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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禪 : 자신의 속內를 확연히 '드러내다'
yoniso upaparikkhato 여러 측면으로 살펴서 → 추적한 정보를 統一하여 nijjhāyato → passato 본다.
jhāya mā pamādo. '방일하지 말고 참선하라.'
참선이란 어떤 의미인가? 참선은 무엇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인가?
‘ime pana jhāyinomhā, jhāyinomhāti jhāyanti pajjhāyanti nijjhāyanti avajjhāyanti .
kimime [kiṃ hime (sī. syā. kaṃ. pī.)] jhāyanti, kintime jhāyanti, kathaṃ ime jhāyantī’ti?
이들은 '우리는 참선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참선하는 자들이다.'라고
pa- (앞으로), ni- (아래로), ava- (아래로):
명상한다, 깊이 명상한다, 집중하여 명상한다, 낮추어 명상한다.
그러면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참선하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참선하고,
도대체 어떻게 참선하는가?'라고.
jhāyati(jhāna)는 參禪(冥想)으로 번역되는 의미<meditation(명상), contemplation(묵상)>와
同音異語로 (불에) 탐(타다)로 쓰이는 단어이다.
이 두 가지 의미가 혼동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언어적 펀(유희)로 혼용하여 쓰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jhāyati(jhāna)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 정형적으로 나타나는 jhāyati(jhāna)에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려워 jhāyati(jhāna)와 함께 자주 나타나는
접두사 ni-가 붙은 nijjhāna(nijjhāyati)에서 그 의미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jhāyati pajjhāyati nijjhāyati apajjhāyati 혹은 avajjhāyati]
이 단어 nijjhāna(nijjhāyati)에 다시 접두사 ati- 혹은 upa-가 붙어서
ati-ni-j-jhāyati나 upa-ni-j-jhāyati로 나타난다. 사역형은 jhāpeti이다.
이하 선입견 없이 그 의미를 추적하기 위해 nijjhāna(nijjhāyati)를 [ni-j-禪]이라고 표기하겠다.
지나친(ati-)[ni-j-禪]은 한 곳에서 나타나는데 수행에 장애가 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근접(upa-)[ni-j-禪]은 貪(愛)와 관련되어 異性을, 瞋과 관련되어 적에 대해
'빤히 쳐다보다/응시하다.'라는 문맥에서 나타난다.
nijjhāna(nijjhāyati) 즉 [ni-j-禪]의 용례에서는 사역형은 '이해시키다. 설득시키다.'이고
아니면 '이해하다. 납득되다.'라는 문맥에서 나타난다.
여기서는 參禪(冥想)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meditation(명상), contemplation(묵상)이라는 의미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표현이 nijjhānakkhanti(nijjhānaṃ khamanti) 혹은 diṭṭhinijjhānakkhanti로 나타나는데
diṭṭhi-가 붙으면 대부분 사견일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khanti(khamati)는 '忍辱(인욕바라밀) 혹은 감내, 容忍, 容認, 許容'이라는 어간의 표현으로
앞의 어감(인욕)과 뒤의 어감(허용)은 우리들에게는 전혀 다른 단어이지만 이런 범주의 단어이다.
그래서 문맥상으로 '[ni-j-禪]을 許容'은 '납득된다, 이해된다.'라는 의미이다.
[atthaṃ upaparikkhato 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
ime dhammā evaṃ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를 직역하면
'붇다의 교설들은(복수형) 반야 만큼(아는 만큼) [ni-j-禪]을 許容들(복수형)한다.'라는 의미이고
이런 상태에 있는 분들을 法隨者라고 하고, 반면 직접 본인이 보는(見) 분들은 預流者이다.
즉 法隨者는 불교를 이해하고 말귀를 알아듣는 분들이고 예류자는 직접 법을 보는 분들이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ni-j-禪]은 '납득, 이해.' 혹은 '빤히 쳐다보다/응시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결론은 '납득,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직접 본인이 보는(見) 것이 아니면서도
'빤히 쳐다보다/응시하다.' 혹은 '납득, 이해.'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겠는가?
khanti(khamati)가 '忍辱, 감내, 容忍, 容認, 許容'이라는 어간의 표현인 것처럼
[ni-j-禪]은
'빤히 쳐다보다/응시하다.'를 '자신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라고 읽고
'납득, 이해.'를
'붇다의 교설들은(복수형) 반야 만큼(아는 만큼) <드러남을> 許容들(복수형)한다.'라는 의미로 읽으면
연결되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그러면 '삼매에서 앎' 혹은 '바른 삼매란 4종禪'이라는 말씀과도 연결되지 않나 추정해 본다.
즉 '자신의 속내를 확연히 <드러냄>' 혹은 드러내는 과정이 參禪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하 자료들 모음.
그는 양쪽이 서로를 잘 알게 하고 설득하게 하고 보게 하고 신뢰하게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paṭibalo hoti ubho atthapaccatthike saññāpetuṃ paññāpetuṃ nijjhāpetuṃ pekkhetuṃ pasādetuṃ;
그는 목적이 대립하는 양측을 화해시키고, 설명하며, 납득시키고, 관찰하며, 달래는 능력이 있다.
1. **paṭibalo hoti**: "능력이 있다" (is capable).
- **paṭibalo**: 형용사, 주어와 성·수·격 일치. 여기서는 남성 단수 주격.
- **hoti**: 동사 "이다" (to be)의 3인칭 단수 현재형.
2. **ubho**: "양쪽 모두" (both).
- 대명사, 여격 또는 주격으로 해석 가능. 여기서는 목적어로 볼 수 있음.
3. **atthapaccatthike**: "목적의 적들" (adversaries in purpose).
- **attha** (목적) + **paccatthika** (적)의 합성어. 복수 여격 형태로, "양쪽 적들에게"라는 의미.
4. **saññāpetuṃ ~ pasādetuṃ**: 부정사 목적어.
- **saññāpetuṃ**: "화해시키기 위해" (to reconcile)
- **paññāpetuṃ**: "설명하기 위해" (to explain)
- **nijjhāpetuṃ**: "납득시키기 위해" (to convince)
- **pekkhetuṃ**: "관찰하기 위해" (to observe)
- **pasādetuṃ**: "달래기 위해" (to appease)
**해설:**
이 문장은 특정 인물이 대립하는 두 집단(**atthapaccatthike**)을
다양한 방법(**saññāpetuṃ** 등)으로 조율할 수 있는 역량을 강조합니다.
불경에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으로, 교리적 논쟁이나 갈등 상황에서
중재자 또는 설법자의 능력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각 동작은 단순한 설득을 넘어 체계적인 이해(解釋), 이성적 수용(납득), 상황 관찰(觀察),
감정적 안정(달래기)까지 포괄하며, 포교나 갈등 해결의 다층적 접근을 나타냅니다.
tena kho pana samayena kosambiyaṃ bhikkhū bhaṇḍanajātā kalahajātā vivādāpannā
aññamaññaṃ mukhasattīhi vitudantā viharanti.
te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nti na ca saññattiṃ upenti,
na ca aññamaññaṃ nijjhāpenti, na ca nijjhattiṃ upenti.
"그들(코삼비 비구들)은 서로를 설득하지도 못하고, 화해하지도 못하며,
서로를 납득시키지도 못하고,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다."
nijjhāpenti ni + jhāpeti (√jhā의 사역형) "깊이 사유하게 하다" "납득시키다"
nijjhatti ni + jhatti (√jhā의 명사형) "깊은 숙고 후의 합의" "상호 수용"
idha, bhikkhave, yassaṃ parisāyaṃ bhikkhū adhikaraṇaṃ ādiyanti dhammikaṃ vā adhammikaṃ vā.
te taṃ adhikaraṇaṃ ādiyitvā na ceva aññamaññaṃ saññāpenti na ca saññattiṃ upagacchanti,
na ca nijjhāpenti na ca nijjhattiṃ upagacchanti.
te asaññattibalā anijjhattibalā appaṭinissaggamantino
tameva adhikaraṇaṃ 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voharanti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ayaṃ vuccati, bhikkhave, adhammavādinī parisā.
어떤 회중에서 비구들이 여법하건 여법하지 않건 간에 대중공사를 결정한다.
그들은 대중공사에서 서로 의논하지도 않고 의논하기 위해 회합도 갖지 않는다.
서로 화해하지도 않고 화해하기 위해 회합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의논할 힘도 없고 화해할 힘도 없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대중공사에 더욱더 고집스럽게 집착하여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법답지 않게 논의하는 회중이라 한다.
etha tumhe, kālāmā,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깔라마들이여,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467)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468)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469)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470)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467)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anussavena)'는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kathā)를 통해서라는 뜻이다.”(AA.ii.305)
468) “우리들의 경전과 더불어 일치한다(amhākaṃ piṭakatantiyā saddhiṃ sameti)는 뜻이다.” (Ibid)
469)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는 ākāraparivitakkena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멋진(sundara) 이유(kāraṇa)이다라는 뜻이다.” (Ibid)
470) “원문의 bhavyarūpatāya(유력한 인물됨 때문에)는 '이 비구는 유력한인물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받아들이기에 적합하다.'라고 여기는 것이다.”(Ibid)
보라, 밧디야여. 그대는 소문으로 들었다 해서 [나의 말을 따르지 말라].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고 들었다.'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밧디야여, 그대는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etha tumhe, bhaddiya, mā anussavena, mā paramparāya, mā itikirāya, mā piṭakasampadānena,
mā takkahetu, mā nayahetu, mā ākāraparivitakkena,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mā bhabbarūpatāya,
mā ‘samaṇo no garū’ti.
yadā tumhe, bhaddiya,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bhaddiya, pajaheyyātha.
"바디야여, 너희들은 전승(전통적인 말)에 의해서도, 계보(전통)에 의해서도, 소문에 의해서도,
경전의 집적에 의해서도, 추론에 의해서도, 논리적 사유에 의해서도, 표면적 사색에 의해서도,
견해에 대한 고찰 후 받아들임에 의해서도,
'이 수행자는 우리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의해서도 (진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바디야여, 오직 너희 자신이 직접 알고,
'이 법들은 선하지 않으며, 이 법들은 비난받을 만하며,
이 법들은 지혜로운 이들에게 꾸지람을 받으며,
이 법들은 실행되고 계속될 때 해롭고 괴롭게 이끈다'고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
그때에야 바디야여, 너희들은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에 대한 상세한 어원 및 의미 분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 1. **단어 분해 (Word Breakdown)**
- **diṭṭhi**
- **어근**: √dṛś (√दृश्, "보다") → 과거분사형 "diṭṭha" ("본")에서 파생.
- **의미**: "견해(view)", "믿음(belief)", "철학적 입장". 불교에서는 특히 "삿된 견해(micchā-diṭṭhi)"를 경계함.
- **문맥**: 고정된 사상이나 편협한 신념을 가리킴.
- **nijjhāna**
- **어근**: ni (강조 접두사) + √jhā (√झा, "생각하다", "명상하다").
- **의미**: "깊이 사유함", "숙고(contemplation)", "동의(approval)".
- **문맥**: 사유를 거쳐 납득하는 과정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편견에 따른 합리화**를 암시.
- **khanti**
- **어근**: √kham (√क्षम्, "참다", "용인하다").
- **의미**: "인내(patience)", "수용(forbearance)", "받아들임(acceptance)".
- **문맥**: 무비판적 수용이나 맹목적 관용을 지칭.
- **yā**
- **접미사**: 여격/도구격 접미사로 "~에 의해", "~로 인해"를 나타냄.
### 2. **합성어 구조 (Compound Structure)**
- **diṭṭhi + nijjhāna + khanti**
- **타트푸루샤 합성어 (Tatpuruṣa)**: 주종 관계의 합성어로, 앞 단어가 뒤 단어를 수식.
- **해석**:
- "diṭṭhinijjhāna" → "견해에 대한 숙고" (contemplation based on views)
- "diṭṭhinijjhānakhanti" → "견해에 따른 숙고로 인한 수용" (acceptance arising from contemplation of views)
- **최종 의미**: **"고정된 견해를 바탕으로 한 사유 후의 무비판적 수용"**
### 3. **불교 문맥에서의 함의**
- 이 용어는 **칼라마 숫타(Kālāma Sutta, AN 3.65)**에서 등장하며, 붓다가 "믿음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되는 10가지 요소 중 하나로 언급됩니다.
- **핵심 비판 대상**:
- 자신의 기존 신념(diṭṭhi)을 합리화(nijjhāna)하여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khanti) 태도.
- 예: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식의 편견에 기반한 확신.
- **불교적 교훈**:
- 경전이나 전통, 논리만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말고, 직접 체험과 지혜로 검증하라는 가르침과 연결됨.
### 4. **동의어 및 관련 개념**
- **동의어**:
- **abhinivesa** (집착), **parāmāsa** (왜곡된 집착)
- **반대 개념**:
- **vīmaṃsā** (성찰적 탐구), **paññā** (지혜), **sacca-anussati** (진리에 대한 기억)
### 5. **현대적 적용**
- 이 개념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과 유사합니다.
- 자신의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 수용하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는 심리적 경향.
- **실천적 교훈**:
- "진리는 편견 없이 탐구해야 한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할 수 있음.
### 요약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는 **편견에 근거한 사유와 그에 따른 무비판적 수용**을 비판하는 불교 용어로, 확증편향과 유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지적합니다. 붓다는 이를 진정한 깨달음의 장애로 보았습니다.
sunijjhāyitaṃyeva hoti, tañca hoti rittaṃ tucchaṃ musā;
no cepi sunijjhāyitaṃ hoti, tañca hoti bhūtaṃ tacchaṃ anaññathā.
saccamanurakkhatā, bhāradvāja, viññunā purisena nālamettha ekaṃsena niṭṭhaṃ gantuṃ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 철저하게 사색했더라도 그것이 공허하고 텅 비고 거짓으로 판명되기도 하고
철저하게 사색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고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바라드와자여, 진리를 수호하는 지자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결정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옳지 않다.
yato naṃ samannesamāno visuddhaṃ mohanīyehi dhammehi samanupassati;
atha tamhi saddhaṃ niveseti, saddhājāto upasaṅkamati, upasaṅkamanto payirupāsati,
payirupāsanto sotaṃ odahati, ohitasoto dhammaṃ suṇāti, sutvā dhammaṃ dhāreti,
dhatānaṃ dhammānaṃ atthaṃ upaparikkhati, atthaṃ upaparikkhato 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dhammanijjhānakkhantiyā sati chando jāyati, chandajāto ussahati, ussahitvā tuleti,
tulayitvā padahati, pahitatto samāno
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
그를 조사하여 어리석음의 법들로부터 청정함을 관찰한 후에 그는 그에게 믿음이 생긴다.
믿음이 생긴 자는 그를 친견한다. 친견하면서 공경한다. 공경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귀 기울이면서 법을 배운다. 배우고 나서 법을 호지한다. 호지한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뜻을 자세히 살필 때에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인다.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에 열의가 생긴다.
열의가 생길 때에 시도한다. 시도할 때 세밀하게 조사한다.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
노력할 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 본다.
idha, brāhmaṇa, ekacco kāmarāgapariyuṭṭhitena cetasā viharati kāmarāgaparetena,
uppannassa ca kāmarāgassa nissaraṇaṃ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so kāmarāgaṃyeva antaraṃ karitvā jhāyati pajjhāyati nijjhāyati apajjhāyati.
바라문이여, 어떤 종류의 [14] 禪을 그분 세존께서는 칭송하지 않으셨을까요?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자는 감각적 욕망에 압도되고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혀 머물면서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을 품고서 생각하고 궁리하고 궁구하고 이리저리 궁구합니다.
“kathaṃ rūpañca, brāhmaṇa, so bhagavā jhānaṃ vaṇṇesi?
idha, brāhmaṇa, bhikkhu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 pe ...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evarūpaṃ kho, brāhmaṇa, so bhagavā jhānaṃ vaṇṇesī”ti.
바라문이여, 그러면 그분 세존께서는 어떤 종류의 禪을 칭송하셨을까요?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 제3선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 제4선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이런 종류의 禪을 그분 세존께서는 칭송하셨습니다.
atha kho te, pāpima, brāhmaṇagahapatikā anvāvisiṭṭhā dūsinā mārena
bhikkhū sīlavante kalyāṇadhamme akkosanti paribhāsanti rosenti vihesenti —
‘ime pana muṇḍakā samaṇakā ibbhā kiṇhā bandhupādāpaccā
“jhāyinosmā jhāyinosmā”ti pattakkhandhā adhomukhā madhurakajātā
jhāyanti pajjhāyanti nijjhāyanti apajjhāyanti.
그러자 두시 마라에게 사로잡힌 바라문 장자들은 계를 구족하고 덕스러운 성품을 지닌 비구들을
이렇게 비난하고 욕하고 괴롭히고 모욕했다.
'우리 조상의 발에서 태어난 비천하고 가무잡잡한 이들 까까머리 사문들은
'우리는 禪을 닦는 자다, 우리는 禪을 닦는 자다.'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게을러빠진 채 생각하고 궁리하고 궁구하고 이리저리 궁구한다.
425) '생각하고 궁리하고 궁구하고 이리저리 궁구한다.'는 jhāyanti pajjhāyanti nijjhāyanti apajjhāyant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생각하다(cintayati)를 뜻하는 jhāyanti(√dhyai, to meditate)라는 동사에 pa-(pra-)와 nis-와 apa-같은 각각 다른 접두어(upasagga)가 붙어서 그 강도를 더 높인 것 (vaḍḍhit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MA.ii.418)
이 구문은 본서 제3권 「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 §26에도 나타나는데 거기서 이 네 가지 동사는 다섯 가지 장애에 지배된 채로 禪수행을 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올빼미가 나뭇가지에서 생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생각하고 궁리하고 궁구하고 이리저리 궁구하듯이,
seyyathāpi nāma ulūko rukkhasākhāyaṃ mūsikaṃ maggayamāno
jhāyati pajjhāyati nijjhāyati apajjhāyati;
마치 나뭇가지 위에서 쥐를 찾고 있는 올빼미가 집중하고, 주시하고, 응시하고, 고정하듯이.
**seyyathāpi nāma**
- **seyyathā**: "마치 ...처럼" (just as, like)
- **pi**: 강조 접속사 (emphasis)
- **nāma**: "실제로" (indeed)
- **통합**: "마치 실제로 ...처럼" (Just as indeed...)
**ulūko**
- **ulūka**: "올빼미" (owl)
- 주격 단수 (nominative singular): **ulūko** ("올빼미는").
**rukkhasākhāyaṃ**
- **rukkha**: "나무" (tree)
- **sākhā**: "가지" (branch)
- 처격 단수 (locative singular): **rukkhasākhāyaṃ** ("나무 가지 위에서").
4. **mūsikaṃ maggayamāno**
- **mūsika**: "쥐" (mouse)
- 목적격 단수 (accusative singular): **mūsikaṃ** ("쥐를").
- **maggayamāno**: **√magg** (찾다)의 현재 분사 (searching for).
- "쥐를 찾고 있는".
[**√magg**는 팔리어(Pali) 동사 어근으로,
"찾다(to search)" 또는 "탐구하다(to seek)"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어근은 산스크리트어(Sanskrit)의 **√mṛg(मृग्)** 또는 **√mārg(मार्ग्)**와 관련이 있으며,
팔리어의 음운 변화를 반영한 형태입니다.
### **1. 어원과 형태**
- 산스크리트 **√mṛg(मृग्)**는 "찾다, 추구하다"를 의미하며, 팔리어에서는 **√magg**로 변화했습니다.
- 예: 산스크리트 **mṛgayati** (찾는다) → 팔리어 **maggati** (찾는다).
- **√mārg(मार्ग्)**는 "길을 찾다"라는 의미로, 팔리어 **magga** (길, 도로)와도 연결됩니다.
### **2. 활용 예시**
- **maggati** (현재 3인칭 단수): "그는 찾는다."
- **maggayamāna** (현재 분사): "찾고 있는" (중태 분사, -yamāna 접미사 사용).
- 예: **So dhanaṃ maggayamāno...** (그는 부를 찾고 있는...).
### **3. 관련 단어**
1. **magga** (명사): "길, 도로".
- 예: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고귀한 팔정도).
2. **maggakāraka** (명사): "탐구자".
3. **vimagga** (명사): "잘못된 길".
### **4. 통사적 특징**
- **√magg**는 주로 **중태(Atmanepada)**나 **사동형(Causative)**으로 활용됩니다.
- 사동형: **māgayati** (누군가에게 찾도록 시키다).
### **5. 불교 문헌에서의 사용**
- 초기 불교 경전(니까야)에서 **√magg**는 진리나 깨달음의 길을 탐구하는 의미로 자주 등장합니다.
- 예: **"Dhammaṃ maggena maggati"** (법[진리]을 길로 찾는다).
### **6. 주의사항**
- **√magg**와 **magga(길)**는 어원이 다릅니다.
- **magga(길)**는 산스크리트어 **mārga(मार्ग)**에서 유래한 별개의 명사입니다.]
5. **jhāyati pajjhāyati nijjhāyati apajjhāyati**
- **√jhā** (집중하다, 명상하다)의 다양한 파생 동사:
- **jhāyati**: "집중하다" (meditates, focuses).
- **pajjhāyati**: "열심히 주시하다" (intently gazes, burns with focus).
- **nijjhāyati**: "응시하다" (stares closely).
- **apajjhāyati**: "고정시키다" (fixates).
- 반복적 사용은 **집중의 강도**를 강조합니다.
**해설 (Interpretation):**
이 구절은 **집중의 다양한 단계**를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 **올빼미**의 사냥 행동(**쥐를 찾는 것**)은 수행자의 **명상적 집중**(jhāna)에 비유됩니다.
- 동사 **jhāyati ~ apajjhāyati**는 점차적인 심화 과정을 나타냅니다:
1. **jhāyati**: 초점 맞추기 (기본 집중).
2. **pajjhāyati**: 열정적 주시 (내적 열의 동반).
3. **nijjhāyati**: 대상에 완전히 몰입 (외부 세계 배제).
4. **apajjhāyati**: 하나됨의 상태 (대상과의 융합).
불교 문맥에서 이 비유는 **사띠(正念, mindfulness)**와 **삼매(定, concentration)**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올빼미의 예리함은 **지혜(paññā)**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 구절은 《상응부(Saṃyutta Nikāya)》나 《장부(Dīgha Nikāya)》 등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며, 수행자의 마음 훈련을 강조합니다.
idha, bhikkhave, ekacce moghapurisā dhammaṃ pariyāpuṇanti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te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tvā tesaṃ dhammānaṃ paññāya atthaṃ na upaparikkhanti.
tesaṃ te dhammā paññāya atthaṃ anupaparikkhataṃ na nijjhānaṃ khamanti.
te upārambhānisaṃsā ceva dhammaṃ pariyāpuṇanti itivādappamokkhānisaṃsā ca.
yassa catthāya dhammaṃ pariyāpuṇanti tañcassa atthaṃ nānubhonti.
tesaṃ te dhammā duggahitā dīgharattaṃ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i.
taṃ kissa hetu? duggahitattā, bhikkhave, dhammānaṃ.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과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716)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716) “원문의 anupaparikkataṃ(자세히 살피지 않음)은 anupaparikkhatānaṃ으로 읽어서 그들을 수식하는 소유격의 복수형으로 해석해야 한다. '확립 되지 못한다.(na nijjhānaṃ khamanti).'는 것은 na upaṭṭhahanti(확립되지 못한다.), na āpāthaṃ āgacchanti(그 영역에 들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이 부분에서 계, 정, 혜, 도, 과, 윤회(vaṭṭa), 윤회에서 벗어남(vivaṭṭa)을 설했다고 이렇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이다.”(MA.ii.106)
idha pana, bhikkhave, ekacce kulaputtā dhammaṃ pariyāpuṇanti —
suttaṃ, geyyaṃ, veyyākaraṇaṃ, gāthaṃ, udānaṃ, itivuttakaṃ, jātakaṃ,
abbhutadhammaṃ, vedallaṃ.
te taṃ dhammaṃ pariyāpuṇitvā tesaṃ dhammānaṃ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nti.
tesaṃ te dhammā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taṃ nijjhānaṃ khamanti.
te na ceva upārambhānisaṃsā dhammaṃ pariyāpuṇanti na itivādappamokkhānisaṃsā ca .
yassa catthāya dhammaṃ pariyāpuṇanti tañcassa atthaṃ anubhonti.
tesaṃ te dhammā suggahitā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a saṃvattanti.
taṃ kissa hetu? suggahitattā bhikkhave dhammānaṃ.
지혜로 의미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그 가르침은 관조를 견딘다.<*법들은 nijjhāna를 용인들한다.>
그들은 남을 비난하거나 독단적 주장을 버리려는 목적으로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들이 법을 배우는 목적을, 그들은 그 목적을 온전히 깨닫는다.
tesaṃ: Genitive plural ("그들에게").
te dhammā: "그 법들" (those teachings).
paññāya: Instrumental ("지혜로").
atthaṃ upaparikkhataṃ: "의미를 탐구하는 [자에게]" (for one who examines the meaning).
nijjhānaṃ khamanti: "관조를 견디다" (endure contemplation).
yassa kho, bhikkhave, ime dhammā evaṃ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ayaṃ vuccati — ‘dhammānusārī,
비구들이여, 통찰지로 충분히 사색하여448) 이러한 법들을 인정하는 자를 일러
법을 따르는 자449)라 한다.
448) “'충분히 사색하여(mattaso nijjhānaṃ khamanti)'란 적합하게 관찰하면서 사색한다(pamāṇato olokanaṁ khamanti)는 말이다.”(SA.ii.346)
여기서 충분히로 옮긴 mattaso와 적합하게로 옮긴 pamāṇato는 제한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특히 pamāṇa는 무량으로 옮기는 appamāṇa의 반대가 되는 단어이다.(본서 제4권 「소라고둥 불기 경」(S42:8) §17의 주해참조) 그러므로 어느 '정도로만 사색하여'로 옮길 수 있다. 역자는 보디 스님의 'a sufficient degree'라는 번역을 존중하여 이렇게 옮겼다.
“관찰(olokana)이란 사성제의 관통(sacca-abhisamaya)이라 불리는 봄[見, dassana]을 뜻한다.”(SAȚ.ii.245)
사성제의 관통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XII.92~103을 참조할 것. 관통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사꺄무니 고따마 경」 (S12:10) §4의 주해를 참조할 것.
449) '법을 따르는 자(dhamma-anusāri)'에 대해서는 본경 §4 '믿음을 따르는 자'의 주해를 참조할 것.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물질을 초월한 그 평온한 해탈[경지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지 않고 머물며,
지혜로 보아 일부의 번뇌가 소멸되었습니다.
또한 여래가 설한 법들은 그의 지혜로 다소간 사유되어 수용됩니다.
idha, bhikkhave, ekacco puggalo ye te santā vimokkhā atikkamma rūpe āruppā
te na kāyena phusitvā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tathāgatappaveditā cassa dhammā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api cassa ime dhammā honti, seyyathidaṃ —
saddhindriyaṃ, vīriyindriyaṃ, satindriyaṃ, samādhindriyaṃ, paññindriyaṃ.
ayaṃ vuccati, bhikkhave, puggalo dhammānusārī.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물질을 초월한 무색계773)의 평화로운 해탈을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머물며,
또 그는 통찰지로써 보지만 아직 번뇌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래가 선언하신 법을 그의 통찰지로 충분히 사유하여 받아들이고
또한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마음챙김의 기능, 삼매의 기능, 통찰지의 기능의 이런 법을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법을 따르는 자라 한다.
772) “법을 따르기 때문에 '법을 따르는 자(dhamma-anusārī)'이다. 법이란 통찰지(paññā)이다. 통찰지를 앞세운 도를 닦는다는 뜻이다. [아래 21의] '믿음을 따르는 자(saddhānusārī)'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 이 둘은 예류도의 경지에 머무는 자들(sotāpatti-magga-ṭṭhā)이다. 『인시설론』에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도닦는 자가 통찰지의 기능[慧根, paññindriya]이 강하고(adhimatta), 통찰지를 가져오고 통찰지를 앞세운(paññā-pubbaṅgama) 성스러운 도(ariya-magga)를 닦는 자를 법을 따르는 자라고 한다.”(Pug.74)라고, 마찬가지로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도닦는 자가 믿음의 기능[信根, saddhindriya]이 강하고, 믿음을 가져오고 믿음을 앞세운 성스러운 도를 닦는 자를 믿음을 따르는 자라고 한다.”(Pug.74)라고 여기서 설명한 것은 간략한 것이다. 상세한 것은 『청정도론』의 통찰지의 수행 편(paññā-bhāvanādhikara, Vis.XVII.74~78)에 설명되어 있다.”(MA.iii.190~191)
yo, bhikkhave, ime dhamme evaṃ pajānāti evaṃ passati, ayaṃ vuccati —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no’”ti.
비구들이여, 이러한 <*66>법들을 이와 같이 알고 보는 자를 흐름에 든 자[預流者]라 하나니,
그는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idha, bhikkhave, saddhājāto upasaṅkamati, upasaṅkamanto payirupāsati,
payirupāsanto sotaṃ odahati, ohitasoto dhammaṃ suṇāti, sutvā dhammaṃ dhāreti,
dhatānaṃ {dhātānaṃ (ka.)} dhammānaṃ atthaṃ upaparikkhati,
atthaṃ upaparikkhato dhammā nijjhānaṃ khamanti,
dhammanijjhānakkhantiyā sati chando jāyati, chandajāto ussahati, ussāhetvā tuleti,
tulayitvā padahati, pahitatto samāno kāyena ceva paramasaccaṃ sacchikaroti,
paññāya ca naṃ ativijjha passati.
비구들이여, 여기 스승에 대해 믿음이 생긴 자는 스승을 친견한다. 친견하면서 공경한다.
공경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귀 기울이면서 법을 배운다. 배우고 나서 법을 호지한다.
호지한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뜻을 자세히 살필 때에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인다.
법을 사유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에 열의가 생긴다. 열의가 생길 때에 시도한다.
시도할 때 세밀하게 조사한다. 세밀하게 조사한 뒤 노력한다.
노력할 때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실현하고 통찰지로써 그것을 꿰뚫어본다.
cf. tesaṃ te dhammā paññāya atthaṃ upaparikkhataṃ nijjhānaṃ khamanti.
여러 측면에서 살펴서 yoniso upaparikkhato → 추적한 정보를 종합하여 nijjhāyato → passato 본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 강가 강이 포말덩이를 싣고 흐르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포말덩이를]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포말덩이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seyyathāpi, bhikkhave, ayaṃ gaṅgā nadī mahantaṃ pheṇapiṇḍaṃ āvaheyya.
tamenaṃ cakkhumā puriso passeyya nijjhāyeyya yoniso upaparikkheyya.
tassa taṃ passato nijjhāyato yoniso upaparikkhato
rittakaññeva khāyeyya, tucchakaññeva khāyeyya, asārakaññeva khāyeyya.
kiñhi siyā, bhikkhave, pheṇapiṇḍe sāro?
비구들이여, 마치 이 갠지스 강이 큰 거품 덩어리를 흘려보낸다면,
눈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관찰하고, 제대로 살펴보았을 때,
그것은 공허하게, 허무하게, 핵심 없이 보일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거품 덩어리에 무슨 핵심이 있겠습니까?
- **Seyyathāpi, bhikkhave**
- "비구들이여, 마치 ...와 같이" (비유를 시작할 때 쓰는 표현).
- **ayaṃ gaṅgā nadī mahantaṃ pheṇapiṇḍaṃ āvaheyya**
- "이 갠지스 강이 큰 거품 덩어리를 흘려보낸다면"
- ayaṃ = 이.
- gaṅgā nadī = 갠지스 강.
- mahantaṃ = 큰.
- pheṇapiṇḍaṃ = 거품 덩어리(pheṇa + piṇḍa).
- āvaheyya = 흘려보내다(ā√vah의 조건법).
- **tamenaṃ cakkhumā puriso passeyya nijjhāyeyya yoniso upaparikkheyya**
- "눈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관찰하고, 제대로 살펴보면"
- tamenaṃ = 그것을(taṃ + enaṃ).
- cakkhumā = 눈이 있는(현명한).
- puriso = 사람.
- passeyya = 보다(√dis의 조건법).
- nijjhāyeyya = 깊이 관조하다(√jhe의 조건법).
- yoniso = 적절히, 제대로.
- upaparikkheyya = 살피다(upa + √ikkh의 조건법).
- **tassa taṃ passato nijjhāyato yoniso upaparikkhato**
- "그가 그것을 보고, 관찰하고, 제대로 살핀 후"
- tassa = 그의.
- passato = 보는(현재 분사).
- nijjhāyato = 관조하는(현재 분사).
- upaparikkhato = 살피는(현재 분사).
- **rittakaññeva khāyeyya, tucchakaññeva khāyeyya, asārakaññeva khāyeyya**
- "그것은 공허하게 보이고, 허무하게 보이며, 핵심이 없게 보일 것입니다"
- rittakaṃ = 공허한.
- tucchakaṃ = 텅 빈.
- asārakaṃ = 핵심 없는.
- eva = 강조 접미사.
- khāyeyya = 보이다(√khyā의 조건법). *khāyati:[khā + ya] seems to be; appears like.
- **kiñhi siyā, bhikkhave, pheṇapiṇḍe sāro?**
- "비구들이여, 거품 덩어리에 무슨 핵심이 있겠는가?"
- kiṃ = 무엇.
- hi = 왜냐하면.
- siyā = 있다(√as의 조건법).
1. **거품(pheṇapiṇḍa)의 비유**
- **5온(五蘊, pañca-khandha)**을 상징합니다.
- 거품은 **형상(rūpa)**의 덧없음을,
- 강물의 흐름은 **집착(taṇhā)**의 지속성을 비유합니다.
- 《**Pheṇapiṇḍūpama Sutta (SN 22.95)**》에서 부처님은 "5온은 거품과 같다"고 설하셨습니다.
2. **세 가지 특징**
- **rittakaṃ (공허함)**: 모든 현상이 실체 없음(空, suññatā).
- **tucchakaṃ (허무함)**: 궁극적 가치의 부재.
- **asārakaṃ (핵심 없음)**: 고정된 자아(我, atta)의 부재.
3. **수행자의 관찰**
- **cakkhumā puriso (눈이 있는 사람)**: 진리를 보는 지혜(paññā)를 가진 이.
- **yoniso upaparikkhato (제대로 살핌)**: **정견(正見, sammā-diṭṭhi)**에 기반한 분석.
4. **핵심 질문: "거품에 핵심이 있는가?"**
- 이는 **"5온에 '나'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무아(anattā)**를 깨닫도록 유도합니다.
### **4. 문맥적 이해**
이 비유는 **삼법인(三法印, tilakkhaṇa)**—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 거품처럼 덧없는 현상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며,
- 지혜로 현상의 본질을 직관하도록 가르칩니다.
이 구절은 《**잡아함경**》이나 《**상응부**》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하며, 불교 철학의 핵심 교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evameva kho, bhikkhave,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 pe ...
yaṃ dūre santike vā taṃ bhikkhu passati nijjhāyati yoniso upaparikkhati.
tassa taṃ passato nijjhāyato yoniso upaparikkhato rittakaññeva khāyati,
tucchakaññeva khāyati, asārakaññeva khāyati. kiñhi siyā, bhikkhave, rūpe sāro?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물질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물질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고
지혜롭게 관찰해보면 그것은 텅 비고 공허한 것이로다.
yathā yathā nijjhāyati, yoniso upaparikkhati.
rittakaṃ tucchakaṃ hoti, yo naṃ passati yoniso.
그가 어떻게 관조하든지, *←* 바르게 살펴보면,
*→* 그것을 바르게 보는 이에게 공허하고 허무할 뿐이다.
santāvuso, manopadosikā nāma devā. te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nti.
te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ntā aññamaññamhi cittāni padūsenti.
te aññamaññaṃ paduṭṭhacittā kilantakāyā kilantacittā.
te devā tamhā kāyā cavanti.
‘존자들이여,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 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했기 때문에 서로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로서로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itthī ca purisaṃ ativelaṃ upanijjhāyati puriso ca itthiṃ.
tesaṃ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taṃ sārāgo udapādi, pariḷāho kāyasmiṃ okkami.
te pariḷāhapaccayā methunaṃ dhammaṃ paṭiseviṃsu.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들이 서로서로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자 애욕이 생겨났고
몸에는 [애욕으로 인한] 열이 생겨났다.
그들은 [애욕의] 열을 반연하여 성행위를 하게 되었다.
napi mātugāmena saddhiṃ sañjagghati saṃkīḷati saṃkelāyati;
api ca kho mātugāmassa cakkhunā cakkhuṃ upanijjhāyati pekkhati ... pe ...
바라문이여, 다시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바르게 청정범행을 한다고 서원하고,
또 실제로 여자와 함께 둘이서 성행위를 하지도 않고,
여자로 하여금 향수를 바르게 하거나, 주무르게 하거나, 목욕하게 하거나, 만지게 하지도 않는다.
여자와 함께 농담하고, 놀이하고, 유희를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눈으로 여자의 눈을 깊이 응시하고 쳐다본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바라고, 만족을 느낀다. …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santi, bhikkhave, manopadosikā nāma devā, te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nti.
te ativelaṃ aññamaññaṃ upanijjhāyantā aññamaññamhi cittāni padūsenti.
te aññamaññaṃ paduṭṭhacittā kilantakāyā kilantacittā . te devā tamhā kāyā cavanti.
비구들이여,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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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중 번역은 초불 번역이 일부이고 나머지 분석과 번역은 요즘 많이 회자되는
중국의 AI. DeepSeek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