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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장 맹상군(孟嘗君) (8)
맹상군이 이렇듯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을 무렵, 조(趙)나라에도 한 사람의 기린아(麒麟兒)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기린아란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젊은이를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평원군(平原君)'이라고 불렀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얼마 전 비운의 생을 마감한 조무령왕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 중 유력한 공자는 폐세자가 된 안양군(安陽君)과, 뒤늦게 세자가 되어 왕위를 물려받은 조혜문왕(趙惠文王), 그리고 첩의 몸에서 태어난 공자 승(勝)이었다.
이 공자 승이 바로 평원군(平原君)이다.
평원군(平原君)이라는 호칭은 맹상군처럼 죽은 후에 붙은 시호가 아니다.
그는 성장하여 조혜문왕으로부터 평원(平原) 땅을 식읍으로 받았는데, 이 때문에 평원군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평원은 지금의 산동성 평원현 서남쪽 일대다.
평원군(平原君)은 어려서부터 어질고 현명하였으며, 특히 빈객들이 자기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했다.
열 다섯 살이 넘으면서부터는 아예 집을 개조하여 문객들이 머물 수 있도록 숙사(宿舍)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그의 집을 찾는 문객의 숫자가 차츰 늘어났다.
하지만 맹상군(孟嘗君)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런 중에 그의 명성이 천하에 알려지는 계기가 생겨났다.
평원군의 저택 안에 높고 커다란 누각 하나가 있었다.
평원군(平原君)이 가장 사랑하는 첩이 기거하는 누각이었다.
어느 날,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 높은 곳에 올라 밖을 내다보는데 이웃 민가에 살고 있는 절름발이가 물지게를 지고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그 모습이 애첩의 눈에는 몹시 우스꽝스럽게 비쳤던 모양이다.
그녀는 깔깔대고 웃으며 그 절름발이의 걷는 모습을 구경했다.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절름발이는 크게 분개하여 그 즉시로 평원군(平原君)을 찾아가 따졌다.
- 저는 공자께서 선비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천하의 많은 선비들이 천릿길을 멀다 않고 공자의 문하로 모여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 몸은 불행히도 허리와 다리에 병을 앓아 보시다시피 걷는데 상당히 불편합니다.
- 그런데 오늘 아침 제가 물을 긷는데 공자의 첩(妾)이 저를 내려다보며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제가 한낱 여자의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절름발이 사내의 거센 항변에 평원군(平原君)이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 그 일은 참으로 잘못 되었소.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
- 저는 저를 비웃은 여자의 목을 얻기를 원합니다.
평원군(平原君)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대답했다.
- 알았소. 그렇게 하리다.
절름발이는 평원군에게 절하고 저택에서 물러났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평원군(平原君)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 저자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도다. 한 번 웃었다는 이유로 내 애첩(愛妾)을 죽이라고 하다니, 대관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평원군(平原君)은 매달 한 번씩 자신의 저택에 머무는 문객의 명단을 살피곤 했다.
명부에 적힌 인원수를 헤아려 다음달에 필요한 물품과 양식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자신에 대한 인기를 알아보려는 마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매달 문객(門客)의 수가 늘었을 뿐 줄어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두 달, 석 달이 지나면서 문객의 수가 조금씩 줄더니 1년이 지났을 때는 어느새 예전의 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평원군(平原君)은 명부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알 수 없는 일이다. 대관절 무슨 곡절인가?
모든 문객(門客)을 대청으로 불러놓고 물었다.
- 나는 오늘날까지 여러분을 대우하면서 한 번도 예의를 잃은 적이 없다고 자부하오. 그런데 1년 사이 어째서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것이오? 여러분은 내가 모르는 과실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문객 중 한 사람이 일어나 대답했다.
- 간단합니다. 공자께서는 절름발이를 비웃은 애첩(愛妾)을 죽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고 계십니다.
- 이로 인해 선비들 사이에 '평원군(平原君)은 여색만을 좋아하고 선비는 천하게 여긴다' 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뿔뿔이 떠나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평원군(平原君)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범했는가를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 과연 내가 잘못했소.
그러고는 허리에 찬 칼을 풀어 시종에게 내주며 지시했다.
- 이 칼을 가지고 가서 누각의 여인을 목 베어라.
얼마 후 시종은 피가 흐르는 애첩의 머리를 쟁반에 받쳐들고 왔다.
평원군(平原君)은 그 머리를 가지고 직접 절름발이 사내의 집으로 가 그에게 내주며 정중히 사죄했다.
이때부터 평원군의 집에는 다시 문객(門客)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이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 마침내는 천하에까지 평원군(平原君)의 명성이 떨쳐지게 되었다.
바로 이 무렵, 맹상군(孟嘗君)이 계명구도의 계책으로 함양성을 탈출하여 조나라의 한단성을 지나게 되었다.
'맹상군(孟嘗君)이라면 천하에 으뜸가는 협사(俠士)다. 이런 기회에 그를 만나보지 않으면 언제 또 만나랴.'
평소 맹상군을 흠모하던 평원군(平原君)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친히 한단성 30리 밖으로 나가 맹상군 일행을 맞이했다.
맹상군(孟嘗君) 또한 평원군의 명성을 들은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그의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뜻하지 않은 참변을 낳았다.
조(趙)나라 사람들은 맹상군의 이름만 들었을 뿐 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에 인근 마을 사람들은 맹상군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앞을 다투어 달려나와 수레를 에워쌌다.
원래 맹상군(孟嘗君)은 키가 작고 볼품이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기대감에 차서 달려나온 마을 사람들은 맹상군의 왜소한 모습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자신들도 모르게 비웃는 말을 던졌다.
"에게, 저 사람이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맹상군(孟嘗君)이란 말인가? 어찌 저리도 왜소하고 못났는가."
"나는 풍체가 굉장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광대짓이나 하면 딱 어울릴 외모로구만. 평원군과 비교하면 보름달과 반딧불의 차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리며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맹상군(孟嘗君)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지는 것을.
그 날 밤이었다.
맹상군(孟嘗君)이 묵고 있는 마을 거리에 수십 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모두들 칼을 뽑아들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마을의 한 집 앞에 멈춰섰다.
대문을 두드렸다.
집 주인이 나오는 순간 칼날이 번쩍 빛을 발했다.
집 주인은 영문도 모른 채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두 번째 집으로 갔다.
똑같은 살인이 그 집에서도 벌어졌다.
세 번째, 네 번째.......
이렇게 그 사내들은 마을을 한바퀴 돌며 그 곳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잔인하고 처참한 살인 행각이었다.
그 살인자들은 다름 아닌 맹상군(孟嘗君)을 수행하는 문객 중 칼을 잘 쓰는 검객들이었다.
- 감히 우리 주인을 모욕하다니!
그랬다.
이것이 그들이 그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한 이유였다.
다음날 이 살인사건은 즉각 평원군에게 보고되었다.
평원군(平原君)의 문객들은 한결같이 분개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당장에 군사를 내어 습격합시다."
그러나 평원군(平原君)은 모욕당한 맹상군의 분노를 이해한 탓일가.
아니면 맹상군 일행의 거침없는 행동에 기가 질려버렸음인가.
그는 끝내 아무말도 하지 않고 맹상군 일행이 떠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전국사군(戰國 四君) 중 으뜸가는 맹상군(孟嘗君)과 그 뒤를 잇는 평원군(平原君)의 첫 만남은 이렇듯 무참한 비극으로 끝이 났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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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재 감사합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