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을 바라보며 정도전을 생각하다.
사람의 한평생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시절 인연이라는 것을 안다.
어느 시절 인연이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고 살아가다가
인연이 다하면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그 인연,
그래서 연연하지 말자. 그 순간을 잘 살자 하면서도
그래도 남는 인연의 끈 때문에 순간순간 연연해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길에
문화재청 회의를 위해 고궁박물관에 왔다가 경복궁에 들어가지 않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내 마음속으로 이성계와 인연을 맺어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정도전이 떠올랐다.
“태조 4년(1395) 10월 5일 경복궁이 완성되자 태조 이성계는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추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낸 뒤 정도전에게 새 대궐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했다.
지금 도읍을 정하여 종묘에 제사 지내고 새로운 궁전이 낙성되어 여러 군신들과 잔치를 열게 되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궁전의 이름을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길이 빛나도록 하라.
정도전은 그때 술 석 잔을 마신 뒤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으니, 군자 만년에 큰 경복일러라”고 한 《시경》 <주아> 편에 있는 시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미 술대접을 받아 실컷 취하고 또 많은 은덕을 입었으니, 비옵니다. 군자께서 만년에 장수하시고, 큰 복 받으시기를‘ 이라는 시구를 인용하여, 새 궁전의 이름을 경복궁이라 짓기를 청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전하께서는 자손들과 더불어 만년이나 태평한 왕업을 누리게 될 것이며, 사방의 백성들도 길이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임금이 부지런해야 한다며 지은 근정전
정도전은 이어서 경복궁의 법전을 임금이 부지런히 정치에 임하라는 뜻으로 근정전勤政殿이라 지었다.
근정전, 조하를 받는 정전입니다. 남쪽에는 근정문이요, 또 그 남쪽에는 홍례문이며, 동쪽에는 일화문, 서쪽은 월화문입니다. 홍례문 앞에는 개울이 있는데, 다리 이름은 금천이요, 동서에 수각이 있습니다.
정도전이 임금이 부지런해야 나라가 평화로울 것이라며 지은 근정전은 동서가 짧고 남북이 긴 회랑에 둘러 싸여 있다. 임금이 왕위 즉위식을 치루는 곳이며,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는 정전으로 때로는 사신을 맞기도 했던 곳이다. 임금이 양로연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했으며 임금이 승하하면 왕세자가 근정문에서 즉위식을 하고 근정전의 옥좌에 오르기도 했던 곳이다.
근정문을 들어서면 근정전이 한 눈에 들어오며 조정 중앙에 3차선으로 된 길이 있다. 가운데 넓고 높은 길이 어도, 동쪽에는 문반, 그리고 서쪽에 무반이 이용하는 길이다. 삼도를 중심으로 관원의 품계를 나타내는 품계석이 줄 지어 서 있다. 이러한 품계석은 창덕궁 인정전, 창경궁 명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법전 앞마당에 다 있는 것이지만 이곳은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지어진 법전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문반 쪽의 정일품正一品 품계석에는 의정부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그리고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등의 영사와 감사들이 섰으며, 종일품從一品石의 품계석에는 의정부의 좌. 우 찬성과 의정부, 돈영부의 판사들이 도열하였다.
조정을 지나면 정교하면서도 아름답게 조성된 화강석 상․하 월대 위에 웅장한 근정전이 우뚝 서 있다. 경복궁의 상징이자 최고의 건물인 근정전은 태조 3년(1394)에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던 것을 조선 후기인 고종 4년(1867)에 다시 지었다.
근정전은 2층으로 된 구조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목조건물이며, 공포는 다포계인데, 북쪽의 중심에 임금이 앉았던 용상龍床이 있고, 그 뒤로 해와 달이 뜬 그림 한 폭이 있다. 왕권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고 칭송하는 상징물로 그려진 오봉산 일월도라고 불리는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에는 산, 해, 달, 소나무, 파도가 그려져 있다.
근정전의 천장은 높고도 깊다. 이 천장 중앙에 천변만화의 능력자인 제왕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희롱戱弄하면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조각되어 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서울 편에서
사람은 오고 간다.
나은 생애 어떤 사람들과 시절 인연을 맺어 살다가 갈 것인지,
날은 맑고 청청했다.
2021년 9월 16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