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 다이치는 아내와 함께 신심을 시작했다. 사다도 아내도 입회하자,
무아무중으로 제목을 불렀다.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이었다.
학회의 지도대로 절복, 홍교하러 뛰어다녔다. 그러자 심장판막증으로 괴로
워하던 아내의 가슴 통증과 호흡곤란 증상이 차츰 나아졌다. 두 사람은
'이것이 학회에서 말하는 공덕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본존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입회한 지 다섯 달 뒤, 사다는 신심의 강한 확신을 안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데우리섬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했다. 사다에게는 여전히
큰 빚이 있고, 처한 환경은 무엇 하나 바뀌지 않았다. 단지 마음만은 크게
바뀌었다.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섬을 떠났을 때와 달랐다. 가슴속에는
'데우리섬을 광선유포하겠다! 모든 섬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결의가
활활 불타올랐다. 사다는 데우리섬에서 다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섬 곳곳을 홍교하러 다녔다. 섬사람들은 사다를 잘 알고 있었다. 대대로
선주였지만 빚 때문에 괴로워하다 '행방을 감춘 남자'로 알려져 있었다.
절복을 하면 비웃음을 당하고, 소금 세례를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뒤에서 수근거렸다. "사다는 결국 머리가 이상해졌다.
이번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종교에 홀리고 말았다. 불쌍한 사람……."
좁은 섬이다. 비판하는 소리는 바로 당사자의 귀에도 들려왔다.
분하고 원통해 참을 수가 없었다. 섬에는 상담할 간부도 동지도 없다.
이를 악물고 견뎠다. 사다는 열심히 창제하며 생각했다.
'아직 빚도 못 갚는 어려운 상태인데,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게 당연하다.
실증이다. 실증을 보일 수밖에 없다. 어본존이시여! 섬의 광선유포를 위해
반드시 경제혁명하겠습니다.' 실증이 없는 언설은 덧없다. 니치렌대성인
(日蓮大聖人)은 "도리(道理) 증문(證文) 보다도 현증(現證) 이상은 없느니라"
하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사다는 '섬을 광선유포하려면 먼저 생활에서 승리해 실증을 보여야 한다'고
결론짓고,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창제는 생명력과 지혜의 원천이다.
'고기잡이 말고 다른 돈벌이는 없을까' 하고 궁리한 끝에, 집 일부를 개조해
민박을 하기로 했다. 민박이라고 해도 이불 세 채가 다였다. 그런데도
5월부터 9월까지 손님이 꽤 찾아왔다. 겨울에는 데우리섬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다는 거칠어지고, 하늘은 잿빛 구름에 뒤덮이고, 눈보라는 포효
하듯 휘몰아친다. 배도 하루에 한 차례 왕복 운항하고, 날씨에 따라서는
며칠씩이나 결항하기도 한다. 사다는 '지금이라면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눈보라를 뚫고 홍교하러 다녔다. 절복을 하려고 글을 배워
'대백련화'와 '세이쿄신문'을 읽고, 어서를 공부했다. 섬에 돌아온 지 2년이
지나자 8세대 홍교를 이루었다. 민박도 끈기 있게 도전해, 해마다 조금씩
꾸미고 고치다 보니 시설도 제법 갖추어졌다. 1961년 가을, 데우리섬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곳을 무대로 하는 '바다오리섬'(홋카이도방송 제작)
이라는 드라마가 전국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주역은 섬에 사는
어린 오누이다. 그 남동생 역에 사다의 아들인 가즈히로가 기용되었다.
이 드라마 방영으로 데우리섬은 경치가 아름다운 바다오리 번식지로 단번에
유명해져,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게 된다. 민박 수입도 순조롭게 늘었다.
그러나 섬에는 물이 적었다. 1962년, 사다는 손님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뒷산 골짜기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 호스를 연결하러 갔다. 30미터 정도
되는 절벽에 올라 작업을 시작했다. 그 순간 몸의 균형을 잃고 거꾸로 떨어
지고 말았다. 의식을 잃었다. 육지 병원으로 긴급 수송되었다. 검사 결과는
두개골 함몰이었다. 경추도 어긋났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의사가
'생명에 위험을 줄 수도 있어 수술은 못한다'고 말했다.
사다를 진찰한 의사는, 손쓸 방도가 없다며 퇴원하도록 가족들에게 권유했다.
게다가 "이대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사다는 '내가 쓰러지면 누가 데우리섬을 광선유포할 것인가! 반드시 완치하고
야 말겠다! 지금부터가 진짜 승부다!' 하고 자신에게 말했다.
집에 돌아온 사다는, 목을 고정하는 장치를 달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했다.
온몸이 저렸다. 숨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사람들 대부분이 '사다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다의 귀에도 그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원했다.
필사적으로 창제했다. '섬의 광포를 위해 꿋꿋이 살고 싶다'는 집념이,
사다의 생명을 지탱했다.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다. 겨우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몸을 회복했다. 광선유포의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지용보살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온몸에는, 생명력이 가득 넘친다. 더 이상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회원들을 위해 '세이쿄신문'을 배달하고 싶어졌다.
목에 깁스를 한 채로 비틀비틀 걸으며 한집 한집 돌았다. 그리고 절복을 시작
했다. 깁스를 한 사다를 보고 "마치 우주인 같군" 하고 숙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다는 웃음으로 날려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목숨을 건졌다.
이것이 이미 공덕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더 건강해질 테니 지금 내 모습을
잘 봐두시오." 사다는 시련을 만날 때마다 더욱더 투혼을 불태웠다.
그리고 자신이 선언한 대로, 의사도 가망이 없다고 포기한 부상을 완전히
이겨냈다. 사고를 당한 지 6년 뒤인 1968년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돌김을 뜯으려고 배를 띄워, 절벽 아래에 댔다. 바위에 올라 작업을 시작
했다. 그때 갑자기 절벽 위에서 주먹만한 돌이 사다의 머리 위에
바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돌에 맞은 사다는 의식불명에 빠져, 이때도 육지 병원으로 긴급 수송
되었다. 두개골에 금이 많이 갔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신심하는데 왜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바로 '전중경수(轉重輕受, 무거움을 바꾸어 가벼이
받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신심으로 과거세의 무거운 업(業)을 바꿔서,
현세에서 가볍게 그 과보(果報)를 받는 것을 말한다. '머리를 계속 다치는
이유는 틀림없이 과거세의 악업 때문이다. 본디 목숨을 잃어야 하는데, 신심
덕분에 두 번이나 살아날 수 있었다. 목숨을 건진 이유는, 내게 광선유포를
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어본존에 대한 고마움과 환희가 가슴속에
가득 넘쳤다. 사다는 한 달만에 퇴원해, 곧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사다가 민박 경영에 힘을 쏟자, 손님이 해마다 늘었다.
사다가 공덕 체험을 하나하나 쌓을수록, 신심을 시작하는 사람도 늘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민박집을 대대적으로 개축해 30여개 객실을 갖춰, 데우리
섬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새로 개장한다. 또 사다가 격려한 사람들 중에서,
섬의 광선유포를 짊어지는 인재도 속속 탄생했다. 데우리지부 초대 지부장
이자 훗날 향토자료관인 '데우리향토관'을 개관한 모리사키 고조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야마모토 신이치(이케다 선생님)도, 데우리섬 동지의 상황을
보고받아 잘 알고 있었다. 신이치는 낙도본부 간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섬에서는 실증을 내지 않으면 광선유포의 길을 열 수 없습니다.
학회원이 실제로 어떻게 되었느냐가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공덕 체험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학회원이 섬과 지역을 위해 애쓰고 공헌해, 인간으로서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광선유포를 총마무리하는
결정타입니다."
사람이 사는 섬이라고 해도 그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사도섬처럼 850제곱킬로
미터가 넘고 2만 수천 세대가 사는 섬도 있고, 면적도 좁고 수 세대나 수십
세대가 사는 섬도 있다. 에히메현 우와지마항 서쪽 약 20킬로 해상에 떠 있는
가시마섬은, 섬 둘레가 3킬로 정도인 작은 섬이다. 1978년 당시 가시마섬 인구
는 74세대 225명이었다. 섬에는 초등학교 밖에 없어, 중학교부터는 섬을 떠나
기숙하게 된다. 그 섬에 학회원은 21세대가 살았다. 전체 세대에서 보면,
30퍼센트 가까이가 학회원이다. 광선유포가 가장 많이 추진된 지역 중 한곳
이라 할 수 있다. 가시마섬 광포에 이바지한 주민 중 한 사람이 대블록담당원
(지금의 지구부인부장)인 하마하타 마쓰에였다. 하마하타는 1964년에 투병
생활을 하다, 섬에 사는 학회원의 소개로 신심을 시작했다. 좁은 섬에서는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런데 홍교를 시작하자 사람들 태도가 돌변했다.
섬에는 구습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병으로 수술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 같이 신사나 절에 모여 기도했다. 사람들은 입회한 하마하타가 홍교에
힘쓰는 모습을 보고, 섬의 질서를 파괴한다고 여겼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사람이 늘었다. 개중에는 "미안해, 당신하고 이야기하면 같은 취급을 당하
니까" 하고 몰래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불법(佛法) 이야기를 듣고
이해는 해도, 차마 입회는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좋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에 사는 동안은 신심은 할 수 없어. 이곳을 떠나면
해도 좋겠지만……." 섬이 작을수록 인간관계는 깊고 끈끈하다.
섬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그런 섬에서
학회를 널리 이해시키려면, 일상생활에서 신뢰를 얻는 일이 필수조건이다.
하마하타는 섬의 추천으로 청소, 세탁, 식사 등을 돕는 가정도우미로 일했다.
하마하타의 배려심과,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차츰 높이 평가받았다.
이윽고 '하마하타 씨가 믿는 종교라면 신뢰할 수 있다'며 신심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하마하타 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블록담당원인 하마하타가 담당하는 범위는, 이웃 섬인 도지마섬과 히부리
섬도 포함했다. 이 중 히부리섬에 들어가는 배는 하루에 한편으로, 오후 2시
에 가시마섬을 출발해 오후 4시 반에 히부리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돌아가는
배는 이튿날 있다. 배는 잘 흔들렸다. 연말에 날씨가 나빠 일주일 정도 결항
되기도 했다. 큰 회합은 본토인 우와지마에서 실시했다. 저녁 회합에 참석
하는 것도, 배편 때문에 오전 중에 섬을 나서야 한다. 또 회합이 끝나면
돌아갈 배가 없어 이튿날에야 돌아갈 수 있다. 그런 만큼 하마하타는,
모처럼 우와지마에 왔으니 모든 것을 흡수해서 돌아가자며 구도심을 불태웠다.
작은 섬에서는 '한 사람'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한 사람의 결의, 모습, 행동이
광선유포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난관의 벽을 하나 부수면, 학회에 대한 이해
를 단번에 넓힐 수도 있다. 하마하타는 섬 광포의 일대 추진력이 되었다.
'우리 지역의 광선유포는 우리 손으로 이룰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 사명
이다.' 이렇게 자각한 동지가 잇따라 탄생했기에, 낙도 광포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것은 모든 지역에 해당하는 영원불변한 원리라고 해도 좋다.
또 본토 우와지마에서 간부가 가시마섬에 자주 찾아와 격려했다. 사명을
자각하는 일도, 촉발할 수 있는 동지의 격려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씨앗을 뿌려도, 그냥 내버려두면 새가 먹거나 썩는다. 정성을 다해
세심한 격려의 손길을 철저히 뻗어야, 씨앗은 모종이 되어 홀로 서는 진정한
용자로 성장한다.
2p입니다
이케다 SGI 회장과 함께 신시대를 달린다 [27]
지성의 벗이여, 역사를 만들어라
생기발랄하게 광포를 위해 달리는 남녀대학부의 늠름한 모습이 눈부십니다.
지난 8월 31일은 '대학부의 날'로, 대학부 대표에게 <어의구전> 강의를
시작한 날입니다. 그리고 9월 9일은 '여자대학부의 날'입니다.
지구 전체가 여러분의 무대입니다. 다가올 미래는 여러분의 시대입니다.
눈은 세계를 향하고 발은 현실의 대지를 힘껏 밟아, 배우고 또 배우고
끝까지 배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의구전>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묘(妙)의 일자(一字)의
지검(智劍)을 가지고 생사번뇌(生死煩惱)의 오랏줄을 자르느니라."
(어서 746쪽) 제목을 부르면 괴로움이나 방황을 이겨내고,
최고의 인생을 만드는 지혜가 용현(涌現)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은 차분히 실력을 쌓고
인격을 연마해야 합니다. 창가(創價) 민중의 대지에서 싸우는
모든 것이 위대한 역사가 됩니다. 그것을 긍지 드높이 확신하고 10년,
20년, 30년 앞을 목표로, 영지와 우정의 연대를 넓혀야 합니다.
또 <어의구전>에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어서 787쪽)
하고도 씌어 있습니다. 불도수행에 힘쓰는 사람은, 자기 생명의 궁전이
빛납니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행복경애로 살 수 있습니다.
광포를 위해 기원하고, 교학을 연찬하고, 대화를 관철하는 나날은 자타 함께
궁전을 장엄하게 장식하는 행동입니다. 신심은 빠른 속도로 더 좋게 바뀌기
위한 실천입니다. 도다(戶田) 선생님은 "꾸준히 샘솟는, 흐르는 물과 같은
신심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젊은 창가의 보현보살인 대학부에게는
'일염부제 광포'를 전진시킬 사명이 있고 숙연이 있습니다.
인도 SGI의 눈부신 확대의 원동력도 남녀대학부입니다.
젊은 지성의 지도자인 그대여!
세계의 벗과 서원의 스크럼을 짜고, 파사현정의 예리한 언론전을 펼쳐
밝고 명랑하게 승리를 장식하기 바랍니다!
첫댓글 이케다 선생님은 "여러분의 싸움은 광선유포를 달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법을 위해 진력하면 일체가 공덕선근으로 이어집니다. ○씨는 어제 나와 함께 도착하여
오늘 홍교를 달성했습니다. 이 일념이 중요합니다."라고. '지금의 이 싸움은 반드시 자신의 공덕으로
이어진다'라는 확신을, 이케다 선생님은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어중간하게 하는
우리들의 신심을, 이케다 선생님은 날카롭게 지적해 주신 것입니다.
('한계의 벽을 부숴라!' 212P)
단결이란 타협이 아니다. 홀로 서는 것이다.
이케다 회장은 말한다. "홀로 서는 것과 단결은 얼핏 보면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같은 것입니다."라고. 강한 책임감으로 홀로 섰을 때 비로소 단결을 낳는다.
이것이 승리를 향한 힘이다.
('한계의 벽을 부숴라!' 2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