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4]
이수정(李樹廷, 1842-1886)➁
이수정은 진리에 대한 갈망이 컸고 동시에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정에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로 인해 세례를 받는 학생들도 생겨났으며, 학생들과 함께 성경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 시기에 루미스 선교사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을 제의했고 이수정은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1883년에 한문성경에 토를 단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출판까지 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인들이나 미국선교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수정은 미국 선교부에 편지를 보내서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그 내용이 미국 선교잡지 「더 미셔너리 리뷰 오브 더 월드」(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1884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놀랍게도 1885년 4월 5일 우리나라 최초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을 때 이수정이 번역한 성경을 들고 왔습니다. 이들은 입국 전 일본 요코하마에서 이수정을 만나 조선어도 2개월간 배우고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을 건네받아서 들고 조선에 온 것입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이수정의 편지가 실린 잡지를 읽고 각각 북장로교회와 감리교회 선교사로서 조선에 들어온 것이 정확한 사실이라면 이수정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남을 것입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이수정이 일본에서 조선 유학생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달갑지 않게 바라보고 귀국을 종용했고, 이수정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거부하게 됩니다. 결국 두 번에 걸쳐 자객의 습격을 당하고 1886년 6월 2일 귀국했지만, 그 해 보수파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