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jjhima Nikāya uparipaṇṇāsapāḷi 5. saḷāyatanavaggo 3. 2. channovādasuttaṃ
중간 길이 니까야, 후반 오십 빠알리, 5. 여섯 들어감 품, 2. 찬나 교계 經.
초불) 본경은 『상윳따 니까야』제4권 「찬나 경」(S35:87)과 동일하다.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王舍城)에서 대나무 숲(竹林)의 다람쥐 먹이 터에 머무셨다.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ca sāriputto āyasmā ca mahācundo āyasmā ca channo
gijjhakūṭe pabbate viharanti.
tena kho pana samayena āyasmā channo ābādhiko hoti dukkhito bāḷhagilāno.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sāyanhasamayaṃ paṭisallānā vuṭṭhito
yenāyasmā mahācund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āyasmantaṃ mahācundaṃ etadavoca —
그때 존자 사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다와 존자 찬나가 독수리봉 산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존자 찬나는 병들어 고통받고 심하게 아팠다.
그때 존자 사리뿟따는 저녁 시간에 沈潛(침잠)에서 일어나 존자 마하쭌다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서 존자 마하쭌다에게 이렇게 말했다.
“āyāmāvuso cunda, yenāyasmā channo tenupasaṅkamissāma gilānapucchakā”ti.
“evamāvuso”ti kho āyasmā mahācundo āyasmato sāriputtassa paccassosi.
도반 쭌다여, 우리 존자 찬나에게 가서 병문안을 합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존자 마하쭌다가 존자 사리뿟따에게 대답했다.
atha kho āyasmā ca sāriputto āyasmā ca mahācundo yenāyasmā channo tenupasaṅkamiṃsu;
upasaṅkamitvā āyasmatā channena saddhiṃ sammodiṃsu.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āyasmantaṃ channaṃ etadavoca —
그때 존자 사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다가 존자 찬나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서 존자 찬나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환담하기에 적절하고 기억할 만한 대화를 교환한 후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존자 사리뿟따가 존자 찬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kacci te, āvuso channa, khamanīyaṃ, kacci yāpanīyaṃ?
kacci te dukkhā vedanā paṭikkamanti, no abhikkamanti;
paṭ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abhikkamo”ti?
도반 찬나여, 과연 견딜 만합니까, 과연 지낼 만합니까?
과연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물러나고 있고, 진행하지 않습니까?
물러남의 끝이 알려지고, 진행은 [알려지지] 않습니까?
“na me, āvuso sāriputta, khamanīyaṃ na yāpanīyaṃ.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 않습니다.
나의 심한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진행하고 있고, 물러나지 않습니다.
진행의 끝이 알려지고, 물러남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seyyathāpi, āvuso sāriputta, balavā puriso tiṇhena sikharena muddhani abhimattheyya;
evameva kho me, āvuso sāriputta, adhimattā vātā muddhani ūhananti.
na me, āvuso sāriputta, khamanīyaṃ na yāpanīyaṃ.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
도반 사리뿟따여, 마치 강한 사람이 날카로운 첨단<*칼끝>으로 머리를 찌를 것과 같이,
바로 그와 같이 도반 사리뿟따여, 과도한 바람들이 나의 머리를 치올립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 않습니다.
나의 심한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진행하고 있고, 물러나지 않습니다.
진행의 끝이 알려지고, 물러남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seyyathāpi, āvuso sāriputta, balavā puriso daḷhena varattakkhaṇḍena sīse sīsaveṭhaṃ dadeyya;
evameva kho me, āvuso sāriputta, adhimattā sīse sīsavedanā.
na me, āvuso sāriputta, khamanīyaṃ na yāpanīyaṃ.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
도반 사리뿟따여, 마치 강한 사람이 단단한 가죽 끈으로 머리에 머리띠를 묶을 것과 같이,
바로 그와 같이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과도한 두통이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 않습니다.
나의 심한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진행하고 있고, 물러나지 않습니다.
진행의 끝이 알려지고, 물러남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seyyathāpi, āvuso sāriputta, dakkho goghātako vā goghātakantevāsī vā
tiṇhena govikantanena kucchiṃ parikanteyya;
evameva kho me, āvuso sāriputta, adhimattā vātā kucchiṃ parikantanti.
na me, āvuso sāriputta, khamanīyaṃ na yāpanīyaṃ.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
도반 사리뿟따여,
마치 숙련된 도살업자나 도살업자의 견습생이 날카로운 소 해체용 칼로 배를 가르듯이,
바로 그와 같이 도반 사리뿟따여, 과도한 바람들이 나의 배를 가르고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 않습니다.
나의 심한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진행하고 있고, 물러나지 않습니다.
진행의 끝이 알려지고, 물러남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seyyathāpi, āvuso sāriputta, dve balavanto purisā dubbalataraṃ purisaṃ nānābāhāsu gahetvā
aṅgārakāsuyā santāpeyyuṃ samparitāpeyyuṃ;
evameva kho me, āvuso sāriputta, adhimatto kāyasmiṃ ḍāho.
na me, āvuso sāriputta, khamanīyaṃ na yāpanīyaṃ.
bāḷhā me dukkhā vedanā abhikkamanti, no paṭikkamanti;
abhikkamosānaṃ paññāyati, no paṭikkamo.
도반 사리뿟따여, 마치 두 힘센 사람이 더 약한 사람을 양팔로 붙잡아 숯불 구덩이에서 달구고
지지듯이, 바로 그와 같이 도반 사리뿟따여, 나의 몸에 과도한 열기가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견딜 만하지 않고 지낼 만하지 않습니다.
나의 심한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진행하고 있고, 물러나지 않습니다.
진행의 끝이 알려지고, 물러남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satthaṃ, āvuso sāriputta, āharissāmi, nāvakaṅkhāmi jīvitan”ti.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칼을 가져올 것입니다. 나는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māyasmā channo satthaṃ āharesi. yāpetāyasmā channo.
yāpentaṃ mayaṃ āyasmantaṃ channaṃ icchāma.
sace āyasmato channassa natthi sappāyāni bhojanāni,
ahaṃ āyasmato channassa sappāyāni bhojanāni pariyesissāmi.
sace āyasmato channassa natthi sappāyāni bhesajjāni,
ahaṃ āyasmato channassa sappāyāni bhesajjāni pariyesissāmi.
sace āyasmato channassa natthi patirūpā upaṭṭhākā,
ahaṃ āyasmantaṃ channaṃ upaṭṭhahissāmi.
māyasmā channo satthaṃ āharesi. yāpetāyasmā channo.
yāpentaṃ mayaṃ āyasmantaṃ channaṃ icchāmā”ti.
도반 찬나여, 칼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도반 찬나여, 살아가십시오.
우리는 도반 찬나께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도반 찬나께 적절한 음식이 없다면, 제가 도반 찬나를 위해 적절한 음식을 구하겠습니다.
만약 도반 찬나께 적절한 약이 없다면, 제가 도반 찬나를 위해 적절한 약을 구하겠습니다.
만약 도반 찬나께 적절한 간병인이 없다면, 제가 도반 찬나를 간병하겠습니다.
도반 찬나여, 칼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도반 찬나여, 살아가십시오.
우리는 도반 찬나께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napi me, āvuso sāriputta, natthi sappāyāni bhojanāni; napi me natthi sappāyāni bhesajjāni;
napi me natthi patirūpā upaṭṭhākā;
api cāvuso sāriputta, pariciṇṇo me satthā dīgharattaṃ manāpeneva no amanāpena.
etañhi, āvuso sāriputta, sāvakassa patirūpaṃ
yaṃ satthāraṃ paricareyya manāpeneva no amanāpena.
‘anupavajjaṃ channo bhikkhu satthaṃ āharissatī’ti evametaṃ {evameva kho tvaṃ (ka.)},
āvuso sāriputta, dhārehī”ti.
도반 사리뿟따여, 나에게 적절한 음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적절한 약이 없는 것도 아니며,
적절한 간병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오랫동안 스승을 기쁘게 해 드렸지 불쾌하게 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제자가 스승을 기쁘게 해 드리고
불쾌하게 해 드리지 않는 것<*pariciṇṇo: pari+√car>,
이것이 바로 제자에게 적절한 것<*patirūpa>입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찬나 비구는 비난받지 않고 칼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이것을 수지하십시오.<*dhārehi>
“puccheyyāma mayaṃ āyasmantaṃ channaṃ kañcideva desaṃ,
sace āyasmā channo okāsaṃ karoti pañhassa veyyākaraṇāyā”ti.
“pucchāvuso sāriputta, sutvā vedissāmī”ti.
도반 사리뿟따여, 우리가 도반 찬나께
어떤 점에<*desaṃ: √diś (가리키다)> 대해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만약 도반 찬나께서 질문에 대답할 기회를<*okāsaṃ: 'ava' (아래로) + √kāś (빛나다)> 주신다면.
도반 사리뿟따여, 물어보십시오. 듣고 알게<*√vid (알다)> 될 것입니다.
“cakkhuṃ, āvuso channa, cakkhuviññāṇaṃ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samanupassasi?
도반 찬나여, 눈을, 눈`分別(識)을, 눈`分別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십니까?
sotaṃ, āvuso channa, sotaviññāṇaṃ ... pe ... ghānaṃ, āvuso channa, ghānaviññāṇaṃ...
jivhaṃ, āvuso channa, jivhāviññāṇaṃ ... kāyaṃ, āvuso channa, kāyaviññāṇaṃ...
manaṃ, āvuso channa, mano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samanupassasī”ti?
도반 찬나여, 耳, 耳識, 耳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찬나여, 鼻, 鼻識, 鼻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찬나여, 舌, 舌識, 舌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찬나여, 身, 身識, 身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찬나여, 意, 意識, 意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십니까?
[“athāparaṃ viññāṇaṃyeva avasissati parisuddhaṃ pariyodātaṃ.
․ 그리고 나서 오직 순수하고 맑은 識만이 남게 된다.
tena ca viññāṇena kiṃ {tena viññāṇena kiñca (sī.)} vijānāti?
․ 그 識에 의해 무엇을 分別하는가?
‘sukhan’tipi vijānāti, ‘dukkhan’tipi vijānāti, ‘adukkhamasukhan’tipi vijānāti.
․ '즐거움'이라고 分別하고, '괴로움'이라고 分別하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라고 分別한다.]
[본경(과 같은 내용의 S35:87)을 제외하면 <根-境들-근識-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法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만약 본경에서도 境들이 생략되어 있다면
복수형의 <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法들>에 대한 주석
<여기서는 눈의 알음알이와 함께하는(sampayuttā) 세 가지 무더기들[즉, 느낌의 무더기(수온),
인식의 무더기(상온), 심리현상들의 무더기(행온) - DAȚ]을 뜻한다.>]
‘cakkhusmiṃ, āvuso, rūpe cakkhuviññāṇe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ye ca upāyūpādānā cetaso adhiṭṭhānābhinivesānusayā
tesaṃ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vimuttaṃ me cittanti pajānāmi.
“도반들이여, 나는 눈과 형색과 눈의 알음알이와 눈의 알음알이에 의해 알 수 있는 법들47)에 대한
열망, 탐욕, 기쁨, 갈애, 끌림, 취착,
그들에 대한 마음의 편견, 천착, 잠재성향을 부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하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렸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해탈했다고 꿰뚫어 압니다.
47) '형색(rūpa)'과 '눈의 알음알이에 의해 알 수 있는 법들(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이라는 이 두 가지는 뜻이 중복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주석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각각의 뜻을 설명하고 있다.
“과거이건 미래이건 현재건 눈의 문(cakkhu-dvāra)을 통해 영역에 들어왔다가(āpāthaṃ āgantvā) 사라진 것은 모두 '형색(rūpa)'이라 한다. 그러나 과거이건 미래이건 현재이건 눈의 문을 통해 아직 영역에 들어오지도 않고 사라진 것은 '눈의 알음알이에 의해 알 수 있는 법들(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에 포함된다. 그러나 쭐라 아바야 장로라는 삼장법사(Tipiṭaka- Cūḷa-abhaya-tthera)는 삼세에서 눈의 영역에 들어왔건 들어오지 않았건 그것은 모두 형색(rūpa)이고, 눈의 알음알이와 관련된 세 가지 무더기는 눈의 알음알이에 의해 알 수 있는 법들이라고 설명한다.” (MA.iv.93~94)
manasmiṃ, āvuso, dhamme manoviññāṇe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yo chando yo rāgo yā nandī yā taṇhā ye ca upāyūpādānā cetaso adhiṭṭhānābhinivesānusayā
tesaṃ khayā virāgā nirodhā cāgā paṭinissaggā vimuttaṃ me cittanti pajānāmi.
evaṃ kho me, āvuso, jānato evaṃ passato imesu chasu ajjhattikabāhiresu āyatanesu
a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ttan’ti.
… 마노[意]와 법과 마노의 알음알이와 마노의 알음알이에 의해 알 수 있는 법들에 대한
열망, 탐욕, 기쁨, 갈애, 끌림, 취착, 그들에 대한 마음의 편견, 천착, 잠재성향을 부수고
탐욕을 빛바래고 소멸하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렸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해탈했다고 꿰뚫어 압니다.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이 여섯 가지 안과 밖의 감각장소들에 대해
취착 없이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yañca, bhikkhave, cakkhu, ye ca rūpā, yañca cakkhuviññāṇaṃ,
ye ca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 pe ...
눈과 형색과 눈의 알음알이와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31)을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빛바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없다.
31)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은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a dhammā를 옮긴 것이다. 그러면 이 법들과 눈의 대상인 형색[色, rūpa]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앞에서 말한 형색(rūpa)들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다. [둘째] 형색은 직접적으로 [눈의 알음알이의] 영역에 들어온 것(āpātha-gata)만을 취해서 설하신 것이고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영역에 들어오지 않은 것(anāpātha-gata)까지 포함한 것이다. 즉 여기서는 눈의 알음알이와 함께하는 세 가지 무더기(tayo khandlhā =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다른 경우들에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SA.ii.359)
yo ca mano, ye ca dhammā, yañca manoviññāṇaṃ, ye ca mano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
idaṃ kho, bhikkhave, sabbaṃ
anabhijānaṃ aparijānaṃ avirājayaṃ appajahaṃ abhabbo dukkhakkhayāya.
…
마노[意]와 [마노의 대상인] 법과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와 마노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빛바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체를 최상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철저하게 알지 못하고
탐욕이 빛바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면 괴로움을 멸진할 수 없다.
“yattha kho, samiddhi, atthi cakkhu, atthi rūpā, atthi cakkhuviññāṇaṃ,
atthi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atthi tattha māro vā mārapaññatti vā.
atthi sotaṃ, atthi saddā, atthi sotaviññāṇaṃ, atthi sota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atthi tattha māro vā mārapaññatti vā.
사밋디여, 눈이 있고 형색이 있고 [39] 눈의 알음알이가 있고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57)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57) “눈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a dhammā)'이란 위에서(heṭṭhā) 말씀하신 형색(rūpa)을 취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혹은 위에서는 분명한 것(āpātha-gata)을 취한 것이고 여기서는 분명하지 않은 것(anāpātha-gata)을 취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sanniṭṭhāna) 위에서 말씀하신 [형색은] 분명한 것들과 분명하지 않은 것들을 모두 다 취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눈의 알음알이와 함께하는(sampayuttā) 세 가지 무더기들[즉, 느낌의 무더기(수온), 인식의 무더기(상온), 심리현상들의 무더기(행온) - DAȚ]을 뜻한다.”(SA.ii.360)
atthi mano, atthi dhammā, atthi manoviññāṇaṃ, atthi mano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atthi tattha māro vā mārapaññatti vā.
…
마노가 있고 법이 있고 마노의 알음알이가 있고 마노의 알음알이로 알아야 하는 법들이 있는 곳,
거기에 마라는 있고 혹은 마라라는 개념이 있다.
세존이시여, '세상,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세상이 있으며 혹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까?
... natthi mano, natthi dhammā, natthi manoviññāṇaṃ, natthi manoviññāṇaviññātabbā dhammā,
natthi tattha loko vā lokapaññatti vā”ti.]
“cakkhuṃ, āvuso sāriputta, cakkhuviññāṇaṃ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āmi.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눈을, 눈`分別(識)을, 눈`分別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sotaṃ, āvuso sāriputta ... pe ... ghānaṃ, āvuso sāriputta...
jivhaṃ, āvuso sāriputta... kāyaṃ, āvuso sāriputta...
manaṃ, āvuso sāriputta, mano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āmī”ti.
도반 사리뿟따여, 耳, 耳識, 耳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사리뿟따여, 鼻, 鼻識, 鼻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사리뿟따여, 舌, 舌識, 舌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사리뿟따여, 身, 身識, 身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
도반 사리뿟따여, 意, 意識, 意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cakkhusmiṃ, āvuso channa, cakkhuviññāṇe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kiṃ disvā kiṃ abhiññāya cakkhuṃ cakkhuviññāṇaṃ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asi?
도반 찬나여, 눈에서, 눈`分別(識)에서, 눈`分別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에서
무엇을 보고서 무엇을 自證<*abhiññā>하고서 眼을, 眼識을, 眼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지 않습니까?
sotasmiṃ, āvuso channa, sotaviññāṇe ... ghānasmiṃ, āvuso channa, ghānaviññāṇe...
jivhāya, āvuso channa, jivhāviññāṇe... kāyasmiṃ, āvuso channa, kāyaviññāṇe...
manasmiṃ, āvuso channa, manoviññāṇe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kiṃ disvā kiṃ abhiññāya manaṃ mano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asī”ti?
도반 찬나여, 耳에 대해, 耳識에 대해 …
도반 찬나여, 鼻에 대해, 鼻識에 대해 …
도반 찬나여, 舌에 대해, 舌識에 대해 …
도반 찬나여, 身에 대해, 身識에 대해 …
도반 찬나여, 意에 대해, 意識에 대해, 意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에 대해
무엇을 보고서 무엇을 自證<*abhiññā>하고서 意을, 意識을, 意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지 않습니까?
“cakkhusmiṃ, āvuso sāriputta, cakkhuviññāṇe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nirodhaṃ disvā nirodhaṃ abhiññāya cakkhuṃ cakkhuviññāṇaṃ cakkhu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āmi.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눈에서, 눈`分別(識)에서, 눈`分別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에서
소멸을 보고서 소멸을 自證<*스스로 직접 앎>하고서 眼을, 眼識을, 眼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sotasmiṃ, āvuso sāriputta, sotaviññāṇe... ghānasmiṃ, āvuso sāriputta, ghānaviññāṇe...
jivhāya, āvuso sāriputta, jivhāviññāṇe... kāyasmiṃ, āvuso sāriputta, kāyaviññāṇe...
manasmiṃ, āvuso sāriputta, manoviññāṇe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su dhammesu
nirodhaṃ disvā nirodhaṃ abhiññā manaṃ mano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viññātabbe dhamme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samanupassāmī”ti.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耳에 대해, 耳識에 대해 …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鼻에 대해, 鼻識에 대해 …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舌에 대해, 舌識에 대해 …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身에 대해, 身識에 대해 …
도반 사리뿟따여, 나는 意에 대해, 意識에 대해, 意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에 대해
소멸을 보고서 소멸을 自證<*abhiññā>하고서 意을, 意識을, 意識에 의해 分別되어질 법들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evaṃ vutte, āyasmā mahācundo āyasmantaṃ channaṃ etadavoca —
“tasmātiha, āvuso channa, idampi tassa bhagavato sāsanaṃ {vacanaṃ (sī.)},
niccakappaṃ manasi kātabbaṃ —
이렇게 말해졌을 때, 존자 마하쭌다가 존자 찬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도반 찬나여, 그 분 세존의 이 가르침을 항상 적절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nissitassa calitaṃ, anissitassa calitaṃ natthi. calite asati passaddhi, passaddhiyā sati nati na hoti.
natiyā asati āgatigati na hoti. āgatigatiyā asati cutūpapāto na hoti.
cutūpapāte asati nevidha na huraṃ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ti.
'의존하는 자에게는 동요가 있고, 의존하지 않는 자에게는 동요가 없습니다.
동요가 없을 때 평온함이 있고, 평온함이 있을 때 기울어짐이 없습니다.
기울어짐이 없을 때 오고 감이 없고, 오고 감이 없을 때 죽음과 재생이 없습니다.
移動과 接近*이 없을 때 이곳도 저곳도 그 사이<*間: 中陰>도 없습니다. 이것이 고통의 끝입니다.'
nissitassa: √śri (의지하다) + ni- (아래로) + -ta (과거분사) + -ssa (속격).
'의존하는 자의'를 의미. 남성 단수 속격형.
calitaṃ: √cal (움직이다)의 과거분사. '동요'를 의미. 중성 단수 주격형.
anissitassa: a- (부정) + nissita. '의존하지 않는 자의'를 의미. 남성 단수 속격형.
natthi: na (아니다) + atthi (√as - 있다). '없다'를 의미.
calite: √cal의 처격 절대구문. '동요할 때'를 의미.
asati: a- (부정) + √as (있다)의 처격 절대구문. '없을 때'를 의미.
passaddhi: pa- (강조) + √śram (피로하다)에서 파생. '평온'을 의미. 여성 단수 주격형.
sati: √as의 처격 절대구문. '있을 때'를 의미.
nati: √nam (구부리다)에서 파생. '기울어짐'을 의미. 여성 단수 주격형.
āgatigati: ā- (향하여) + √gam (가다) + gati (√gam - 가다). '오고 감'을 의미. 여성 단수 주격형.
cutūpapāto: cuti (√cyu - 떨어지다) + upapāta (upa- 위로 + √pat 떨어지다).
'죽음과 재생'을 의미. 남성 단수 주격형.
* cuti - 移動: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다. upapāta - 接近 approach
nevidha: na + eva + idha. '이곳도 아니다'를 의미.
huraṃ: '저곳'을 의미하는 부사.
ubhayamantarena: ubhaya (둘 다) + antara (사이) + -ena (도구격). '둘 사이에'를 의미.
초불) '그 둘의 중간도 없다(ubhayam antarena).'고 하셨다. 『상윳따 니까야』 제4권 「찬나 경」 (S35:87)의 본문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이 경문을 가지고 중유(中有, 中陰, antarā-bhava)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SA.ii.372~373) 여기에 대해서는 『상윳따 니까야』제4권 「찬나 경」 (S35:87) §12의 주해와 「말룽가뿟따 경」 (S35:95) §13의 주해와 본서 제5권 「계(戒) 경」(S46:3) §13 (7)의 주해를 참조할 것. 특히 제5권 「토론장경」(S44:9) §7과 주해를 참조할 것.
99) '이 둘의 가운데는 ubhayam antarena를 옮긴 것으로, 이것을 중유(中有, 中陰, antara-bhāva)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구절이다. 북방불교 교학을 대표하는 『아비달마 구사론』과 유식과 티베트 불교의 여러 논서들은 한결 같이 중유(中有)를 인정하지만(권오민, 『아비달마 구사론』제2권 363쪽 이하 및 405쪽 이하 등을 참조할 것.) 상좌부에서는 중유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이렇게 강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이 둘의 가운데(ubhayam antarena)'라는 말씀을 취해서 중유(中有, 中陰, antara-bhāva)를 인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vacana)은 아무 쓸모가 없다(niratthaka). 중유라는 존재는 아비담마에서 거부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운데(antarena)'라는 단어는 다른 것을 상정하여 말하는 것(vikapp-antara-dīpana)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이 [세상]도 없고 저[세상]도 없고 이 둘 다가 아닌 다른 것을 상정함(vikappa)도 없다.'는 뜻이 된다.”(SA.ii.372 ~ 373)
상좌부 아비담마(『논사』(Kv.362~366) 참조)와 주석서 문헌들은 한결 같이 중유를 인정하지 않지만 본경의 본 문단처럼 니까야에는 중유를 인정하는 듯한 문구가 나타나고 있다. 본서 「말룽까뿟따 경」(S35:95) §13의 주해와 본서 제5권 「계(戒) 경」(S46:3) §13 (7)의 주해를 참조할 것. 특히 본서 제5권 「토론장 경」(S44:9) §7과 주해를 참조할 것.
[만일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고, 죽을 때에도 구경의 지혜를 성취하지 못하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수명의 중반쯤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수명의] 반이 지나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노력 없이 쉽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고,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노력하여 어렵게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더 높은 세계로 재생하여 색구경천에 이르는 자가 된다. {초불}
만약에 바로 현세에서 일찍 궁극의 앎을 성취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목숨이 다할 때에도 궁극의 앎을 성취하지 못하고,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화생하러 가는 도중에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고,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화생하는 순간에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고,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화생하여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고,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오랜 시간 노력해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한다 해도,
낮은 단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상류의 궁극적인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진 신들의 하느님의 세계에 이른다.{성협}
No ce diṭṭheva dhamme paṭikacca aññaṃ ārādheti, no ce maraṇakāle aññaṃ ārādheti,
no ce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antarāparinibbāyī hoti,
no ce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upahaccaparinibbāyī hoti,
no ce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no ce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asaṅkhāraparinibbāyī hoti,
atha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uddhaṃsoto hoti akaniṭṭhagāmī.
만약 그가 현세에서 최종 지혜를 얻지 못하고, 죽음의 순간에 최종 지혜를 얻지 못하며,
다섯 가지 낮은 결박의 완전한 파괴로 인해 중간에서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고,
다섯 가지 낮은 결박의 완전한 파괴로 인해 착륙 즉시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며,
다섯 가지 낮은 결박의 완전한 파괴로 인해 노력 없이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하고,
다섯 가지 낮은 결박의 완전한 파괴로 인해 노력을 통해 열반에 드는 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때 다섯 가지 낮은 결박의 완전한 파괴로 인해
그는 상류로 향하는 자가 되어 아카니타 천계를 향해 갑니다.{AI}
yato kho te, mālukyaputta, diṭṭhasutamutaviññātabbesu dhammesu diṭṭhe diṭṭhamattaṃ bhavissati,
sute sutamattaṃ bhavissati, mute mutamattaṃ bhavissati, viññāte viññātamattaṃ bhavissati;
tato tvaṃ, mālukyaputta, na tena.
말룽까뿟따여, 그대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알아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볼 때는 단지 봄만이 있을 것이고 들을 때는 단지 들음만이 있을 것이고
감지할 때는 단지 감지함만이 있을 것이고 알 때는 단지 앎만이 있을 것이면
그대에게는 '그것에 의함'이란 것이 있지 않다.
yato tvaṃ, mālukyaputta, na tena; tato tvaṃ, mālukyaputta, na tattha.
말룽까뿟따여, '그것에 의함'이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거기에'라는 것이 있지 않다.
yato tvaṃ, mālukyaputta, na tattha;
tato tvaṃ, mālukyaputta, nevidha, na huraṃ,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ti.
말룽까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있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여기 [이 세상]도 없고 저기 [저 세상도] 없고 이 둘의 가운데도 없다.]
atha kho āyasmā ca sāriputto āyasmā ca mahācundo āyasmantaṃ channaṃ
iminā ovādena ovaditvā uṭṭhāyāsanā pakkamiṃsu.
그때 존자 사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다는 이 가르침으로 존자 찬나를 교훈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atha kho āyasmā channo acirapakkante āyasmante ca sāriputte āyasmante ca
mahācunde satthaṃ āharesi.
그때 존자 사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다가 떠난 직후, 존자 찬나는 칼을 사용했습니다.
atha kho āyasmā sāriput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sāriputto bhagavantaṃ etadavoca —
그 후 존자 사리뿟따는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경배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존자 사리뿟따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āyasmatā, bhante, channena satthaṃ āharitaṃ. tassa kā gati, ko abhisamparāyo”ti?
“nanu te, sāriputta, channena bhikkhunā sammukhāyeva anupavajjatā byākatā”ti?
“atthi, bhante, pubbajiraṃ {pappajitañhitaṃ (ka.), upavajjitaṃ (ka.), pubbavijjanaṃ, pubbavijjhanaṃ,
pubbaviciraṃ (saṃyuttake)} nāma vajjigāmo.
tatthāyasmato channassa mittakulāni suhajjakulāni upavajjakulānī”ti.
세존이시여, 존자 찬나가 칼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행선지는 어디이며, 그의 미래 상태는 어떠합니까?
"사리뿟따여, 비구 찬나가 면전에서 너에게 그의 비난받을 일이 없음을 선언하지 않았느냐?
세존이시여, 푸바지라라는 바지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 존자 찬나의 친밀한 가족들, 가까운 가족들, 접근하기 쉬운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honti {posanti (ka.)} hete, sāriputta, channassa bhikkhuno mittakulāni suhajjakulāni upavajjakulāni.
nāhaṃ, sāriputta, ettāvatā ‘saupavajjo’ti vadāmi.
yo kho, sāriputta, imañca kāyaṃ nikkhipati aññañca kāyaṃ upādiyati
tamahaṃ ‘saupavajjo’ti vadāmi. taṃ channassa bhikkhuno natthi.
‘anupavajjo channo bhikkhu satthaṃ āharesī’ti evametaṃ, sāriputta, dhārehī”ti.
사리뿟따여, 이들은 실로 비구 찬나의 친밀한 가족들, 가까운 가족들, 접근하기 쉬운 가족들이다.
그러나 사리뿟따여, 나는 단지 이것만으로 '비난받을 만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리뿟따여, 누구든 이 몸<*kāya>을 버리고 다른 몸을 취하는 자,
그를 나는 '비난받을 만하다'고 말한다. 이는 비구 찬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비구 찬나는 비난받지 않고 칼을 사용했다' -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수지하라.
idamavoca bhagavā. attamano āyasmā sāriputto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īti.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사리뿟따 존자는 만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channovādasuttaṃ niṭṭhitaṃ dutiyaṃ.
2번째(M144) 찬나 교훈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