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로는 말이 없다. 꼭 필요한 말 말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웃지도 않는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이로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은 평화로운 곳이었다. 매일 끼니 걱정이 끊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에 커다란 공장이 들어서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깨끗하던 시내에 시커먼 썩은 물이 흐르고, 공기는 하얀 빨래를 널어놓지 못할 정도로 탁해졌다. 메뚜기나 잠자리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고, 아침을 알리는 까치의 경쾌한 깍깍 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변한 건 사람들이다. 밤이고 낮이고 대문이 열려있던 풍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바쁘게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인사도 하지 않는다. 돈 때문에 멱살을 잡는 일은 거의 매일 일어나고, 이제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자이로는 어렸을 때 부모를 잃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둘이 살면서도 외롭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 없이 엄마 아빠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노인과 소년을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눈발이 날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작 다발이 문 앞에 놓여졌고, 자기들의 식사는 거르기 일쑤면서도 돌아가면서 챙겨주는 자이로의 끼니는 빼먹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자이로의 엄마였고 아빠였다. 밝고 상냥한 자이로에게 마을 아이들은 전부 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달라진 걸 가장 먼저 느꼈고, 상처도 많이 입었다. 자이로는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에 기대하지 않았다. 아직 어리지만 영리하고 날렵한 자이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법 있었다. 할머니와 두 식구 입에 풀칠하는 정도야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로웠다. 아닌 척 했지만, 누구든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 장례를 치르며 자이로는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조금의 미련도 없었고, 자이로를 붙잡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자이로는 칼 한 자루를 벗삼아 곳곳을 여행하고 다녔다. 수많은 모험을 겪으며 실력을 쌓아갈 수록 슬픈 표정은 우울한 표정으로, 또 무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자이로는 아무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허황된 이야기에 정신을 팔리기에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 생각이 났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진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이로는 마침내 결심했다. 구슬을 찾아 나서기로. 그리고 마을로 돌아갈 것이다. 어쩌면 다시 웃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샤무 (Shamoo) - 울보 마법사
샤무의 집안은 대대로 마법사 가문이다. 페어리랜드 설립 과정에서 언데드들의 역습에서 대활약한 19대조 할머니가 없었다면 이 땅은 여전히 언데드들의 황량한 무덤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19대조 할머니의 얼굴은 화폐에 새겨져 아직도 그 업적이 기려지고 있다. 페어리랜드력 540년 악성 열병이 대륙을 휩쓸었을 때 7대조 할아버지가 보여준 활약 역시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샤무의 할아버지로 말하자면 치유력이나 언데드에 대한 정화력은 특출나지 않았다. 하지만 각지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마법 주문을 집대성해 열 두 권의 전집을 완성해내었다. 할아버지의 전집은 그 어떤 위대한 마법사의 업적보다도 훌륭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샤무의 부모는 할아버지의 위업을 훌륭하게 발전시켰다. 마법학교를 세워 숨어있는 인재들을 발굴해서 체계적으로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나갔다. 그리고 승리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딸 문제에서는 무력했다. 샤무 집안 아이들은 걸음마보다도 마법을 먼저 배운다. 샤무는 가문의 그 오랜 역사상 처음으로 마법에 재능을 보여주지 못한 아이였다. 마법이 싫은 건 아니다. 그리고 늘 최선을 다했다. 단지 재주가 없을 뿐이다. 멀쩡한 탄탄대로에서도 늘 넘어져 무릎엔 상처가 끊일 날이 없고, 툭하면 수업 시간에 폭발을 일으켜 다들 같은 조가 되는 걸 꺼리고, 언데드의 언자만 들어도 눈물부터 글썽거리기 시작하는 샤무가 마법 수련을 수월하게 해낼 리가 없다.
샤무는 잘 하고 싶었다. 악동들에게 찢겨나간 나비 날개를 다시 붙여주고, 덫에 걸린 토끼 다리를 아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샤무가 할 수 있는 건, 나머지 공부에 고민을 거듭하다 지쳐 잠드는 것뿐이었다.
부모님들은 샤무를 다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꼭 마법사가 될 필요는 없다며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격려해주셨다.
"내가 되고 싶은 건 마법사인데..."
하지만 되고 싶다고 다 될 수는 없다. 샤무는 마침내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만일 어머니가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어엿한 재봉사나 정원사가 되었을지 모른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건 과로와 지나친 책임감 때문이었다. 마법도 듣지 않았다. 몸 고생 마음 고생에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아버지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가떨어졌다. 빛나는 판단력이나 강철 같은 의지, 단호한 행동력 같은 게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샤무는 있는 힘을 다해 용기와 의지를 끌어모았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설의 오브 얘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혹시 있더라도 그걸 찾아낼 가능성은 더 낮다.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발견되지 않은 걸 울보 샤무가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샤무는 일어섰다. 물개 인형이나 곰돌이 베개 같은 중요한 물건까지 남겨둔 채로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그리고 떠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낫다.
스벤 (Sven) - 요리사 바이킹
스벤은 바이킹의 왕이다. 거친 바이킹들을 휘어잡는 호탕한 성격과 카리스마, 그리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도끼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기분 좋은 일이 있든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든 일단 괴팍하게 웃고 보는 버릇이 있다. 스벤이 한 번 웃었다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법, 동료들은 일단 긴장한다.
어울리지 않게 스벤의 취미는 요리다. 스벤의 도끼 실력은 순전히 생선을 다듬다가 단련된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둔탁한 도끼날로 생선 비늘을 벗겨내고 포를 뜨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그 얘기가 전혀 근거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벤이 잘 하는 건 거기까지다. 완벽하게 다듬은 생선을 가지고 기껏 만들어내는 게 겉은 타고 속은 안 익은 튀김, 바닷물보다 더 짠 수프, 이빨 부러뜨리기 딱 좋은 딱딱한 파이 같은 것들이다.
동료들은 반쯤은 안스러워서, 또 반쯤은 겁을 먹어서 별 불평 없이 요리를 먹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그들의 인내심도 드디어 한계에 이르렀다. 막내 바이킹 호콘이 숟갈을 내던진 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모두 한꺼번에 불평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겁에 질렸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스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예의 호탕한 웃음도 없었다. 스벤은 말없이 현창으로 내려가 선실에 틀어박혔다.
화를 낼까 겁에 질렸던 동료들이 오히려 스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벤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선실에서 며칠이나 버텼다. 그리고 꼬박 사흘만에 마침내 문을 박차고 나왔다. 수염이 텁수룩하고 뺨이 훌쭉해서 초췌해졌지만 눈은 반짝였다.
"나 요리 수업을 떠날거야! 토르신에 걸고 맹세하지만,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아."
감히 스벤을 말리고 나설 배짱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나섰더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귀에 경 읽기가 따로 있나, 스벤은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벤은 달랑 도끼 한 자루만 지고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많은 모험을 겪었다. 하지만 늘어가는 건 도끼 실력뿐. 냄비 대신 사용하는 투구가 그을리고 또 그을려서 새카매졌는데도 스벤의 요리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이래가지고는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는 면목이 없었다. 스벤이 오브에 대한 소문을 들은 건, 고향에 다시 돌아가는 걸 거의 포기한 때였다. 진정으로 원하는 거라면 어떤 소원이든 단 한가지를 들어준다는 오브 이야기는 지친 스벤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내개 해 주었다.
크림 (Cream) - 장난꾸러기 천사
크림은 정말 깜찍하다. 통통한 뺨에 반짝이는 눈, 찰랑대는 분홍빛 머리카락도 예쁘지만 말할 때의 목소리, 그리고 표정이 너무 사랑스럽다. 같은 말이라도 크림이 하면 다르게 들린다. 누구든 귀를 기울이고 홀려서 듣게 된다. 하늘나라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귀여운 천사다. 하지만 머리속은 발칙하기 그지없다. 입만 열면 거짓말에 머리속은 누군가를 골탕먹일 생각으로만 꽉 차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멋지게 실행할 능력과 결단력 역시 충분하다. 그래도 천사들 중 크림을 싫어하는 건 아무도 없다.
백 년에 한 번 세상 여기저기 나가 있던 천사들이 모두 돌아오는 센티니얼 홈커밍 데이, 모처럼 차려진 진수성찬에 배를 두드리며 식당에서 나오던 지식의 천사 케루빔이 크림이 계단에 슬쩍 걸쳐놓은 바나나 껍질에 보기좋게 미끄러져 버렸다. 케루빔은 그 통통한 뺨을 온통 시뻘겋게 만들며 화를 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을 한 크림이 장미꽃잎 같은 핑크빛 입술로 조잘조잘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수습된 분위기로 이어진 다과회에서 바꿔쳐놓은 소금통과 설탕통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림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늘 즐겁기만 했다. 매일 새로운 말썽을 개발해냈고, 다른 천사들은 화를 내기보다는 재미있어 했다. 하늘 나라는 정말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지만 그만큼 지루한 곳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크림의 행동은 단조로운 매일매일의 특별한 이벤트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얼마든지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달콤한 미소와 사랑스러운 몸짓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느날 크림은 대천사장이 오천 년 간 숙성시킨 술항아리를 깨버렸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애교와 미소로 어영부영 넘어가려고 했지만 때가 좋지 않았다. 만성 변비에 시달리던 대천사장은 그 날로 꼭 일 주일째 화장실에 가지 못했던 것이다. 대천사장은 크림의 방글거리는 얼굴에 냅다 소리를 지른 첫번째 천사가 되었다. 그리고 술항아리를 깬 사실보다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가려고 한 사실을 문제삼아 크림을 문책했다.
많은 천사들이 대천사장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한편, 크림에게도 사과를 종용했다. 하지만 크림은 발끈해서 앞뒤 재지 않고 하늘나라를 뛰쳐나와 버렸다. 이번에는 일부러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실수였는데 그런 식의 대접을 받은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두고 보라고, 다시 원래대로 해 주면 되잖아. 정말 밴댕이 소갈딱지하고는."
크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떠나 있은 적이 없던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얼핏 들은 적이 있는 전설의 오브를 찾아 먼 여행을 시작했다.
롤랑 (Roland) - 꾀돌이 왕자
롤랑은 왕실의 골칫거리다. 플라네타 왕가는 대대로 용감한 기사들을 배출해왔다. 롤랑의 할머니는 안장도 없는 말을 타고 남자들도 들기 힘든 무거운 도끼를 자유자재로 휘둘렀던 것으로 유명하고, 아버지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창술의 귀재로 이름을 날렸다. 어머니로 말하자면, 실전에선 크게 공을 세우지 못했지만, 수많은 검사들을 길러낸 최고의 스승으로 명망을 떨쳤다.
롤랑은 어머니 안젤라 마리안느 왕비에게 훈련받은 수백 명의 기사 견습생 중 서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첫번째 경우로 기록되었다. 마지못해 나가는 수업에서 어떻게든 도망갈까 하는 궁리에만 열을 올렸다. 롤랑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게 밝혀진 게 여기서다. 한 번 쓴 방법은 다시는 쓰지 않는 기발한 탈출 작전은 곧 학교의 명물이 되었다. 어머니이자 학교의 수석 사범인 안젤라 왕비가 이런 해프닝을 남들처럼 재미있어만 할 수 없었던 건 물론이다. 몇 번의 헛된 시도 끝에, 야단치는 것만 가지고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왕비는, 깊이 고민한 끝에, 다른 일들을 대거 정리하고 롤랑의 독선생으로 나섰다.
아무리 잔머리의 대가라도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고, 왕비는 물론, 왕가 전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사 서품 시험 합격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기대는 보기좋게 어긋났다. 시합장에서 롤랑은 검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했다. 시합 개시를 알리는 뿔피리에도 굳어있던 롤랑은 주위의, 특히 왕비의 고함에 간신히 검을 뽑았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에 곧장 검을 놓쳐버렸다. 왕자가 실패했다는 것, 그것도 그렇게까지 비겁하고 볼품없게 져버렸다는 것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왕위를 노리는 친척들이 플라네타 왕가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며 현 국왕과 왕비에 대한 신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그리고 사범으로서 왕과 왕비의 능력이 떨어지는게 입증된 이상, 오빠와는 달리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한 공주들의 자질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쯤 되자 롤랑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일생에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도전 기회를 놓쳐버린 실의에 빠져 도서관에서 현실 도피에 나섰다. 그런데 왕국의 역사가 적힌 고문서에서 기사 서품 시험에 실패하고도 다시 도전하는 걸 허락받은 경우가 단 한 번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재시험을 요구에 제일 거세게 반대한 건 놀랍게도 안젤라 왕비였다. 왕비는 앞장서서 아들의 기를 꺾어놓으며 드래곤 슬레이어 정도의 위업을 세우지 않는 이상 재시험은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롤랑은 당황했다. 어머니를 위해 어렵게 한 결심이 꺾인 데 처음에는 좌절했고, 나중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롤랑은 몰래 짐을 챙겨 왕궁을 나왔다. 평소 도서관을 자기 방 드나들 듯 한 덕에 전설의 오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빛의 오브를 찾아 먼 길을 떠났다.
오렐리 (Aurelli) - 호기심 많은 엘프
오렐리는 고대의 숲 실바에 살고 있는 엘프 일족 중 한 명이다. 숲의 노래를 부르고 달빛 아래 춤추는 단조로운 생활밖에 모르는 다른 엘프들과는 달리, 오렐리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눈이 나빠져 고생도 많이 했지만, 운좋게도 고대 연금술서 중 하나인 '비밀의 서'에 나온 비법을 찾아냈다. 크리스탈을 깎아 백금틀에 끼워 안경을 만들어낸 이후로는 전보다 더 열심히 독서에 매달리고 있다.
오렐리는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왜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지, 나뭇잎은 왜 가을이 되며 누렇게 변해 겨울에는 나무에서 떨어지는지. 또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 시냇물을 찰랑거리게 하는지. 하지만 다른 엘프들은 오렐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너무 오래 살기 때문에 희노애락에 대해 무감각하다. 어지간한 일에는 기뻐하거나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세상일에 대해 항상 무심한 엘프들중 뭐든지 궁금해하고 직접 겪어보고 싶어하는 오렐리를 이해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혼자 시냇가 나무 위에서 책을 읽던 어느날 오렐리는 노래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 맨발로 얕은 물 속을 첨벙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소년은 누군가 보고 있다고는 생각 못 하고 노래를 부르며 느긋하게 걸어와 냇가로 올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던 책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 오렐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다시 그쪽을 봤다. 소년은 자루에서 책을 꺼내 펼쳐들었다. 책에 열중하며 때로는 미소를 짓고 때로는 이마를 찡그리는 소년에게서 오렐리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고 오렐리의 녹색 눈동자와 소년의 검은 눈이 마주쳤다.
오렐리와 제시는 그 날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둘은 나란히 앉아 책을 보고, 서로 본 책의 내용을 함께 나누며 삶의 경이와 신비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들의 만남을 안 다른 엘프들은 화를 냈고, 걱정스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렐리는 200년 가까이 살아온 숲을 떠나 제시를 따라 세상으로 나갔다.
익숙치않은 곳을 떠돌아다니는 삶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시와 함께이기에 후회는 없었다. 오렐리의 녹색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십 년이 지나고 이십 년이 지나 제시가 더 이상 소년이 아니게 된 후부터다. 제시는 자신만 나이들어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혼자 남게 될 생각에 오렐리는 더 괴로웠다. 전처럼은 행복하지만은 않은 시절이 이십 년 더 지나가고, 제시는 오렐리의 손을 잡은 채로 죽음을 맞았다.
제시를 묻은 오렐리는 길을 떠났다. 처음에는 무작정이었지만 어느새인가 목표가 생겼다.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은 그런 아픔을 겪지 않을 거라고 오렐리는 맹세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힘을 손에 넣어야 한다. 앞으로도 천 년은 더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전설의 오브의 힘을 빌 수밖에 없다.
호크 (Hawk) - 자부심 강한 마검사
아무도 가지 않는 죽음의 사막 자흐말 깊숙한 곳에 검사들이 모여 사는 유서 깊은 마을 카탄이 있다. 카탄의 아이들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칼을 쥐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막의 모래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전사로 성장한다.
사막의 바람 같은 아이들 중에서도 호크는 단연 돋보였다. 또래 중 대적할 상대가 없는 건 말할 나위도 없고, 열 두 살이 되자 웬만한 어른하고도 검을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카탄의 수장 자리와 '사막의 전갈'이란 칭호를 이어받을 사람은 호크밖에 없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지만 호크는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검을 잡는 게 무엇보다도 좋았고, 최고의 검사만이 얻을 수 있는 '사막의 전갈' 칭호를 받는 건 그의 유일한 꿈이었다. 호크는 매일 수련에 힘썼다.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도, 늘 자기를 힐끔거리는 소녀들의 시선도 아무 관심 없었다. 동트기 전 사막의 새벽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가끔은 일부러 뜨거운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수련을 쌓기도 했다. 호크의 마음속에 있는 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열 여섯이 되던 해, 드디어 다음 수장 자리를 뽑기 위한 검투회가 열렸다. 열 두 살에서 육십 살까지 카탄의 검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고, 대회는 칠일 낮과 밤 동안 벌어졌다. 깊은 밤의 서리 아래서도,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예고도 없이 불어오는 모래 폭풍 속에서도 시합은 중단되지 않았다. 호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모든 관문을 통과했다. 호크 말고 남은 것은 올해 스물 다섯의 가이트뿐이었다.
둘의 대결은 호크의 승리로 끝났다. 날렵한 발놀림과 과감한 검세, 정확한 상황 판단 등 모든 면에서 가이트는 호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이트는 패배를 인정하며 칼을 던졌고. 호크는 사막의 전갈의 상징인 은단검을 받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 때 나지막하지만 또렷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격이 부족하다."
모두 그 쪽을 보았다. 삼십 년 전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노장로 아츠마였다. 역대 사막의 전갈 중에서도 가장 지혜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츠마의 목소리는 너무나 확고했다.
"하지만 장로시여, 이 아이는 모든 사람을 이겼습니다.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어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호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이 자리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전 너무 어려요. 가이트형이 저보다 낫겠지요."
"아니, 그 아이는 아니야."
"그럼 뭘 원하시는 거죠?"
"사막의 전갈은 너다. 강한 자가 수장이 되는 건 카탄이 생긴 이래 계속되어 온 규칙이야."
"그럼..."
"일 년을 주겠다. 너한테는 부족한 게 있어. 그걸 찾아내서 진정으로 강한자가 되거라."
아츠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호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여행을 시작했다. 진정으로 강한 자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찾기 위해.
헤이즐 (Hazel) - 사람의피가 흐르는 하프 뱀파이어
헤이즐은 뱀파이어인 어머니 거트루드와 인간인 아버지 브랜 사이에서 태어났다. 쾌활하고 잘생긴 브랜은 친구들과 어울려 검은 계곡으로 놀러 왔다가 길을 잃고 혼자 헤매던 중 뱀파이어들의 습격을 받았다. 위기에 처한 브랜을 구해준 게 거트루드다. 거트루드는 상냥한 브랜에게 한눈에 반했고, 브랜 역시 인간에게는 없는 신비한 매력을 가진 거트루드가 좋았다. 거트루드는 검은 계곡을 나와 브랜과 함께 살기 시작했고, 일 년 후, 헤이즐이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과 뱀파이어가 함께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브랜은 낮에 함께 돌아다닐 수도 없는 거트루드가 답답해지기 시작했고, 거트루드 역시 동물의 피를 빨며 익숙치 않은 인간의 삶을 살아내는 게 힘들었다. 일 핑계를 대며 브랜이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 집을 지키던 거트루드는 그만두었던 밤사냥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역시 브랜이 없던 어느 날 밤 성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거트루드는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도망쳤고 어린 헤이즐을 데리고 검은 계곡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검은 계곡의 뱀파이어들 역시 브랜과 인간들에게 상처입은 거트루드의 마음을 다독거려주지는 않았다. 마지못해 받아들여 주긴 했지만 한 번 뱀파이어들을 떠나 인간에게로 갔던 거트루드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뱀파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특히 아이들은 하프 뱀파이어라는 이유로 헤이즐을 괴롭혔다. 자기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어머니 거트루드는 헤이즐을 지켜주지 못했다.
낮에는 괜찮았다. 뱀파이어 아이들과는 달리 햇빛 아래 나설 수 있는 헤이즐은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밤에는 괴로웠다. 숨기도 하고 싸워 보기도 했지만 많은 아이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헤이즐의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찼다. 빙 둘러서서 한 마디씩 돌아가며 심술궂은 말을 던지는 아이들, 냉랭한 표정으로 꼬투리만 잡아대는 어른들, 푸념만 늘어놓으며 헤이즐을 거들떠보지 않는 어머니, 전부 다 싫었다. 세상이 다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쫓기던 헤이즐의 마음 속에서 뭔가 폭발했다. 헤이즐은 자기를 밀어젖히는 손을 난폭하게 밀쳐내고 그 아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아이들은 갑자기 솟구친 뱀파이어 특유의 괴력보다도 헤이즐의 눈빛과 기세에 겁에 질렸다. 앞다퉈 도망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헤이즐은 검은 계곡에 돌아온 이래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성난 어른들이 들이닥쳤고 어른들의 힘을 당할 수는 없었다. 밤새 시달린 다음날 아침 헤이즐은 새벽같이 집을 나왔다. 늘 가던 봉우리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는 해가 떨어지기 전 계곡을 빠져나왔다. 이 곳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진 모습으로. 검은 계곡의 그 누구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카라 (Cara) - 두얼굴의 어쌔신
카라는 어쌔신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실력있는 어쌔신이다. 어떤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다른 어쌔신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며, 어린 어쌔신들에게는 우상으로 받들여졌다. 그러나, 이런 카라에게도 근심과 걱정은 한 쪽 마음 구석에 늘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카라는 착하고 귀엽게 보이지만, 어쌔신의 피를 이어 받은 카라이기에 임무가 주어지는 경우 냉혹한 전사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과 극의 모습을 지닌 카라는 자신의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근심, 걱정없이 즐겁게 살아가고 픈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였다.
이러한 일들로 힘들어 하던 카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된다. 강 줄기 하나를 맞대고 적대적으로 지내온 오딘 나라의 국경 수비대 대장 헤루스를 암살하라는 임무였다. 헤루스를 처치하는 경우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서 세르덴이 전쟁을 이길 것임을 카라는 알고 있었다. 헤루스가 있는 상태에서 오딘을 공격하는 경우 많은 희생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카라는 이 임무를 받으면서 결심을 하게 된다. 이번 임무를 끝으로 더 이상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카라는 임무 수행을 위해 오딘으로 발길을 향했다
워렌 (Warren) - 최강의 전사
정글에 살고 있는 워렌은 동물의 고기와 가죽을 팔아 생활하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며,마을의 신 흙의 대정령을 지키는 신관이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로퍼와 함께 살고 있다.
어렸을때부터 함께 신관을 지내온 친구인 로퍼는 생활 방식 및 성격이 특이해 결혼을 하지 않고,한 때 혼자 살고 있었으나 신념이 강한 든든한 친구이자 동료임을 아는 워렌의 권유로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워렌이 살고 있는 마을은 흙의 대정령을 신으로 받들며 살아가는 정글의 전사 부족으로 현재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평화가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희생이 있어야만 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으로 건기가 심해져 황폐해진 대지에 신비스러운 기운을 불어 넣어 기름진 땅으로 바꿔주는 능력을 가진 흙의 대정령을 노리는 적이 많아 전투가 끊이지 않았으며, 상당한 전투 기술을 갖고 있던 워렌 또한 마을의 다른 전사들과 함께 늘 전쟁에 참여했다.
길고 지루했던 전투에서 승리하여 평화가 찾아오고, 전쟁은 사라졌지만 워렌은 언제나 적을 대비해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사냥이나 낚시를 할 때조차도 무예를 연마하여 오히려 젊었을 적보다 훨씬 단련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전쟁이 끝난지 10주년을 맞아 마을에는 큰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날을 위해 준비한 많은 술과 고기, 정글에서만 나는 독특한 과일들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티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 마을 신관 중앙에 있는 큰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울리지 않은 종이 울렸고 잠에서 깬 사람들은 종소리가 나는 신전으로 향했다.
그 종은 전쟁이나 큰일이 일어나는 경우만 울리게끔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마을의 21대 장로인 덩컨이 모습을 나타냈다.
덩컨은 그 동안 지켜왔던 흙의 대정령을 누군가가 가지고 갔으며, 대정령을 지키고 있던 신관 로퍼가 큰 일을 당했다는 비보를 전해주었다.
대정령이 없어진 걸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하고,그 중에서도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로퍼를 잃은 워렌은 어제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파티가 있던 어제는 워렌이 정령을 지키는 날이였으나,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로퍼가 '기쁜날 가족과 함께 파티를 즐기게 친구...'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로퍼는 오늘이 올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막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때 마을의 장로인 덩컨은 친구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워렌을 불러 조용히 얘기를 시작하였다.
신관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대정령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은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대정령이 없어졌으니 큰일이야.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 수도 없네.
음.. 다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오브를 찾는다면 예전의 평화로웠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것 밖에...
워렌은 신관의 명예와 마을의 상징인 흙의 대정령, 그리고 친구이자 동료인 로퍼를 되찾기 위해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길을 떠난다.
평화로웠던 마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루시 (Lucy) - 신성한 사제
크레스포 왕국의 엔제르스 대성당.
신을 믿고 섬기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신성한 장소로 여기는 곳이며, 사제를 교육시키고, 육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루시는 이 곳에서 사제들을 관리하는 신관 역할을 맡고 있으며, 유력한 대신관 후보이기도 하다.
사제의 길은 수련 사제를 거쳐, 정식 사제가 된 후 능력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신관에서 대신관까지 올라 갈 수 있지만 정식 사제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관 및 대신관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신에 대한 믿음과 교양, 생활 습관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고, 능력을 인정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젊은 나이에 신관의 자리에 올랐으며, 대신관이 될 것이라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는 루시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루시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해 항상 책을 갖고 다녔으며, 그 동안 읽은 책을 쌓으면 어마어마한 규모인 대성당과 맞먹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루시가 독서광이 된 것은 신을 믿고 섬기는 사제로서 지켜야 할 것도 많고 사제로서 해서는 안되는 규칙(예를 들면, 전사들처럼 앞장서서 전투를 하거나 진두 지휘를 하는 것 등)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시는 책에서 본 것과 같이 직접 자신이 앞장서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진정한 사제가 되고 싶었다.
눈을 찌를 정도로 맑은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새로 읽을 책을 찾아보기 위해 성당의 도서관을 찾은 루시는 도서관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이 유난히 눈에 띄는 느낌을 받았다.
자세히 보지 않고서는 문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도서관 구석구석을 훓어 책을 찾는 루시에게는 항상 보이던 문으로, 어떤 곳으로 통하는지 궁금해 했었지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아 그냥 지나치곤 했던 문이었다.
그러나, 도서관 내에 있는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책이 눈에 띄지 않자 루시는 허름한 문 앞에 다가섰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기분 나쁜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다른 때와 달리 오히려 더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잠시 살핀 루시는 작은 문에 바짝 다가섰다. 작은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으나, 오래되고 낡아서인지 툭! 치자 자물쇠가 풀리고 문은 작게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틈으로 작은 통로가 나 있는 것을 본 루시는 조심스럽게 길을 따라 내려갔다. 길 끝에 다다르자 원형으로 둘러싸인 벽이 온통 책장으로 되어 있고 책장에는 오래된 고서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꽂혀 있었다.
낡은 책상과 의자, 오래된 책 등으로 미루어 보아 중요한 고서를 보관하는 작은 서재로 보였지만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왔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낯선 고서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내가 잘못 들어온 걸까...?'
주위를 둘러보던 루시의 눈에 다른 책들과는 달리 유난히 빛이 나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망설이던 루시는 빛나는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이 낯선 고서는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동안 많은 책을 보며, 다양한 문자에도 능통했던 루시는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빛나는 책은 '성수에 관한 비밀'이 적혀있는 고서로 호기심에 책장을 넘겼지만 어느 새 책에 빠져든 루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해서 고서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루시는 상당한 두께의 고서를 거의 다 읽어 가고 있었다.
책을 읽는데 집중하고 있던 루시는,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 것조차 알지 못하고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어 버렸다. 책장을 덮은 후 문득 정신을 차리고 서재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대신관 라이드였다. 대신관은 루시가 신을 믿는 자에게 금기시 하고 있는 빛나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고서의 저자는 1천년 전 이 성당에 신관으로 있었던 데비르트로 루시와 같이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관이다. 신을 믿고 섬기는 그였지만, 신관으로서의 제약이 큰 관계로 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축복을 주기 위해 이 책을 만든 것이다.
대신관들은 신의 능력에 대한 도전과, 신관으로서 해서는 안될 능력을 사용한 죄를 물어 신관 자격의 박탈하고 그때까지 유례 없었던 영구 파문을 명하였다.
영구 파문을 당한 데비르트는 대신관들이 자신에게 내린 결과를 후회하도록 이곳을 떠나기 전 이 책에 불에 타지 않고, 물에 젖지 않으며 읽은 이에게 신을 섬기고 믿는 것에 반감을 가지게하는 사술을 부여하고는 사라졌다.
때문에 이 책은 다른 고서와 함께 깊숙한 비밀 서고에 보관되어 왔다.
다른 신관 및 사제라면 이 고서를 읽지 못하기 때문에 가벼운 징계로 끝날 일이였지만, 루시는 이 책을 모두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며칠 후 루시는 금지된 고서를 읽은 죄로 대신관들의 회의에 회부되었다.
회의에서 루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은 변한 것이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신관 회의의 결과는 중징계인 신관 자격의 박탈과 파문이었다.
능력이 탁월한 루시였지만, 사술에 빠진 이상 신관으로서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는 대신관들의 판단 때문이다.
파문을 당한 루시이기에 더 이상에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이 곳을 떠나야만 했다. 떠나기 전 대신관 라이드가 조용히 루시를 따로 불러 얘기를 하였다.
'현재 너의 능력은 모두 인정한다. 그러나, 사술에 빠진 너를 내 힘으로는 구원하기 어렵구나. 사술에서 벗어나, 대신관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면 언제든지 돌아오너라.'
루시는 자신에게 내려진 알 수 없는 사술에서 벗어나고, 책에서 배운 힘과 경험을 이용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대성당을 떠났다.
윌 (Will) - 다크엘프 흑마법사
인간과 엘프가 공존하는 대륙. 투쟁을 싫어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들은 인간과 적절한 거리를 두며, 각자가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프 족의 영원한 생명, 아름다운 외모, 강한 마력은 인간들에게 두려움과 함께 시기의 대상이었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던 인간들은 차츰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두 종족간의 영원할 것 같던 평화가 깨지고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재능 있는 젊은 엘프 마법사 '윌'은 동료들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였으나, 인정사정 없는 인간들의 공격은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기나긴 전쟁은 투쟁을 싫어하는 엘프족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고, 결국 전쟁을 피해 인간들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숲으로 피신하게 되었다.
윌을 포함한 젊고 호전적인 몇몇의 엘프들은 자신들을 침략한 인간들을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어느 지하 동굴에 새겨져 있던 특이한 문자들을 통해 고대 악마들이 사용하던 치명적이고 강력한 마력을 다루는 흑마법의 존재를 알게 된다.
어두운 밤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갔다가 해가 뜨기 전에 돌아오는 윌의 일행은 점차 흑마법에 빠져들어, 점점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들은 강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윌은 마법에 대한 탁월한 능력으로 인해 다른 엘프들보다 빠른 속도로 흑마법을 익혀 나갔다.
그러나, 윌의 행동을 수상히 여겼던 대마법사 '엘린'에게 윌의 일행이 흑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고, 윌 일행은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추방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종족을 위해서 흑마법을 터득하던 윌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인간과 동족인 엘프들을 피해 뜻을 같이 하던 동료들과 함께 빛이 없는 어두운 지하에 숨어서 생활하게 된다.
윌 일행은 흑마법의 수련으로 인간들과의 몇번의 교전에서 모두 승리하게 되었고, 흑마법의 강력한 힘에 공포를 느끼며 도망가던 인간들은 오랜 지하생활로 인해 어두운 흑빛으로 변한 피부색을 보고 '다크엘프'라고 부르게 된다.
윌은 다른 세력들과의 대등한 공존과 다크엘프의 번영을 위해서 흑마법의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강력한 흑마법의 어두운 면이 몇몇 흑마법사들을 힘의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정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점점 종족의 번영보다는 다른 종족의 멸망을 위해서 흑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흑마법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흑마법의 기원, 유래를 파헤치던 윌은 흑마법의 최종 목표가 세상의 파괴이며, 파멸을 막기에 자신의 힘은 너무 미약하다는 것도, 이제 유일한 길은 어둠의 힘인 흑마법 정반대에 있는 빛의 오브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윌은 위험에 빠진 다크엘프들을 구하고 세상의 평화를 가져올 신성한 빛의 오브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첫댓글 너무 길어요 - 대충 스크롤 던졌다는 낄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