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가서, 부르고, 초대하여라…
- Don Marco Cannavò 마르코 칸나보 신부(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
2026년 10월 9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피앗(Fiat)!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이번 미사에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에는 커다란 희망과 기쁨의 선포가 있습니다. 바로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너울을 없애시고, 죽음을 영원히 파멸하실 것이며,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실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부르려고 종들을 보냅니다. 먼저 초대받기로 정해진 이들에게 보냈지만, 그들이 거절하자 이번에는 모든 사람을 부릅니다. 하늘 나라는 혼인 잔치이며,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비유에 나오는 임금은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성부께서는 이 모든 구원 경륜의 창조자이시며 시작이십니다.
이 비유는 하늘 나라가 아버지께서 우리와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마련하신 영원한 잔치와 같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잔치, 결코 끝나지 않는 축제, 강렬하고 온전하며 깊고도 완전한 기쁨입니다.
복음의 몇 가지 표현을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렀다……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졌으니 혼인 잔치에 오너라.’ …… ‘그러니 너희는 큰길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다시 말해, 사람들을 잔치로, 기쁨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니, 이분의 구원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가서, 부르고, 초대하여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과 함께 일하도록 부르셨으며, 당신 성령의 힘으로 우리를 이끌어 나아가십니다. (『복음의 기쁨』 12항)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도록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그들이 주님의 위대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체험하며, 이 세상과 하늘 나라에서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언제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깊은 물음들에 답을 찾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사목 활동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사목 활동은 ‘성령의 불로 활기를 얻어, 공동체의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주님의 날에 모여 그분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양육되는 신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핍니다. 일상적인 사목 활동은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삶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더욱 온전히 응답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며, 신앙의 기쁨을 마음속에 되살리고 복음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회개를 체험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복음의 기쁨』 14항)
“교리교사의 입에서는 첫 선포가 거듭 울려 퍼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 곁에서 날마다 살아 계시며, 당신을 비추어 주시고 굳세게 하시며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복음의 기쁨』 164항)
1931년 8월 30일, 예수님께서는 루이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피조물이 지닌 미소한 사랑에 만족하는 이는 참된 사랑의 본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더욱이 그 미소한 사랑은 꺼져 버리기 쉬우며, 스스로 만족해할 때 참된 사랑의 불꽃을 키워 주는 생명의 원천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의 부성적 선하심으로, 인간이 원할 때마다 언제든 당신께 나아올 수 있도록 온전한 자유를 주셨다. 아무런 한계도 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이 더욱 자주 당신께 나아오도록 북돋우시기 위해, 인간이 당신께 올 때마다 새로운 선물이 주는 아름다운 놀라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셨다.
꺼지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으로는 자녀들에게 언제나 베풀어 줄 것이 없다면 슬퍼하셨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사랑은 자녀들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하나하나가 이전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선물들로 때로는 이러한 놀라움을, 때로는 또 다른 놀라움을 주는 선물을 안겨 주고자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피조물과 함께 잔치를 나누기를 바라시며, 온전히 당신의 몫으로 잔치를 마련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렇게 하여 언제나 베풀어 주실 기회를 얻으시는 것이다.
이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당신 주위에 모여 있기를 바라며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잔치와 축제를 마련하여 함께 기쁨을 누리려는 아버지와 같다. 사랑 많은 아버지에게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거나, 자녀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얼마나 큰 슬픔이겠는가?
그러나 하느님의 부성적 선하심에는 당신께서 인간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 없어질 위험은 결코 없다. 오히려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을 위험만이 있을 뿐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오직 베풀어 주고 싶어 애가 타도록 열망하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은 피조물에게 당신의 선물들을 어디에 맡겨야 할지 더욱 확신하기 위하여,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뜻(Divine Will)’을 발견하고자 하신다.
하느님의 뜻은 그분의 선물들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온전히 보존해 줄 것이다. 그러면 피조물은 자신의 사랑과 기도와 행위 안에서 더 이상 스스로를 작고 보잘것없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될 때, 자기 안에 무한한 생명의 샘줄기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그 영혼에게 무한한 것이 된다. 사랑도, 기도도, 행위도, 그 밖의 모든 것이 무한해진다.
따라서 피조물은 자신 안에 ‘하느님의 뜻(Divine Volition)’을 모시고 있고 그 뜻이 자신의 행위 안에서 활동하기에, 하느님을 사랑함에 있어 결코 그분께 뒤지지 않는다는(그분의 사랑에 온전히 합치된다는) 충만한 만족을 자기 안에서 느끼게 될 것이다.
-마르코 칸나보 신부(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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