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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에 따라 '자등현 → 각흘산 → 약사령 → 명성산(왕복) → 삼각봉 → 억새밭 → 등룡폭포 → 산정호수 주차장'의 15km 구간을 7시간 30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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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흘산
높이: 838m
위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강원도 철원군 갈말면
각흘산은 38선을 훨씬 지난 경기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숨은 듯 솟아있다. 빼어난 계곡, 부드러운 능선, 웅장한 바위가 삼위일체를 이룬 볼 만한 「초여름산」이다. 아담하고 얕은 3km의 물줄기가 흡사 처녀지를 방불케 하는 각흘 계곡은 주변 경관 속에 파묻혀 고요히 흐른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산악인들은 흔히 『속세를 벗어나 수도의 길을 걷는 기분』이라고 비유한다. - 한국의 산하
명성산[鳴聲山]
높이: 921.7m
위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명성산은 산자락의 산정호수와 어우러진 운치가 뛰어나고 국민관광지로 이름난 곳이다. 산 전체가 암릉과 암벽으로 이루어져 산세가 당당하고 남으로는 가파르나 동으로는 경사가 완만하다.
남쪽의 삼각봉은 칼날 같은 암봉과 내려오는 분지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암봉과 절벽, 초원 등이 다양하게 전개되며 좌우 시야가 탁 트인 조망이 장쾌하다. 삼각봉 동쪽 분지의 화전민 터 일대는 억새가 가득한 초원 지대이다.
억새는 정상까지 능선 따라 군데군데 있으나 화전민 터 일대가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이곳 억새는 억새와 잡풀이 섞여 있어 억새산행지로서는 다소 떨어진다. 매년 10월 중순쯤 억새 축제가 열린다. 수도권에서 당일 코스로 가볼 만한 억새군락지가 흔치 않으므로 한 번쯤 가볼 만하다. 그러나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억새 보러 명성산까지 갈 만한 전국적인 억새 명산은 아니다.
정상은 민등봉이나 전망이 매우 좋으며, 남쪽으로 이어진 12봉 능선의 모습이 장쾌하다. 능선에서 우거진 억새밭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에 지루한 줄 모르고 걷게 된다.
유원지로 개발된 산정호수까지는 교통이 편리하고 숙박시설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산과 호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호반 산행, 가족 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인기 명산[40위]
궁예의 한이 서려 있고 산 아래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은 산세가 수려하다. 억새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수도권에서 가을 단풍산행과 억새 산행으로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도평천(都坪川), 영평천(永平川), 한탄강의 수계를 이루며, 산세가 가파르고 곳곳에 바위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산 북쪽으로 삼부연폭포와 남쪽으로 산정호수를 끼고 있음. 전설에 의하면 왕건(王建)에게 쫓기던 궁예(弓裔)가 피살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태풍 같은 기상 이변이 없는 한 명절 포함 365일 출발하는 안내산악회를 비롯해, 거의 모든 안내산악회의 주 활동 일은 공휴일을 포함 토·일이다. 아무리 산을 좋아해도, 은퇴했거나, 백수가 아닌 이상 평일에 산에 가는 건 쉽지 않을 테니 어쩌면 당연하다. 어쨌든 각 안내산악회 공히 일요 산행을 마친, 월요일부터 새로운 산행 계획이 게시판에 올라온다. 산악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대기업급 산악회는 9주 후의 계획이, 그리고 중소 산악회는 4주에서 6주 후 계획을 올린다. 해서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산에 다니는 등산객은 매주 월요일부터 안내산악회에 새롭게 올라온 공지를 보고, 늦으면 9주 후 빠르면, 4주 후 산행을 신청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A 산악회에 신청했던 산행을 취소하고 B 산악회 산행으로 갈아타는 일도 많이 발생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아, 매주 월요일 각 안내산악회에 올라온 몇 주 후 산행 공지를 확인한다.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도 새롭게 올라온 산행 계획을 구경하다가, 목요일인 10월 26일 출발하는 명성산, 각흘산 연계 산행을 발견했다. 명성산? 각흘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궁금해 '한국의 산하'로 들어가 검색해, 산 소개에서 산정호수를 보는 순간 바로 기억났다. 정확한 일자는 기억나지 않으나, 과거 대학 동기들과 억새 산행을 다녀왔다. 해서 산행기를 찾아보니, 2018년 11월 11일이다[산행기]. 그러자 각흘산에 관한 것도 생각난다. 명성산행 때 정상인지 어딘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이정표에서 각흘산을 발견하고 흥수에게 '저 산까지 달릴까?'라고 반농담으로 얘기했던 산이다. 당시는 사정이 여의찮아 명성산행으로 만족했다.
이후 각흘산은 명성산과 연계해 메모리에 저장하고 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며 메모리도 많이 손상되어, 이거다 하는 힌트가 없으면 잘 떠오르지 않는 상태가 됐다. 산정호수 하니 명성산이 아닌 각흘산이 기억나듯이. 두 번의 검색을 거쳐 과거 명성산행에서 각흘산까지 달리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는 게 떠오른 후 바로 명성산, 각흘산 연계 산행을 신청했다. 물론 매주 목요일은 대형 안내산악회의 오지 전문팀 산행이 있는 날이나, 오지 전문 안내산악회와 이미 다녀온 봉화 달바위봉 산행이라 거리낌 없이 신청할 수 있었다[산행기]. 신청 당시만 해도, 신청자가 몇 사람 없어 버스의 로열석을 차지할 수 있었고, 이후 과연 성원을 채울 수는 있을지 초조하게 지켜봤다. 다른 중소 산악회가 이 산악회보다 빠른 일정으로 같은 산행을 공지했으나, 다 성원 미달로 취소됐기 때문이다. 물론 토·일 휴일 일정으로. 하지만 평일인 목요일임에도 하나둘 신청자가 늘어나더니, 산행 사흘 전에는 3명이 대기까지 할 정도다. 그 산행 일이 이번 주 목요일인 10월 26일이다.
산행 당일 기상청 산악날씨로 명성산과 가까운 광덕산을 확인한바, 종일 흐리고 기온은 영상 10도를 넘지 않는다. 말인즉 조망은 좋지 않고, 약간 추울 거라는 예보다. 그런데 겨울철 복장은 더울 거 같고, 그렇다고 간절기 복장은 추울 거 같다. 이 시기가 산행 준비를 하기에 가장 애매하다. 해서 간절기 등산복을 입지만, 만약에 대비해 패딩 조끼를 가져가기로 했다. 덕분에 숄더힙색이 아닌 배낭이다. 물 또한 뜨거운 차를 준비하려다가, 생수 500mL로 타협하기로 했다. 다른 준비는 평소와 같다. 다만, 산악회 계획을 보면, 15km에 7시간 반의 소요 시간을 책정한 산행이라, 점심을 위해 사당에서 김밥을 사 가기로 했다. 물론 산정호수 맛집에서 하산주를 즐길 1시간 반 확보를 위해 6시간 내에 주파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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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새벽에 기상해 볼일을 보며, 혹시나 해서 산악날씨를 확인했다. 어제 확인한 것과 다르다. 각흘산과 가까운 광덕산 기준 14시부터 16시까지 비다. 와중에 14시부터 15시까지는 강수량이 11mm에 달한다. 폭우란 얘기다. 아니, 하루 전 예보도 틀리면 기상청을 어떻게 믿나? 어쨌든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은 후 배낭을 다시 꾸렸다. 전날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우산은 이미 챙겼고, 거기다 우의도 넣었다. 문제는 등산화로, 낡아서 창고에 넣어둔 걸 신고 갈까, 하다가 새로 산 등산화가 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 그냥 신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5시 55분경 집을 나서, 구산역으로 갔다.
구산역에서 6시 8분 신내행 열차를 타고, 삼각지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6시 50분경 사당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승차장 종합판매대에서 점심으로 먹을 채소 김밥 한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 1번 출구로 나가, 공영주차장으로 갔다. 아직 7시도 안 됐는데, 공영 주차장은 경기도 각지로 출발하는 통근 버스와 승객으로 정신이 없다. 그들을 구경하며, 주차장 끝으로 가자, 기역으로 꺾인 곳에 주차해 있는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내가 타야 할 명성산행이 제일 앞이고 그 뒤가 월악산행이다. 그리고 그 옆은 봉화 달바위봉 가는 차다. 봄에 오지 전문 산악회와 달바위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산행기], 달바위봉 가는 차를 타고 있을 확률이 99.9%다.
작은 배낭이라, 짐칸에 넣지 않고 선반에 올려놓고 자리를 잡고 앉아, 등산화를 벗으려고 보니, 슬리퍼를 안 가져왔다. 무언가 빠진 거 같아 꺼림칙했는데, 슬리퍼였다. 해서 불편하지만, 등산로를 신고 있는데, 처음 보는 청춘의 인솔 대장이 배낭을 내려 내게 주며, 선반에 올려놓지 말란다. 다행히 앞뒤 좌석 사이의 간격이 넓어 거기에 두고 등산화를 벗어 한쪽에 두고 배낭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7시 정각이 되자 버스가 출발해 양재와 복정에서 남은 승객을 태우고 들머리인 자동현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서울을 빠져나가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분명 기상하자마자 볼일을 봤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져 온다. 전날 독주를 마신 대가다. 해서 초조하게 휴게소 도착을 기다렸는데, 8시 35분경 국도 옆 휴게소 들어간다. 당연히 버스가 주차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볼일을 보기는 했는데, 시원하지 않은 게 산행 중에 한 번 더 봐야 할 거 같다. 어쨌든 버스로 돌아와 책을 보고 있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모든 승객이 탑승해 차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먼저 각흘산이 포병의 표적 지역이고, 수시로 사격 연습을 해, 안내산악회에서 각흘산 공지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거다. 앞산 산꾼의 산행기에서 본 얘기고, 왜 안내산악회에서 각흘산행을 찾을 수 없는지 알았다. 그리고 600m가량을 올려야 하는 산이라, 쉽지 않다는 말을 추가했다. 주의 사항으로는 아무 생각 없이 철책을 따라 걷지 말고, 문이 있으면 통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로 설명을 마쳤다. 이후 30분 정도 달린 9시 24분 들머리인 자동현에 도착했다. 산행 마감은 4시 55분! 5시로 하면 될 걸 정확하게 7시간 반을 맞추기 위해 4시 55분으로 공지한다. 요즘 애들 철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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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인 자동현으로 오는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600m 정도를 올려야 해 쉽지 않은 산이라고 몇 번 언급했으니, 당연히 자동현의 고도가 200m가 조금 넘을 거로 생각했다. 각흘산 높이가 838m니 당연하다. 늘 그렇듯이 버스 안에서 등산 준비를 마치고, 배낭까지 메고 내린 상태라 바로 등산 앱을 기동하고 고도를 확인했다. 458m다. 높아도 너무 높다. 해서 지난 충주 국망산과 같이 GPS 오류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서성이며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 457m~459m 사이를 유지한다. 말인즉 오류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 인솔 대장이 착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350m 정도만 올리면 되는 산이다. 그렇게 들머리의 높이를 확인하고, 등산로 입구를 향해 가는데, 오가는 차량이 전부 군용인 게 군사 도시 철원답다.
포병 훈련이 많은 곳이라 산행이 쉽지 않은 각흘산임에도 등산로 입구에는 화장실과 지도가 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휴게소다. 당연히 등산객이 아니라, 고개를 넘는 차량을 위한 거로, 잠깐 밖에 나올 기회를 얻은 사병이 주 고객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등산로 아니, 정확히는 산을 둘러싸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하기 위한 철책이 둘러싸고 있고, 등산로 입구에는 사람이면 누구나 열 수 있는 문이 있다. 일행 중 첫 번째 주자가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고, 두 번째로 내가 따라갔다. 그런데 등산로 상태는 생각보다 좋은 게, 특별한 산꾼을 제외하고 등산객은 거의 찾지 않는 산의 길이 이렇게 좋은 게 이상했으나, 여기가 포병 훈련장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바로 이해가 됐다.
9시 35분 각흘산 정상 2.1km 이정표를 통과하고,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자, 등산로는 고개를 넘어간다. 앞서가는 일행을 따라 고개로 내려가자, 왼쪽으로 경고문과 초소가 있다. '1. 이 지역은 용화동 포병사격 표적지역임'으로 시작하는 경고는 더 볼 것도 없이 왜 안내산악회가 각흘산행을 함부로 계획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고로 그 뒤에 있는 초소는 포 사격 훈련 때 통제관이 상주하는 곳이다. 고개에서 다시 위로 오르는데, 비 예보가 있듯이 습도가 높아서인지,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말 그대로 땅으로 뚝뚝 떨어진다. 바람막이와 넥워머는 버스에서 벗어 배낭에 넣어, 간절기의 간단한 복장임에도 그렇다. 비 대신 땀을 쏟으며 언덕에 오르자, 정상 1.6km 이정표다. 이번 산행에서 또 하나 놀란 건 산의 유명세에 비해 이정표가 잘 돼 있다는 건데, 그건 길을 잃고 헤매다 포 사격지역 내로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함이 아닐까?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3분 정도 가자, 소나무 기둥에 반가운 표지가 보인다. '준.희'의 '명성지맥 615.3m'다. 그럼, 정상까지 220m 정도만 올리면 된다는 얘기로, GPS에는 문제가 없다. 이정표를 지나, 폭우가 쏟아지듯 땀을 쏟으며 급경사를 올라가자, 생각지도 못한 쉼터다. 그 쉼터를 지나, 그나마 가끔 보이는 단풍을 기록으로 남기며 급경사를 오르자, 정상 750m 이정표다. 그리고 이정표에서 100여 미터를 더 가니, 섬뜩한 경고문이다. '이곳에서 500미터 앞에 포탄 낙하 지점이므로 절대 출입을 금함' 이 경고문은 정상까지 100m 단위로 있다. 100m 단위의 경고는 산꾼에게는 정상까지의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도 한다. 그 정보를 토대로 지금쯤 등산 앱이 반응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순간 정상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 다시 철책 문을 통과한 후 정상이라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어디에도 정상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없다. 당연히 날이 좋으면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 왼쪽으로 더 높은 봉우리가 있음을 발견했을 테지만, 어느 순간 비구름 속으로 들어와 10m 앞이 안 보여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인솔 대장이 옆에 있다가 여기가 정상이 아니라,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정상목이 있다고 알려줘, 비구름 속에서 표지를 찾아 헤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가 정상이 아닌 걸 알았으니, 좌회전해 다시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자, 앞에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각흘산 정상이다. 그 봉우리를 향해 마지막 깔딱을 올라, 10시 25분 인솔 대장을 비롯해 서너 명의 일행이 정상목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중 한 산꾼의 도움으로 인증을 남겼다.
미처 몰랐는데, 산행이 끝나고 확인해 보니, 각흘산이 399번째 오른 산이다. 고로 400은 화요일에 오를 예정인 구례 오산이다. 물론 토요일 정기산행으로 북한산에 오르지만, 몇 번 올랐던 같은 산은 한 번이다. 그렇게 399번째 인증을 남기고 각흘산을 떠나, 명성산 방향으로 가며 보니, 이어지는 능선이 암릉으로 산행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탁월한 조망을 선사할 거 같다. 암릉이 끝나고, 능선 위의 방화선으로 생각되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 10시 38분경 인솔 대장이 몇 번이나 강조해서 주의를 줬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물론 여기도 이정표가 있어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다. 명성산은 좌회전해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마침 그 이정표 뒤에는 이번 산행 인솔 대장과 다음 구례 오산 대장 그리고 산꾼 한 명 등 셋이 막걸리 병나발을 불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구례 대장이 한 모금 하라고 부른다. 어제의 숙취가 아직도 남았고, 산행 후 하산주도 있어, 거절하고, 철문을 통과해 명성산 방향으로 향했다.
철문을 통과해 명성산 방향으로 능선 위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급경사에 낙엽까지 쌓여 쉽지 않다. 미끄러워 위험한 지점에는 잡고 내려갈 수 있도록 나무 사이에 밧줄도 매어 놓았다. 찾는 등산객이나, 산꾼의 숫자에 비해 안전시설은 아주 훌륭한 산이다. 철원에서 신경 썼다는 얘기다. 조심조심 낙엽 쌓인 급경사 등산로를 내려가며 보니, 앞에 거대한 봉우리가 버티고 있다. 고도가 낮아지면, 비구름을 벗어나, 시야가 넓어지고, 고도가 높아지면 비구름 속이라 시야가 좁아지는 일의 반복이라, 봉우리도 보이다 안 보이다 한다. 어쨌든 아래 고개에서 다시 급경사를 올라가야 한다. 해서 아직 점심시간으로는 이르지만, 산정호수 맛집에서 하산주를 맛있게 먹고, 등산보다는 하산하며 김밥을 먹는 게 좋아, 사당역표 김밥을 꺼내 먹으며 내려갔다.
김밥을 먹으며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이상한 게 보인다. 산행 정보에는 없는 임도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약사령이다. 그저 작은 고개라 생각했는데,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임도가 넘는 고개다. 11시 13분경 임도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고개 정상 왼쪽으로 입간판이 보인다. 당연히 그게 있는 위로 올라갔다. '명성산 등산로 안내도'다. 그 옆 나무 기둥에는 '반바지'가 만든 '명성지맥 약사령 535m' 표지가 매달려 있다. 약사령을 기준으로 각흘산과 명성산으로 나뉜다는 얘기다. 그리고 각흘산에서 내려올 때 제발 500m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빌었는데, 다행히 535m로 명성산까지 380m 정도만 올리면 된다. 그럼, 자동현에서 각흘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과 비슷한 표고차다. 고로 400m가 약간 안 되는 높이의 산 두 개를 오르는 셈이다. 물론 명성산에서 산정호수까지 표고차는 모르지만, 명색이 산정호수(山頂湖水)인데, 해발 500m는 넘겠지!
고개를 지나자 바로 급경사 오르막의 시작이다. 그렇지 않아도 휴게소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지 못해 찝찝했는데, 김밥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급경사를 힘을 주며 오르자, 아랫배에서 신호가 온다. 해서 능선에 올라선 다음 주변을 둘러보니, 능선에서 왼쪽으로 벗어난 곳에 시멘트 초소가 보인다. 아무리 급해도 예비역 육군 병장이 후배들의 근무지를 더럽힐 수는 없어, 그 초소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 땅을 파고 볼일을 봤다. 이후 파낸 흙으로 잘 덮어주고 능선으로 다시 올라와 개운한 기분으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산행 후 트랙을 보니, 약수령 주변 트랙이 엉망이다. 이 등산 앱도 믿을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 고민이다.
그건 그렇고, 명성산 정상을 향해 가며, 산정호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코스 설명할 때 명성산을 왕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럼, 굳이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저수지는 두 개가 보인다. 그런데, 어느 게 산정호수인지 알 수 없다. 명성산에서 가까운 게 산정호수가 아닐까? 그런데, 명성산 가는 길목에서 그 저수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두 개다. 물론 명성산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배낭을 두기로 하고 길을 재촉했다. 와중에 땅만 보고 급경사를 오르다가 낙엽 사이로 누군가 새를 잡아먹은 흔적이 보여 유심히 살펴봤다. 삵? 담비? 아 맹금일 수도 있다. 그렇게 주변의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로 길을 가 무명의 봉우리에 올라서자, 저 앞에 명성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비구름 속에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억새도 보이기 시작하고.
얼마 전까지는 울창한 숲 사이로 난 등산로였는데, 이제부터는 억새 사이로 난 등산로다. 그 등산로로 정상으로 향해 11시 47분 저수지로 내려가는 첫 번째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정표 기둥에서 떨어진 표지에 의하면 '용화저수지'다. 산정호수로 먹고사는 포천에서 산정호수가 아닌 용화저수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을 거고, 그럼, 산정호수는? 혹시 여기는 철원 지역이라 용화저수지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며, 앞에 펼쳐진 구릉을 기록으로 남기며 두 번째 갈림길로 향해, 11시 51분에 도착했다. 쉼터 갈림길로 철원에서 세운 '명성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다. 계획대로라면 여기에 배낭을 두고 명성산을 다녀오면 된다. 그런데 안내도에도 산정호수라 생각되는 건 용화저수지가 유일하다. 그래도 무언가 찝찝해 쉼터에서 쉬고 있던 일행에게 용화저수지를 가리키며 이게 산정호수가 맞는지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나 산정호수는 따로 있는 거로 알고 있단다.
여기에 배낭을 두고 갔다가, 산정호수 반대편에 있으면, 배낭을 가지러 다시 돌아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그것도 왕복 3km에 달하는 거리다. 해서, 별로 무겁지도 않은 배낭이라 일단 짊어지고 명성산으로 가기로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동영상으로 찍으며, 정상으로 향하다가 가끔 뒤로 돌아 지나온 길을 바라보고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정상으로 향해 가는데, 앞에서 대화 소리와 함께 무언가 굽는 소리가 들린다. 고기를 굽는 걸 거다. 아니, 나도 산에서 고기를 굽거나 라면 끓이는 걸 좋아하지만, 그래도 피할 건 피하는데, 억새 가운데서 고기를 굽다니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들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위로 올라가서 보니, 두 쌍의 남녀가 술을 마시며 고기를 굽고 있다. 그나마 헬기장이라 억새가 가까이 있지는 않다.
헬기장을 지나자, 삼각봉 갈림길이다. 오른쪽이 명성산, 왼쪽이 삼각봉이다. 2018년 11월에는 아무 생각 없이 올랐으나, 지금을 무언가 심상치 않다. 나란히 있는 두 봉우리에 정상석이 있다는 건 관리 주체가 다르다는 얘기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명성산을 왕복해야 한다고 한 갈림길이 여기다. 그런데, 삼각봉 왕복은 300m, 명성산 왕복은 600m다. 산악회 코스는 명성산을 왕복하고 삼각봉에서 산정호수로 하산하는 거지만, 왕복하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라, 짧은 삼각봉을 왕복하기로 하고 명성산에서 하산하기로 했다. 물론 지도로 명성산에서 산정호수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결정하고, 갈림길 쉼터에 배낭을 내려놓으려고 보니, 이미 누군가의 배낭이 있다. 나 같은 산꾼이 또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70여 미터를 가자, 등산 앱이 삼각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그때부터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2시 17분경 삼각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일행 중 한 명이 사진을 찍으며 누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쉼터에 놓인 배낭의 주인은 없다. 여기까지 오는 길목에서도 만나지 못했으니, 명성산을 왕복하는 산꾼이다. 일행과 상부상조해 인증을 남기고, 그는 나처럼 삼각봉을 왕복하고 명성산에서 하산하겠다며 명성산으로 갔다. 그가 떠나고 나서, 주변을 기록으로 남기며 보니, 역시 예상대로 포천시에서 세운 정상석이다. 그럼, 명성산 정상석은 철원군 세웠으면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어쨌든 비구름 속이라 조망은 꽝이라 기록으로 남길 것도 없어, 삼각봉에서 내려와 배낭이 기다리는 갈림길 쉼터로 향했다.
쉼터로 가는 길목에 올 때는 안내문의 뒤라 보이지 않던 내용이 보인다. 읽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한눈에 '여기부터 강원도 철원입니다.'가 들어온다. 고로 명성산의 정상석을 누가 세웠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안내문을 기록으로 남기고 쉼터에 도착해 보니, 배낭은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명성산에서 내려오지 않은 거다. 누군지 궁금해하며 내 배낭을 둘러메고 명성산으로 향하며, 가끔 뒤로 돌아 비구름 속의 삼각봉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기며 가는데, 익숙한 세 사람이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각흘산 철책 앞에서 막걸리 병나발 불던 이번 산행 인솔 대장과 구례 오산 인솔 대장, 그리고 산꾼이다. 그중 오산 인솔 대장의 배낭이 없다. 그리고 오산 인솔 대장이 나를 보더니, 쉼터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다녀오란다. 그 여성 대장과는 8월 송암산행 때 화채봉을 다녀온 6명 중에 끼어 있던 걸 인연으로 친해졌다[산행기].
내가 명성산에서 돌아오지 않고, 반대편으로 넘어갈 거라고 하자, 이번 산행 인솔 대장이 억새는 삼각봉을 넘어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난 억새보다 계곡이 좋다고 하자, 그럼, 시간 내에 도착하라고 하며,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사실 계곡도 계곡이나, 14시부터 11mm의 폭우가 쏟아질 예정이고, 현재 시각 12시 27분이다. 고로 폭우가 쏟아질 때 억새밭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럼,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질 거다. 해서 억새가 아니라 계곡을 택한 것도 있다. 어쨌든 12시 28분 신원계곡 갈림길을 통과해,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2시 31분경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과 주변에는 점심을 먹는 등산객과 우리 일행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리고 정상석 부근에는 삼각봉에서 만나 일행이 철원에서 세운 '명성산 종합 안내도'를 보더니, 계곡 길이 더 멀다면, 삼각봉으로 가겠다며 돌아간다. 그럼 괜히 삼각봉만 왕복한 거다. 역시 안내도에는 용화저수지는 크게 그려 있고, 산정호수는 저 아래 조그맣게 글만 있다.
일행 한 명이 삼각대를 이용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어,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역시 삼각대를 꺼내 인증을 남겼다. 차마 인증을 찍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등산객이 거의 찾지 않는 등산로라 상태가 좋지 않은 급경사 길로 내려가, 12시 44분 신안고개 갈림길에 도착했다. 좌회전해 신안고개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마른 계곡에 난 등산로라, 급경사 바위너설이다. 당연히 비가 내리면 위험하다. 그나마 좋은 건 계곡이라 능선에서는 볼 수 없는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거다. 단풍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기며 내려가, 1시 3분 명성산 정상 직전 갈림길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났다.
가끔 동영상도 찍으며 내려가자, 작은 돌탑이 있어, 계곡에서 돌을 주워 그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렇게 즐기며 가는데, 오른쪽으로 거대한 암벽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폭포가 있는 거 같으나, 그 길목을 밧줄로 막았다. 당연히 위험해서 막았을 거라, 폭포는 포기하고 등산로로 계속 가, 1시 21분경 갈림길에 도착했다. 직진하는 길과 우회전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둘 다 하산은 맞으나, 상태로 봐서는 우회전이 지름길이다. 해서 망설임 없이 우회전해 내려갔다. 그런데 암벽이다. 어떻게 내려갈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아래에 길이 없다. 이 방향으로 내려오는 걸 막지 않은 지자체와 산림청을 욕하며 갈림길이라 생각했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왼쪽으로 바위 전망대가 있다. 위에서 봤던 인적은 하산이 아니라, 전망대를 오간 거다.
당연히 전망대에 올라, 위에서 봤던 암벽을 전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그런데, 암벽 끝으로 이어지는 흰밧줄이 보인다. 잡고 내려가는 줄이 아니라, 길의 안전 가드다. 고로 위에서 본 길이 폭포로 가는 게 아니라, 하산로였다. 위해서 막은! 해서 그 전망대에서 그 길로 갈 수 있을지 유심히 살펴봤으나 없다. 그렇다고 그 길로 가자고 다시 위로가는 것도 싫어 그냥 가던 길로 계속 가자, 오른쪽 지류에 쓰러진 안내문이 보인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갈림길이다. 차단 밧줄을 무시하고 갔으면 이리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 갈림길부터 거의 산책로 수준의 등산로로 바뀌더니, 1시 37분경에는 임도와 만났다. 정확히는 임도가 아니라 작전도다. 그리고 산정호수까지의 거리가 궁금해 등산 앱의 지도로 확인해 봤다. 명성산에서 여기까지 온 거리보다 더 가야 한다. 멀다는 얘기다.
임도, 아니 작전도를 따라 내려가는 중간에 돌로 쌓은 초소인지 집터인지도 간혹 보인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며, 계속 전진하자, 꽤 넓은 개활지가 나오고, 뒤 명성산 줄기가 보여 그걸 사진 찍었다. 그리고 더 내려가니, 이번에는 포장도로다. 직진과 우회전은 사유지로 출입 금지다. 결국 도로 끝이란 얘기다. 현재 시각 1시 42분! 그 도로로 산정호수로 내려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랑비는 진작부터 오락가락했으니,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으니, 지금 내리는 건 빗줄기가 굵은 게 무시할 성질이 아니라, 배낭 옆 주머니에서 우산을 꺼냈다. 기상청이 거의 시간까지 맞췄다. 계곡이 아니라, 도로에서 비를 만난 걸 감사하며, 계속 내려가, 2시 9분에 산정호수 산책로 입구에 도착했다.
산책로로 우회전해 호수 쪽으로 가니, 음악 소리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워 인상을 쓰며 둘레길 지도를 따라가자, 호수 상류다. 현재 시각 2시 11분, 호숫가에는 산책로가 있고, 그 너머로 거대한 카페다. 그런데, 빈자리가 없다. 해서 처음에는 오늘이 휴일인 줄 알았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목요일이라, 도대체 어떤 손님들인지 스캔해 봤다. 90%가 유한 마담이고, 약간의 청춘과 노년의 부부다. 그걸 보니 갑자기 마누라에게 미안해진다. 산행은 임도에 들어서는 순간 끝났고, 산정호수에 도착했으니, 이제는 하산주다. 해서 호숫가의 갑판 산책로로 동영상을 찍으며 상동주차장과 식당가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갔다. 그러다 호수 주변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등산 앱이 신호를 보내 확인해 보니, 경기둘레길이란다. 2시 23분 '벌 쏘임 사고 다발 지역' 경고를 끝으로 각흘산, 명성산 연계 산행을 종료했다.
3
버스가 기다리는 상동주차장은 위로 가야 하고 식당가는 호숫가를 따라 난 도로변에 있다. 들머리 도착 직전 인솔 대장이 기사가 쉴 수 있도록 출발, 한 시간 전에 짐칸이든 문이든 열어준다는 공지를 했었다. 현재 시각 2시 25분, 마감인 4시 55분까지 2시간 반이나 남아, 볼 것도 없이 식당가를 따라가며, 전날 검색한 식당을 찾았다. 다행히 입구에서 멀지 않다. 식당은 늦은 점심을 먹는 손님으로 붐벼, 주인장에게 야외 테이블에 앉아도 되는지 묻고, 야외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종업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에서 먹을 만한 걸 찾았다. 없다! 정확히는 먹을 만한 건 2인 이상 주문이다. 그나마 1인분이 되는 것 중에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우렁된장은 1인분이 된다고 해서 그걸 주문했다. 물론 소주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며, 냉장고로 가 어떤 소주가 있는지 확인했다. 의외로 빨갱이가 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는데, 소주는 없다. 해서 종업원에게 소주도 주문했는데, 빨갱이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오가는 관광객을 구경하거나,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우렁된장과 밑반찬을 안주로 빨갱이를 마셨다. 그리고 명성산에서 산정호수까지 표고차가 꽤 나는 거 같아, 등산 앱을 꺼내 확인했다. 196m다. 그럼, 정상까지 표고차가 725m로 꽤 높은 산이다.
그럼, 산정호수가 아니다. 당연히 한자로 山頂湖水라 쓴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 검색해 봤다. 산정(山頂)이 아니라 산정(山井), 즉 산에 둘러싸인 우물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공식 문서나 다름없는 ‘디지털 포천 문화대전’은 분명 山頂湖水로 표기하고 있다[기사]. 내가 보기에는 검색 과정에서 발견한 블로그의 산에 둘러싸인 우물인 山井이 맞다[기사]. 이래서 내가 한자 병기에 찬성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정상이든 우물이든 30분 만에 빨갱이 한 병을 비웠다. 버스가 문을 개방할 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아, 별수 없이 빨갱이를 한 병 더 주문했다. 그리고 최대한 시간을 늦추며 마셨다. 그 사이 앞뒤 테이블의 손님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마음먹었다고, 천천히 마셔 지는 게 아니라, 두 번째 소주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데, 적당한 안주가 없어 더는 못 마시겠다. 그렇다고 멍청히 앉아 있을 수도 없어, 뭘 더 주문할까, 고민 중에 앞 테이블 손님이 잔치국수를 주문해서 먹는 걸 보니, 갑자기 그게 먹고 싶어졌다. 그리고 잔치국수와 김치를 안주로 남은 빨갱이를 깨끗이 비우고, 4시 20분경 버스를 찾아, 상동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으로 가는 중에 다음에 대중교통으로 올 수도 있어, 버스 정류장을 확인했다. 이후 4시 25분경 빨간 버스를 찾아, 짐칸에 배낭을 넣고, 차에 탄 후 기절 아니 사망했다. 역시 술은 좋은 안주와 마셔야 한다. 이후 버스가 출발하고, 휴게소에 들르는 건 알았으나, 사망 상태를 유지해 7시 33분 기적적으로 부활해 양재역에서 내리는 거로 산행을 최종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과 달리 ‘자등현 → 각흘산 → 약사령 → 삼각봉(왕복) → 명성산 → 신안고개 → 산정호수 주차장'의 18.4km(램블러) 구간을 5시간 2분 동안 즐겼다. 이동 4시간 54분, 휴식 8분!
예상대로 비구름 속 산행이라 30여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아, 조망은 꽝인 산행이었다. 이에 대해 인솔 대장이 각흘산 조망이 탁월하다면서 못 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와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다행히 임도 도착 후 비가 쏟아졌고, 대략 30분 정도만 내리고 말아, 비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억새를 택한 일행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없다. 비 때문에 억새를 피한 것도 있다.
거의 5년 만의 명성산행이라, 코스나 모든 게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럼, 5년 단위로 갔던 산을 다시 가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