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두로에 관한 경고입니다(1). 두로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무역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바벨론이 메소포타미아 동부지역의 무역 경제 대국이라면, 두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달한 서부지역의 무역 경제 대국이었습니다. 시돈도 두로보다 조금 북쪽에 위치한 도시로 두로보다는 작지만 역시 무역이 발달하고 무역상이 번성하던 곳입니다. 다시스(남부 스페인으로 추정)는 지중해 서쪽의 지역으로 두로와 교역했습니다. 서쪽의 문물을 다시스의 배들이 두로로 싣고 오면 두로에서 지금의 중동지역 내륙으로 들어오는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두로는 이집트의 곡물을 수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로도 패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두로가 망하면 이집트의 풍성한 곡물들의 수출로가 막히게 됩니다.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 ‘아들과 딸을 생산하지 못하고 양육하지 못하는 자 같이’된다고 합니다. 많은 곡식이 있지만 팔지 못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6). 두로는 기쁨의 성이라고 불릴 만큼 부요했습니다. 자기의 영향력을 해상 무역으로 먼 곳까지 뻗었습니다(7). 또 당시에 두로는 주변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식민지를 개척해서 왕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오늘 말씀에서 두로를 ‘면류관을 씌우던 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두로를 망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8-9). 그 이유는 그들의 교만함입니다. 그들은 경제적인 부요함과 명예에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스를 두로의 손에서 벗어나 더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두로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시돈도 함께 망할 것입니다(10-12). 하지만 동시에 애굽에 대한 예언과 같이 두로가 회복될 날도 있을 것입니다. 심판의 때가 지나면 하나님은 두로의 옛 영광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칠십 년 동안 잊혀졌던 두로는 이 칠십 년이 차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는 다시 교만하게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무역을 통해서 다시 교만하여지고 우상 숭배를 할 것입니다. 70년의 기한이 두로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두로를 70년 뒤에 잠시 회복시킨 이유는 바로 성전 재건 때문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건축할 때 두로를 통해서 좋은 백향목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스3:7).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두로를 잠깐 회복시키셨습니다.
두로의 무역과 부요함은 주변 나라의 부러움을 샀을 것입니다. 중동 서부지역에 가장 번성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로가 망하는 이유는 바로 그 번성함에서 오는 교만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합니다. 교만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순탄할 때 우리는 겸손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를 주시는 이유는 그것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부요함도 우리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결국 당신의 나라의 유익을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부요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바르게 사용하며 그 어떤 것에도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어떤 것에도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