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감 들녘으로 나가
오월 초순 화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그제 다녀온 양미재 은방울꽃에 이어 어제 악양 둑방에서 본 야생화로 시조를 다듬어 봤다. “한갓진 들녘에서 연분홍 피는 꽃이 / 나팔꽃 닮았지만 다름도 있더이다 / 메꽃은 여러해살이 넝쿨 뻗어 자란다 // 어릴 적 모내기 철 무논을 다리려고 / 소가 끈 쟁기질에 드러난 하얀 뿌리 / 삶아 쪄 양곡 대신해 배고픔을 달랬다” ‘메꽃’ 전문이다.
아침 식후 산행이 아닌 산책을 나서려다 잠시 머뭇거렸다. 어제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큰형님과 통화에서 내가 보내드려야 할 게 한 가지 있었다. 지난해 가을 말려둔 영지를 보냈는데 바쁜 농사일에 어디 두었는지 찾지 못해 약차로 달여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영지차는 평소 내가 음용하는데 우리 집 보관 양이 얼마 되지 않아도 부스러기만 남기고 모두 큰형님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집 근처 우체국 업무가 개시되길 기다려 말린 영지 봉지를 챙겨 현관을 나섰다. 반송시장을 지나니 가게 주인들은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체국에 들러 종이 상자에 영지를 채워 테이핑을 마치고 주소를 써 창구에서 발송했다. 이후는 내가 가고자 하는 행선지는 근교 산책을 겸한 돌나물을 걷어올 일이 기다렸다. 원이대로로 나가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천주산 아래서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 동구에 내렸다. 동구 밖의 밭둑에 자라는 매실나무는 꽃이 진 자리마다 매실이 달려 동글동글 여물고 있었다. 겨울에 비닐하우스에서 미나리를 길렀던 논배미 논두렁에 자라는 돌나물을 걷어 모았다. 돌나물은 엊그제까지 흠뻑 내린 비를 맞아 아주 싱싱해 보였다. 며칠 동안 내렸던 비에 돌나물 마디와 잎은 쇨 겨를이 없어 부드럽기까지 했다.
쑥이나 냉이를 비롯한 들나물을 캘 때는 전제 요건이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롯가에서는 아무리 통통한 쑥과 냉이가 있어도 거들떠보질 않아야 한다. 감나무 과수원 그루터기 주변에 자라는 쑥이나 냉이는 거름기를 받아 무성할 수 있는데 캐질 않아야 한다. 과수원에는 농약을 많이 뿌리려 잔류 된 농약 성분이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돌나물 채집에도 쑥과 냉이와 같은 기준이다.
논두렁 언덕을 따라가면서 뜯어 모은 돌나물은 비닐봉지를 쉽게 채울 수 있었다. 어느새 마을 어귀에 이르러 달천계곡 들머리까지 가게 되었다. 천주산에 진달래가 필 때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자동차를 몰아온 상춘객이 붐볐던 계곡인데 녹음의 계절이 되자 찾아온 이들이 없어 한산했다. 계곡으로 들지 않고 마을 뒤 농지로 흘러가는 수로를 따라가면서 돌나물을 더 뜯어 보탰다.
한 외딴집에는 구지뽕열매 효소 판매와 들꽃을 감상하고 가도 좋다는 안내가 있었다. 주인은 집을 비웠는지 낮은 사립문은 닫혀 있어도 울타리 너머로 여러 가지 기화요초를 볼 수 있었다. 연못까지 갖추어진 뜰에 핀 자주색의 작약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꽃잎에 크고 풍성해 함지박을 닮아 가히 함박꽃이라 부를 만도 했다. 한동안 늦은 봄의 야생화들을 감상하고 들길을 걸었다.
논두렁을 따라가니 어린 감나무를 심은 묵정밭이 나왔다. 감나무는 아직 묘목 단계라 주변에는 잡초가 자랐는데 자잘한 꽃이 가득 피어 살폈더니 냉이와 비슷한 주름잎이 점점이 꽃을 피웠다. 논두렁 언덕에 붙어 자라는 돌나물을 더 뜯어 모으니 개울 건너 과수원에서는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단감농원에서 새순을 솎아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의 손길이 분주히 움직였다.
외감마을에 딸린 새터를 지나자 달천 구천과 달천정이 나왔다. 구천은 조선 중기 정치가요 문인인 허목이 젊은 날 거기 머물 때 팠던 샘터다. 근래 전원주택이 몇 채 늘었는데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이들인 듯했다. 내친김에 중방마을까지 나아가 정류소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아까 타고 왔던 차와 같은 번호인 17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더니 해는 중천에 있었다. 23.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