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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학(동양의학)을 점차 알아가다.
글/ 일수(一修)
[명혜망]
1. 진맥의 가치
나의 중의학 스승은 원래 매우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는데 문화대혁명 시기에 공산당에게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 성격이 더욱 괴팍하게 변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했다. 말을 걸기 불편해 나는 한동안 꾸역꾸역 잡일을 하거나 처방을 베껴쓰는 일만 했다.
찾아오는 환자는 많았지만 스승은 환자를 잘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한 손에는 담뱃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맥을 보면서 얼굴은 창밖을 내다봤다.
이처럼 환자 얼굴을 보지도 증상을 묻지도 않은 채 맥을 보고 처방을 내렸기 때문에 처방전에는 남자 환자를 여자로 쓰거나 여자 환자를 남자로 적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연령은 모두 ‘성인’으로 적었다. 하지만 환자들은 조금도 불만이 없었으며 오히려 실력이 있다며 소문을 냈다.
내가 성실하게 일하고 그를 존경하는 마음 때문인지 수개월 후 우리는 점차 대화가 있기 시작했다. 하루는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용기를 내서 한마디 물었다.
“스승님, 중의학 책에는 병을 볼 때 반드시 ‘망문문절(望聞問切)’ 네 가지로 진단을 내리라고 했는데 왜 스승님께서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스승은 버럭 화를 내며 “맥을 짚어보면 마음속에 훤한데 보길 뭘 보고 묻긴 뭘 물어!”라고 호통을 쳤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했다. 그 후 나는 선생님의 말투가 과격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실속 있고 진짜 전수를 받은 사람에게서 나온 말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한마디 말은 내가 맥을 배울 때 좌우명이 됐다. 나는 선생님처럼 한번 맥을 짚으면 환자의 병을 마음속에서 훤하게 알 수 있기를 바랐다.
중국 고대에는 중의학 학교가 없이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형식으로 중의사를 배양했다. 나는 나중에 의과대학을 다녔지만 처음에는 중의사에게 제자로 들어가 계몽 교육을 받았다. 즉 스승이 문으로 이끌고 수행은 자신이 하는 형식이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관찰하고 사고하며 깨닫고 모방하는 단계를 거쳤다.
선생님은 평소 말이 별로 없이 제자에게 스승을 존중하고 약자를 동정하며 명예나 돈을 추구하지 않고 시비를 멀리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깨달을 것을 요구했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만 의미심장한 말로 제자에게 점화를 주어 깊이 기억하게 했다.
그중 진맥은 제자의 오성(悟性)과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진맥은 선생님이 말 뿐만 아니라 몸으로 가르쳐야 하고 임상에서 많은 관찰과 실천을 거쳐야만 장악하고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맥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마음속이 훤해지는 경지는 모든 제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평생 얻지 못할 수 있는데 제자들의 성품, 오성과 고생을 견디는 능력에 따라 다르다.
설사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장기간 임상에서 실천하고 깨달아야만 점차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공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진맥도 초상적으로 하게 된다. 환자를 보기만 해도 병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더욱 높은 층차의 공능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다.
2. 경락에 대한 감지
경락을 배우는 것은 진맥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다. 나는 진맥은 경락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진맥을 깨닫는 것은 경락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했다. 좌우 양손의 촌관척(寸關尺) 3부맥은 인체의 축소판으로 인체의 모든 정보는 맥에서 반영되어 나올 수 있다. 이런 정보에 대한 중의사의 감지 능력은 경락에 대한 그의 인식 정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중국의 5대 발명으로 불리는 경락은 어떻게 발견된 것인가? 전반 중의학 이론은 최초 ‘황제내경’에서 기원했다. 이 책은 중의학 이론의 시조인 동시에 수련을 지도하는 최초의 책이었고, 가장 일찍이 경락 학설과 촌구(寸口), 인영(人迎), 충양(衝陽) 맥진을 제기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미 매우 높은 경지로 수련됐음을 설명하는데 진정으로 ‘황제내경’을 알아보려면 반드시 수련을 통해 인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륙에 기공이 보편화된 연대에 나는 자연스럽게 한 기공을 수련하게 됐다. 기공을 통해 나는 책에 없는 것들을 적지 않게 깨닫게 됐고 천목(천안)이 열려 다른 공간과 생명체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진단과 치료 능력이 끊임없이 제고됐다.
3. 질병의 진정한 원인
병인학(病因學)에 있어서 중의든 양의든 모두 상세한 논술들이 있지만 임상에서 대부분 환자들은 자신의 발병 원인을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한다. 특히 고질적인 내과질환일 경우에는 의사가 갖은 방법으로 유도해도 환자는 아마 그런 것 같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 결국 병력에 원인 불명이라고 적을 수밖에 없게 된다. 원인이 없는 병은 없지만 원인을 똑똑하게 말하지 못하고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과거 보았던 환자들 중 두 명은 평생 잊을 수 없다. 한 명은 1989년 이와다(岩田)라는 일본인 환자였는데 간암 말기로 복수가 심했다. 일본 측에서 청해온 독일 전문가는 그가 11일 동안 생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나는 당초 그 환자를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다는 마지막으로 혹시 모를 대운(大運)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공사를 찾을 뿐 설사 그 자리에서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성(省) 기공협회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해서야 나는 이와다를 만나기로 했으며 만나서 진맥만 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와다는 나를 만나자 마자 황급히 내 손을 꽉 잡더니 내가 도망가기라도 하듯 큰 소리로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통역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끝내 제가 찾던 의사를 만나게 됐습니다! 꿈에서 제 병을 치료한 의사와 똑같이 생겼습니다!”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 우리 성에서 매우 유명한 기공사 4명이 그를 치료해 주기 위해 찾아갔는데 모두 그에게 퇴짜를 맞고 그냥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가 차분해지기를 기다려 진맥을 시작했다. 잠시 후 내 머릿속에는 오른쪽 날개가 부상 입어 축 늘어진 매 한 마리가 떠올랐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과거에 매를 해친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통역사의 말을 듣자마자 그는 즉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낮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중국에 있을 때였는데 만약 일본에서 그랬다면 4년형을 선고받았을 겁니다. 10여년 전 멧돼지 잡는 사냥총으로 날고 있는 매를 쏜 적이 있는데 말씀하신대로 오른쪽 날개를 부러뜨렸습니다.” 사람들은 통역사의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랐다.
다른 한 환자는 녹내장으로 실명해 빛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환자였는데 병원에서는 이미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를 진맥할 때 내 머릿속에는 한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그에게 어떤 처녀와 불미스런 관계가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표정이 멍해졌지만 극구 부인했다. 나는 그와 동행한 사람에게 그의 병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니 어서 부축해 돌아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나에게 꿇어앉아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빌면서 그제야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한 공장의 공장장이었는데 공장 일은 대부분 힘들고 지저분한 일들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직원들이 그를 찾아와 일자리를 바꿔줄 것을 요구했지만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하루는 밤에 한 젊은 여직원이 찾아와 중요한 일을 알려준다고 하면서 당직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주자 여직원은 역시 일자리를 바꿔달라고 간청하더니 만약 일자리를 바꿔주면 자신의 몸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그 처녀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자 환자는 매우 놀라면서 “바로 그녀입니다, 바로 그녀입니다”라고 연거푸 말했다.
나는 이와 같은 환자들을 여러 명 더 본 적이 있었는데 환자 몸에 그의 사망한 가족의 형상이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천목(천안)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환자의 신체주변, 혹은 신체에 있는 각종 짐승과 새, 그리고 곤충 등이었다. 이들 중에는 이미 알려진 것도 있었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들도 있었으며 일부는 매우 크고 사나웠다. 날짐승들도 마찬가지였고 곤충류는 대부분 매우 작지만 밀집도가 매우 커서 개체를 정확하게 보아내기 어려웠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이 병을 얻는 원인에 대해 생각했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생명들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들이 병의 원인일까? 만약 아니라면 왜 그것을 겨냥해 처리하면 의외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는 현대의학의 방법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만약 그것들이 병의 원인이라면 왜 현대 과학은 그것들의 존재를 알아내지 못하고 병인학에서 그것들의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며 오히려 미신이라며 부인하고 탄압하는 것일까? 이런 것들이 환자와 의사 모두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병의 원인이라면 현대의학의 병인학은 불완전하고 정확하지도 않은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의혹은 나중에 내가 법륜대법을 만나 李洪志 사부님의 가르침이 내 마음속 안개를 걷어주어 비로소 풀리게 됐다.)
4. 기공치료의 위해성과 교훈
1) 기공치료는 강렬한 집착심 일으켜
나는 중의사였고 10여년 동안 기공을 수련해 천목(천안)까지 열렸다. 공능으로 치료하는 것은 의료환경이나 장비를 갖출 필요가 거의 없고 치료 효과가 좋고 빠르기 때문에 기공이 널리 전해지던 시대에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선호하는 치료 수단이 됐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나는 많은 환자들의 신체 표면과 신체에 생각지도 못한 영체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거북이, 뱀, 전갈, 파리, 한 무더기 벌레 등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것들이 환각인 줄 알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자주 보게 되면서 그것들이 있는 특정 부위가 경락과 대응되고 흔히 모두 병이 있는 부위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반적인 중의의 치료 방법이라면 침, 피 뽑기, 부항, 약 붙이기와 복약 등을 결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 때문에 의념으로 그것들의 위치를 이동시키거나 내쫓아 보았는데 환자의 증상이 즉시 완화되거나 사라졌다.
심지어 매우 심각한 증상도 순식간에 나았다. 이런 의외의 효과를 보고 환자와 가족들은 늘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귓가에 ‘신의(神醫)’, ‘기공사’ 등 칭찬이 계속 들려오면서 나의 ‘호기심’과 ‘명리심’은 큰 만족을 얻었으며 갈수록 커졌다.
나는 그 후 끊임없이 중병과 큰 병원에서도 진단하기 어려워하는 병, 희귀병을 치료 범위에 넣었는데 그렇게 해야만 능력을 과시하고 이름을 날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는 병은 갈수록 어려웠는데 천목으로 보면 환자 몸에는 흔히 모두 자연계에서 볼 수 없고 자료에도 기재된 바 없는 짐승이나 날짐승들이 있었다. 그런 생명들은 사납고도 괴상하게 생겼고 신체 크기나 모습을 수시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그것들과 싸웠는데 그것은 직업정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절대 환자 앞에서 창피를 당하면 안 되고 절대 인기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 누워서 들어온 환자는 일어서서 나갔지만 나 자신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2) 부체(附體ㅡ육체에 달라붙은 영체) 치료로 가정 파탄 위기 맞아
당초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면서 한 가지 비결을 발견했다. 즉 환자 몸에 붙어 있는 사납고 형체가 큰 괴물들을 대처할 때 반드시 적으로 대할 필요가 없고 내 몸으로 쉽게 불러들여 자신의 친구 혹은 부하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잔인한 싸움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이용해 다른 부체병을 치료할 수도 있었다.
어떤 환자가 부체가 있을 경우 부체의 종류와 능력을 판단한 후 내 몸에서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부하를 선택해 제압하게 했다. 그것들이 있었기에 나는 마치 천하무적 장군처럼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끊임없이 새로운 부체를 불러들여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손쉽게 승리를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였다.
뜻밖에 갈수록 많은 기공계 친구들이 나를 보면 “얼굴이 왜 이렇게 됐습니까? 병색이 심하네요!”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치료를 중단하고 빨리 병원에 가서 자기 병부터 고치라고 진지하게 권고했다. 하지만 나는 거울을 보아도 전혀 변화를 느끼지 못했고 그들이 나를 질투해 일부러 없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아내였다. 내가 기공으로 환자들을 치료할 때마다 아내에게 병이 생겼는데 원래 몸이 허약해 자주 부체가 달라붙었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 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말투로 나를 야단쳤는데 내가 반성하면서 ‘노인께서’ 듣기 원하는 말로 약속을 하면 증상이 매우 빨리 사라졌다.
그리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게 됐는데 아내가 지칠 대로 지치고 또 내가 더 이상 기공으로 치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매우 단호하게 결심을 내려야만 집안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강렬한 집착심으로 기공 치료를 했던 나로서는 그대로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가까운 곳에서 안 되면 멀리서 치료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허사였다. 백리 떨어진 곳이든 천리 떨어진 곳이든 내가 공능으로 병을 치료하기만 하면 아내는 병이 발작했는데 시간을 보면 내가 병을 치료한 시간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 1분도 차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분노하며 말했다. “아이와 저를 가질 건지, 기공 치료를 할 건지 하나만 선택해요!”
커다란 목표를 추구하던 중 가정파탄의 궁지에 몰리자 나도 폭발할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이시여! 이건 무엇 때문입니까? 왜 저를 이렇게 제한하십니까, 불공평합니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후부터 기공을 멀리하고 기공을 증오하게 됐다.
몇 년 후 가정에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아내가 法輪大法(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단 1개월 만에 수년 동안 고치지 못했던 경추질환을 고쳤고 부체도 더 이상 달라붙지 않았으며 건강 상태가 나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아내는 나에게도 대법을 수련하라고 권했다. 당시 우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마침내 알게 됐다.
당시 사부님께서 이미 法을 전하셨는데 우리가 사부님을 뵙지는 못했어도 사부님께서 이미 천리 밖에서 제자를 보호해주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5. 법륜대법(파룬궁)이 진상을 알게 하고 진리 얻게 해
1999년 초, 나는 질병의 원인에 대한 의문과 기공에 관한 의문, 그리고 법륜대법이 어떻게 그처럼 신속하게 그렇게 많은 어려운 병을 고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품고, 아내의 거듭되는 권고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우리 李洪志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중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다시 중의(中醫)를 말해 보기로 하자. 중의가 병을 치료함은 기공 치료와 아주 가깝다. 중국 고대의 중의사는 기본적으로 다 특이공능이 있었다. 손사막(孫思邈), 화타, 이시진(李時珍), 편작(扁鵲) 등등과 같은 이런 대의학자들은 모두 특이공능이 있었는데, 의서(醫書)에 모두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흔히 이런 정화(精華)적인 것이 현재는 비판 받고 있으며, 중의가 계승한 것은 다만 그런 약 처방 또는 경험의 모색(摸索)에 불과하다.”
고대 중의사들이 갖고 있는 공능(초능력)은 병을 관찰하고 원인을 파악하며 치료능력에서 초상적으로 표현된다. 현대는 흔히 병을 치료하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사실은 고대의 대의학자들처럼 특이공능이 없어 병의 원인을 진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 ‘전법륜’을 한번 읽은 후, 나는 그제서야 사람이 병을 얻는 근본 원인은 업력으로 인한 병균과 병독, 그리고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영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부체에 대한 사부님의 가르침은 단번에 나의 오래된 의문을 모두 풀어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부체의 위해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그것이 당신 몸에서 일찍 떠난다면 당신은 곧 사지가 무력해질 것이다. 그 이후부터 한평생 내내 이럴 것인데, 사람의 정화를 그것이 너무 많이 빼갔기 때문이며; 만약 그것이 당신 몸에서 늦게 떠난다면 당신은 곧 식물인간으로서 후반생에 당신은 오직 숨만 남아 침대에 누워있을 것이다. 당신이 돈이 있다 하여 쓸 수 있는가? 당신이 이름이 있다 하여 향수(享受)할 수 있는가? 무섭지 않은가?”
매번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예전에 부체를 내 몸에 불러들여 환자를 치료하면서 겪었던 경험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행운을 느끼면서 더욱 사부님께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 후 한번 또 한번 깊이 법 공부를 하면서 나는 살아오면서 큰 관심을 갖고 연구했지만 답을 찾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 예를 들어 인생의 진정한 의의는 무엇인지, 사람에게 영혼이 있는지, 사람이 죽으면 정말 등불이 꺼진 것과 같은지, 佛,道,神이 미신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믿고 이 세상에서 수천 년 동안 전파될 수 있었는지 등을 모두 대법에서 믿을 만한 답안을 얻었다.
'전법륜'은 또 수련 과정에서 부딪힐 수 있는 각종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여 수련인에게 그야말로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진정한 사다리를 주었다.
나는 대법 수련과 내 일을 한데 결합시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연 있는 환자를 만나면 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진상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병을 얻게 된 근본 원인,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이치, 그리고 왜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외우고 공산당에서 탈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내 말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하는 사람은 치료 효과가 매우 좋았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한 농민은 2개월 만에 고관절 괴사 증상이 사라지고 노동력을 회복했다. 병이 빨리 치료되고 마음이 선량한 환자를 보면 나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사람의 업력을 없애지 못하는데 검은 업력과 영체가 바로 병의 진정한 원인이라고 알려줬다.
환자가 어떻게 하면 업을 없앨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그 때를 기다려 그에게 수련의 이치를 설명해 주었는데 대법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힘이 닿는 대로 조건을 마련해 주어 조속히 대법 수련생이 되게 했다.
의학 연구 영역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진맥할 때 환자의 질병 원인이 이미지로 내 머릿속에 나타날 수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약초의 작용도 이미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중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무도 생명이 있으며 생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아주 높은 사유 활동을 구비하고 있다.”
사부님은 매우 생생한 사례로 설명하셨는데 나는 큰 계발을 받아 이 방면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 시도했을 때 바로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매우 어렴풋했다. 여러 번 연구를 거쳐 나는 그것이 진맥보다 더 높은 경지가 필요하며, 마음이 맑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기본이고 선정에 더 깊이 들수록 이미지가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수시로 떠오르는 이미지와 내가 깨달은 의미를 기록했다. 기록한 글을 보면서 나는 놀랍게도 중약들이 모두 선천적으로 특정한 부위에 치료 작용이 있으며 생소한 약일수록 치료 부위가 더 단일하고 더욱 구체적임을 발견했다. 그런 치료 효과는 내가 알고 있거나 책에 있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치료 효과가 있을까?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인 “당신이 천목으로 볼 때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보면 진실한 것이다.”에 따라 가급적 진실한 것을 보는 한편 임상 효과를 관찰했다. 나는 치료 부위가 단일하고 명확한 약을 선택해 질병부위가 대응되고 증상이 뚜렷하며 진단이 명확한 환자에게 복용시켰다. 물론 약은 과거 자료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결론 내린 약이다.
나는 직접 환자에게 복용시킨 후 전후를 대조해 보았는데 치료 효과가 놀라웠다. 정말 ‘좋은 약은 열쇠를 꽂아 자물쇠를 여는 것과 같고, 또 뜨거운 국에 차가운 눈을 넣어 식히는 것과 같다’는 옛 사람들의 말과 똑같았다.
한번은 만성 역류성 위염 증상이 뚜렷한 환자가 왔는데 진맥해보니 질병 부위도 매우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중의학에서의 질병 부위는 우측 족양명(足陽明) 위경(胃經)의 양문혈(梁門穴)에 국한돼 있었다.
양의 해부학에서 이 부위는 십이지장 팽대부로 총담관과 췌관이 합류하는 공통 입구에 해당한다. 만약 이 부위에 병변이 생기면 간, 담, 췌장과 십이지장 등 소화기들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마침 그 즈음에 나는 귀전우(鬼箭羽)라는 중약의 약효 부위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대학에서 배운 해부학 지식을 이미 많이 잊어버렸지만 중약의 약효 부위를 찾아내기 위해 나는 다시 교과서에서 부위 명칭을 찾아냈다. 약효를 관찰하는 날 나는 모든 사전 준비를 마치고 다른 중의사 두 분을 청해 증인으로 삼았다. 약 복용 전후 내 손은 환자의 맥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6분도 채 되지 않아 환자의 맥이 고르고 순통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얼굴 표정을 바꾸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분 지났을 때 환자는 가슴 늑골 부위가 당기고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사라지고 전체 윗배 부위가 매우 편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약 복용 전후의 가장 뚜렷한 증상 변화다. 중약의 약효 부위에 대한 나의 연구 방식은 실증과학을 기초로 한 현대 약리학 연구자들이 봤을 때 매우 황당하고 웃음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장비도 없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지금은 약 샘플도 필요 없이 정확한 약이름만 알면 된다.) 좌선을 통한 입정력(入定力)과 염력(念力)으로 1천여 종 중약의 약효 부위를 알아냈다. 나는 내 이런 연구 방법이 중국 고대 대의학자들의 중의학 연구 방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에 대해 20만 자에 이르는 문자 자료를 기록했다. 그 중에 李洪志 사부님의 점화에 대한 서술이 있었기 때문에 사악한 경찰은 2007년 우리 집을 수색할 때 전부 가져갔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그로 인해 내가 잃은 것이 전혀 없고 사부님과 法이 있으면 좋은 것은 모두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됐다.
수련의 층차가 끊임없이 높아짐에 따라 매 한 가지 중약약효 부위를 알아내는 내 능력은 계속 향상됐고 약효부위도 갈수록 구체적이고 깊이가 있게 됐다. 그리하여 약물 치료 기제는 마치 투명한 유리로 된 인체에서 보듯 입체적으로 나타났다.
나는 또 약물 작용 부위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인체의 질병 기제에 대해 적지 않은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예를 들어, 만성 인후염이 경추에 영향을 주고 침해한다는 사실, 서혜부 막힘이 무릎 관절염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위치를 판단해 치료한다’는 등의 이론을 제기했는데 모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반 연구 과정에서 마음을 닦고 집착을 없앴으며 관건적인 시각에 모두 李洪志 사부님의 점화를 통해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그것이 대법 수련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의 무궁한 위덕은 나의 의학연구에 있어서 지혜와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문장발표: 2014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