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술붕어입니다.
어제 과거에는 봄 가뭄이 심하여
모내기를 못 하다가
6월 장마 때 비가 오면 모내기를 했는데
일손이 부족하여 군인과 학생들을 동원했다고 했는데
모내기 지원에 따른 잊지 못 할 추억이 있습니다.
전경대를 제대하고 경찰이 되어
부안 상서 기동타격대 103 전경대에 근무를 하면서
나는 부대 보급담당으로
매일 시장 보는 일이 주 업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출동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가는 곳은 부안 계화도 간척지 모내기 지원.
부안 시내 고등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일이었는데
당시 수송차량은 “다지 차”.
다지 차는?
미국에서 옥수수 농장 등에서 사용하던 차를
폐기처분 직전에 우리나라에 원조를 해 준 고물 자동차로
차 무게 중심이 높아 잘 넘어져 사고가 자주 났습니다.
수송대열 내 앞에는 동기생이 선임 탑승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안 여고생들을 가득 태운 다지 차가
물컹거리는 농로 길을 가다가 바퀴가 빠져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어! 어! 어! 하는 순간
논바닥으로 벌러덩 뒤집어져 버렸습니다.
순간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화를 신은 채로 논에 뛰어 들어 가
겹겹이 쌓인 여고생들을 논 밖으로 끌어내는데
비에 잦은 생쥐 꼴의 여고생들이
울고불고 아우성을 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논이 물컹거렸기 때문이었던지
천우신조로 가벼운 찰과상 외에
죽거나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여고생만 한 트럭 논물로 목욕시킨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3년하고 적성이 맞지 않아 그만 두었는데
젊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첫댓글 90년대초까지도 봄ㆍ가을 대민지원 다녔죠ㅋ 정이있던 사회였죠
ㅎㅎ
맞습니다
요즘은 아마 힘들 겁니다
아마도 그랬다가는
운전사도 나라도 손해배상
책임져야 되겠죠 ㅎ
그럼요
신문에 날 일이었죠
당시 중대장 이었던 박금용 경감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국민학교 삼학년때 낫 들고
대민지원나가 보리베었던 기억이 납니다ㆍㆍ
그때 손가락을 크게 베었는데 그 흉터가 지금도 손가락에 남았어요ㆍㆍ
ㅎㅎ
저도 똑 같네요
저도 보리 베다 다친 흉터 지금도 왼 손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