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넷으로 설 차례 음식물에 대한 사진을 퍼왔다.
차례상,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류의 진열순서,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얼추 그렇다는 뜻이다.
위 사진의 진열방식도 조금은 변형이 된 듯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한다.
단 생선(조기?)의 위치가 반대로 된 것 같다. 조상 혼령이 젓가락으로 생선을 발라서 자신다면 생선의 배는 어느 쪽이어야 할까?
동서의 구분 : 대추가 있는 곳이 서쪽, 포도가 있는 쪽이 동쪽
남북의 구분 : 신위가 있는 곳이 북쪽, 절하는 위치가 남쪽
제수 진설법((祭需陳設法)
가가례(家家禮)란 말이 있듯이, 지방마다, 문중마다 조금씩 다르다.
법률에 규정한 것이 아니기에 조금 어긋나도 괜찮다!
◇좌동우서(左東右西) : 사람의 왼쪽(조상의 왼쪽이 아님)이 동쪽, 오른쪽은 서쪽.
◇반서갱동(飯西羹東) : 밥은 서쪽(왼쪽) 국은 동쪽(오른쪽)/좌반우갱(左飯右羹)
◇두동미서(頭東尾西) : 물고기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어동육서(魚東肉西) : 바닷고기는 동쪽, 뭍고기는 서쪽.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조율시이(棗栗枾梨) : 과일의 순서는 왼쪽부터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좌포우혜(左鮑右醯) : 마른고기는 오른쪽 절인 고기는 왼쪽.
◇생동숙서(生東熟西) : 날 것은 동쪽, 익힌 것은 서쪽.
◇건좌습우(乾左濕右) : 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
◇접동잔서(接東盞西) : 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
◇남좌여우(男左女右) : 제사를 모실 때 중앙을 중심으로 남자들은 좌측에 여자들은 우측에 선다.
◇좌고우저(左高右低) : 산체는 왼쪽에, 낮은 곳에서 난 채소는 오른쪽에 놓는다.
◇좌귀우천(左貴右賤) : 귀한 것은 양이니 왼쪽에 흔한 것은 음이니 온른쪽에 놓는다.
1.
설 차례 음식물을 장만하는 아내한테 나는 또 잔소리를 했다.
'조금만 차려.'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해요.'라고 대꾸하는 아내는 자꾸만 음식물을 장만한다.
수십 년 전.. 큰집이었던 우리집에서는 설 추석에는 정말로 음식물을 많이도 장만해야 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최소한으로 간략하게 지냈으면 싶다.
마음같아서는 제수물을 파는 주인한테 '대신 차례/제사를 지내 주시오. 비용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라고 부탁하고는 나는 그 시간대에 어디로 놀러 다녔으면 싶다.
예전 직장에 다닐 때에는 설과 추석은 연휴가 있어서 2 ~3일 정도는 쉴 수가 있었다.
덕분에 시골 다녀올 수도 있었기에 설과 추석은 의미가 있었다.
* 자동차가 별로 없었던 때였으므로 서울역, 용산역으로 나가서 기차표를 예매하려면 몇 시간이나 줄 서서 기다려야 했고...
아내, 자식 넷, 여동생 그리고 나까지 6명이 이동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하고 힘이 들었음. 그 당시 고향으로 내려가고, 다시 귀경하면...
* 언제인가.. 서울 잠실에서 고향집까지의 자동차 거리는 180km.
그해 폭설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완전히 눈에 묻혀서... 작은 딸과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가다가 서다가.. 고향집 마당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18시간. 밤을 꼬박 새서... 다행히 내 차는 사고는 없었고.. 이렇게 힘들게 이동해야 하는 게 명절...
요즘 세상은 많이도 허전하다.
나는 늙었다고 직장 다니지도 못하는 백수건달이기에 지금은 날마다가 휴일이며, 공휴일이며, 쉬는 날이며, 노는 날이나 연속된다. 이제는 설과 추석 연휴는 나한테는 별로이다.
나는 당뇨병환자이기에 맛있는 음식물을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도 없다. 가뜩이나 키가 작고, 뱃속 위도 작은 나인지라 나는 조금만, 쬐끔만 입맛 다시면 그뿐이다.
내일이 설날이라는데도.. 답답하다. 아파트 안에 갇혀 지내는 나.
컴퓨터를 작동시켜서 '설 차례상'을 어떻게 진설하는지를 또 공부한다.
사진속의 제례 음식물을 놓은 위치와 순서, 배열 등은 제각각, 제멋대로이다.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조상신(영혼, 혼. 귀신, 넋 등)이 있기는 있을까? 아무런 믿음이 없는 나는 고개를 흔든다.
내가 돌아가신 그 분들을 생각한 것에 불과하고, 그 영혼들이 나한테 온다고는 전혀 믿지도 않는다.
잔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는 사람들한테나 이런 것을 믿겠지. 그게 다 돈벌이가 되고, 발법이가 되고,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니까...
오늘이 내 엄니의 생일인데도 나는 그냥 모른 체한다.
어머니는 1919년 기미년 섣달 그믐생(양력으로는 1920. 2. 19. 생)
아흔일곱 살이 된 지 며칠 뒤(양력 2015. 2. 25)에 저너머의 세상으로 여행 떠났다.
지금은 서해안 산꼭대기에 흙집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누워 계시고...
이번 설에도 나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으나 내일이 음력 설날인데도 성묘조차 하지도 못하는 나.
2022. 1. 31. 월요일(음 12월 29일. 섣달그믐)
나중에 보탠다.
갇혀 있자니..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성균관 유생한테서 제례법 강의를 들어 보면 아주 복잡하더이다. 미리 만들어 제삿상을 벌이는게 아니라 그때그때 만들어 더운 음식을 제주가 공손히 상에 올리는데 제주와 그 부인이 나란히 서서 제주가 올리는 음식이 있고 부인이 올리는 음식이 따로 있답니다. 음식을 받아 올릴 때마다 세숫대야에 손을 씻어 음식을 받아 올립니다.제주는 조상의 신분을 나타내는 사모관대를 차려 입고 그 뒤로는 자손들이 서서 젯상이 차려 지는 것을 지켜 보다가 다 차려 지면 같이 절을 하더이다. 양반 위주의 차렛상이니 보통 평민은 흉내를 낼 수 없지요. 이제는 각 가정마다 편한대로 음식도 장만하더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설 차례를 그럭저럭 지냈지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는 서울 아파트 안에서...
시골에 있다면 큰집이기에 엄청나게 벅쩍거렸을 터인데도 종손인 제가 서울로 올라와서 사니...
설 차례 음식을 조금만 장만하라고 제가 지청구를 했는데도 아내는 그래도 제법 많이 차렸지요.
큰딸과 막내아들과 함께 절을 올리고...
제 작은딸은 시댁 본가로 가고, 큰아들은 처가인 대구에서 차례 지내도록 배려했지요. 대구 사돈네가 시끌벅쩍했으면요.
오늘 제 집에서는 큰딸의 시동생인 외국 사돈 형제가 왔기에 떡국으로 대접했지요.
자꾸만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옛 미풍양속이지만 그래도 오래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하루 이틀이라도 쉬고, 상품 가는 가게에서는 더욱 돈주머니가 채워졌으면 하고요.
시끌벅쩍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오래 오래 이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