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천 습지를 둘러
오월 둘째 수요일이다. 전날 오후는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사는 꽃대감 친구가 건너편 아파트 상가 주점에서 퇴직 선배와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에 얼굴을 보자는 청을 사양했다. 나는 일과 후 집에 들면 웬만하면 나가지 않는 나름의 기준을 지켜야 했다. 그런 준칙이지만 저녁 식사에서 자작으로 반주를 제법 들었는지라 숙면은 숙취를 해결했는지 새벽은 맑은 정신으로 맞았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산행이 아닌 산책을 나섰다. 산행인 경우엔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여항산이나 서북산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기가 일쑤다. 아니면 동정동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도중에 내려 몇 갈래 야산을 오르내렸다. 집을 나설 때 산행을 계획하지 않아 스틱은 챙기지 않고 빈 배낭만 둘러메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퇴촌삼거리로 향했다.
창원대학 앞으로 가는 창원천 상류 냇바닥에는 이즘에 피는 노랑꽃창포가 그 이름에 걸맞은 노란 꽃을 피웠다. 붓꽃처럼 시퍼런 잎줄기에서 피는 샛노란 꽃이었다. 창포는 연못의 연꽃과 마찬가지로 흐린 물을 정화 시켜주는 기능을 하는 식물이기도 했다. 물억새와 갈대는 묵은 그루터기를 비집고 새순이 돋아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청 뒤에서 창원대 동문 앞을 지났다.
창원중앙역에 이르러 마산을 출발해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서 진영역에서 내렸다. 진영역에서 화포천 아우름길을 걸으려고 역사 뒤로 난 산책로로 들었다. 효동마을을 거쳐 노 대통령 묘역으로 가는 길과 반대 방향 화포천 습지 생태박물관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근년에 뚫린 진영 휴게소에서 기장으로 가는 부산 외곽 고속도로의 높다란 교각 밑을 지나자 징검다리가 나왔다.
습지 이면의 널따란 면적엔 경작지가 아닌 풀밭이 나왔다. 저 멀리 봉화산에서 불거져 나온 암반 더미인 사자바위가 보였다. 사자바위를 돌아간 그 어디쯤 부엉이바위가 있을 테고, 그 아래가 노 대통령이 잠든 묘역이다. 봉하마을을 비켜 가는 경전선 철길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 열차가 지나갔다. 자동찻길도 그렇지만 철길도 화물 열차가 많이 다녀야 산업이 제대로 작동된다.
삼미마을을 비켜 둑으로 올라 화포천 습지 생태박물관으로 가니 전세 차량으로 현장 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해맑은 얼굴의 아이들은 어미 닭을 따르는 햇병아리같이 담임과 함께 박물관 교육장으로 들었다. 어디서 온 아이들인지 물었더니 우암초등학교였는데 화포천에서 멀지 않았다. 그들보다 먼저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와 둑 아래 쉼터에 앉아 한동안 명상에 잠겼다.
쉼터에서 일어나 산책로는 따라 걸으니 물이 고인 웅덩이에는 중대백로와 왜가리가 먹잇감을 겨냥해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며칠 전 내렸던 비는 강수량이 상당했는지라 습지 식물들은 물에 잠긴 흔적이 보였다. 갯버들은 무성하고 알을 품고 있을 꿩들이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덕 날아올랐다. 평소 인기척이 없을 고요한 습지의 평화를 내가 깨뜨린듯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산책로를 따라 철길과 나란한 곳의 국궁을 쏘는 봉화정을 지나 한림면 소재지로 갔다. 한림역을 거쳐 술뫼로 가는 들판을 지나니 생림으로 뚫리는 도로 공사 현장이 나왔다. 시호마을을 앞둔 농수로 언덕에 절로 자라는 머위를 뜯어 모았다. 이즈음 머위의 넓어진 잎은 쇠어 끊어내고 줄기만 골라 모았다. 머윗대가 길어 배낭에 들지 않아 손에 들고 한림정역 앞 ‘아씨밥상‘으로 갔다.
식당 이름 ‘아씨’는 아랫사람이 부녀자를 높여 부른 존칭이 아님이 특색이었다. 주인 아낙이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습관적으로 ‘아씨!’ ‘아씨!’를 반복해 붙인 이름이라 했다. 요즘은 술뫼 파크 골프장이 개장되지 않아 인근 공장 직원들만 식사하러 와 영업에 적잖이 영향을 받는 듯했다. 김치찌개를 시켜 맑은 술로 반주로 들고 역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창원으로 복귀했다. 2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