는 잘 알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는 누가복음의 예수님 사역과 사도행전 1-12장에서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행전 13-20장의 이방인 교회에 대한 기록이 중요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실상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목적으로 볼 때는 앞부분들은 모두 서론격이고 사도행전 21-28장이 결론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바울은 밀레도 해변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작별한 후에 일정을 빨리 재촉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70킬로 떨어진 고스 섬에 가서 일박을 하고 이튿날 로도로 갔습니다.
이 고스 섬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클라테스의 고향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히포클라테스는 의학학교를 세워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3. 바울은 이 고스 섬에서 하루 밤 잔 다음에 남쪽으로 85킬로 배를 타고 가서, 로도 섬에 도착했습니다.
이 로도 섬의 린도스 항구에는 바울이 도착했다는 곳에 기념 교회가 조그맣게 세워져 있습니다.
이 로도 섬에서 바울은 동쪽으로 소아시아 육지에 있는 바다라 항구로 건너갔습니다.
이 바다라 항구는 지금은 수심이 얕아서 배를 정박시키지 못하지만, 바울 당시에 범선은 여기서 정박하여, 육지인 소아시아 루기아 지방 사람들을 배에 태우는 항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바다라 항구에서 베니게로 가는 배를 갈아탔습니다.
4. 지금까지 드로아에서 바다라까지 타고 온 배는 비교적 풍랑이 잔잔한 곳을 지나왔기 때문에, 작은 배로 여행해도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다라에서 베니게까지 가는 배는 풍랑이 심한 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바울 일행은 바다라에서 큰 배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5. 바울은 바다라에 상륙해서 베니게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선교여행 출발지인 안디옥 교회에 가서 선교 보고를 하고 대대적인 환영을 받고, 고달픈 몸을 편히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바다라에서 육지에 상륙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로 가지 않고, 다시 배를 타고 예루살렘 쪽으로 갔습니다.
6. 바울은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 하고, 또한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안일함보다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철저한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2절.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1. 바울이 바다라에서 내려서 육로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도 있었지만, 거액의 연보 때문에 강도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 상륙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배 안에서는 바울 일행이 숫자도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강도의 위험이 적었습니다.
베니게라는 지명은 두로와 시돈 지역을 합친 지명입니다.
원래 두로와 시돈은 형제국이고, 둘 다 과거에 바알 우상 숭배로 유명한 곳입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고향이 시돈이고, 친정 아버지는 엣바알이었는데, 바알의 제사장 겸 왕이었습니다.
이 두로와 시돈은 해상 무역으로 한 때는 지중해를 주름 잡았던 곳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이 지역에까지 가서 전도하셨습니다. (막 7:26-31)
3절.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1. 바울은 구브로 섬 곁을 지나 남쪽으로 배를 타고 가서 두로 항구에 상륙했습니다.
이 구브로 섬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 지역민과 무역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브로 섬 동쪽에 있는 안디옥 교회에도 들르지 않고, 두로 항구에서 상륙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거금의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로는 커다란 무역항인데, 이곳에서는 많은 짐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바울 일행도 두로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두로 항에서 배가 일주일간 정박하는 동안 두로에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4절.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1. 바다라에서 두로로 온 배는 커다란 화물선이기 때문에, 짐을 푸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배가 짐을 푸는 일 주일 동안 곧 바로 두로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배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몹시 피곤을 느끼기 때문에 항구에 도착하면 우선 몸부터 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두로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제자들부터 찾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란 바울이 과거에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일 때, 바울 자신 때문에 흩어졌던 그리스도인들이 두로까지 피난 와서 세운 교회가 바로 두로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래서 바울은 두로 교회에 찾아가서 과거에 그들을 핍박했던 일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고 싶었을 것입니다.
2. 두로 교회에 있는 그 제자들은 믿은 지 오래 되었어도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는 성도들이었습니다.
즉 33년에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했고, 지금은 57년 오순절 무렵이므로 성령 체험한 지가 벌써 25년이 되었는데도, 두로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로 교회를 설립한 후에는 25년 전 사울의 핍박 같은 박해도 없으니까, 안일하게 신앙생활 할 것도 같은데, 환난 때나 평안할 때나 변함없이 기도 생활 잘하여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로 교회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두로 교회 성도들은 과거에 자신들을 무섭게 핍박했던 바울을 사랑하고 아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만일 아직도 과거에 바울의 핍박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었을지라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결박과 환난당하는 것을 고소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로 교회 성도들은 바울 같은 죄인도 용서했기 때문에,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고, 또 바울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5절.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1. 바울 일행은 두로 교회 성도들과 믿음 안에서 친교를 나눈 후에 두로 교회를 떠나 예루살렘 교회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두로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환송하기 위해서 처자식들까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했습니다.
이것은 두로 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2. 강가나 바닷가에서 기도하는 풍습은 유대인들의 전통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모세 시대에 나일강을 기적으로 건넌 후 백성들이 나일 강가에서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에스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에스라 8:21).
바울도 빌립보 전도할 때 강가에 나가서 기도할 처소를 찾았습니다(행 16:13).
에베소 장로들과 밀레도 해변에서 기도했습니다(행 20:36).
그래서 두로 교회 성도들과 바닷가에서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두로 교회 성도들이 함께 기도한 것은 그들의 교제와 사랑이 인간적인 사랑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차원의 교제와 사랑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6절.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1. 바울과 두로 교인들이 기도하고 작별했는데, 참 아쉬운 작별이었습니다.
먼저 예수 안에서 참으로 용서와 사랑을 나누었고, 영적으로 말씀과 기도로 친교했고, 인간적으로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일주일간이었지만, 참 은혜스러운 시간들이었고, 헤어지기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각자가 맡은 사명이 있기 때문에 헤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로 교인들과 바울처럼 믿음 생활 잘하셔서 서로 용서하고 기도해주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각자의 사명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고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