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강변을 따라
오월이 중순에 접어든 목요일이다. 근래 자연 풍광을 함께 완상하는 두 지기와 걸음을 같이 하기로 된 날이다. 셋은 며칠 전 함안 악양 둑방길을 걷고 백곡교를 건너 남강 하류 적곡제를 더 걸었다. 인적이 없는 제방의 정자에서 먹었던 점심 차림은 가히 황제 밥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 호사를 누렸다. 그날 헤어지면서 다시 길을 나서기로 한 곳이 밀양 상동의 장미 꽃길이었다.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 이웃 동 꽃대감 꽃밭으로 가보니 친구는 아래층 밀양댁 할머니와 꽃을 살피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도 그 틈새 끼어 잠시 청자가 되어주었다. 이후 하루를 잘 보내십사하고 나는 나대로 길을 나서 건너편 아파트단지 지기 차에 동승 창원역 근처로 이동 셋이 합류해 승용차를 몰아 교외로 나갔다. 용강고개를 넘어 가술에서 수산교를 건넜다.
한때 영남권 신공항이 들어설 거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하남 명례 들판 보리는 누렇게 익어 수확기가 다가왔다. 평촌을 지난 상남의 넓은 들판도 보리 경작지가 상당했다. 벼나 보리는 파종과 수확이 기계화되어 다른 작물에 비해 일손이 적게 들지 싶었다. 일행은 밀양 시내를 관통해 범북고개를 넘어간 안인리로 가는 찻길로 들었는데 밀양시 상동면으로 경북 청도군과 인접했다.
안인리는 내가 젊은 날 초등 교단 두 번째 근무지라 그곳 지리를 잘 아는 편이다. 포평마을은 밀양강이 흐르는 하중도 곁 형성된 충적토라 농사가 잘되는 곳이다. 요즘도 깻잎과 풋고추 농사로 다른 곳에 비교해 소득이 높은 마을이다. 운문사 계곡에서 흘러온 밀양강이 빈지소 벼랑에 부딪힌 뒤 포평마을을 감싸 흐르면서 활처럼 휘어진 긴 제방 둑길에 덩굴장미를 심어 가꾸었다.
밀양강을 가로지른 안인교 아래 천변에 차를 세우고 장미 꽃길이 조성된 둑길을 걸었다. 사람 손길에 가꾸어진 대단한 꽃길임을 실감했다. 철제 아치에다 덩굴이 타고 가도록 키운 장미는 주로 빨간색이었지만 간간이 토종 찔레꽃도 보여 변화를 주기도 했다. 밀양강 건너 평릉마을 앞으로는 국도 25호선이 청도로 향해 올라갔다. 제방 중간쯤 쉼터에서 커피를 들며 근경을 조망했다.
쉼터에서 들판 복판 포평마을 안길을 걸으니 감자밭은 자주 꽃이 피었다. 어느 집 마당귀 감나무는 감꽃이 피어 눈길을 끌게 했다. 마을 회관을 지나다 뵌 할머니에게 40년 전 제자 이름을 여쭈었더니 어슴푸레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 골목에서 제자와 항렬이 같은 문패가 걸려 있음을 본 것으로 만족했다. 이후 차를 세워둔 곳으로 와 상동역 일대 장미 꽃길을 더 둘러봤다.
상동역에서 다시 안인리로 되돌아 와 신안마을에서 차량에 탑승한 채 제방의 장미꽃을 감상했다. 길고 긴 제방에 핀 장미꽃 열병을 받으며 평릉교를 건너 산외면 기회 송림으로 내려갔다. 송림 숲 하단 밀양강 천변 마삭 꽃향기가 번지는 쉼터에서 준비해간 점심 자리를 펼쳤다. 지기가 솜씨를 발휘한 찌개는 가스버너로 데워 라면과 같이 먹은 한 끼는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았다.
점심 식후 문단 언저리를 화제로 삼아 환담을 나누다 자리를 정리하고 천변을 따라 용활동으로 나갔다. 일행은 밀양강이 일자봉을 돌아가는 기슭 위치한 금시당으로 갔다. 금시당은 조선 중기 여주 이씨 광진이 세운 별서로 노거수 은행나무를 비롯한 여러 조경수와 고색창연한 한옥이 문화재급이었다. 여주 이씨는 밀양 부북면에 세거지를 정해 살아온 지역에서 명문가 반열에 들었다.
금시당에서 밀양강을 건너 월연정으로 갔다. 월연정 역시 금시당과 같은 여주 이씨 태가 조선 중기 세운 별서로 강변 풍광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였다. 본래 ‘월연사’라는 절터였다고 전하는데 조선 개국과 함께 불교가 쇠락기에 들자 권력층 유림이 지은 별장인 듯했다. 먼저 들린 향내 유지의 친절한 안내를 받은 뒤 정자를 나와 옛 철길 터널과 암새들 강변길을 둘러 창원으로 왔다. 2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