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1543년 풍기군수로 임명된 신재 주세붕이 고려 후기에 성리학을 도입한 인물인 회헌(晦軒) 안향(安珦, 1306~1423)을 모시며 서원을 건립했다.
지난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성리학의 이념으로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 9곳을 묶은 것입니다.
‘한국의 서원’에는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 포함되었습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인 서원으로 함께 랜선여행 떠나볼까요?
논산 돈암서원
돈암서원의 정문 산앙루 높은 산을 우러르며 자리한 돈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 사후 3년 되던 1634년(인조 12)에 후학들이 만들었습니다. 그 후 ‘돈암’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편액(扁額)·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이 됐습니다.
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고정산 줄기가 배산을 이룹니다. '배산임수'(풍수지리설에서 주택이나 건물을 지을 때 이상적으로 여기는 배치)의 형태로 돈암서원은 낮은 구릉에 기대어 높은 산을 우러르며 자리합니다.
사화와 반란, 잦은 전쟁으로 조선의 지배 체제가 크게 흔들렸던 16~17세기, 김장생은 예학으로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제자들이 기숙하며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 ‘덕에 이르는 문’이라는 입덕문(入德門)을 지나면 정면으로 강당인 양성당이 보입니다. 제자들이 늘 기숙하며 공부하던 곳인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사당인 숭례사를 둘러싼 담장에는 예학 정신을 새겨놓은 그림 같은 12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숭례사는 ‘예를 숭상하다’라는 뜻으로, 사계 김장생부터 그 제자인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의 위패가 있습니다.
-위치 :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
정읍 무성서원
담 너머로 보이는 무성서원의 모습 무성서원의 웅장한 입구 무성서원은 서원 9곳 가운데 유일하게 마을 중심부에 자리합니다. 후기 권위적인 서원과 대비되며 민중과 함께 도덕과 윤리를 펼친 주민 친화적 정신을 오롯이 증명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외삼문 대신 2층 누각인 현가루가 들어서 있습니다.
현가루는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말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요. 예(禮)가 서로를 존중하는 역할을 했다면, 악(樂)은 화합의 역할을 했습니다.
자연보다 백성과 소통하기 위한 공간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현가루의 모습 신라 시대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을 기리는 이곳은 공자의 현실 참여 사상을 반영해 지어졌고, 이는 자연스럽게 구한말 의병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강당에서 글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에 맞서 싸운 선비의 기개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장성 필암서원
필암서원의 모습 필암서원은 주변으로 들판이 펼쳐지고 걷기 좋은 공원이 조성된 덕분에 여유로운 풍류가 변함없이 이어집니다. 홍살문 뒤로는 서원의 정문이자 누각인 확연루가 들판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확연루는 서원의 출입문으로, 선비들이 시를 지으며 쉬던 건물입니다. 2층에 앉아 내다보면 월선봉과 드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서원의 출입문 확연루 그리 높지 않은 유민산이 뒤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평지에 자리 잡은 필암서원은 제사 공간과 교육 및 학문 수련의 공간, 휴식공간 그밖에 장서 보관 기타시설 등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구조를 잘 갖추고 있는 서원입니다.
특히, 확연루의 현판 글씨는 조선 후기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했던 우암 송시열이 직접 쓴 글이라고 합니다.
-위치 :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378-379
함양 남계서원
남계서원 안 작은 연못 하얀 연꽃이 활짝 피었다. 남계서원 안 작은 연못에는 여름이면 하얀 연꽃이 활짝 핍니다. 학문을 갈고 닦는 공간에 연못을 설치해 중간중간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정신을 이어, 제자들이 이곳에 연꽃, 매화, 대나무를 심었습니다.
물처럼 맑은 자아를 닦고자 했던 주희(중국 송나라의 유학자)의 사상과 세속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군자의 정신이 연못에 비치는 듯합니다.
학문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연못 앞으로 유생들이 거처하며 생활하던 양정재와 보인재가 있습니다. 그곳에도 누각을 만들어 애련헌, 영매헌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유생들은 평소에는 창문을 닫고 학문을 하다 날이 좋으면 창문을 열어 연, 죽, 매를 눈으로 코로 느꼈는데요.
학문과 휴식을 취하는 곳을 한 공간에 마련해 두었습니다. 연꽃과 매화의 향을 쫓는 선비의 멋이 전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대구 도동서원
도동서원 수월루 도동서원에서는 400년 넘은 은행나무에 제일 먼저 시선이 닿습니다. 사방으로 뻗은 나뭇가지는 무성한 잎의 세찬 기운으로 하늘을 받들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 유학자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외증손이 심은 나무입니다. 성리학 이론 중에서도 실천윤리를 강조한 그의 정신을 담아 ‘공자의 도가 동쪽에서 곧게 왔다’는 의미로 ‘도동(道東)’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중정당 대청마루에 서서 마당을 굽어보면 처마 아래로 낙동강이 보인다. 이곳은 모든 건축물이 직선으로 배치돼 있는데요. 좁고 가파른 돌길이 수월루와 환주문을 지나 강당인 중정당을 가로질러 사당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사화기에 지조를 지키며 죽음을 택한 학자의 정신을 공간 안에 나타나게 한 것이죠.
중정당 대청마루에 서서 마당을 굽어보면 처마 아래로 낙동강을 볼 수 있습니다.
-위치 :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726
경주 옥산서원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내가 흐른다. 울창한 나무들이 천천히 가지를 움직이며 옥산서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합니다. 녹음이 짙은 숲길을 따라 나무와 풀 내음이 가득합니다.
서원의 정문인 역락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옆 천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내가 흐릅니다. 서원 안에 냇물이 흐르는 모습에서 예부터 경주 일대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 선비문화가 느껴집니다.
옥산서원의 모습 경주의 옥산서원은 성리학의 대가로 꼽히는 회재 이언적의 학문을 기리는 곳입니다.
정문인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든 공간입니다.
냇물 앞으로는 2층 누각인 무변루가 있는데요. 무변루를 지나 마당에 오르면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여 하늘을 향해 창을 낸 듯한 느낌이 듭니다.
-위치 :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의 모습 병산서원으로 들어서려면 흙길을 5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옆으로 보이는 낙동강 상류 물줄기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 싱그럽습니다. 병산서원의 백미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마루인 '만대루'(晩對樓)입니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 나오는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니”라는 시어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어떤 칸막이도 설치하지 않고 어디 하나 막힘 없이 자연을 향해 그대로 뚫려 있어, 시선 가는 곳마다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막힘 없이 자연을 향해 그대로 뚫려 있다.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걷어내고 누각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만대루에서 온전히 자연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엿보입니다. 이런 태도는 서원 안 건물 배치에서도 나타납니다. 일반 서원에서 건물 배치의 핵심은 사당이지만, 이곳은 강학 공간이 중심입니다.
사당은 강당과 직선을 이루지 않고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어, 담벼락 너머에 있는 서원을 돌보는 하인들이 먹고 자는 공간까지 자연스럽게 서원의 영역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엄격한 유교 세계관(사당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내려오는) 이전의, 훨씬 더 유연하고 포용적인 세계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안동 도산서원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 조선에 성리학이 정착하고 서원이 퍼지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꼽힙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설계 도면을 그리고 지은 도산서당을 모태로 합니다.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도산서원으로 확장했는데요. 덕분에 개방적인 서당과 담장으로 막힌 서원 구조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서원 앞으로 강과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서원 앞으로 강과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잘 꾸며놓은 공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나무가 녹음을 뿜어내며, 건축물은 전반적으로 간결하고 검소한 편입니다.
주변 풍경이 아름다워 회화와 문학 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영주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1543년 풍기군수로 임명된 신재 주세붕이 고려 후기에 성리학을 도입한 인물인 회헌(晦軒) 안향(安珦, 1306~1423)을 모시며 서원을 건립했습니다.
고려 시대 인물인 안향을 2세기가 지나 서원에 모신 이유는, 당시로선 혁신적 기관이던 서원 설립을 반대하는 세력을 무마하기 위해 이미 검증이 끝난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소수서원의 모습 건물 배치는 전형적 서원 구조를 따르지 않아 자유로운 편입니다. 하지만 후대 서원과 같이 교육 공간인 강당 사당, 기숙사를 갖추었고, 강학 공간인 명륜당은 사방에 문을 냈습니다.
성리학과 안향의 사상이 세상으로 곧게 뻗어 나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서원입니다.
출처 : 대한민국구석구석 SNS 글, 사진 : 론리플래닛
※ 위 정보는 2020년 9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