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 한명회(韓明澮·1415∼1487)는 칠삭동이요, 당나귀상이다.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지만 결국에는 두 딸을 왕후로 만들고, 자신은 영의정까지 오르는 등 한때를 풍미했다.
그의 치밀함과 과단성은 1453년 계유정난때 여실히 드러난다. 5일 동안 혼자 방안에 들어앉아 대신들의 생과 사를 갈라놓을 ‘생살부(生殺簿)’를 만들어 수양대군에게 건넨다.
수양대군은 김종서 황보인 등 반대파 이름이 적힌 생살부에 따라 거사를 단행해 전권을 쥐었고, 한명회는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생살부’는 어느 때부터인가 ‘살생부’로 바뀌어 심심치않게 등장하고 있다. 계유정난처럼 살생부는 대선 또는 지방선거 직후나 총선을 앞둔 시기 등 격변기에 주로 거론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누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직에서 배제해야 한다거나, 공천에서 탈락시켜야 한다는 등등의 내용이 요즘 살생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직후에도 ‘서울시 공무원 살생부’ 논란이 있었다. 이 당선인은 이에 대해 당시 한 참모가 선거운동을 돕지 않은 시 공무원 명단을 들고오자 보지도 않은 채 “없애버리라”고 호통쳤다고 2005년 밝힌 바 있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살생부 얘기가 나온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영남지역 의원 3명과 수도권 의원 2명을 공천하지 말아야 한다는 괴문서가 당내에 나돈다고 한다.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의원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친박(親朴)계의 좌장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이 공개회의석상에서 “살생부까지 나온 것은 대통령 당선인 주변의 철없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통령 당선인측 인사들은 살생부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생부에 자신의 이름이 올랐다고 가정해보라.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공직사회에서는 ‘실국(室局) 살생부’가 언급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에 따라 통폐합될 실국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당선인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겠다”고도 했다. 공직사회에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살생부가 추가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듯하다. 살생부라는 단어를 종종 접하면서 지금이 격변기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출처:국민일보 글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
[설왕설래]살생부
21세기 개명 천지에 별일이다. 열린우리당 사무처
노조가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당시 본회의장 밖에서 환호했던 민주당과 한나라당 출신 보좌관 70여명의 이름 공개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살생부(殺生簿)’로 불리는 이 명단은 탄핵 보좌관들을 가담 정도에 따라 ABC급으로 분류했으며, ‘죄질’이 나쁜 A급은 10여명이란다. 여론의 용광로여야 할 집권여당측이 ‘다양성의 조화’를 몰각한 속좁은 처사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살생부란 말 그대로 죽고 살 자를 가려내는 장부를 뜻한다. 우리 역사에서 살생부는 훗날 조선조 7대 왕인 세조가 된 수양대군이 한명회로 하여금 자신의 집권을 반대할 만한 대신들을 죽이기 위해 명부를 작성한 데서 유래한다. 실제 세조의 부왕인 세종 때 6진 개척 등 무공이 큰 좌의정 김종서 등이 참살됐다.
그런데 이 살생부가 다시 부활한다고 하니 시대의 역류를 느낀다.
우리는 그동안 ‘총선 낙천 살생부’ ‘기업 워크아웃 살생부’ ‘자치단체장 선거 결과와 상대 후보에 줄 선 공무원 살생부’ 등을 들어보았지만, 모두 정치성이 개재된 순수하지 못한 살생부는 도로(徒勞)에 그쳤음을 숱하게 보아왔다. 살생부설은 줄서기, 복지부동, 아군 아니면 적군식의 이분법적 편가르기 등 우리 사회에 퇴영적 문화만을 남겼을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과 지역, 세대 간 갈등이 비등점에 이르러 사회 붕괴의 우려가 높다. 이러한 때 화합에 힘써야 할 집권여당 사무처 노조가 집안 식구마저 품지 못하고 ‘살생부’ 운운하는 일은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인류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는 “사랑스러운 세계를 원하거든 네 적을 포함해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우주는 홀로 존재하지 않듯, 사람도 함께 사랑을 가꿔야 한다. 그럼, ‘탄핵 살생부’는 접어야 하지 않을까.
출처:세계일보 글.황종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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