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국사봉으로
작년 여름 퇴직한 대학 동기는 시내 아파트를 혼기가 꽉 찬 아들이 차지하게 두고 전원주택을 지어 시골로 귀촌했다. 그는 주말을 택해 도시로 와 지인들과 교류하는 5촌 2도를 실천하려 했다. 지난달은 부부가 함께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다고 현지에서 스무날 넘게 머물다 왔다. 농사가 시작되던 때라 마음이 바빠 전 구간을 주파하지 못하고 몇 구간은 남겨두고 뭍으로 건너왔단다.
오월 둘째 금요일은 이 친구가 산행을 제의해 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되었다. 김해 근교의 산으로 가보자는 것을 내가 거제 국사봉으로 가자고 행선지를 바꾸었다. 나는 보름께 전에 거기서 곰취를 채집해 왔는데 올봄에는 비가 흡족하게 내려 곰취가 더 자라 나왔음직해서였다. 우리는 창원대에서 진해 용원으로 가는 757번 직행버스 첫차를 타고 안민터널을 통과해 진해구청을 지났다.
신항만 거가대교 앞에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관청이 있다. 아마도 부산과 경남의 접경지대라 두 지방자치단체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구역인 듯했다. 그곳에서는 부산 하단에서 거제 연초로 오가는 시외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나는 연전 교직을 마무리 지은 곳이 거제라 그쪽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다. 동기와 거기서 2000번 버스를 탔다.
거가대교 침매 터널을 지나 연륙교로 오르자 진해만의 몇 개 무인도와 전임 대통령 하계 별장으로 쓰였던 저도가 나왔다. 거가대교가 끝난 장목 연안에 닿아 관포에서 외포와 소계를 거쳐 덕포에서 옥포를 지났다. 송정고개를 넘어간 연초면 소재지에서 내려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연초 삼거리는 연전까지 내가 근무했던 학교와 가까워 감회가 새로웠지만 이제 추억만 서린 곳이었다.
연초는 바다를 접하지 않은 섬 속 내륙이라 모내기를 앞두고 무논을 다려둔 들길을 걸어 야부마을에서 와야봉 산허리로 돌아갔다. 최근 거가대교 접속도로 송정 나들목에서 고현 문동으로 새로 뚫는 터널 공사 현장을 지났다. 주작골로 내려서는 갈림길 쉼터에서 벗이 가져온 담금주와 삶은 달걀을 까먹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가 목표로 한 작은 국사봉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맞은편에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두 아낙과 마주쳐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뭘 캐러 가십니까?’라고 응수해 와 나는 ‘곰취를 뜯으러 간다오!’ 했더니, 그럼 강원도로 가십사 했다. 임도에서 스친 아낙과 대화는 거기서 끝내고 각자 갈 길로 갔다. 곰취를 뜯으려면 강원도로 가라는 얘기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거제에서도 곰취를 뜯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직을 마무리 지은 거제에서 3년을 보내면서 현지인들도 모르는 곰취 자생지를 찾아내 뜯어 와실에서 찬거리와 안주 삼아 잘 먹었다. 퇴직 이후 작년과 지난달에서 국사봉에 올라 곰취를 따 왔다. 그런데 올봄부터는 고라니가 시식해서인지 내 말고 누군가 뜯어가는 이가 있는지 곰취잎 멱이 잘린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암반 더미인 작은 국사봉을 넘어가 김밥을 먼저 비웠다.
국사봉 북사면 응달 숲을 누비면서 곰취 군락지를 찾으려니 숲이 무성해 쉽게 찾아낼 수 없었다. 한참 헤맨 끝에 가까스로 지난번 곰취를 뜯고 남겨둔 어린잎이 자라는 현장을 찾는데 성공했다. 벗과 함께 배낭은 벗어두고 곰취잎을 따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난번 딴 이후 시일이 많이 지나지 않아 잎의 성장 속도는 더뎌 작긴 해도 우리는 일용할 찬거리가 될 만큼 곰취를 땄다.
곰취를 딴 이후 개척 산행으로 비탈진 숲을 헤쳐 임도로 내려서 등산로를 따라 주작골로 나갔다. 수양마을에 이르러 횟집을 겸한 식당에 들러 나물과 된장으로 보리밥을 비벼 먹었더니 허기가 가셨다. 수월마을로 나가 연사에서 아침에 타고 왔던 부산으로 가는 시외 구간을 운행하는 버스를 탔다. 신항만에서 용원으로 가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니 날이 저물어 어둑했다. 2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